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00
* * *
테세우스는 20층의 시험 감독관이었다.
시험 감독관은 시험에 관해 여러 가지 권한을 가진다. 법칙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시험에 일정 부분 개입할 수도 있고, 시험의 진행 상황을 상세히 관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대부분의 권한을 잃어버린 상태.
그래도 하나, 알 수 있는 부분은 있었다.
[‘씨 터틀’의 몸체가 시험장으로 지정됩니다.] [‘씨 터틀’을 처치하여 ‘바다의 돌’을 획득하십시오.]바로 시험의 내용.
직접 시험에 참가하는 플레이어는 아니더라도 관리자에게 권한을 부여받은 시험 감독관인 이상, 시험의 주제 정도는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저 녀석을 믿고 있나?”
한참 동안 이어지던 대치 상황에, 테세우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수타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테세우스는 굳이 그를 통해 대답을 듣지 않아도 거인족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저 녀석이 시험을 통과하고, 돌을 가져오길 기대하는 거겠지. 그렇지?”
“시끄럽군.”
“도박을 건 모양인데, 실패하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숨죽이고 있던 거인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올림포스가 이 사실을 알게 됐으니, 어떤 식으로든 시대는 변할 것이다.
어쩌면 두 번째 기간토마키아가 앞당겨질지도 모르는 일.
물론 거인족이라고 해서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성공할 거다.”
수타르는 멀리 고개를 들어 올리며 기지개를 피는 씨 터틀을 바라보았다.
“어르신께서 그리 정하셨으니까.”
우르파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수타르는 지금, 그 믿음 하나로 이곳에 있었다.
다른 거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타르를 따라온 열 명에 달하는 거인족 랭커들.
그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험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테세우스는 미소를 지었다.
‘무식한 거인들.’
유원이 랭커를 상대로 승리했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시험은 그런 유원이라 하더라도 절대 통과할 수 없었다.
씨 터틀의 몸속에 들어간 수천, 수만 마리의 괴물들.
그리고 씨 터틀, 본체를 쓰러뜨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시험은 반드시 실패한다.’
테세우스는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차피 시험은 자신의 손을 떠난 상태.
지금은 이 자리에서 막연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가 되면…….’
테세우스는 삼지창을 손에 꽉 움켜쥔 채, 천천히.
‘거인족을 쓸어버리고, 바다의 돌을 손에 넣는다.’
* * *
콰지지지지-!
떵-!
바다뱀들의 몸이 조각조각 찢겨지고, 파편이 사방으로 튕겨져 날아간다.
한 번 길을 뚫어 낸 유원은 다시 속도를 높였다. 쫓아오는 괴물들을 다 상대하고 있을 만한 여력이 없었다.
키야오-!
어룡의 울음소리가 바로 목 뒤에서 들려왔다.
바다 비린내가 더 심해졌다.
유원은 퀴네에를 찬 손에 힘을 주었다.
[‘은신’을 발동합니다.]스으으-.
유원의 모습이 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기척을 지우는 퀴네에의 능력.
비록 퀴네에를 만드는 과정이나 유원의 능력이 달라 하데스처럼 절대은신을 할 순 없어도, 잠시 몸을 숨기는 정도는 가능했다.
갸륵-?
유원을 향해 달려들었던 어룡이 잠시 주춤했다.
분명 단숨에 유원의 몸을 집어삼키려 했는데 갑자기 목표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킁-.
어룡이 냄새를 맡았다.
짜고 비린 냄새로 가득한 바닷속에서 길러진 후각이었다.
코끝을 자극하자, 금방 유원이 있는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콰직-!
그 짧은 순간의 헷갈림은 어룡의 목숨을 끊어 놓기에 충분했다.
유원의 무릎이 어룡의 목을 내리찍었다. 목이 부러진 어룡의 몸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지고, 유원은 그대로 시체가 된 어룡의 몸을 밟아 뛰어올랐다.
파앗-.
캬아아아-!
무수히 많은 바다뱀들이 꿈틀거렸다.
유원은 아래로 보이는 바다뱀들을 보며, 검에 마나를 끌어올렸다.
화르르륵-.
[성화] [퀴네에]파지지지-!
퀴네에와 성화가 함께 폭발하며 아래쪽에서 입을 벌리고 있던 바다뱀들의 몸을 불태운다.
