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17
* * *
공방의 공기는 식지 않는다.
뜨겁게 타오르는 공방의 불길은 특별한 나무를 태워 만들어졌다.
대화는 그 안에서 이루어졌다.
“여긴 왜 온 거냐?”
헤파이스토스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제천대성.
탑에서 이름 높은 최상위권의 하이랭커.
그는 올림포스의 삼주신과 비견할 만한 존재였다. 그런 그가 탑의 가장 아래인 1층에 모습을 드러내다니, 보통 일은 아니었다.
“대충 보아하니 본체는 아닌 것 같고…….”
“여기 본체로 왔다가는 관리자가 그냥 안 있지.”
손오공의 말에 헤파이스토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랭킹 100위권 안쪽의 하이랭커들은 관리자들이 특별히 신경을 쓴다. 상위 층이라면 모를까 저층 구간, 특히나 가장 아래쪽인 1층에 그들이 내려왔다가는 관리자가 더 주의 깊게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본체는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그러냐?”
“뭐야 그 반응은. 뭔지 안 궁금해?”
“궁금하기는. 또 천계 놈들이랑 푸닥거리나 하고 있겠지.”
“뭐, 비슷하긴 하네.”
손오공이 처한 상황은 유명했다.
거대 길드, 천계.
그들과 홀로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게 바로 손오공이었다. 제천대성이라는 칭호는 바로 거기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그때 만들어 준 무기는 잘 쓰고 있고?”
“아니. 버렸어.”
“버려?”
“더 끝내 주는 걸 얻어서 말이지.”
“어떤 놈이 만든 거냐?”
“나도 몰라. 용왕이 가지고 있던 건데, 원래는 무기가 아니래.”
“무기가 아니라고? 그럼?”
“몰라. 그건 안 물어봤어.”
무기가 아닌 걸 무기로 쓰다니.
헤파이스토스는 역시 별나다 싶었다. 자세히 보니 손오공의 등에는 얇고 기다란 봉이 걸려 있었다.
‘저건가?’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위력적이게 보이지 않았다.
얇기는 손가락만 하고, 길이도 1미터가 조금 넘는 정도.
제아무리 대단한 아이템이라도 기본적인 길이와 두께가 너무 부족했다.
‘누가 만들었는지, 원.’
“그런데 여긴 왜 온 거냐?”
손오공과는 친분이랄 것까지는 없어도 나쁜 관계인 것도 아니었다.
다른 상대였다면 혹시라도 올림포스의 사주를 받고 온 게 아닐까 하고 의심했겠지만 손오공은 달랐다.
세간에 알려진 그는, 그리고 헤파이스토스가 아는 그는 누군가의 밑에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사람을 찾고 있다.”
“사람을?”
“김유원이라고. 혹시 알아?”
익숙한 이름에 헤파이스토스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 손오공은 그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알고 있군.”
“모른다.”
씨익-.
손오공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검정색이던 그의 두 눈이 각기 다른 색으로 변했다.
[화안금정(火眼金睛)]“거짓말은 나한테 안 통해.”
한쪽은 붉게 타오르고, 한쪽은 금빛으로 반짝인다.
헤파이스토스는 손오공의 두 눈을 마주하고는 물었다.
“그게 그 유명한 화안금정이라는 건가?”
“분신이라 효과가 본체만큼 확실하지는 않지만.”
“거짓을 간파하고 진실을 꿰뚫는 눈이라…….”
헤파이스토스의 입에서 헛웃음이 비집고 새어 나왔다.
대체 어떻게 해야 저 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최소한 자신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었다. 한낱 분신이라 해도, 그는 손오공이었다.
‘이래서는 거짓말을 할 수도 없겠군.’
하지만.
“난 모른다.”
헤파이스토스의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모른다고?”
“그래.”
“알잖아, 당신.”
“모른다니까. 몇 번을 말해야 되는 게냐?”
“흠…….”
손오공은 머리를 긁적였다.
어찌나 세게 긁었던지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헤파이스토스는 그런 손오공의 눈을 피하지 않고 빤히 바라보았다.
“아저씨. 내가 진짜 이러고 싶진 않은데, 말 안 하면 아저씨 죽을 수도 있어.”
화륵-.
