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2
최재현은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에 이어 고개를 돌려 게이트를 보니, 색이 점차 붉게 변해 가고 있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군.’
아마 저 게이트의 색이 완전히 붉게 변하면 다음 튜토리얼로 넘어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자격을 갖춘 사람들만의 이야기였다.
‘내가 가진 게 45개.’
50개까지 남은 개수는 5개였다.
2시간 반. 열심히 움직이다 보면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레벨도 꽤 올랐고, 그만큼 사냥도 더 수월해졌으니까.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하나 있었다.
그런데…….
“사람 생각 다 똑같아.”
게이트 앞.
안전지대를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서로 일정 이상 간격을 두고 떨어진 사람들은 눈치를 보거나, 어색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게요. 하긴. 이 시간까지 못 모았으면 방법은 이것뿐이죠.”
“두식이 넌 몇 개냐?”
최재현은 3번 튜토리얼 내내 함께 움직인 동생 두식에게 물었다. 그는 정수의 개수를 셈하더니 대답했다.
“전 42갭니다.”
“8개…… 방법이 없겠네.”
정수가 나올 확률은 극악이었다.
어렵게 부상을 입고 아무리 괴물을 잡아 봤자 하나가 나오면 다행일 정도.
가장 약한 개체인 좀비는 스무 마리를 넘게 잡아도 하나를 얻기가 어려웠다.
‘뭐 이런 무식한 미션이 있는지.’
이건 단순한 사냥만으로는 통과할 수 없는 미션이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곳에 모였다.
문이 열리는 순간, 다른 사람이 모은 정수를 빼앗고 다음 튜토리얼로 넘어가기 위해서.
그런데 문제는, 모이기만 했다는 것이다.
“다들 움직일 생각이 없나 봅니다.”
“아마 문이 열리면 움직이겠지.”
아직 게이트가 활성화되려면 30분이 남아 있었다.
지금 당장 누군가를 공격한다면 필시 처음 움직인 쪽에게 이목이 쏠릴 터. 그리고 그것은 이 많은 사람들의 적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문이 활성화되는 순간, 빠르게 정수를 빼앗아 도망친다.’
최재현은 그렇게 말하며 안전 구역 반대편 쪽의 한 무리를 바라보았다.
게이트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 중, 유독 오밀조밀하게 뭉쳐 있는 사람들.
그들은 이번 3번 튜토리얼에서 가장 큰 파벌이었다.
“형님.”
“응?”
“저 녀석, 이쪽을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동생 두식의 물음에 최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저놈들이랑은 며칠 전부터 사이가 안 좋았으니까. 한바탕하기도 했고.”
“어떻게 할까요?”
“숫자는 저쪽이 훨씬 많아. 그러니 지금은 움직이지 말자. 굳이 싸워서 좋을 것도 없고.”
“저놈들도 아직 다 못 모은 걸까요?”
“몇 명 정도는 다 모았을지도 모르지. 전부는 아니겠지만.”
“근데 왜 여기 옵니까?”
“다른 일행이 부족하니까?”
“저놈들한테 그런 동료애가 있을까요?”
“이번이 끝은 아닐 테니까. 3번이 있으면 4번이 있고, 5번 6번도 있을 거 아니냐.”
“끙…….”
두식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표정을 찌푸렸다.
저벅-.
그때, 누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조심하고 있던 가운데 한 명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목이 쏠렸다. 최재현은 자신에게 다가온 남자를 바라보았다.
‘김명훈.’
최재현과는 반대쪽 무리를 통솔하고 있는 녀석이었다.
김명훈은 체격도 크고, 싸움도 잘했다. 무엇보다 녀석이 비범한 점은 교묘하게 사람을 설득하는 혓바닥이었다.
두식을 비롯한 세 명의 동생을 데리고 있는 최재현은 그들을 중심으로 스무 명이 넘는 파벌을 만들었지만, 김명훈은 그보다 더 많은 또 다른 파벌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서른 명 정도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녀석은 이 튜토리얼에서 사람을 포섭하는데 더 집중한 모양이었다.
지금 녀석을 중심으로 한 무리는 족히 오십은 되어 보였으니까.
어느새 그는 이 튜토리얼 무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한 이틀 만이죠?”
“그리 달갑게 인사할 만한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최재현은 김명훈의 인사에 차갑게 대꾸했다.
