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25
반응이 왔다.
기다리던 반응이었다. 이번에도 알은 제대로 그 역할을 해냈다.
‘여기도 있었군.’
1층의 시험에서 나온 야마타노 오로치의 머리.
10층의 무림, 천마신교에 자리 잡고 있던 성화.
그리고 25층의 브리튼까지.
생각보다 아우터 갓의 잔재는 탑 곳곳에 뿌리를 내려 있었다.
‘문제는 어디에, 어떤 형태로 있느냐는 건데…….’
[‘?의 알’이 울음을 터뜨립니다.] [‘?의 알’이 꿈틀거립니다.] [‘?의 알’이…….]시끄럽게 울리는 메시지.
유원은 인벤토리 속에서 꿈틀거리는 알의 움직임이 느껴져 눈살을 찌푸렸다.
‘알았다, 알았다고.’
[‘?의 알’이 서두르라 재촉합니다.]부화율이 제법 올랐다는 걸까?
녀석은 머리 좀 컸다고 처음에 비해 꽤 다양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하긴.
꽤 오랫동안 굶었으니 아마 꽤 허기가 지긴 할 것이다.
금방이라도 아우터 갓을 먹게 해 주겠다고 했는데, 그로부터 시간이 꽤 지나 버렸으니.
‘천살성은 완성했고, 이제는 정말 이 녀석밖에 안 남았나.’
이름 모를 알은 튜토리얼을 끝내고 얻은 보상이었다.
막대한 보상을 기대했건만 안에 뭐가 들었을지도 모를 알 하나만 받았다.
안에 금덩이가 들었을지 아니면 막대한 폭탄이 들었을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유원은 녀석을 반드시 부화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먹은 건 야마타노 오로치의 몸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걸 본 후부터였다.
‘이 녀석은 어쩌면 천적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벤토리 속을 들여다보는 유원의 눈이 반짝였다.
‘아우터들의.’
* * *
파시벌은 유원을 왕성으로 안내했다.
“폐하께서 자네를 보고 싶어 하더군.”
그가 말하는 폐하란, 현 브리튼의 국왕 대행을 맡고 있는 랜슬롯을 의미했다.
멀린과 함께 원탁의 하이랭커이기도 한 랜슬롯은 아서왕 이후 두 번째 기사왕의 칭호를 얻은 상태였다.
“오늘 당장은 어렵지만, 시간을 내줄 수 있겠나?”
“폐하께서는 공사가 다망하신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나랏일로 워낙 바쁘셔서 말일세.”
유원으로서는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그러지요.”
왕성은 넓고, 빈방은 많았다.
유원은 그중 한 방을 배정 받았다.
마모스는 중간에 갈라졌다. 처음에는 유원의 일행이라 생각해서 함께 왕성으로 가기를 권유했던 파시벌이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차가웠다.
“더러운 악마가 감히 어디 그런 데 가도 되겠어?”
더 권유할 수 없는 대답이었다.
결국 왕성까지 온 건 유원 한 명뿐이었다.
“왜 이리 조용하십니까?”
방에 들어온 유원이 아서에게 말을 걸었다.
감회가 남다를 게 분명한데도 아서는 브리튼에 들어온 이후부터 지금껏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여긴 하나도 안 변했군.
“왕성 말입니까?”
-그래.
“오래된 건물인가 봅니다.”
-오래됐지. 내 나이보다도 많을 테니까.
꽤 감상에 젖은 모습이었다.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언데드로 존재해 온 그는, 오랜만에 돌아온 집에 향수를 느꼈다.
-다른 곳은 다 변한 것 같지만.
“성 밖에 말입니까?”
-내가 있을 땐, 시골 마을 같은 분위기였거든.
시골 마을이라니.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지금의 캐멀롯은 탑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였다.
-그런데 왜 여기까지 들어온 거지? 분명 올림포스 쪽에서 경고를 한 것 같은데.
“만날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멀린 말인가?
“예.”
-그 친구 한 명을 보려고 여기까지 와?
“당신이 부탁하셨잖습니까? 꼭 그를 만나야 한다고.”
-그렇긴 하다만…….
맞는 말이긴 해도 아서는 영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막무가내일 줄은 몰랐군. 계산적인 줄 알았는데 말이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사람 보는 눈이 꽤 있다고 생각했던 아서였다.
