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34
* * *
“아…… 서?”
처음 마모스가 얼굴을 바꿔 나타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 등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는 분명 아서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리 큰 위기감이 들지 않았다.
그저 기분이 나빴을 뿐이지.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랜슬롯은 저 뼈밖에 없는, 그것도 오크의 뼈로 이루어진 조잡한 언데드 한 명이 지금 이 순간 가장 두려웠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
“정말…….”
“정말 폐하십니까?”
몇몇 기사들은 아무런 근거 없이 막연하게도 그가 아서임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언데드가 된 아서는 마모스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엑스칼리버를 손에 쥔 아서.
그 순간.
번쩍-!
검신에서 푸른빛이 뿜어지며, 시리도록 차가운 한기가 회의장을 가득 메웠다.
“맞다.”
눈이 있어야 할 텅 빈 공간 안에서 시퍼런 빛이 흘러나왔다.
“내가 아서다.”
아서의 시선이 가웨인에게로 향했다.
“가웨인, 네 아들에게 검을 선물하고.”
다음은 지드락.
“지드락, 전쟁터에서 죽어 가던 널 살리고…….”
다음은 콕스턴.
“그리고 콕스턴. 결혼식은 못 가서 미안하다.”
아서왕.
브리튼의 초대 국왕이자, 원탁을 설립한 위대한 기사.
“난 언데드다. 죽은 자, 데스나이트 아서.”
그가 언데드가 되어 다시 브리튼에 돌아왔다.
스윽-.
오랜만에 보는 기사들을 둘러보던 아서가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랜슬롯.”
랜슬롯은 그와 눈이 마주하자, 몸을 움찔 떨었다.
“내가 죽었다는 건, 어떻게 알고 있던 거냐?”
“그건…….”
닥쳐 온 상황에 랜슬롯이 머뭇거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아서의 죽음을 아는 것이 큰 무기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반대였다.
“제가 언제, 당신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는 겁니까?”
무작정 그의 존재를 부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것을 부정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그가 진짜임을 증명하고 있으니까.
아서의 기억과 말투, 엑스칼리버, 그리고 그를 상징하는 시리디시린 얼음의 마나.
모두, 원탁이 기억하는 아서와 똑같았다.
“그저 저자가 가짜라는 걸 알아차렸을 뿐입니다. 오해는 없으시길. 그리고…….”
랜슬롯은 좌중을 훑어보았다.
150명, 아니 이제는 148명이 된 기사들.
그들 가운데에서는 이제 아서가 아닌, 자신을 모시는 기사들도 꽤 존재했다.
‘다른 방법이 없다.’
여기서 아서를 인정했다간 죽도 밥도 안 된다.
어차피 아서가 살아 돌아온 것도 아니니, 자신을 따르는 기사들도 상당할 터.
랜슬롯은 이를 악물고는 말했다.
“저는 아직, 당신에 대한 의심도 하고 있습니다.”
“랜슬롯!”
랜슬롯은 감히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 자를 노려보았다.
가웨인.
오래전, 기사왕의 오른팔로 불렸으며 원탁의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
상위 랭커에 이름을 올린 그는, 아서의 명령이면 죽음조차 불사를 수 있는 충심을 지니고 있었다.
“제아무리 죽은 자라고는 하나, 주군으로 모셨던 자에게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소. 당장 사죄드리시오!”
“그러는 가웨인 경이야말로 현 브리튼의 국왕인 내게, 어찌 그런 태도를 보이시오?”
“뭐라? 몇 년 왕 노릇을 했다고, 그 자리가 당신 것인 줄 아시고?”
“그 몇 년이 천 년이오. 게다가 저자의 무엇을 믿고…….”
철걱-.
그때였다.
아서가 손에 들고 있던 엑스칼리버의 손잡이를 비틀어 검날과 분리한 것이.
“왕이 되기 위해서는 인장이 있어야 하지.”
분리된 검 안에서 나온 황금색의 반지.
그것을 꺼내 보인 아서가 물었다.
“랜슬롯, 너는 이 인장을 가지고 있느냐?”
“당연히…….”
품에서 인장을 꺼내려던 랜슬롯의 표정이 굳어졌다.
