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04
* * *
“해신석을 얻고 나면, 올림포스의 표적이 되겠군.”
가장 처음 그 이야기를 꺼낸 건 오딘이었다.
말 수가 그리 많지 않았던 그였지만, 이번만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만큼 해신석은 양날의 검이나 마찬가지였다.
“분명 좋은 아이템이고, 절대 올림포스에 넘기면 안 되는 아이템이지만…… 그걸 빼앗았을 때 감수하게 될 후폭풍도 그만큼 크겠지.”
“그냥 해신석은 포기하고, 시간을 버는 게 나으려나.”
“안전을 택하자? 다 같이 망하기엔 나쁘지 않지.”
의견은 둘로 갈렸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포세이돈을 대놓고 적대시하는 건 위험하다는 쪽.
그리고 안전을 택해서는 결과를 바꿀 수 없다는 쪽으로.
어쩌다 보니 유원은 헤파이스토스를 구함으로서 일찍부터 올림포스와 싸우게 됐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위험하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그런데.
“걱정할 필요 없을 거다.”
그 누구보다도 올림포스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큰아버지는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없을 테니까.”
“뭔가 아는 게 있나?”
오딘의 물음에 헤라클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올림포스의 삼주신은 한 핏줄을 타고났지만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아. 특히 아버지와 포세이돈 큰아버지의 사이는 더 그랬지.”
“그거야 뭐 유명한 이야기 아닌가?”
“그 유명한 이야기보다도 더, 훨씬.”
헤라클레스의 말에 자리에 모여 있던 모두가 눈을 빛내며 말을 아꼈다. 처음 듣는 이야기인지라 흥미가 동한 까닭이었다.
“아버지가 세 개의 돌 중 천식석을 얻고, 벼락을 만들고 난 후. 올림포스의 권력은 반 이상, 아버지의 것이 되었지.”
여기까지는 다들 아는 이야기였다.
벼락의 힘은 제우스의 힘을 몇 배나 강하게 해 주었고, 그로 인해 제우스는 모두가 인정하는 올림포스의 왕이 될 수 있었다.
“그 후로 아버지는 깨달았다. 다른 큰아버지들의 손에 해신석과 흑신석이 들어가선 안 된다고.”
“제우스는 포세이돈의 손에 해신석이 들어가는 걸 원하지 않는다. 이 말이냐?”
“그래.”
“반대로 제우스가 해신석을 노릴 가능성은?”
“아버지 엉덩이가 워낙 무거워서 말이지. 포세이돈이 아니라 일개 플레이어 한 명이라면 아버지도 움직일 수 없을 거다. 왕관을 쓰고 있는 입장이시니까.”
“……그래?”
실제로 제우스는 올림포스의 왕으로 등극하고, 기간토마키아가 끝난 이후 대부분의 활동을 중단한 상태였다.
또한, 올림포스의 왕인 제우스가 움직이면 다른 거대 길드에서도 움직이게 될 터.
헤라클레스의 말대로 포세이돈이 아닌 일개 플레이어의 일로 제우스가 직접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하긴. 그때라면 나도 제우스 녀석을 신경 쓰던 때니.”
그것은 대표적인 올림포스의 경쟁 길드였던 아스가르드의 주인, 오딘 역시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제우스는 올림포스 밖을 신경 쓸 수 없는 상황.
즉, 해신석이 밖으로 나가면 제우스는 포세이돈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그럼 대충 답은 나왔군.”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다.
“해신석을 포기할 순 없으니, 제우스와 포세이돈이 공멸하게 만드는 수밖에.”
* * *
“왜 안 된다는 거냐!”
구웅-.
거대한 신전이 흔들린다. 땅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꿀렁이고,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소식을 들고 온 그의 세 번째 아들, 오리온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대답했다.
“아무래도 거인족과의 충돌은 절대 금지한다는 뜻으로…….”
오리온은 등골이 오싹이는 탓에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지금부터 한 마디라도 더 떨어지면 눈앞에 있는 존재에게 몸이 짓이겨져 버릴 것만 같았던 것이다.
‘하필이면 제비뽑기에서 내가 질 게 뭐야.’
누군가는 전해야 하는 소식.
그리고 그 소식을 전달받은 눈앞의 남자는, 바다보다도 더 바다를 닮은 머릿결을 지닌 존재.