이미 두 파벌은 한 번 부딪친 적이 있었다. 그때에는 숫자가 비슷했기에 작은 충돌로 끝났고, 극적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김명훈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다.
“에이, 또 자존심 세우신다. 어떻게 될지 아시면서.”
실실 웃는 김명훈의 말에 최재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확실히 지금 상황에서 저들과 충돌해서 좋을 게 없었다. 갑과 을이 있다면 어느 쪽이 갑이고 을일지는 명확했다.
김명훈은 입을 다무는 최재현을 보며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는 아시죠?”
“어떤 상황인데?”
“2시가 되면 피바람이 불지 않겠어요? 각자 부족한 개수가 있으니까.”
김명훈의 말에 최재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생각을 잘못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무식하게 사냥만 해서 정수를 모았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그렇게 정수를 모은 사람의 것을 빼앗았을 것이다.
하지만 김명훈은 그다음을 생각했다.
‘이때를 위해 움직이고 있던 건가.’
지난 70시간 동안 김명훈은 사람을 모았다.
마지막 2시간.
게이트를 지나가야 다음 튜토리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 마지막 순간에 정수를 싹쓸이할 궁리를 했던 것이다.
‘역시 머리가 좋은 놈이야.’
최재현은 김명훈의 무리를 흘겨보았다.
대충 50명 남짓.
반면, 자신과 함께하고 있는 일행은 스무 명 정도였다.
아무데도 소속되지 않거나 4~5명 정도 되는 작은 무리도 여럿 있었지만 그들이 갑자기 힘을 합칠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너희는 몇 개나 부족하지?”
“우리가 워낙 입이 많아서요. 한 700개 정도 부족합니다.”
“700개?”
너무 많은 숫자였다.
적당히 백 개 정도 됐다면 목표치를 채워 주고 충돌을 피할 생각이었지만, 이래서는 그럴 수도 없었다.
‘우리가 가진 정수가 800개가 좀 안 된다.’
말도 안 되는 요구였다.
700개를 모두 채워 주고 나면 자신들도 남는 게 없었다.
속에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갈등에 불이 붙을 때쯤, 김명훈이 입을 열었다.
“400개만 채워 주시죠. 그럼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400개?”
“네. 남은 건 저희들이 알아서 하죠.”
가진 것 중 반만 빼앗겠다는 협박.
하지만 그것만 하더라도 감지덕지였다.
‘여기서 거절하면 전면전이 된다.’
최재현은 옆에 있는 두식을 비롯한 다른 일행들을 둘러보았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때였다.
안전지대 안쪽으로 누군가 들어온 것이.
“잠시만요. 잠시 실례합니다.”
“좀 지나갈게요.”
인파를 지나쳐나며 두 남녀가 안전지대 가운데로 향했다.
참 겁도 없다 싶었다.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김명훈과 그 무리 사이를 파고들다니.
‘뭐 하는 놈들이지?’
얼굴은 낯이 익었다.
오다가다 한 번쯤은 본 것 같았다.
하지만 잘 기억나는 얼굴은 아니었다.
아니, 한 명은 예외였다.
‘저 녀석은…….’
손에 큼지막한 박스를 들고 있는 남자.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짧게 자른 투블럭 검은 머리에 날렵한 턱선, 초점이 명확한 진한 눈.
2번 튜토리얼에서 안전지대 바깥을 활보하던 참가자, 유원이었다.
* * *
유원의 등장에 잠시 주위가 조용해졌다.
김명훈과 최재원의 기싸움도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유원의 존재는 이 싸움에서 가장 큰 조커 카드와 다름없었다.
당장 이 홍대 구역 내에서 유원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유원은 3번 튜토리얼이 시작하기 전부터 안전지대 바깥을 오갔고, 괴물을 사냥해 왔다.
2번 튜토리얼에서 모두가 두려워하던 웜을 밟아 죽이던 유원의 모습은 참가자들 중 단연 돋보이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턱-.
유원은 안전지대 한가운데로 걸어와 박스를 내려놓았다.
가장 먼저 돌아온 유원을 반긴 사람은 김명훈이었다.
“며칠 안 보이더니, 어디 가 있었냐?”
유원은 말을 걸어온 김명훈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김명훈의 표정에는 의미 모를 살기가 가득했다.