화안금정이 헤파이스토스를 노려본다.
만물을 꿰뚫는 눈.
저 눈은 진리를 꿰뚫고, 미래를 보며 과거를 본다고도 하였다.
제아무리 분신이라지만 손오공은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럼, 모르는 걸 안다고 말할까.”
헤파이스토스는 팔짱을 끼며 배라도 째라는 듯 가슴을 활짝 열어젖혔다.
“난, 모른다.”
* * *
20층을 넘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플레이어가 된다.
그것은 탑에 꽤 많이 알려진 이야기였다.
20층 이하의 플레이어는 플레이어라 부를 수 없으며, 진짜 탑의 신비를 경험하는 건 20층을 넘어서부터라고 말이다.
실제로도 20층을 넘어서는 플레이어와 그렇지 않은 플레이어의 격차는 상당했다.
두 번째 고비라고 할 수 있는 20층을 넘어선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한가락 하는 실력들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탑을 끝까지 오른 랭커들 위에 또다시 하이랭커가 존재하듯, 저층 구간의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름난 실력자는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중 최고는 단연.
“김유원은 이번 시험에도 안 나타나는 건가?”
김유원이었다.
그는 탑에 들어오고 일 년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꽤 많은 플레이어들의 머릿속에 이름을 각인시켰다.
무림대전의 우승자.
모든 층의 랭킹을 갱신한, 슈퍼 루키.
그는 빠른 속도로 탑을 오르던 도중, 어느 순간부터인가 멈춰 더 이상 시험을 치르지 않고 있었다.
“그렇겠지. 벌써 석 달 넘게 멈춰 있는 걸 보면.”
“여기 정착하기로 한 건가?”
“내가 그 녀석 같으면 랭커는 도전했을 것 같은데.”
“하긴. 랭커만 되면 먹고사는 건 물론이고, 뭐든 할 수 있으니까.”
“그 정도 성적으로 올라왔으면 포인트도 많이 모으지 않았겠냐? 편하게 살고 싶어 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시험장에 모인 플레이어들은 김유원의 이름을 가운데 두고 이야기했다.
석 달.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한 층에 몇 년씩 체류하거나, 다음 층으로 넘어가지 못해 머무는 플레이어는 자주 있는 편이니까.
하지만 김유원 정도 되는 플레이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죽었다는 말도 있던데?”
“그런가? 올림포스와 사이가 좋지 않다고는 하던데.”
“루머 아니야? 하르간이랑은 친구라던데?”
“그런가?”
여러 가지 가설들이 나오고 있던 때.
“됐고, 다들 우리 시험에나 집중하자. 이번에 떨어지면 다시 시험에 도전할 포인트도 없다.”
“예.”
“네에.”
팀의 리더가 한 마디 하자, 팀원들은 수다를 그만하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김유원, 김유원이라…….’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팀을 이끌고 있는 팀장, 엘프족 플레이어 라인하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100미터 남짓한 공간의 지하 동굴.
천장에는 자체적으로 빛을 뿜어내는 발광석이 있었다. 덕분에 시야를 밝히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가능하면 그 녀석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경쟁자는 가능한 없는 편이 낫다.
하물며 김유원 정도 되는 실력을 가진 경쟁자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늘 불안한 느낌은 틀리지 않는 법이었다.
“어디서 내 얘기를 하나?”
살벌한 목소리.
“뒤질라고.”
라인하르는 고개를 돌렸다.
그쪽에는 팔짱을 낀 채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는 플레이어가 한 명 있었다.
‘내 얘기?’
무슨 소린가 싶었다.
하지만 이내, 그가 입고 있는 옷이 눈에 들어왔다.
붉은색 장포.
그것은 분명, 불주술의 옷이었다.
“서, 설마…….”
“김유원?”
“뭐? 진짜?”
깜짝 놀란 플레이어들이 남자를 중심으로 멀찍이 물러났다.
남자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쫄기는.”
“진짜…… 김유원입니까?”
라인하르의 물음에 남자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무슨 뜻이냐?”
스아아-.
김유원의 몸에서 으스스한 마나가 뿜어졌다. 목을 옭죄고, 피부를 찌르는 듯한 살기에 라인하르는 눈을 피했다.
“아, 아닙니다.”
보통 실력자가 아니다.