올림포스의 삼주신(三主神) 중 하나인 해신(海神) 포세이돈이었다.
“거인족이 아니라, 고작 플레이어 한 명일 뿐이다.”
“하늘의 권좌께서는 이번 일을 그렇게 작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모양입니다.”
하늘의 권좌. 그것은 올림포스의 위대한 하이랭커들에게 붙인 여러 이름 중, 가장 드높은 이름이었다.
감히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다는 뜻에서 붙은 또 다른 이름. 그리고 눈앞에 있는 포세이돈, 바다의 권좌는 그의 말에 불같이 화를 냈다.
“그냥 바다의 돌이 내 손에 넘어가는 게 싫은 거겠지!”
쾅-!
우지끈-!
내려친 협탁이 산산이 부서진다. 주먹을 내리친 포세이돈은 얼굴을 붉히며 오리온을 노려보았다.
“네 생각은 어떠냐? 제우스, 그놈이 수작을 부리는 것 같지?”
“어찌 저따위의 생각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오리온.
어느 쪽의 편을 들든 문제가 생기는 건 마찬가지였다. 신전에는 수만 개의 눈과 귀가 있었고, 대답을 잘못하는 순간 제우스의 귀에 자신의 말이 들어갈 것이다.
“빌어먹을 놈이…….”
포세이돈은 제우스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바득 갈았다.
한 핏줄을 가진 형제라고는 하지만 그들은 먼 사이였다.
특히 제우스가 올림포스의 왕위에 앉고 난 후부터는 더더욱 그랬다.
대뜸 천신석이라는 아이템을 얻어 그걸 통해 헤파이스토스에게 벼락을 만든 후부터.
제우스의 힘은 포세이돈과 하데스를 훨씬 뛰어넘었고, 삼주신의 힘의 균형은 무너진 상태였다.
“아뢰기 황송하나, 랭커도 아닌 플레이어를 더 건드릴 수는 없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헤파이스토스를 잡는 데 방해를 했다고 이를 갈 땐 언제고?”
“그, 그러게나 말입니다.”
“개 같은 자식!”
대놓고 제우스를 씹은 포세이돈은 분에 못 이겨 가구를 몇 개나 더 부쉈다. 신전 내의 랭커들은 그런 포세이돈의 화가 자신에게 미치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한동안 가구들을 때려 부수던 포세이돈은 천천히 화를 식혔다. 그러자 머릿속이 겨우 정돈되며, 제우스가 왜 이런 판단을 내렸는지도 알 수 있었다.
‘눈앞의 복수보다 실리를 택한다. 과연 제우스, 그놈답군.’
제우스는 원래 이런 성격이었다.
감정보다는 이성에 치중하며, 실리를 추구하는.
그렇기에 동생이면서도 포세이돈은 늘 제우스를 은연중 무서워했다.
다른 무엇보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그 성격 때문에.
‘김유원이라는 그놈이 아무리 대단한 재능을 가졌다 해도 아직은 플레이어일 뿐. 나만 한 힘과 세력을 갖추기엔 몇백, 몇천 년은 이르다.’
눈앞에 있는 거물이 자라나는 새싹보다 우선일 수밖에 없는 법.
제우스는 결국 김유원이라는 작은 사냥감을 포기함으로서, 자신을 견제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털썩-.
대노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던 포세이돈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명분은 저쪽에 있다 이건가…….”
지금처럼 제우스가 대놓고 견제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명분’ 때문이었다.
그것도 그는 탑의 법칙이라는, 여러 관리자들을 비롯한 여러 거대 길드가 함께 만든 규칙을 내세우고 있었다.
거기에 거인족과의 충돌을 금지한다는 올림포스의 내규까지 얽혀 있었으니.
“한동안은 자숙이라도 해야겠군.”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
이번 일로 포세이돈은 많은 것을 잃었다.
그토록 바라던 바다의 돌을 찾을 기회도, 랭커들을 투입해 움직일 명분도, 자격도.
모든 것을 잃어버린 셈이다.
* * *
유원은 눈을 떴다.
시끌벅적한 파티가 끝나고, 대단한 작별 인사 없이 몇 마디 말을 나누고 21층으로 올라왔다.
한 이틀, 내리 잠을 청한 것 같았다.