이제는 더 이상 웃는 얼굴도 없었고, 완전히 유원을 적대시하고 있는 것이다.
“할 일이야 뻔하지.”
“그래서, 다 모았냐?”
“당연한 소리를.”
유원의 대답에 김명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놀랄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유원의 실력이야 1번 튜토리얼에서부터 익히 보아서 알고 있었고, 그라면 사냥을 통해 정수를 모으는 게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는 것도 예상했던 것이다.
“몇 개나 모았는데?”
“어이, 잠깐만요.”
김명훈의 물음에 그 뒤쪽의 일행이 다가왔다.
김명훈은 고개를 돌렸다. 다른 일행들은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괜히 저 녀석과 척을 지진 맙시다. 레벨이 몇이나 될 줄 알고 그래요?”
“맞아요. 괜히 건드리지 맙시다.”
“그래, 명훈아. 네 심정은 알겠지만 이건…….”
다른 일행에 이어, 처음부터 함께해 온 친구인 승찬까지 만류하자 김명훈은 표정을 와락 구겼다.
“지금 저 녀석 하나한테 겁먹은 겁니까?”
“겁을 먹은 게 아니라, 정수는 다른 놈들한테 빼앗으면 된다는 소립니다. 저놈 하나보다 다른 놈 둘을 족치는 게 더 쉽고, 정수도 더 많이 얻을 수 있잖아요?”
“맞아요. 아무리 많아 봤자 50개일 텐데, 뭐 하러 건드립니까?”
맞는 말이었다.
3번 튜토리얼을 통과하기 위한 조건은 50개의 정수를 모으는 것.
3, 40개 정도를 모은 다른 참가자들 몇 명을 상대하는 게 50개의 정수를 모은 유원을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쉬울 것이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여기선 괜한 싸움을 피하는 게…….’
그때였다.
유원이 들고 있던 인벤토리 주머니를 반대로 뒤집은 게.
와르르르르-.
투둑, 툭, 투둑-.
“……!”
“미, 미친……!”
수많은 구슬이 큼지막한 박스 위로 쏟아졌다. 작은 구슬 크기의 정수가 박스 안을 가득 메운 건 지켜보고 있던 참가자들의 눈을 뒤집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무리 적어도 천 개는 넘어 보이는데…….’
어마어마한 개수였다.
한 순간에 안전 구역은 물론, 멀찌감치 떨어져 게이트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까지도 유원을 주목했다.
하나둘, 거리를 벌리고 있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김명훈이 물었다.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까?”
대답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원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개인에 불과했다.
가지고 있는 정수의 개수도 훨씬 많은 데다, 최재원 무리와 싸우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유원 한 명을 적으로 돌리는 게 나을 거라는 판단이 설 수밖에 없었다.
일행의 침묵에 김명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됐다.’
솔직하게 유원과의 일대일은 자신이 없었다.
주먹질이었다면 몰라도 칼을 든 유원의 실력은 이미 충분히 보아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대일의 경우.
자신에게는 50명에 가까운 일행이 있었고, 그 숫자라면 제아무리 유원이라고 해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유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많이 모았네?”
김명훈의 눈에 유원이 모은 정수들이 들어왔다.
그렇게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순간.
“바닥, 잘 봐라.”
유원이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자연스레 김명호의 시선이 손가락을 따라갔다.
‘선?’
바닥에 생겨난 선.
‘어느새?’
선은 유원을 중심으로 둥글게 그려져 있었다.
유원은 다가오던 김명훈이 멈추자 탐욕 어린 눈을 하고 있는 주위 참가자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이게 필요하지?”
간절한 말이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박스에 담긴 무수히 많은 정수는 참가자들의 이목을 모으고 그들의 간절함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유원은 그들의 간절함을 알았다.
죽고 싶어서 이곳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필요 없다. 이미 넘칠 만큼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
유원의 말에 가까이 있던 누군가 앞으로 다가오며 소리쳤다.
“그럼 나 좀……!”
“공짜는 아니야.”
유원의 목소리가 중간에 그 말을 끊어 냈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손가락 하나를 펼쳐 들어 올렸다.
“하나에 100포인트.”
유원은 바닥에 그린 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살 생각 있거든, 허락 받고 이 안으로 들어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