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16
* * *
꿈속이라지만 참 열심히도 싸운 것 같았다.
그것은 과거의 재현이었다.
유원은 헤파이스토스의 망치를 갈아 만든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검이 부러지고 가루가 될 때까지.
그리고 어느 순간, 유원은 정신을 차렸다.
휘이이-.
살짝 열린 창문을 통해 바람이 들어왔다.
창밖을 보자, 이제 막 동이 트고 있었다.
‘아직 새벽인가.’
생각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더 잘 필요는 없지만 이제 막 던전을 나온 만큼, 오늘 하루 정도는 푹 자둘 생각이었는데.
이래서는 더 자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쪼르르르-.
물을 잔에 따라 마시자, 정신이 확 들었다.
꿈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엿 같군.”
많이도 죽였지만, 그만큼 많이 죽었다.
보랏빛 물결을 갈라 내며 앞장서 싸우는 아수라는, 결국 하나 남은 머리마저 아우터들의 입에 먹혀 버렸다.
그 모습을 다시 떠올리려니 역시, 속이 뒤집어졌다.
탁-.
컵을 다시 내려놓았다.
답답한 속을 달래기 위해, 마법 같은 주문을 속으로 되새겼다.
‘미래는 바꿀 수 있다.’
그걸 위해 자신은 과거로 왔다.
아직까지 바뀐 건 많지 않았다.
바뀐 건 자기 자신뿐.
아직까지 유원으로 인해 찾아온 탑의 변화는 티끌처럼 작았다.
‘이제, 시작이다.’
* * *
“썩 나가, 이놈아!”
휘리리릭-.
퍼억-!
대뜸 망치가 날아왔다. 머리는 아니고 가슴 쪽으로 날아온 걸 보니, 죽일 생각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유원은 망치를 피하지 않았다. 가슴에 꽤 통증이 왔다.
설마 진짜 맞을 줄은 몰랐던 건지 헤파이스토스가 흠칫 놀랐다.
“분 좀 풀리셨습니까?”
“뭐 하다가 이제 온 거냐?”
“멀리 좀 다녀왔습니다.”
“시험도 안 치른 주제에, 지가 뭘 한다고…….”
궁시렁거리며 중얼거렸지만 다 들렸다.
유원이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는 걸 보니 아마 그간 유원의 행적을 찾았던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쯧. 맞은 데는 괜찮냐?”
“조금 아프긴 합니다.”
“왜 안 피했냐?”
“맞아 줘야 아저씨 화가 좀 풀릴 거 아닙니까? 미안해하면 더 좋고요.”
“……재수 없는 자식.”
헤파이스토스는 짜증스레 머리를 긁어댔다.
어지간히 화가 난 게 아닌 이상 그는 망치를 던지지 않았다. 유원은 몇 번 그가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럴 때 화를 빨리 풀어 주는 방법은 그렇게 던진 망치를 한 대 맞아주는 것이었다.
어차피 죽어라 던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분풀이용으로 던질 뿐이다.
한 대 맞고 조금 아프긴 하겠지만 헤파이스토스의 화를 더 받아 내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래, 뭘 그리하고 싸돌아다녔냐? 이야기나 들어 보자.”
“던전을 한 군데 돌았습니다.”
“지금까지? 계속?”
“예.”
“네놈 수준에 던전 하나에 쩔쩔맨 건 아닐 테고…….”
“조금 어렵긴 했습니다.”
“어려워?”
“보통 던전은 아니었으니까요.”
헤파이스토스는 아직까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유원의 실력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이미 1층에서부터 크리세스와 싸울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아이템인 퀴네에 또한 헤파이스토스의 손에서 탄생한 아이템이었다.
21층.
그 낮은 층 아래에, 유원이 공략하기 어려운 던전이 있다니.
“또 어딘가 이상한 델 다녀온 모양이군.”
헤파이스토스는 바닥에 떨어진 망치를 다시 주워들었다.
질문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어차피 공략이 끝난 던전인 데다, 던전이란 애초에 대장장이인 헤파이스토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세공은 잘됐습니까?”
“그래.”
“다행이네요.”
“몇 번 그냥 부숴 버릴까 하다 참았다.”