[천살성의 완성도가 0.001% 상승하였습니다.] [천살성의 완성도가 상승하지 않습니다.] [천살성의 완성도가 0.001% 상승하였…….]어느 정도 완성이 다가온 천살성은 더 이상 완성도가 거의 늘지 않고 있었다.
아쉬웠다.
[완성도 : 99.041%]잘만 하면 이번 시험에서 천살성의 완성을 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어렵겠어.’
팟-.
유원이 다시 허공을 밟았다.
헤르메스의 발걸음의 효과.
가볍게 한 마리의 바다뱀을 뛰어넘은 유원은 다음 상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무시할 수 있는 녀석들은 무시한다.’
굳이 사냥에 목을 맬 이유는 없었다.
애초에 이 시험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니까.
스-.
유원은 퀴네에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에 집중했다.
꽤 먼 곳에서 퀴네에와 해신석이 서로 반응했다. 집중하지 않으면 모를 만큼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어렴풋이 방향을 잡는 건 어렵지 않았다.
두근-.
퀴네에를 타고 심장 고동이 느껴졌다.
해신석이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마나 하트에 박혀 있는 건가.’
씨 터틀은 심장 대신, 용족과 마찬가지로 ‘마나 하트’를 통해 움직였다.
마나 하트를 통해 마나를 온몸에 전달하고, 피를 순환시키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마나 하트는 인간의 심장이나 다름없었다. 돌처럼 매끄럽고 단단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심장처럼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었다.
이만한 크기의 씨 터틀이라면 마나 하트의 크기만 해도 어마어마할 터.
아마 웬만한 집채보다도 클 것이다.
캬아아악-!
우어어, 어어어-.
한 번 성화를 흩뿌려 만들어 낸 길은 금세 닫혔다.
바다에 살고 있는 괴물의 숫자는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많았고, 이미 씨 터틀의 몸속은 작은 바다나 다름이 없었다.
닫힌 길을 다시 뚫어야 한다.
지금은 정면 돌파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스걱, 화르르륵-.
파지지지지-!
유원은 마나를 아끼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사방이 온통 괴물들 천지인, 씨 터틀의 몸속. 시야마저도 어두워 감각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슈욱-.
픽-.
유원의 볼에 한 줄기 핏물이 튀었다.
얇게 베인 상처.
어디선가 날아온 칼날을, 한 끗 차이로 못 피한 것이다.
슈악-.
쩍-.
이어, 유원의 검이 가까이 다가온 괴물의 몸을 갈랐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반쪽으로 갈라진 괴물.
유원은 화안을 통해 녀석의 시체를 확인했다.
인어를 닮은 상체와 하체, 그리고 양손에는 사마귀처럼 날카로운 칼날을 가진 괴물.
갈퀴인어였다.
‘숫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안쪽으로 깊게 들어갈수록 괴물의 숫자도 덩달아 많아졌다.
화안을 통해 시야를 밝히고, 앞으로 전진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조금씩 상처가 늘어나다 보면 결국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방법을 바꾼다.’
유원의 눈동자 색이 검게 돌아왔다.
확장된 감각 덕분에 완전히 어두워지진 않았지만, 환하게 밝아져 있던 시야가 밤처럼 어두워졌다.
깜깜하게 변한 사방.
그 속에 들리는 건 괴물들의 울음소리뿐이었다.
다음 순간.
[감각지대]화아악-!
유원은 자신을 중심으로 주위의 공간이 자신의 발아래로 들어오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 직후, 유원은 갈퀴인어는 무리 생활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촤라라락-.
슷, 스스스슷-.
수 마리의 갈퀴인어들의 칼날이 유원의 몸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그런데.
카가각-.
갈퀴인어들의 칼날은 서로 부딪칠 뿐, 그 무엇도 썰어 내지 못했다.
오히려 썰린 건 갈퀴인어들 쪽이었다.
촤아아악-!
갈퀴인어들의 몸이 베어져 상, 하체로 나뉘어졌다. 갈퀴인어들의 기습을 피해 내고 동시에 반격을 가한 유원은 아예 눈을 감고 있었다.
‘훨씬 편하군.’
판단을 잘못하고 있었다.
어두워진 시야에 회귀 이후 꽤 오랫동안 사용해 온 스킬인 화안을 먼저 생각했다.
잃어버린 시야를 되찾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스킬이니까.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화안보다는 감각지대가 훨씬 어울렸다.
‘시야에 집중하는 이상, 화안의 전투 예측은 평소보다 힘이 옅어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는 차라리 시각을 포기한다.’