“그렇게 보였습니까?”
-그래. 지나치다 싶을 만큼. 모든 행동에 목적이 있고, 이유가 있고, 계획이 있고, 확신이 있지. 그걸 뒷받침할 실력도 있고.
스으으-.
아서의 영혼이 퀴네에에서 빠져나와 유원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는 유원의 눈동자 앞에 멈춰 물었다.
-이번엔 조금 감정적이었나? 왜지? 나 때문인가?
“그 이유도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만…….”
-그럼?
“애초에 잘못 보셨습니다.”
칼 같은 대답에 아서는 그럼 그렇지 하는 반응이었다.
-하긴. 제아무리 재능이 있다 한들, 경험이 없으니. 감정이 앞서는 것도 이해는 하네.
아서는 한껏 기가 살아 말을 이었다.
-하지만 랭커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 감정적으로 싸워서는 안 돼. 늘 흔들리지 않는 물처럼 명경지수의 마음을 유지하고…….
“그게 아니라.”
잔소리가 길어질 것 같아 유원은 중간에 그의 말을 끊어 냈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온 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뭐?
“잘 보십시오.”
유원은 창밖 너머, 저 멀리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브리튼을 감상했다.
“지금부터 제가 브리튼을 어떻게 뒤집어 놓는지.”
* * *
원탁에는 총 150명의 기사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모두 랭커이며, 1번에 가까울수록 더 높은 랭킹을 기록했다.
원탁의 149번째 기사 펜드락.
그는 가장 최근 원탁에 뽑힌 기사였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랭커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뽑힌 자리였다.
랭커가 되기 전부터 아래층에서 이름을 알리고, 일찍이 원탁에 가입해 공을 쌓아 온 덕분이었다.
비록 가장 아래쪽이라지만 원탁에 이름을 올렸다.
그야말로 탄탄대로에 로열로드라고 할 수 있었다.
“흐음~ 하.”
펜드락은 왕성의 공원을 거닐며 기분 좋은 꽃내음을 맡았다.
향긋하고 달콤하다.
이 공원과 아름다운 정원이 모두 자신의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였다.
바스락-.
툭, 투두둑-.
머리 위로 떨어진 나뭇가지, 그리고 나뭇잎들.
그리고 그 속에 섞인 먼지와 모래들.
싸아-.
좋던 기분은 순식간에 망가지고, 싸늘한 기분이 들었다.
펜드락은 고개를 들었다.
사다리 하나와 어린 시녀 한 명이 보였다.
아무래도 정원을 손질하던 중이었던 모양이었다.
“죄, 죄, 죄…… 죄송합니다!”
이제 스무 살은 됐을까?
얼굴에 주근깨가 있는 시녀는 서둘러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던 그녀는 결국 사다리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쿠당탕-.
“악! 아으으…….”
다행히 엉덩이부터 떨어진 덕분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펜드락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시녀에게 다가갔다.
“죄송해?”
오싹한 목소리.
“뭐가 말이지?”
시녀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펜드락의 가슴에는 원탁의 기사를 상징하는 검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제, 제가 기사님의 머리에…… 나뭇가지를…….”
“잘 아는군.”
펜드락은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자한 얼굴에 시녀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졌다.
브리튼의 기사들은 모두 기사도 정신을 배운다. 그것은 약자를 보호하며, 강자에게 맞서 싸우는 정신이었다.
어쩌면 용서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희망도 잠시.
“잘못을 했으면…….”
스칵-.
“벌을 받아야지.”
천천히 뽑혀져 나오는 검.
시녀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한 발짝씩 뒷걸음질을 치는 시녀를 보며, 펜드락은 비릿하게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이 정도 일로 목을 벨 생각은 없으니. 그래, 어디 보자…….”
펜드락의 시선이 시녀의 팔과 다리를 훑었다.
“어디를 거두어 갈…….”
그 순간.
후두두둑-.
펜드락의 머리 위 가득, 나뭇잎과 나뭇가지들이 떨어졌다.
방금 전보다 훨씬 많은 양.
그것이 마치 펜드락의 머리카락처럼 보일 정도였다.
“어이쿠, 실수했군.”
펜드락의 고개가 돌아갔다.