숨이 턱 막히고, 비로소 자신이 촘촘히 펼쳐진 덫에 걸려 들었음을 깨달았다.
인장.
그것은 단 두 개밖에 존재하지 않는 물건이었다.
“너는 내게 그것을 받았다고 말했겠지. 그것이 바로 자신을 차기 국왕으로 선택했다는 뜻이라면서.”
뻔하다는 듯, 아서가 물었다.
“하지만 내 인장은 여기에 있다. 그럼 그 인장은, 누구 것이냐?”
“내 인장은…….”
아서왕의 아들.
모드레드 팬드레건이 지니고 있던 물건이었다.
꽈악-.
품 안에 든 인장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은 아서의 죽음을 확신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의 존재를 계속해서 부정했다.
실제로 아서는 죽은 자로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아서는 인장을 가지고 있다.
두 개의 인장이 나타난 이상, 이제 이 인장은 자신이 아서의 아들을 죽였다는 증거물밖에 되지 않았다.
“젠장…….”
뿌득-.
결국, 그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파캉-!
깨어진 유리창.
동시에 랜슬롯의 몸이 밖으로 움직였다.
“어……?”
“대체 무슨 일이…….”
랜슬롯을 따르던 기사들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현 브리튼의 국왕인 그가 도망을 치다니.
이건 자신의 죄를 시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정말 이렇게 됐군.”
“이렇게 될 거라고 말씀 드렸잖습니까.”
오늘 벌어질 일을 미리 머릿속에 그려 두었던 유원과 멀린의 대화는 우왕좌왕하는 기사들과는 달리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아서는 깨어진 창밖을 바라보았다.
“놓치면 안 된다.”
차가운 한기를 닮은 마나를 흩뿌리며, 아서가 앞장서 그 뒤를 쫓았다.
“가자.”
* * *
“젠장, 젠장, 젠장!”
랜슬롯은 분노를 입 밖으로 겨우 뱉어 내며 다리를 움직였다.
“으아아아아아!”
성벽을 밟고, 허공으로 뛰어오른다. 머릿속에는 서둘러 이 자리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어?”
“구, 국왕 폐하?”
성문에 나타난 랜슬롯을 발견한 병사들이 당황했다.
분명 원탁회의가 진행 중일 이때, 랜슬롯이 갑자기 이곳에 나타나다니.
랜슬롯은 자신에게 경례하는 병사들을 무시한 채 서둘러 성문 밖으로 향했다.
그렇게 서둘러 발을 움직여 캐멀롯을 벗어나려던 때.
쿵-.
머리가 무언가에 부딪치며 다시 뒤로 튕겨져 나갔다.
“큭…… 뭐야?”
머리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해당 영역은 ‘프리즌(Prison)’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안에서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무슨 개소리야!”
쾅-!
랜슬롯은 눈앞을 가로막은 벽을 검으로 후려쳤다.
충격으로 인해 순간 땅이 흔들리고, 흩어진 검격이 스스로의 볼을 베고 지나갔다.
하지만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런 미친…….”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야 하는 랜슬롯으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결코 쉽게 부술 수 없는 벽이었다.
제아무리 자신이 하이랭커에 오른 실력자라고는 하나, 이 벽은 그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존재가 만든 것이니까.
랜슬롯은 벽을 이루고 있는 바닥의 붉은 선을 발견했다.
이미 캐멀롯은 거대한 마법진에 둘러싸여져 있었다.
이런 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랭커는 탑 전체를 통틀어도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리고 브리튼에는 그 ‘몇 명’ 중 한 명이 존재했다.
“멀린…….”
이 벽은 그가 만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멀린이라 해도 잠깐 사이에 캐멀롯 전역에 걸쳐 이만한 수준의 마법진을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아마 최소 며칠에 걸쳐 만들어 낸 것일 터.
그렇다면 랜슬롯 역시 이것을 뚫고나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체 누구 생각이지?’
천 년 동안 정원이나 가꾸고 있던 멀린이 갑자기 이럴 리가 없다.
그는 마법에 있어서는 대마법사라 불릴지 몰라도 이런 종류의 지략가는 아니었다.
떠오르는 사람은 한 명.
“김유원, 그놈인가.”
“맞다.”
휙-.
