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07
* * *
-그 주제에 입을 턴 거냐?
스사노오의 말투가 바뀌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재미있다는 듯, 흥미로운 눈으로 유원을 바라보던 그가 급작스레 경멸의 눈을 지었다.
예상한 반응이었다.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닌 아수라가 인정할 만한 싸움 광이었으니까.
‘약자를 혐오하고 강자를 존중한다.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고 했지.’
그는 저층 구간의 플레이어를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인간은커녕, 벌레 취급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때문에 그는 눈에 보이는 플레이어를 닥치는 대로 죽이는 걸로도 유명했다.
“그럼 안 되나?”
-……괜한 기대였군.
스사노오는 팔짱을 기며 고개를 저었다.
-여긴 너 같은 벌레가 오르내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21층에 서식하는 괴물들 따위는 비교도 안 될 녀석들이 여기 존재하니까.
“아까 봐서 안다.”
-아까?
스사노오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플레이어 키트에 적힌 21이라는 숫자를 보고 나서 잊었지만, 이 문밖에는 ‘흡혈 하이에나’들이 널려 있었다.
흡혈 하이에나들은 그가 설계한 던전을 지키는 녀석들이었다. 40층 전후에서 볼 수 있는 괴물로, 숫자도 꽤 많았다.
-일행은 없나?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스사노오.
아무래도 단순한 사념일 뿐인 그는 특별한 기척이나 기운을 느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없어. 나 혼자다.”
저벅-.
유원은 곧장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사노오의 등장이 신기하긴 했지만 딱 거기뿐.
그는 어차피 살아 있지도 않은 사념일 뿐이다. 제대로 물리력도 행사할 수 없는 그를 더 상대할 생각은 없었다.
스으으-.
스사노오가 유원의 뒤를 따라왔다.
생각이 달라졌는지, 아까보다는 조금 더 흥미로워하는 표정이었다.
-난 널 따라간다. 네가 조각을 가지고 있는 이상 그건 어쩔 수 없어.
“왜지?”
-이 던전은 그렇게 만들어진 곳이니까.
“특이하네.”
유원은 스사노오의 말에 대충 대꾸하며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던전의 내부는 조용했다.
처음에는 미로라고 생각했는데, 군데군데 작은 가구들이 널려 있는 걸 보니 꼭 거대한 집처럼 보였다.
물론 집이라기엔 그 넓이가 무한히 넓어 어색함이 있었지만.
-순혈은 아니다, 이거지?
스사노오는 끝없이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살았지? 조각은 어디서 구했고?
조각.
토츠카의 검 조각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유원은 그의 말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걸었다.
아무리 심심하다 해도 그와 의미 없는 말을 계속 이어 가고 싶지 않았다. 귀찮기도 했고, 대답할 가치가 없는 말들뿐이었다.
-이건 진짜 궁금한데 말이지.
“말해 주면…….”
유원은 스사노오를 돌아보았다.
“방향이라도 좀 알려 줄 수 있나?”
-방향?
“다음 층으로 가는 문이나 계단이 어느 쪽 방향인지. 이런 미로형 던전은 어렵진 않아도 시간이 오래 걸려서 딱 질색이거든.”
제아무리 감각지대가 있다고 해도 길을 모두 파악할 순 없었다. 아마 운이 좋으면 몇 시간, 운이 나쁘면 하루 정도는 1층에서 썩을지도 모른다.
던전을 만든 주인인 스사노오라면 던전의 구조 정도는 알고 있을 터.
유원의 말에 스사노오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지.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스사노오가 한쪽 방향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문은 저쪽이다. 길을 찾으며 저쪽 방향으로 쭉 가다 보면, 다음 층으로 가는 문이 나온다.
“저쪽…….”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스릉-.
흡혈 하이에나들과의 싸움이 끝나고 잠시 집어넣었던 검을 다시 뽑았다. 힌트를 던져 준 스사노오가 재차 물었다.
-이제 아까 질문에 대답하지. 조각은 어디서 얻었지?
“1층의 시험, 기억하나?”
-콜로세움?
“거기서 얻었다.”
츠츠, 츠츠츠츠-.
