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28
* * *
죽일 생각은 없었다.
가능하다면 죽이지 않고 생포해서 정보를 얻어야 했다.
그렇기에 생각해 낸 게, 팔다리를 자르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빠르군.’
트할은 자신의 검을 피해 낸 유원의 동작에 눈을 반짝였다.
이름은 많이 들었다.
김유원.
최강의 플레이어라고 불리는 자.
그런 만큼 웬만한 실력은 가지고 있을 테고, 방금 전 공격쯤은 충분히 막거나 피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피할 줄은.
그때였다.
“랜슬롯이 시켰나?”
트할과 롤릿을 자극하는 말이 나온 것이.
“감히…….”
트할의 눈이 뒤집혔다.
아서의 죽음과 관계된 것만 아니라, 브리튼의 현 국왕인 랜슬롯까지 욕보이다니.
“팔다리가 다 잘리고도 그 입이 뚫려 있나 보겠다.”
파지지, 파지-.
트할의 몸에 흐르던 마나의 흐름이 거세졌다.
그에 따라 패널티가 작용되며, 트할의 몸을 괴롭혔다.
이미 각오는 마친 상황.
게다가 아직까지는 패널티가 그리 심한 것도 아니었다.
슈악-!
칼끝의 방향이 유원의 다리로 향한다.
이번에는 방금과는 달리, 확실히 한쪽 다리를 가져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쩡-!
칼끝은 옆으로 튕겨지고, 손끝에는 아릿한 충격이 느껴졌다.
트할의 눈이 번쩍 뜨였다. 바로 뒤이어 눈앞으로 까만 화면이 보였다.
어두워진 시야.
분노로 무뎌져 있던 감각과 정신이 순간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그 순간.
퍼억-!
타격음과 함께 유원의 몸이 뒤로 죽 밀려 날아가는 것이 트할의 시야의 들어왔다.
유원은 한쪽 손을 앞으로 내민 채였다.
방금 전, 자신의 시야를 검게 만든 게 바로 저 손바닥이었다.
“괜찮나?”
싸움에 개입한 롤릿은 어느새 끓어오르던 마나를 갈무리한 채였다.
잔뜩 흥분해 달려들었던 트할과는 달랐다.
유원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한 명 정도는 빨리 처리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건데 말이지.’
랭커가 되지 못한 플레이어를 무시하는 것.
그것은 랭커라면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되는 공통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플레이어를 거쳐 랭커가 된 존재들. 또한, 그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나름 이름을 알리고 재능이 빛을 봐서 탑의 정상까지 오른 존재들이었다.
그런 만큼 플레이어와 랭커의 격차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터.
당장 눈앞에 있는 트할만 하더라도 그런 점으로 인해 유원을 무시하고, 방심하고 있었다.
‘신중한 녀석이 있었군.’
흥분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전투에 임하는 자세가 신중하고, 또 진지하다.
상대가 플레이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마찬가지.
랭킹은 낮을지언정 유원은 오히려 이런 상대가 더 까다로웠다.
“긴장해라.”
롤릿은 방금 전, 유원의 움직임을 머릿속에 몇 번이고 되새겼다.
“보통 녀석이 아니다.”
츠츠츠-.
마나가 움직이며 그의 몸에 패널티로 인한 부하가 실렸다.
탑의 의지는 절대적이었다.
롤릿과 트할, 두 사람이 유원을 공격하기 위해 힘을 과도하게 사용할 때마다 탑은 그들의 몸에 패널티를 가했다.
하지만 이미 그런 것쯤은 각오하고 온 두 사람이었다.
트할은 방금 전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저벅-.
롤릿이 앞으로 나섰다.
유원은 칼끝으로 뒤쪽에 있는 트할을 가리켰다.
“저 녀석은 안 움직이나?”
“랭커도 아닌 플레이어에게 2대1은 자존심이 상해서 말이지.”
“아까 전에 자기가 한 말은 벌써 까먹었나 보군.”
“걱정하지 마라.”
쾅-.
우드드드-.
롤릿이 지면을 발로 밟자, 뒤집어진 땅이 위로 올라왔다.
“절대 방심 따위는 하지 않을 테니.”
그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롤릿은 기세를 한껏 끌어올렸다.
[‘원탁의 마흔두 번째 기사’가 당신을 위협합니다.] [‘원탁의 마흔두 번째 기사’가 ‘일기토’를 신청합니다.] [무대가 시작됩니다.]쿠구, 쿠구구구-.
