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10
* * *
랜슬롯.
이름은 많이 들어 봤다.
길드 ‘원탁’의 새로운 주인.
아서와 함께 탑을 올라 백여 년 전, 하이랭커에 올랐으며 원탁을 거대 길드의 문턱 가까이 끌어올린 자가 바로 그였다.
그런 랜슬롯이 배신하다니.
-……놀라지 않는가?
분명 충격적인 이야기임에도 유원이 별다른 반응이 없자, 아서가 의아한 듯 물었다.
-랜슬롯이 누군지 모르나 보군. 하긴, 지금쯤이면 원탁이 사라졌을지도 모르니.
“원탁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커졌습니다.”
-그래?
수천 년 만에 듣는 바깥의 이야기였다. 아서의 목소리가 살짝 밝아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럼 아직 랜슬롯은 거기에 있는 거겠군.
“예.”
-……더더욱 서둘러야겠군.
아서의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들어주겠나?
“그렇게 말하셔도…….”
유원은 곤란한 듯 한숨을 쉬었다.
“전 네크로맨서가 아닙니다만.”
-뭐?
“당신 목소리를 듣는 건 아마 이 아이템의 영향일 겁니다. 제게는 네크로맨서처럼 당신을 언데드로 부활시킬 방법이 없습니다.”
-그럴 수가…….
절망한 듯, 아서의 목소리가 잘게 흔들렸다. 그런 아서의 반응에 잠시 고민하던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가능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닐지도 모르니.”
-방법?
“그런 게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영혼을 잔뜩 모은 덕분에 이참에 관련 스킬을 얻는 것도 고려하고 있었으니, 겸사겸사 나쁘지 않습니다.”
어차피 멀린과는 만나고 언젠가 만날 생각이었다.
길을 돌아갈 필요도 없고, 아서가 자신의 편이 되어 준다면 유원으로서도 나쁠 게 없었다.
무엇보다.
‘랜슬롯은 언젠가 처리하긴 해야 했으니까.’
그것은 꼭 아서를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원탁과 브리튼이 더 더렵혀질 걸 알면서도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
게다가 랜슬롯을 끌어내릴 수 있다면 더 큰 대어가 따라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침 잘됐군.’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 받아들이겠습니다.”
-고맙군.
[아서의 부탁을 수락하셨습니다.] [‘브리튼의 정화’를 시작합니다.] [완료 시, 기사왕 아서의 완전한 복종을 얻습니다.] [기사왕의 영혼을 획득하였습니다.]메시지가 떠올랐다.
의외였다.
그저 단순한 부탁이라 생각했건만, 시스템이 되어 메시지가 만들어질 줄이야.
‘이것도 일종의 히든 피스인가.’
아서가 죽은 지도 벌써 천 년이 넘었다.
아마도 그는 스사노오의 던전에 오랫동안 존재하며, 시스템에 속한 일부가 된 모양이었다.
브리튼의 정화.
그것은 아마 배신자 랜슬롯과 관련된 퀘스트일 것이다.
‘완전한 복종이라…….’
언뜻 애매모호하게 보이는 보상이었지만 유원은 그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나쁘지 않군.’
언데드를 부리는 데 필요한 건 강인한 육체와 영혼, 두 가지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완벽한 언데드를 부릴 수 없었다.
살아생전의 힘을 10할 사용하기 위해서는 언데드가 스스로 주인을 정하고, 완전히 충성을 다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퀘스트의 보상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스으으-.
덮었던 손을 다시 치우자, 아서의 영혼이 퀴네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유원이 얻은 첫 번째 영혼이었다.
싸움이 끝난 유원은 바닥에 떨어진 아서의 검, 엑스칼리버를 주워들었다.
‘멀린, 그 할아버지는 뭐라고 생각하려나.’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만약 운 좋게 네크로맨서 관련 스킬을 얻는다면 멀린은 아서와 재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언데드가 된 아서를 보고, 그는 어떤 생각을 할까.
‘그렇다고 못 만나게 할 수도 없으니.’