퀴네에를 통해 마력이 뿜어진다. 지옥을 쓰지는 않았지만 충분한 힘이 검에 전해졌다.
-이해가 안 되는군. 고작 1층의 시험에서 그걸 얻었다고?
“콜로세움의 마지막 시험에서, 그 녀석의 머리가 나왔거든.”
몸을 돌린 유원은 뚫린 좌우 길이 아닌, 스사노오가 가리킨 막힌 벽쪽을 향해 섰다.
“야마타노 오로치.”
-뭐, 누구?
질문은 다시 이어졌지만 유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집중이 더 먼저였다.
‘이건 진짜 탑이 아니다.’
세상 끝에 있는 탑.
스스로 무너진 적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부수지 못했던 벽이라면 모를까, 모든 벽을 부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미로.
정해진 길을 ‘찾아야’ 하는 종류의 시험.
하지만 유원은, 항상 다른 길을 찾았다.
‘길을…….’
화르르륵-.
검에 붙은 성화.
유원은 있는 힘껏, 벽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만든다.’
쩌어억-!
폭발음과 함께 벽에 금이 갔다. 유원은 한 번 더 검을 휘둘렀다.
콰앙-!
후두두둑-.
무너져 내리는 벽.
유원은 먼지가 일어난 위로 걸어가 다음 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콰앙, 쾅-!
벽을 깨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유원을 보며 스사노오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길을 찾는 게 아니라, 만들면서 갈 줄이야.
사념일 뿐이지만, 그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야마타노 오로치를……?
고작 21층의 플레이어.
아니, 유원의 대답이 사실이라면 1층에서 오로치의 머리를 잡았다는 소리였다. 그런 게 가능한 것인지 스사노오는 믿을 수 없었다.
만약 지금 펼쳐진 광경을 보지 않았다면, 아마 거짓말이라 치부하며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콰앙-!
벌써 세 개의 벽을 부수고 길을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키히, 히히히히-.
음산한 웃음과 함께 사령(死靈)들이 나타났다.
영혼 형태를 가진 괴물들. 그들은 연기처럼 다가와 유원의 몸을 휘어감았다.
그 순간.
파지지-!
유원의 손에 찬 퀴네에가 사령을 집어삼켰다.
-뭐지, 저건?
대체 어떤 아이템인 걸까.
이제는 흥미를 넘어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탑의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짧은 순간에 몇 번이나 놀랐다.
영혼으로 이루어진 괴물을 집어삼키는 아이템이라니.
씨익-.
가만히 유원이 길을 만드는 걸 지켜보던 스사노오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재미있다.
새로운 걸 보는 재미.
그걸 넘어, 없는 몸이 달아오르는 기분까지 들었다.
-기대되는군.
* * *
길을 만들어 1층을 통과하는 데에는 불과 한 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민첩이 1 상승하였습니다.] [체력이 1 상승하였습니다.] [감각이 1 상승하였습니다.]1층을 통과하던 도중 레벨이 올랐다.
제법 많은 괴물을 사냥하기도 했고, 경험치가 거의 끝에 도달해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어서 2층, 3층.
유원은 이어지는 층을 계속해서 통과하며 스사노오의 던전이 가진 특성을 파악했다.
‘전부, 령(靈)과 언데드 속성의 괴물들.’
영혼으로 이루어진 괴물은 보기가 드물었다.
언데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아무리 물리적인 육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큰 차이가 있다 하나, 그들의 몸에도 마찬가지로 영혼이 깃들어 있었다.
모두, 죽은 생명들의.
그리고 그들의 영혼이 어디에서 나왔을지는 뻔했다.
‘스사노오에게 죽은 자들.’
스사노오는 아수라가 인정할 만한 검술의 달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탑에서 손꼽히는 사령술사(死靈術師)이자 네크로맨서였다.
그리고 그는 탑의 기나긴 역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마이기도 했으니.
‘자신이 죽인 사람의 영혼을 모두 모아, 이 탑을 만든 건가.’
좀처럼 동요하지 않는 유원이었지만 이쯤 되니 소름이 끼친다.
꼭, 무수히 많은 시체로 이루어진 산을 오르고 있는 기분이 든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누군가의 시체를 밟고 있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기분 더럽군.”
-뭐가 말이지?