유원은 헤파이스토스를 따라 창고로 향했다.
여전히 그의 창고는 눈이 부셨다.
탑 최고의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의 작품들.
단 하나라도 밖에 나갔다간 한바탕 큰 소란이 일 것이다. 헤파이스토스는 생활비가 떨어지거나 재료를 살 돈이 없을 때면 이것들을 하나씩 밖에 내다 팔았다.
“어디다 처박아 뒀더라…… 아, 여기 있군.”
한참 동안 쌓아둔 아이템 사이를 뒤지던 헤파이스토스는 이번에도 한 목함을 집어 들었다.
“옛다. 확인해 봐라.”
유원은 목함을 받아 열었다.
목함 안에는 푸른빛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보석이 들어 있었다.
마치 바다를 이 작은 보석 안에 압축해 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진(眞) 해신석(海神石)]# 태초에 탄생한 물이 굳어진 조각. 물의 마나로 이루어져 있다.
# 구분 : 재료 아이템
# 모든 바다를 다스릴 수 있다.
# 마나의 물 속성 변환
# 바다 소환(제한)
# 물 속성 마나에 대한 저항력 50% 상승
# 물 속성 마나의 증폭률 30% 상승
# 물 속성의 마나 소모율 30% 감소
아이템의 전반적인 틀은 흑신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이템의 속성 자체가 다르다는 점, 그리고 ‘바다를 다스린다.’는 효과였다.
‘바다를 다스린다…… 정확히 이건 어떤 건지 모르겠군.’
20층의 시험에서 레비아탄을 비롯한 바닷속의 괴물들을 부렸던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살아 있는 괴물과는 달리, ‘바다’란 좀 더 광범위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바다를 다스린다.
이 효과는 아무래도 직접 사용하는 걸로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당분간은 퀴네에에 박아서 사용해라. 그냥 그대로 쓰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
“그게 가능합니까?”
“작은 홈만 파면 되는데 어려운 것도 없지. 잠깐 손보면 된다. 그거 줘 봐. 반나절이면 끝난다.”
유원은 퀴네에를 벗어 헤파이스토스에게 건넸다.
헤파이스토스는 곧장 세공 칼을 꺼내 세밀한 작업을 시작했다. 아다만티움을 토대로 만들어진 만큼, 아무리 작은 홈이라 해도 퀴네에에 새로운 변형을 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원은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밤이 깊었다.
퀴네에에 홈이 새겨지고, 헤파이스토스는 그 안에 해신석을 박아 넣었다.
“그냥 가지고 다니기 편한 용도지, 제대로 완성한 건 아니야. 두 개 모두 사용하려면 비슷한 아이템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할 거다.”
스윽-.
유원은 퀴네에를 다시 손에 착용했다.
작은 홈이 파진 것뿐이었는데, 이상하게 다른 느낌이 들었다. 조금 더 장갑이 차갑게 변한 것 같기도 했다.
유원은 퀴네에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물었다.
“아니면 퀴네에 자체를 강화시키는 방법도 있습니까?”
“아이템을 강화시킨다?”
“예. 다른 재료를 추가하거나, 아니면 마나를 이용하거나 해서요.”
헤파이스토스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완성된 아이템의 강화.
그것은 현 시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유원은 알고 있었다.
훗날 헤파이스토스는 아이템 제작뿐만 아니라 아이템의 강화 방법을 터득해 내, 탑을 크게 흔들었다.
분명 헤파이스토스는 그게 가능한 사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강화라, 강화…….”
헤파이스토스는 무언가 실마리를 얻기라도 한 것처럼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유원은 그의 생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만약 그가 일찍 강화 기술을 터득하기만 한다면 하나의 아이템으로 흑신석과 해신석, 두 개의 조각을 모두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테니.
“네놈도 가끔은 쓸 만한 데가 있구나.”
“가끔입니까?”
“그럼 또 어디다 쓴다고.”
헤파이스토스는 몸을 돌리며 손을 휙휙 저었다.
“돈은 됐다. 오늘은 그래도 밥값은 했으니.”
헤파이스토스는 곧바로 공방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마 생각이 많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일지 몰라도 헤파이스토스에게는 그게 아닐 테니까.