멀린은 어떻게든 아서를 만나고자 했다.
실제로도 그는 아서를 만나기 위해 탑 구석구석에 있는 여러 사령술사들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또한, 아서 역시 멀린에게 전해야 하는 말이 있었다.
둘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건 결코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군.
뒤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스사노오는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그래도 나름 쓸 만한 놈인 줄 알았는데 말이지.
“아서를 죽인 건 우연이었나?”
유원의 물음에 스사노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서의 죽음과 실종.
그 속에는 많은 의문점들이 남아 있었다.
특히, 스사노오가 아서를 죽였다는 건 유원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스사노오는 호전적인 랭커였다. 살인에 거리낌이 없고, 폭력적인 성격이 강했다.
아서를 우연히 마주친 그가, 아서를 죽이고 그를 자신의 언데드로 만들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지만…….
역시,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시기가 교묘했다.
-글쎄.
스사노오는 유원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유원과 스사노오, 둘은 결코 서로가 원하는 답을 공짜로 내어 놓지 않았다.
-꼭대기까지 모두 오르고 나면, 그 질문에 대한 답도 해 주지.
대체 이 꼭대기에 무엇이 있는 걸까.
‘오르다 보면 알게 되려나.’
아서의 유산, 엑스칼리버를 인벤토리에 챙겨 넣은 유원이 다시 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 * *
시간이 흘렀다.
유원이 바깥의 시험에 참여하지 않고 활동을 멈춘 지 석 달째였다.
50층에 위치한 랭킹 관리기국.
덜, 덜덜-.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관리원들은 드물게 몸을 떨었다.
갑작스레 바깥에서 쳐들어온 한 랭커의 출몰 때문이었다.
“따, 따로 더 궁금한 거라도 있으십니까?”
관리원들은 서둘러 볼일을 끝내고 눈앞에 있는 남자를 돌려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랭킹 관리기국은 길드와는 상관없는 불가침의 영역으로 정해져 있었지만, 남자는 그런 것 따위를 신경 쓸 자가 아니었다.
무언가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
남자는 고개를 휙 돌리더니 물었다.
“이 녀석, 어디 출신이냐? 지금은 어디에 있고?”
순간, 관리기국 사람들의 몸이 굳어졌다.
오랜만에 아래층의 랭킹이라도 확인하러 온 건가 했더니만, 이런 정보를 요구하다니.
플레이어의 고유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은 거대 길드를 비롯한 그 어느 누구에게도 없었다.
“그건 알려 줄 수 없겠군.”
끼릭-.
문을 열고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허리까지 오는 작은 키에 열 살쯤 됐을까 싶은 어린 얼굴이었지만, 다른 관리원들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야, 심부름꾼.”
“지금은 기관국장이다. 예의 좀 갖추지?”
랭킹 관리기국의 국장.
또한 그는 한 층을 다스리는 관리자의 오른팔이기도 했다. 랭커들조차 벌벌 떠는 존재가 바로 그였던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그를 두려워하는 대신, 도리어 기운을 끌어올렸다.
구구구구-.
방 안 가득 찬 무거운 공기.
관리원들은 입을 다물고 숨을 참았다. 한숨이라도 들이켰다가는 공기가 폐부를 비집고 들어가 그대로 몸속을 뒤집어 놓을 것 같았다.
미미하게 땅이 흔들렸다. 남자가 기운을 끌어올리자 기관국장 역시 마찬가지로 힘을 끌어올렸다.
“본체도 아닌 분신 주제에, 관리기국과 싸움이라도 벌이려고?”
“…….”
남자, 손오공은 잠시 기관국장을 노려보았다. 그는 곧 몸을 돌려 관리국을 나섰다.
애초에 말이 안 되는 부탁이긴 했다.
플레이어의 신원을 확인해 달라니.
그건 관리자들만의 특권이었고, 어떤 거대 길드라 해도 요구할 수 없는 정보였다.
저벅, 저벅-.
손오공이 나간 자리.
“푸하-.”
“허억, 후-.”
관리원들은 그동안 참고 있던 숨을 내쉬었다.
