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33
* * *
이른 아침, 캐멀롯의 왕성 입구.
그곳에는 원탁에 가입한 기사들이 문을 지키고 서 있었다.
“오늘이었나? 원탁회의가.”
따분함에 하품하던 기사가 왕성의 꼭대기를 보며 물었다.
그제야 몇몇 기사들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를 깨달았다.
“아, 그러고 보니까…….”
“난 언제쯤 거기 들어가 보나.”
“꿈 깨라. 네 주제에 무슨.”
“내 주제나 네 주제나.”
“그래, 맞다. 우리 주제에 무슨. 50층도 못 올라갔는데 어떻게 원탁에 앉겠냐?”
랭커가 된다고 모두가 원탁에 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원탁에 앉은 모든 기사들은 랭커였다.
랭커가 되는 건 원탁에 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인 셈. 그런데 아직 랭커도 되지 못한 그들이 원탁에 앉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물며 성문을 지키는 기사들은 원탁은커녕, 왕실기사단에도 속하지 못한 자들이었다.
“다시 도전할 거다. 반드시.”
“언제?”
“여기서 일하면서 포인트 좀 더 벌다가. 50층만 넘어가면 길드 차원에서 지원도 빵빵하잖아?”
“하긴, 네가 47층에서 멈췄다고 했지? 아깝긴 하겠네.”
“나도 언젠가 꼭 저기 앉고 말 거다.”
원탁회의는 원탁에 들어간 플레이어들의 꿈과 같았다.
그것은 길드와 나라를 운영하는 중요한 업무이며, 동시에 원탁에서 가장 강한 150인을 의미하는 상징과도 같은 자리인 것이다.
“야, 잠깐 있어 봐.”
“어디 가냐?”
“잠깐 변소 좀.”
“아까 갔다 오지 않았냐?”
“뭘 잘못 먹었나. 속이 영 이상하단 말이지.”
“얼른 다녀와라.”
동료 기사가 성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성문을 지키던 다른 기사들은 어지간히 급했나 보다 하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따분함에 하품이 나오기를 잠시.
방금 전, 변소를 다녀오겠다며 뛰어갔던 동료 기사가 다시 돌아왔다.
“어, 뭐야. 벌써 왔냐?”
“그러게. 갑자기 배가 다 낫기라도 했냐?”
그들의 물음에 변소를 다녀온 기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야? 벌써라니. 뭘 잘못 먹었는지 한참 고생했는데.”
“……?”
“……?”
* * *
“많이 늦으셨습니다.”
랜슬롯이 멀린을 향해 인사했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그의 시선은 멀린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유원을 보며 물었다.
“이자는 왜 함께 온 겁니까?”
“안 되냐?”
“자격이 없는 자를 원탁에 앉힐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랜슬롯은 유원을 바라보았다.
멀린의 회의 참여 소식은 이미 한참 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유원이 이 자리에 나타나다니.
‘무슨 생각이지?’
원탁회의는 원탁의 길드장인 자신이 주관하는 회의였다.
그런 회의장에 스스로 걸어온다는 건, 호랑이 입에 머리를 들이미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똑똑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무슨 생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싸울 장소를 잘못 택한 것만은 분명했다.
랜슬롯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예외로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차피 할 이야기도 있고.”
랜슬롯이 좌중에 앉은 기사들을 보며 물었다.
“다들 괜찮겠소?”
처음 있는 일이었다.
원탁에 가입되지 않은 외부인을 원탁에 앉히다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원탁의 최고 전력이자, 기사왕의 스승과도 같았던 멀린.
그리고 현 브리튼의 국왕이자 원탁의 길드장인 랜슬롯.
두 사람의 의견이었다. 기사들은 어느 누구도 반대 의견을 내지 못했다.
“그럼 모두 동의하는 걸로 하고.”
랜슬롯이 고개를 끄덕이고, 유원과 멀린은 자리에 착석했다.
그리고 그때.
“그 자리가 누구 자린 줄 아는가?”
자리에 앉은 유원에게 랜슬롯이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유원이 답했다.
“트할이나 롤릿. 둘 중 한 명의 자리겠지.”
“어찌 이런……!”
“건방진!”
유원의 대답에 몇몇 기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아무리 유원이 원탁에 속하지 않은 외부인이라 한들, 지금 이 자리는 원탁이 주관하는 자리.
거기다 랜슬롯은 그런 원탁의 주인이었다.
그런 자리에서 이런 예의 없는 말투라니.
랜슬롯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기사들을 흥분케 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스윽-.