반나절 동안의 작업. 하지만 헤파이스토스는 지치지도 않는지 곧장 망치를 들고 자신이 만든 아이템을 들고와 두드리기 시작했다.
‘혼자 두는 게 낫겠지.’
유원은 잘 있으라 인사를 남기고는 헤파이스토스의 공방을 나왔다.
이걸로 해신석을 받았다.
21층의 시험은 며칠 남아 있지 않았다.
약 석 달 반.
꽤 오랫동안 21층에 멈춰 있었다.
“슬슬 다시 올라가야겠군.”
* * *
날이 밝았다.
헤파이스토스의 공방에는 몇 자루의 칼과 창, 갑옷 같은 것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모두 반쯤 부러지거나 휘어지는 등, 제 기능을 못할 만큼 망가져 버린 아이템들이었다.
“강화라…….”
헤파이스토스는 망지를 손에 쥔 채 생각에 잠겼다.
몇 번 실험을 해 봤지만 역시나 실패.
마나를 불어넣어 강도를 높이거나 아이템에 새로운 아이템을 덧씌우는 등,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어렵군.”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유원이 남긴 말은 여전히 머릿속에 메아리처럼 맴돌았다.
망치를 두드리고, 계속해서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 온 삶이었다.
여전히 그 일을 좋아하고 즐겼지만 매일 반복되는 것에 질리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헤파이스토스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강화’라는 분야는 아직까지 헤파이스토스도 알지 못하는 분야였다.
‘강화술사나 인첸터 같은 놈들이라면 못할 것도 없겠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시적일 뿐, 장비의 성능을 영구적으로 바꿀 순 없다.’
헤파이스토스의 미간에 주름이 파였다.
‘강화. 강화라…….’
대장장이로서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절대 불가능한 게 아니다.
그러니 방법을 찾아야 한다.
헤파이스토스는 오랜만에 대장장이로서 불타오르는 걸 느꼈다.
쾅쾅쾅-!
지상으로 이어지는 계단 위.
누군가 공방의 문을 두드렸다.
“아침부터 뭐 하는 놈이지?”
집중이 깨어진 헤파이스토스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신경질적으로 문 쪽을 흘겨본 그는 다시 망치를 들고 멀쩡한 칼 한 자루를 두드리려 했다.
그때, 문소리가 이어졌다.
쾅, 쾅쾅-!
“이놈의 새끼가!”
헤파이스토스는 짜증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 집중을 깨는 문소리.
한 대 망치로 후려갈기기라도 할 것처럼 그는 망치를 주워들었다.
그런데.
콰앙-!
“……뭐야?”
이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부서지는 소리였지.
‘올림포스인가?’
이상했다.
1층의 관리자가 경고를 준 지 아직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향후 몇 년, 길게는 몇십 년 동안은 1층에서 함부로 움직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찌 저찌 자신을 잡아간다 한들 관리자와 척을 지게 되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게 훨씬 클 테니까.
‘아버지가 그 정도 계산을 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렇다면 그 밑에 있는 놈들인가?’
꽈아악-.
망치를 쥔 손에 힘이 더해졌다.
마나를 끌어올리고, 전투를 준비했다.
저벅, 저벅-.
계단을 타고 누군가 내려온다.
발걸음 소리는 한 명이었다.
그렇다면 해 볼만하다.
걸음 소리가 가까워진다.
기다란 다리를 시작으로 불청객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봐, 아저씨.”
소년 같은 어린 목소리.
길쭉한 팔과 다리, 그리고 새하얀 백발.
“그거 휘두르면 죽어. 그러니까 좀 내려놓지?”
“너…….”
문을 부수고 찾아온 불청객은 헤파이스토스도 잘 알고 있는 존재였다.
아주 오래전.
자신에게 찾아와 기다란 봉 하나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던 녀석.
“네가 여긴 웬일이냐, 원숭이?”
“어?”
문을 부수고 들어온 불청객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감히 스스로를 하늘과 같다고 칭하는 존재.
제천대성.
그가 헤파이스토스를 보고 놀라 물었다.
“여기 당신 집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