그만큼 몸 상태가 나빠졌다는 뜻이었다. 퀴네에를 무리하게 사용한 여파였다.
‘남발하면 안 되겠군.’
찢겨지고 부식되었던 손이 회복되고, 삐걱거리던 몸이 꽤 상쾌해졌다.
역시 회복에는 잠만 한 게 없다.
뚜둑, 뚝-.
앉아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유원은 몸을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
굳어 있던 관절을 풀며, 머릿속에는 그림이 그려졌다.
‘테세우스와의 싸움은 내 패배다.’
테세우스는 상위 랭커였다.
애초에 그는 지금의 유원이 비빌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다른 무엇보다, 스탯과 레벨의 격차가 너무 심했다.
마나를 쓰지 않고도 자신을 몰아붙이던 창끝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감각지대와 화안을 동시에 사용하지 않았다면 다 받아 내지 못했을 거다.’
유원은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분명하게 인지했다.
‘운도 잘 따랐고.’
해신석을 이용해 테세우스의 마력을 무효화시켰다.
오래 사용할 수 없는 능력이었다. 더욱이 테세우스가 마력의 봉인이 ‘물’과 관련되어 있음을 일찍 눈치챘다면 상황은 더 나빠졌을 것이다.
물론, 유원도 이미 지칠 대로 지쳐 퀴네에를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이긴 했지만…….
‘제대로 붙으면 아직은 못 이긴다.’
해신석이라는 아이템을 통해, 훨씬 좋은 상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승부는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너무 격차가 큰 싸움인 탓이다.
하지만 유원은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머릿속으로 테세우스와의 싸움을 그리던 유원의 눈은 더 반짝였다.
‘아직은.’
꽤 싸움이 됐다.
예상보다 훨씬 단기간.
20층에서 벌써 이만한 힘을 되찾았다.
자신이 어느 정도 힘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유원은 바보가 아니지만 그래도 확신은 없었다.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테세우스와 부딪쳤다.
그리고 비로소 확신이 생겼다.
‘여기까지 왔다.’
원래는 이 지점까지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3년.
길게는 5년 정도로 잡고 있었다.
그것도 남들이 안다면 말도 안 되게 짧다고 느낄 것이다. 랭커란 본디, 아무리 짧아도 수십 년 길게는 천 년에 걸쳐 만들어지는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유원은 지금 랭커가 아니면서도 랭커와 비견되는 힘을 갖췄다.
순풍에 돛을 단 걸 넘어, 마치 큰 태풍을 만나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게 된 기분이었다.
‘이제 21층.’
하위 층은 어느 정도 통과한 셈이다.
힘도 쌓았고, 시험에서 얻어야 할 중요한 아이템이나 스킬도 웬만큼 얻었다.
이만하면 확신이 섰다.
“조금 더 빨리 달릴 수 있겠어.”
해신석을 얻는 지점까지 달려온 이상, 시간은 앞으로 자신의 편이다.
제우스와 포세이돈은 당분간 서로 눈치를 보느라 움직이지 못할 테니까.
바로 시험을 치를까.
20층에서 결정했던 대로, 레벨을 챙길까.
고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해신석을 얻은 이상, 당장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오랜만에 보겠네.”
자리에서 일어난 유원은 가장 먼저, 플레이어 키트로 문자를 적기 시작했다.
“아저씨.”
* * *
시간이 흘렀다.
20층에서 벌어진 사건은 꽤 빠른 속도로 탑에 퍼져 나갔다.
바다의 돌.
해신이자 바다의 왕, 포세이돈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아이템.
그것을 다른 어느 누구, 어느 랭커도 아닌 김유원이 손에 넣었다는 소식이었다.
“아직 병아린 줄 알았는데, 이거 진짜 재밌는 놈이었네?”
그 말을 들은 어느 백발의 원숭이는 웃음을 터뜨렸고.
“올림포스의 망나니들이 속 좀 쓰리겠군.”
아스가르드의 왕은 오랜만에 들려온 즐거운 소식에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삼두육비(三頭六臂)의 투신(鬪信)은 미래의 적수가 나타났다는 생각에 호승심을 불태웠다.
김유원.
바다의 돌을 손에 넣은 플레이어.
그 소식은 올림포스와 관계된 상위 랭커들 사이에 은밀히 퍼져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