그때, 랜슬롯의 손이 위로 올라갔다.
금방이라도 들썩일 것 같던 회의장이 순간 조용해졌다. 손짓 한 번으로 기사들을 잠재운 랜슬롯이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럼 그 둘이 어떻게 됐는지도 알고 있겠군.”
“잘 알지.”
유원의 눈이 랜슬롯을 똑바로 보았다.
“네가 죽이는 걸, 내가 봤으니까.”
“뭣……?”
“그게 무슨 소리냐!”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기사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그게 정말이냐는 듯, 랜슬롯을 바라보는 쪽.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유원을 향해 화를 내는 쪽으로.
랜슬롯은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당황하는 대신 고개를 숙였다.
“그래. 맞다. 내가 죽였지. 내가, 이 손으로…….”
참담한 듯 말끝을 흐리는 랜슬롯.
그는 잠시 후, 유원을 노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다…….”
“랜슬롯.”
유원이 랜슬롯의 눈을 노려보았다.
“착각하지 마라.”
“뭐?”
“지금 이 자리는 내가 아니라, 네놈이 죗값을 치루는 자리다.”
랜슬롯은 미간을 찌푸린 채 유원의 눈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유원은 지금 이 순간 회의에 참여하는 다른 기사들을 적으로 돌릴 말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있다는 말인가?’
조금은 흥미로웠다.
뭘 믿고 이리 자신만만한지.
랜슬롯은 속과 겉의 표정을 달리한 채, 유원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손님이 한 명 있는데…….”
저벅-.
“아마, 많이 반가울 거다.”
유원은 그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때, 계단 위로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다.
절그럭-.
무거운 풀 플레이트 갑옷을 입은 기사의 발소리.
회의장에 모인 기사들의 시선이 발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향했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기사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서, 설마…….”
“진짜…… 진짭니까?”
드르륵-.
몇몇 기사들은 회의 중임에도 불구하고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까지 했다.
아니, 몇몇이 아니었다.
거의 절반이 넘는 숫자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국왕 폐하……!”
랜슬롯이 아닌, 국왕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유일한 자.
천 년 동안 비워져 있던 ‘진짜’ 국왕의 자리의 주인.
“아서……?”
금발과 금색 눈동자를 지닌 브리튼의 국왕, 아서가 원탁에 나타났다.
* * *
저벅-.
아서의 등장은 오히려 회의장을 더욱 침묵케 만들었다.
아서는 유원이 일어난 자리에 앉았다.
그때, 누군가 처음 입을 열었다.
“진짜…… 국왕 폐하십니까?”
기사 가웨인.
원탁의 첫 번째이며, 동시에 아서의 오른팔이었던 자.
그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묻자, 아서가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가웨인. 오랜만이군.”
“폐하!”
“아들을 잘 컸나? 그때 선물해 준 검은 쓰고 있을지 모르겠군.”
“폐하…….”
가웨인의 표정이 감격으로 물들었다.
그의 아들이 태어났을 때, 아서가 다른 기사들 몰래 아들이 크면 주라며 선물해 주었던 검. 그 검의 존재를 아는 건 자신과 아서, 단둘뿐이었다.
“오, 지드락. 네가 벌써 그 자리에 앉았나? 코흘리개 막내였던 녀석이 많이 컸네.”
“콕스턴, 넌 장가는 갔는지 모르겠군. 그때 한창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고 말했었는데 말이야.”
“질드, 넌…….”
아서는 원탁에 앉은 기사들 면면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서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이야기들.
그 말이 이어질수록 기사들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통곡이 이어졌다.
“폐하!”
“대체 어딜 다녀오신 겁니까?”
“폐하!”
기사들의 통곡에 랜슬롯의 눈이 흔들렸다.
생긴 모습이야 랭커가 된 자는 늙지 않으니 천 년 전과 다를 게 없었고, 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아서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이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여기서 아서가 다시 돌아와 앉으면, 난 끝이다.’
눈앞에 있는 자는 분명 아서가 아니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그때.
‘혹시?’
랜슬롯의 시선이 유원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미미하게 올라간 입꼬리.
그리고 그제야 랜슬롯은 파시벌이 가져온 정보를 떠올릴 수 있었다.
“저자는 가짜다!”
드르륵-.
랜슬롯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그 말에 모아지는 시선.
랜슬롯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저자와 함께 캐멀롯에 들어온 악마가 한 명 있다. 그자는 벨리알의 핏줄이지.”
“벨리알의?”
“그게 왜…….”