빼곡이 들어찬 하얀 백발과 자글자글한 주름, 허름한 천 옷.
감히 자신의 머리를 엉망으로 만든 사람은 정원을 가꾸는 늙은 정원사였다.
“미안하군. 나이가 드니 실수가 많단 말이지.”
“미안하다라…….”
펜드락의 눈이 뒤집혔다.
어린 시녀와 늙은 정원사 한 명.
베어 버린다 한들 뒷감당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원탁의 기사 중 한 명이니.
“오냐. 잘못을 안다니 다행이군.”
펜드락의 검이 움직였다.
“너는 특별히, 두 다리만 받아가마.”
슈아악-.
다리를 노리고 날아오는 검.
두 다리를 그대로 절단할 셈이었다. 깜짝 놀란 시녀는 옆에서 비명을 지르고, 노인은 반응하지 못한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깡-!
마치 단단한 쇠판을 두드린 것만 같은 소리.
노인의 다리는 베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펜드락의 검에 금이 생겨났을 뿐.
“머리를 더럽힌 죗값은 두 다리인가.”
노인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그럼 어디, 이제 네 죗값에도 무게를 달아 보거라.”
그제야 펜드락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평범한 정원사라고 생각했던 노인.
하지만 그저 평범한 정원사가 자신의 검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막아 낼 수 있을 리 없다.
그 순간, 펜드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 당신 설마…….”
이 브리튼에 한 명.
저토록 나이가 든 늙은 랭커가 있었다.
기사왕 아서와 함께 이 브리튼을 건국하고, 원탁을 세운 자.
대마법사라는 칭호를 지니고, 브리튼을 수호하는 가장 오래된 랭커.
“멀린?”
“그래도 내 이름 정도는 알고 있구나.”
펜드락의 입이 얼었다.
멀린은 현 브리튼의 국왕에 오른 랜슬롯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는 존재였다.
높은 랭킹의 하이랭커로, 우스갯소리로 브리튼의 전력의 반을 담당한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였다.
그런 멀린을 건드리다니.
“죄, 죄송…… 합…….”
“죄송한 건 아나 보군.”
멀린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자한 그의 얼굴에 펜드락은 순간, 어쩌면 이대로 잘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다.
어쨌거나 멀린은 다친 곳 하나 없었으니까.
하지만 기대도 잠시.
“잘못을 했으면…….”
펜드락은 이 상황을 어디선가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벌을 받아야지?”
바로 방금 전.
펜드락이 시녀에게 했던 말이었다.
* * *
“쯧쯧.”
멀린은 정원을 걸으며 혀를 찼다.
그러고는 근래 들어 유독 자주하게 된 말을 중얼거렸다.
“말세로다, 말세야.”
그러고는 하여간 요즘 것들은- 이라며 정작 그 자신도 어른들에게 들으며 자란 말을 중얼거렸다.
“안 그러냐?”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도 없던 정원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멀린은 걸음을 옮기다 말고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젊은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내게 뭐 용건이라도 있는가?”
“있지요.”
“난 그쪽을 처음 보네만.”
“김유원이라고 합니다.”
유원은 굳이 돌려 말하지 않고 곧장 자신을 소개했다.
멀린은 유원의 이름을 몇 번 곱씹어 보고는 물었다.
“혹시 이번에 새로 올라온 플레이어가 자넨가?”
“예.”
“이름은 들어 본 것 같군. 랜슬롯, 그 녀석이 초대한 건가?”
멀린은 브리튼의 국왕이자 현 원탁의 길드장이기도 한 랜슬롯을 어린아이 부르듯 이야기했다.
실제로 멀린은 아서가 국왕으로 있던 시절부터 이런 언행을 해 왔으니, 그의 이런 모습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 왜 날 찾았지? 이렇게 일부러 찾아온 걸 보면 단순히 얼굴이나 한 번 보려는 건 아닐 테고.”
“아서왕에 대한 이야깁니다.”
멀린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서.
그 이름은 오랜 시간이 지나, 멀린에게는 역린이 되었다.
“그 친구에 대해 묻고 싶은 거라면 돌아가게. 기껏 잊고 있던 사람을 다시 추억하고 싶지는 않…….”
그때였다.
스칵-.
유원이 칼을 반쯤 뽑는 것과 동시에, 멀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칼, 어디서 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