태연스레 묻는 말에 유원의 고개가 돌아갔다.
지금까지는 그가 어떤 말을 하든 무시했지만, 이번에는 그러기가 힘들었다.
“너 말이다.”
-정의의 사도 납셨군.
“정의?”
유원의 눈살이 구겨졌다.
과연 자신은 정의로울까?
엄밀히 말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으니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원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사람을 해쳐야 한다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끝끝내 검을 휘두르지 못한다.
그렇게 그들은 모두 죽었고, 유원은 살아남았다.
자신은 정의롭지 않다.
이 세계를 살아가는 모두는 악인이다.
하지만…….
“많은 놈을 봤지만, 너 같은 놈은 처음이다.”
그런 유원도 스사노오 같은 녀석은 처음이었다.
-이제 고작 21층까지밖에 오르지 못한 애송이가, 참 많이도 봤겠군.
아무래도 그는 유원의 말을 착각한 모양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게 전부가 아닌데도, 유원은 오해를 풀지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유원은 조금 날카로워진 손끝으로 문을 잡아당겼다.
끼이이이-.
문이 열리고, 계단이 나왔다.
위로 향하는 계단을 걸어 유원은 다음 층에 도착했다.
[10층에 도착하였습니다.]10층에는 10개의 방이 존재했다.
1부터 10까지, 각각 숫자가 쓰여 있는 방이었다.
[1번 방에 입장해 해당 적을 쓰러뜨립시오.] [1번 방을 통과하면 2번 방의 문이 열립니다.] [5번 방을 통과하면 다음 층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이상했다.
10개의 방이 있는데 5번 방을 통과하면 다음 층으로 넘어갈 수 있다니.
이 경우,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6번 방부터는 10층의 난이도가 아니라는 뜻이겠지.’
-한 가지 알려 줄까?
스사노오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였다.
-네가 생각하는 대로, 여기 있는 놈들은 내가 살아생전 죽인 놈들이다. 영혼이든, 언데드든, 닥치는 대로 수집했지. 아마 여기서 제일 오래된 놈은 오천 년도 넘게 언데드로 살았을 거다.
스사노오의 말에도 유원은 덤덤했다.
이미 예상하던 이야기였다. 같은 이유로 또다시 속이 끓을 필요는 없었다.
다만, 예상과 다른 건 생각보다 훨씬 그 시간이 길다는 것뿐.
생각보다 침착한 반응이라고 여겼을까?
스사노오는 작게 놀라며, 첫 번째 방으로 향하던 유원에게 말했다.
-이놈들을 구할 방법은 없어. 나보다 더 뛰어난 네크로맨서나 사령술사가 아닌 이상에는 말이야. 하지만 최소한, 놈들을 죽이면 여기서 벗어날 수는 있겠지.
5번 방에서 끝내지 않고, 계속해서 10번 방까지 도전하도록 부추기는 말이었다.
-어떻게 할 테냐? 그냥 모른 척할 거냐? 아니면 계속 도전할 거냐?
뻔한 도발.
하지만 넘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말 안 해도, 도전할 생각이었다.”
덜컥-.
1번 방의 문이 열렸다.
안쪽에 있는 건 초췌한 얼굴의 장발 남자였다. 얼굴이 하얗고 핼쑥한 것이,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언데드.
방은 좌우 폭이 20여 미터 정도로 싸우기에 충분히 넓었다.
1번 방의 언데드는 문이 열린 걸 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감정마저 모두 사라져 버린 얼굴.
아마 이자 역시, 수백 년 동안 이 좁은 방 안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일어날 필요 없다.”
“……?”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언데드의 얼굴 위에 처음으로 표정이 떠올랐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그때.
화르르륵-.
언데드의 몸에, 보랏빛의 불이 붙었다.
[성화]치이이이-.
언데드의 몸에 붙은 불.
하얗던 피부가 녹아내리고, 발끝부터 서서히 사라진다.
언데드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애초에 고통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1번 방을 통과하였습니다.]언데드의 소멸을 확인한 유원은 몸을 돌렸다.
“이제 쉬어라.”
유원의 발걸음이 2번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기이잉-.
오른손에 찬, 퀴네에가 옅은 빛을 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