연무장의 무대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눈앞에 이름 모를 높은 성벽이 나타났다. 텅 빈 허허벌판과 함께 유원과 롤릿은 그 위에 섰다.
관중은 한 명.
트할뿐이었다.
‘일기토라…….’
아마 이 무대는 롤릿의 스킬로 인해 만들어진 환각의 일종일 터.
주위의 풍경은 싸우는 병사만 없을 뿐, 전쟁터의 한 장소를 연상케 만들었다.
‘일대일에 최적화된 종류의 스킬. 제삼자가 끼어들면 스킬의 효과는 깨어진다.’
일기토는 사용 조건이 까다로운 스킬이었다. 시전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반드시’ 일대일이어야만 한다는 조건이 따랐던 것이다.
파훼 조건이 너무나도 쉬운 스킬.
하지만 지금처럼 유원이 혼자인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세를 잡아라.”
무대를 만든 롤릿은 유원이 검을 들고 싸울 준비를 마치기를 기다렸다.
잠시 일기토의 무대를 감상하던 유원은 롤릿과 트할을 번갈아보았다.
트할 역시 끼어들 생각은 없는지 어느새 팔짱을 낀 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기사도 정신이라는 건가.”
“비웃음이냐?”
“이길 생각은 있는 거냐? 아직도 방심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 우린 늘, 이런 방법으로 싸우고 이겨 왔다.”
맞는 말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브리튼이, 원탁이 존재하고 있는 것일 테니.
하지만 그것은 자격이 되는 자들이나 뱉을 수 있는 말이었다.
“그 방법으로 이겨 온 건 너희가 아니야.”
시간이 흘러, 누군가 쌓아 올린 평화와 안녕 위에서 자신들의 강함을 뽐내다니.
가소로울 따름이다.
“지금부터 내가, 그걸 알려 주마.”
* * *
쩡-!
유원의 칼끝이 방패 위를 두드렸다. 단단한 느낌이 손잡이를 타고 손목까지 전해졌다.
갑옷에 둘러진 스킬의 효과가 만만치 않았다.
단단하다.
뚫어내기 위해서는 더 큰 힘이 필요했다.
[거인의 힘이 팔에 깃듭니다.] [‘체력’ 스탯이 일시적으로 ‘근력’으로 치환됩니다.]꾸드득-.
숙련도가 올라간 거인화는 겉으로 보기에는 전처럼 크게 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유원의 팔 안에서 근육은 더욱 단단해지고, 압축되고 강해졌다.
꽈아악-.
유원은 퀴네에를 찬 왼손을 쥐었다.
그러고는 있는 힘껏, 앞으로 주먹을 뻗었다.
꽈앙-!
“……!”
방패 위로 전해진 충격에 롤릿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순간적으로 다리가 뒤로 밀릴 뻔했다.
상당한 충격이었다.
줄곧 검을 신경 쓰고 있었는데, 주먹을 통한 공격도 만만치 않았다.
‘검사가 아니었던 건가?’
유원은 다시금 주먹을 뻗을 자세를 취했다.
방패를 든 적을 상대로는 단순히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는 양손을 모두 쓰는 게 효과적이었다.
방패를 드는 상대는 그만큼 시야가 좁을 수밖에 없으니까.
‘퀴네에는 흑신석의 힘을 발현하는 매개체지만…….’
꽈아악-.
다시 한번, 주먹에 힘을 싣는다.
‘그걸 만들기 위해 쓰인 재료는 아다만티움이다.’
꽈앙-!
“크읍…….”
롤릿은 주먹에서 전해지는 힘에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대체 무슨 힘이 이렇게 강한 걸까.
심상치 않은 마나의 흐름 이후, 갑작스레 힘이 강해졌다.
방패가 조금씩 흔들린다.
그렇다면 더 이상 버티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웅웅-.
방패에 모여드는 마력.
그와 동시에 방패를 든 롤릿이 앞으로 튕겨져 나온다.
‘차지(Charge)?’
콰앙-!
가까운 거리에서 이루어진 충돌이었지만 유원의 몸은 공중으로 붕 떠올라 날아갔다.
겨우 발을 지면에 붙여 더 멀리 날아가는 건 막을 수 있었지만, 충격은 심상치 않았다.
저릿, 저릿-.
유원은 손목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다시금 롤릿을 바라보았다.
‘성벽을 무너뜨릴 정도의 힘이다.’
스탯도, 스킬도, 롤릿의 모든 능력은 힘과 방어에 특화되어 있었다.
마치 거대한 탱크를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저 방어를 뚫어 내지 않고서는 롤릿을 쓰러뜨릴 수 없었다.