“잠깐, 설마?”
거짓의 군주 벨리알.
그는 길드 마왕을 이끄는 군주 중 한 명으로서, 도플갱어의 능력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런 마왕의 핏줄이라면 도플갱어로서의 능력에 출중할 건 당연지사.
더군다나 유원의 일행에 도플갱어가 있었다면 눈앞에 있는 아서가 진짜인지에 대한 여부에는 의심이 생길 수박에 없었다.
“내가 가짜라고?”
아서가 랜슬롯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랜슬롯은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래. 가짜다.”
“도플갱어라…… 오랜만에 돌아왔더니 이런 말을 다 듣네.”
스칵-.
아서가 검을 뽑았다.
그리고 그 순간, 찬란한 빛이 회의장을 가득 메웠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게 설명할 테지?”
“저건…….”
“엑스칼리버!”
“기사왕의 상징!”
“폐하!”
“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기사왕을 상징하는 검이 등장하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혹시나 하던 반응들이 달라졌다.
아서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정보들.
그리고 기사왕의 상징인 엑스칼리버까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럴 리가 없다. 아서는 분명히 죽었다. 분명…….’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걸까.
분명 눈앞에 있는 아서는 가짜였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달리 눈앞에 있는 아서가 가짜라는 걸 증명할 만한 방법이 없는 상황.
‘저자가 도플갱어라면.’
스윽-.
랜슬롯의 손이 허리춤의 검으로 향했다.
‘목이 베어지고 금방 제 모습을 드러낼 터.’
번쩍-!
정지된 듯 느려진 시간 속.
랜슬롯이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출수했다.
슈악-.
랜슬롯의 칼끝이 아서의 목을 베어 갔다.
그리고 그 순간.
“여기서 뭘 하느냐?”
흠칫-.
모두가 멈춰있는 가운데, 멀린이 랜슬롯과 함께 움직였다.
쩌어엉-!
지팡이와 검이 부딪쳐 회의장 가득 쇳소리를 퍼뜨렸다.
그제야 기사들은 랜슬롯의 출수를 알아차렸다. 몇몇 기사들은 배신감 가득한 얼굴로 랜슬롯을 노려보았다.
아서가 돌아왔는데, 그에게 칼을 겨누다니.
천 년 동안이나 그를 기다려 온 기사들에겐, 배반과 다를 바 없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상대는 국왕 폐하십…….”
“아니!”
우우우웅-.
랜슬롯의 외침과 함께 그의 몸에서 뿜어진 마나가 회의장을 가득 메웠다.
어깨를 짓누르는 힘과 속을 뒤집을 만큼 거북한 마나.
그의 앞을 가로막은 기사들의 몸이 휘청거리고, 몇몇은 속이 뒤집어졌다.
“크윽…….”
“웁……!”
랜슬롯은 힘으로 기사들을 짓눌렀다.
물론, 혼자서 이 많은 랭커들을 모두 제압하는 건 제아무리 랜슬롯이라도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있었다.
“저자는 가짜다. 분명히.”
그는 이 상황을 재미있다는 듯 지켜보고 있는 유원을 노려보았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다.
‘확신이 있는 이상, 여기서 내가 패할 일은 없다. 얕은 수를 두었구나.’
아서가 가짜인 이상 반드시 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분명 그랬어야 했다.
그때였다.
“그래, 맞다.”
아서의 목소리가 대뜸,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변했다.
그리고-.
“나 가짜 맞아. 네 말대로, 마왕 벨리알의 아들이고 도플갱어지.”
지이이익-.
아서의 얼굴 가죽이 뒤집어지며 그 아래로 새하얀 피부를 지닌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숨죽이며 놀라는 기사들.
랜슬롯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스스로 드러낸다? 대체 왜?’
원하던 게 밝혀졌건만, 어째서인지 랜슬롯은 지금 이 상황이 지금까지 중 가장 두렵게 느껴졌다.
지금까지의 일들은 가소롭기만 했지 이해할 수 있었던 반면, 마모스가 스스로 정체를 드러낸 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마모스는 씩 웃으며 시선을 옮겼다.
“진짜는…….”
“이쪽이지.”
가시 걸린 듯 걸걸하고 음산한 목소리.
소름 끼치도록 어두운 마나.
고개를 돌려 작은 덩치의 뼈로 이루어진 언데드를 마주한 순간, 랜슬롯은 그 자리에 굳어지고 말았다.
“오랜만이다, 랜슬롯.”
그가, 진짜 아서임을 알아차렸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