랜슬롯의 고개가 돌아갔다.
익숙한 목소리.
다른 자였다면 그리 긴장하지 않았겠지만, 눈앞에 나타난 남자를 상대로는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녀석이 그러더구나. 모두의 앞에서 네가 한 역겨운 짓을 알려야, 네 입지가 흔들릴 거라고.”
맞는 말이었다.
만약 원탁회의가 아닌 다른 장소였다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 다른 수를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원탁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원탁회의에서 기사들이 랜슬롯의 배신을 알게 됐다.
더욱이 아서의 죽음을 확신함으로써 그는 자신이 아서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시인한 것과 다름없었다.
“어르신이었습니까? 그 도플갱어를 숨긴 것이.”
“네놈이야 상관없지만 다른 놈들이 알아차리면 곤란하니까 말이지.”
이상하다 싶었다.
제아무리 벨리알의 핏줄이라 한들, 150명에 달하는 기사들 중 어느 누구도 도플갱어의 변신을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하지만 멀린이라면 그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도플갱어의 변신에 이용되는 마나의 흐름을 감추는 정도는, 멀린에게 일도 아니었다.
“하나만 묻겠다.”
쿠구구구-.
어깨가 짓눌리고, 땅 위의 지면이 움푹 꺼진다.
랜슬롯은 몸에 가해지는 압력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제야 떠올랐다.
대마법사.
그것이 바로 지난 천 년 동안 잊혀 있던 멀린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왜 그랬느냐?”
“왜겠습니까.”
랜슬롯이 검을 들었다.
상대가 제아무리 멀린이라지만, 자신 역시 하이랭커가 된 몸.
이제는 싸워 볼 만할 것이다.
“왕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랜슬롯의 오래된 욕망이었다.
왕.
모두의 존경과 우상을 받고, 그들을 다스리는 자.
그것이야말로 랜슬롯이 바라는 모든 것이었다.
“……그래?”
스윽-.
땅을 짓누르는 무식한 압력 속에서 랜슬롯의 검끝이 움직였다.
그리고.
“너무 싱거운 대답이라 김이 샐 지경이군.”
멀린의 손가락이 함께 움직였다.
카가가각-.
“……!”
랜슬롯의 검이 멈췄다.
본격적으로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마치 단단한 실이 그의 검을 옭아매고 놓아주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네가 하이랭커에 오른 게, 한 오십 년 전이었나.”
촤라락, 촤락-.
수많은 보이지 않는 실들이 랜슬롯의 몸을 묶었다.
순식간에 사지가 꽁꽁 묶인 랜슬롯의 이마에 땀이 흘렀다.
“아직 한참 커야 하는 애송이가, 벌써 이 어르신에게 대들면 쓰나.”
“크으…….”
랜슬롯의 얼굴에 핏대가 세워졌다.
얼굴색이 점차 보랏빛을 변하고, 눈은 흰자위가 사라져 갔다.
스스스-.
심상치 않은 마나가 흘렀다.
멀린은 랜슬롯을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
“그 녀석이 그러더구나.”
꽈아악-.
손이 쥐어지자, 랜슬롯의 몸에 압력이 가해졌다.
“끄으으…….”
“네 몸 안에 괴물이 살고 있다고.”
어쩌면 랜슬롯이 아서를 배신한 것도, 모두 그 때문일지 모른다고.
꽈득, 꽈드득-.
압력은 점점 더 강해졌다.
마력이 더해질수록 심해지는 압력에 랜슬롯이 몸부림쳤다.
“끄아아아악!”
그렇게 몸이 터져 나갈 것만 같던 순간.
틱, 티티틱-.
랜슬롯의 몸을 옭아매던 실들이 툭툭 끊어지며, 그의 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쫘아악-!
아래로 베어 낸 검격.
쿠구구구-.
멀린이 서 있던 땅이 갈라지고, 그 아래로 깊은 절벽 같은 것이 생겨났다.
멀린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허공에 둥둥 뜬 채로.
“과연…….”
실을 모두 끊어 낸 랜슬롯.
그는 온몸이 보랏빛으로 변한 채, 눈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서는.
“정말 괴물이로군.”
마력도, 마기도.
그 어떤 것도 아닌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