시각은 오감 중, 인간이 가장 많이 의지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감각 스탯이 높아지고, 싸움이 익숙해지면 싸움에 쓸 수 있는 감각의 개수도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감각지대는 바로 그런 감각들을 극대화시키는 스킬.
지금 이 순간, 유원은 눈을 감는 대신 시각에 써야 할 집중력을 다른 감각에 모두 쏟아부었다.
슷, 스스슷-.
화르르륵, 퍼엉-!
유원은 괴물들의 사이 사이를 누비며 성화를 뿌려 댔다.
스킬을 동시에 여러 개씩 사용하는 만큼 마나는 더 빠르게 고갈되었지만 전진하는 속도는 그만큼 빠를 수밖에 없었다.
“후욱-.”
호흡이 조금씩 가빠진다.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느라 체력이 빠르게 바닥을 보인다.
마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아무리 ‘밤’의 영향으로 체력과 마나의 회복 속도가 빨라졌다고 한들, 지금 상황은 밑 빠진 독이나 다를 바 없었다.
물을 퍼 나르는 사람이 두 명이 되었다고 해서 깨어진 독에 물이 빠져나가지 않을 리 없는 것이다.
‘얼마나 더 싸울 수 있지?’
유원은 전진에 전진을 거듭하면서도 계속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제 반.’
씨 터틀의 몸속에 들어온 지도 벌써 한 시간이 넘게 흘렀다.
그동안 나름대로 힘을 조절하며 싸운다고 싸운 건데도 반절가량의 마나를 소모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두근-.
소리가 멀지 않았으니까.
‘아니, 마냥 다행은 아닌가.’
소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괴물들의 숫자도 더 많아졌다.
느껴지는 기척들은 마치 개미 떼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이 정도 숫자면 지금까지 유원이 거쳐 온 괴물들의 숫자를 다 합친 것과 비슷한 정도였다.
‘마나 하트를 보호하는 건지, 해신석을 보호하는 건지.’
아마 씨 터틀도 나름대로 스스로 방어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리라.
치익-.
마나 하트가 있는 위치에 도착한 유원은 한 시간 만에 처음으로 발을 멈췄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황소처럼 달려들던 괴물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의 거대한 무언가를 중심으로 둘러싼 채, 움직임을 달리하고 있었다.
이건 유원을 공격하려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지키려는 움직임이었지.
두근-.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무언가는, 당연히 씨 터틀의 마나 하트였다.
스륵-.
깜깜하게 닫혀 있던 유원의 눈이 열렸다.
화안을 사용하자, 흐릿하던 시야가 환하게 밝아졌다.
두근-.
두근, 두근-.
마나 하트는 느리지만 힘차게 뛰었다.
새빨간 색의 거대한 바위. 저것이 바로 씨 터틀의 마나 하트였다.
집채만 한 크기의 마나 하트의 주위에는 이미 수많은 괴물들이 모여들어 있었다.
그르르르-.
캬하-.
슈르르르-.
수천 마리의 괴물들이 한데 모여 축제라도 벌이는 것 같다.
크기만 작다면 정말 벌레 소굴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저걸 뚫고 들어가야 한다.’
마나 하트에 해신석이 박혀 있는 건 확실했다.
이제 정말 코앞에 있었다.
꽈악-.
유원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더 이상, 체력이나 마나를 아낄 이유가 없었다.
츠츠, 츠츠츠츠-.
퀴네에에서 뿜어지는 힘이 강해졌다.
“내가 한 건 하나밖에 없다.”
헤파이스토스는 흑신석이 그 자체로 완벽한 아이템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그는, 유원의 요청으로 퀴네에를 만들 때 한 가지에 집중했다.
“이 아이템이 가진 힘을 다 이끌어 낼 매개체를 만들어 준 것. 그게 다야.”
본디 하데스가 사용하던 퀴네에라는 아이템은 ‘절대은신’으로 유명했다.
그것은 하데스의 성격이나 전투 방식이 워낙 은밀해, 퀴네에를 제작할 때 관련된 능력을 입히도록 부탁했던 것이다.
“내 생각이 맞다면 이건…….”
쩌억-.
퀴네에를 찬 유원의 손등에, 노란빛의 눈이 벌어진다.
-“아버지의 ‘벼락’에 비견될 만한 물건이 될 거다.”
[‘지옥’을 소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