대체 마력 스탯이 몇이나 되는 건지, 그저 마나를 뿜어냈을 뿐인데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거기다 불주술의 옷은 5만 포인트에 달하는 고급 아이템.
평범한 플레이어가 사용하기에는 상당히 비싼 아이템이었다.
게다가 불주술의 옷이라면 무림대전에서 김유원이 사용했던 아이템으로, 그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확실하다.’
꿀꺽-.
라인하르는 다른 플레이어들 사이에 끼어들며 한 번씩 김유원을 힐끔거렸다.
‘김유원이 다시 탑을 오르기 시작했어.’
양떼 무리 사이에 호랑이가 나타난 순간이었다.
* * *
대기 중이던 플레이어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김유원이라는 호랑이의 등장 때문이었다. 자칫 그의 눈에 띄어 심기를 거스르거나 하면 시험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목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21층의 시험을 시작합니다.] [수정이 생성됩니다.] [쏟아지는 괴물로부터 수정을 지키십시오.] [팀 내에는 ‘도플갱어’가 존재합니다.] [도플갱어의 숫자는 알 수 없으며, 플레이어의 숫자가 0이 되거나 수정이 파괴되면 시험은 실패합니다.] [도플갱어는 수정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도플갱어를 찾아내 제거하십시오.] [도플갱어를 모두 처리한 순간 시험은 종료됩니다.]동굴의 한가운데.
기이이잉-.
밝은 빛을 뿜으며 1미터 남짓한 크기의 푸른 수정이 나타났다.
이것이 바로 이번 시험의 핵심이 되는 장치.
수정이었다.
‘도플갱어라니?’
라인하르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위의 플레이어들을 둘러보았다.
다른 플레이어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어느새 그들은 서로를 경계하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이 안에 이미 도플갱어가 섞여 있었던 건가?’
그렇다면 누가 도플갱어고, 누가 진짜 플레이어인지 알 수 없다.
도플갱어는 사람의 모습을 흉내 내고, 기억까지 흡수하는 존재.
그들을 눈치만으로 찾아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거 꽤 복잡한데.”
“이래서야 누가 도플갱어인지 알 수가 없으니…….”
자리에 모여 있는 플레이어의 숫자는 백 명 정도.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먼저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한참 동안의 침묵.
그때.
“병신들.”
흠칫-.
작지만 좌중을 파고드는 목소리에 시선이 모아졌다.
붉은 장포, 불주술의 옷을 입은 플레이어.
김유원이 입을 열었다.
“고작 이런 시험에 겁을 먹어서는, 아무것도 못하나?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말이야.”
“뭐, 뭣…….”
“쉿. 참아.”
김유원의 일침에 몇몇 플레이어들은 반발했으나, 앞으로 나서지는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들은 김유원은 혀를 차며 다음 말을 이었다.
“어쨌든 이번 시험은 나 혼자 치르긴 힘드니까. 부디 발목은 안 잡길 바란다. 그리고 도플갱어는…….”
김유원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그 순간.
스칵-.
단숨에 뽑아 든 검이 한 줄기 빛을 뿜으며 옆에 있던 남자의 목을 베어 냈다.
스걱-.
철퍽-.
떨어진 머리가 액체처럼 바닥에 떨어져 점성을 띄더니 그대로 흘러내린다. 주위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헉!”
“괴, 괴물?”
도플갱어.
자신만의 형체를 가지지 않고 다른 존재의 삶을 빼앗아 살아가는 괴물.
김유원은 단숨에 그런 도플갱어 한 마리를 찾아내 베어 낸 것이다.
“시험이 진행되는 동안, 도플갱어는 내가 찾아 주지.”
그 말과 함께 김유원은 다시 검을 집어넣었다.
지금 당장은 다른 도플갱어를 찾지도 못하고, 괴물도 나타나지 않았다.
“와…….”
“쩐다, 진짜…….”
선망과 존경, 질투와 두려움과 같은 눈빛들.
여러 감정들이 복잡하게 섞인 눈빛이 쏟아졌다. 도플갱어를 찾아내 단숨에 베어 버린 김유원의 실력은 역시 듣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중에 한 명.
“재밌네.”
흥미로운 시선으로 그런 김유원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이 시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