척-.
그는 한 손으로는 검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방패를 내밀고 있었다.
다시금 달려들 자세.
“힘으로 싸우겠다는 건가.”
힘에는 힘으로.
그것이 바로 롤릿이 선택한 방법이었다.
나쁠 건 없었다.
오히려 바라던 바였다.
힘이라면 유원도 마찬가지로 자신 있는 종목이었으니까.
꾸득-.
피부 아래, 유원의 근육이 마나를 품고 꿈틀거린다.
거인화는 지금까지는 숙련도도 낮고, 체력도 낮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었다.
스킬 자체의 난이도가 높은 탓에 효과가 반감되어 있던 것이다.
하지만 처음과는 달리 거인화의 숙련도는 꽤 높아졌고, 레벨이 오르면서 스탯도 꽤 성장을 이뤘다.
이 정도면 이제 충분했다.
[‘체력’스탯이 일시적으로 ‘근력’으로 치환됩니다.] [체력이 충분합니다.] [거인의 힘이 전신에 깃듭니다.] [최초로 ‘거인화’를 성공하였습니다.]전신에 깃든 거인의 힘.
유원은 검을 집어넣고, 두 주먹을 부딪쳐 말했다.
쾅-!
“덤벼.”
* * *
쾅, 쾅쾅쾅-!
방패와 주먹이 부딪쳤다.
잠시 떨어졌다 다시 달려들고, 또다시 부딪치기를 반복한다. 둘의 싸움에는 어떤 기술이나 기교 따위가 없었다.
부딪치고, 또 부딪친다.
이를 악물고서.
으득-.
우우웅-.
뒤로 멀찍이 물러난 롤릿은 다시금 방패에 마나를 실었다.
푸른 마나로 이루어진 거대한 방패. 롤릿은 이 스킬로 인해 원탁에 앉을 수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번에야말로, 저 무식한 몸뚱이를 밀어내고 말리라.
다리에 힘을 모았다. 방패를 단단히 쥐고, 앞으로 달려 나간다.
화아악-!
성을 무너뜨릴 만한 기세.
하지만 달려오던 건 롤릿뿐만이 아니었다.
부우웅-.
유원의 주먹이 앞으로 뻗어졌다.
서로 마주 달려들던 두 사람이 부딪쳤다.
콰아앙-!
우지끈, 콰드드드-.
둘의 충돌로 인해 지면이 움푹 파이고, 땅이 원형을 그리며 위로 솟아올랐다.
힘과 힘의 충돌.
그 순간, 롤릿의 방패에 원형의 푸른 문양이 그려졌다.
[‘원탁의 방패’가 대상을 보호합니다.]롤릿의 스킬은 방패의 강도와 경도를 올리고, 충격을 분산, 흡수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방패를 이용한 돌진은 방어력이 곧 공격력이나 마찬가지.
하지만 정작 충돌의 결과는 스킬의 효과와는 반대였다.
주륵-.
롤릿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한 걸음.
그리고 두 걸음.
“큭…….”
롤릿은 부들거리는 팔들 들고 버텼다.
방패를 이용한 공격은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끝이었다. 더군다나 힘과 힘의 대결에서 플레이어에게 패한다는 건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지익-.
두 다리를 땅에 단단히 고정하고, 어떻게든 앞으로 밀고 나간다.
버텨졌다. 더 이상 밀리지 않았다.
그런데.
쾅-!
바로 이어서 방패 위로 충격이 느껴졌다.
휘청-.
“헉-!”
순간 무릎이 꺾일 뻔했다.
하지만 충격은 한 번만이 아니었다.
쾅, 쾅쾅쾅쾅-!
연달아 이어지는 주먹질.
쩍, 방패에 금이 가고 서서히 손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뭐 이런 무식한…….’
“정말로 내가 아서를 죽인 자들과 한 패라고 생각했다면.”
믿을 수 없었다.
이게 정말 플레이어라니.
“정말 복수를 하고 싶었던 거라면 기사도 정신 같은 건 버렸어야지. 몇 명이 함께 싸우건, 수단이 무엇이건. 그런 건 상관하지 말았어야 했다.”
쾅-!
방패 위를 두드리는 힘이 점점 더 강해진다.
몸이 흔들리고 방패는 깨어진다.
이건, 버틸 수 없다.
“혼자 싸우려 한 것.”
방패 너머 목소리가 가까워지고, 그 순간-
쩍, 쩌저저-.
“그게 방심이라는 거다.”
쾅-!
-방패가 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