“저, 저게 분신이었습니까?”
“본체가 아니라요?”
손오공.
최상위권의 하이랭커로, 분명 수십 수백 명의 분신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힘이 약해진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힘이 약해진 분신이 바로 방금 전의 손오공이었던 것이다.
“저 녀석이 본체였다면 내가 아니라 관리자님께서 직접 오셨겠지.”
관리자가 직접 와야 한다니.
그 말은 즉, 기관국장이 직접 나서도 손오공을 어찌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또한 관리자 정도는 되어야 그를 막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고.
“그, 그 정돕니까?”
“어쨌거나 랭킹과 관련된 정보 외에 다른 정보는 일체 발설해선 안 된다. 그게 설령 아주 사소한 정보라도 말이지.”
랭킹 관리기국은 랭커의 랭킹을 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각 층의 시험 결과를 기록하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이유는 그 기록을 바탕으로 랭킹을 측정하기 때문. 그만큼 플레이어에 대한 모든 기록을 지니고 있는 곳이 바로 랭킹 관리기국이었다.
그렇기에 거대 길드는 항상 관리기국의 말과 행동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탑의 모든 정보를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물론…….”
기관국장의 시선이 화면에 떠오른 인물에게 고정되었다.
“우리도 딱히 알려 줄 건 없지만 말이지.”
[이름 : 김유원] [출신 : ?] [소속 : –] [랭킹 : –] [등급 : E] [잠재력 : S]이름과 얼굴, 그 외의 정보들.
가장 기본적인 정보들이었지만 기관국은 그조차도 제대로 알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등급은 플레이어의 층수에 따라 매겨지는 것이니 의미가 없고, 랭킹은 랭커가 아니니 측정되지 않는다.
소속은 밝혀진 바가 없었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출신이 알 수 없음이라…….’
기관국장은 다른 랭커들을 떠올렸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군.’
심부름꾼 생활만 해도 수천 년이었다. 관리자의 밑에서 일하고, 기관국에 들어온 이후 그는 수많은 랭커들을 보아 왔다.
그중에는 탑의 절대자를 자처하는 최상위 하이랭커들도 있었고, 겨우 랭커가 되어 밑바닥 랭킹을 전전하는 랭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출신을 알 수 없는 플레이어는 없었다.
‘조사한 바로는 지구라는 세계에서 탑으로 넘어왔을 텐데. 출신은 왜 정보에 뜨지 않는 거지?’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킬 리는 없다.
그것은 결코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힘이니까.
“관리자님들이 이 녀석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있었군.”
그저 단순히 시험 성적만 좋은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시스템이 출신을 밝혀내지 못하는 존재.
‘11층의 시험에서 시험 감독관과의 싸움에서 무승부. 20층의 시험에서는 바다의 돌을 얻고 잠적.’
단순히 시험을 높은 성적으로 통과하기만 하는 게 아니다.
김유원의 행보는 탑의 지난 역사에 없을 만큼 독보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석 달 가까이 21층에서 멈춰 있군.’
그때까지만 해도 김유원에 관한 소식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왔다.
그런데 탑을 오르기를 멈추기라도 한 걸까.
유원은 21층 이후로는 오랫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여기서 만족하고 멈추는 게 이상한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랭커가 되지 않고 중간에 포기하기 마련이었다.
시험을 치른다는 건 목숨을 건다는 뜻이니까.
만약 유원이 중간에 멈춘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실망인 건 어쩔 수 없군.’
분명 석 달 전까지만 해도 멈추지 않을 것처럼 보였는데.
치익-.
기관국장은 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10층 구간에서 벌써 랭커와 싸워 이긴 플레이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천하의 제천대성조차, 50층에서 키메라 제작자를 쓰러뜨린 게 고작이었으니까.
그는 랭커가 된 지 몇 년 되지 않아 최단 기간 내에 하이랭커가 되었다.
이 직업도 오래하다 보니 직업병이라도 생긴 걸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녀석이 랭커가 된다면, 랭킹은 몇 등 정도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