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36
* * *
랜슬롯이 막 왕성을 빠져나갔을 때.
그와 거의 동시에 멀린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워낙 빨라서 쫓아갈 방법도 없었다. 하이랭커인 랜슬롯이야 말할 것도 없고, 멀린은 마법으로 눈앞에서 슥슥 사라져 버렸다.
“좀 같이 데려가 주지.”
어지간히도 마음이 급했던 모양.
하긴.
그동안 아서의 죽음과 관계된 일로 슬픔에 빠져 있던 만큼, 그에 대한 분도 많이 쌓여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의 알’이 배고픔을 호소합니다.]인벤토리 속에서 울고 있는 녀석.
“이 녀석도 깨워야 하니까.”
* * *
저벅-.
랜슬롯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유원을 돌아보았다.
주저 없이 다가오는 걸 보니, 아무래도 자신이 벽을 깨는 데 한눈이 팔려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제법 잘 싸우긴 하다만…….’
두 명의 기사와 싸우던 유원의 모습이 떠올랐다.
분명 유원의 실력은 제법이었다.
어쩌면 트할과 롤릿뿐만 아니라 한 명의 기사를 더 붙였더라도 그를 잡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아무리 대단한 플레이어라 한들, 그리 크게 신경 쓸 건 없었다.
‘지금은 무시한다.’
언젠가 반드시 돌아와 목을 칠지언정.
지금은 먼저, 벽을 깨는 게 우선이었다.
“많이 바쁜가 본데…….”
스칵-.
유원의 칼이 뽑히며, 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잠시 이쪽 좀 보는 게 어때?”
츠츠, 츠츠츠츠-.
심상치 않은 마력.
무시하기에는 역시 걸리적거렸다.
그렇다면.
[‘원탁의 방패’가 대상을 보호합니다.]우우웅-.
랜슬롯의 몸에 단단한 스킬이 덮였다.
롤릿의 것과 같은 종류의 스킬.
비록 롤릿만큼 스킬의 숙련도가 대단한 건 아니지만, 사용하는 사람의 차이가 컸다.
더 높은 스탯의 마력이 스킬의 강도를 높여 주는 건 당연한 일.
더군다나 랜슬롯의 체력은 웬만한 랭커들은 따라올 수 없을 만한 수치를 이루고 있었다.
설령 스킬이 뚫린다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작은 생채기 정도는 무시한다.’
이 정도면 충분히 유원의 검 따위는 버텨 낼 수 있다.
랜슬롯은 그렇게 생각했다.
쩌저저-.
벽에 생긴 금은 빠르게 늘어나고, 이제 곧 깨어질 것처럼 보였다.
‘이제 한 번만 더…….’
그때였다.
[거인의 힘이 전신에 깃듭니다.] [‘지옥’을 소환합니다.]파지지지-!
심상치 않은 마나의 흐름.
랜슬롯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 순간.
스걱-.
“……!”
검을 휘두르던 랜슬롯의 팔에서 피가 튀어 올랐다.
반쯤 베어진 팔.
벽을 부수기 위해 휘두르던 검이 멈춘 건 당연했다.
“이런 미친……!”
주르륵-.
바닥에 떨어져 내리는 핏물을 보며 랜슬롯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반면, 유원은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안 베어졌군.”
파지짓-.
퀴네에에서 터져 나오는 마력.
그리고 전신 거인화에서 뿜어지는 괴력.
거기에 마기까지.
순간적으로 힘을 한 방에 폭발시킨 유원은 단칼에 랜슬롯의 팔을 베어 내려고 했다.
결과는 아쉽게도 실패였다.
“네노옴-!”
하지만.
“이쪽만 신경 써서 되겠어?”
흠칫-.
랜슬롯의 몸이 돌아갔다.
잊고 있던 사람.
아니, 언데드가 한 명 있었다.
슈아악-.
쩌엉-!
두 개의 검이 부딪치며, 랜슬롯의 팔이 덜덜 떨렸다.
반쯤 베어져 덜렁거리는 팔로 막아 내기에는 제법 묵직한 검이었다. 고작 오크의 머리를 한 우스꽝스러운 언데드였지만, 그 알맹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아서……!”
“이 날을 기다렸다.”
쩍, 쩌저저-.
검을 타고 흘러 들어온 서릿빛 마력이 랜슬롯의 팔을 얼렸다.
“네놈을 죽일 이 순간을.”
“천만에.”
뿌득-.
처음으로 아서와 검을 부딪쳤다.
느낌은 별 게 아니었다.
“당신은 내가 알던 아서가 아니고.”
콰아아앗-!
랜슬롯의 몸에서 뿜어지는 마력에 아서가 뒤로 밀려 나갔다.
“나는, 당신이 알던 내가 아니다.”
쩡, 쩌저정-!
검이 연속으로 부딪치고, 아서의 팔이 흔들렸다.
이미 너덜너덜한 상태의 팔이었지만 랜슬롯의 검은 여전히 아서의 것보다 강했다.
쩍-.
아서의 머리가 반 정도 깨어져 두개골의 파편이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
“어차피 시간 벌이 정도면 충분하다.”
화르르륵-.
후끈 달아오른 사방.
랜슬롯은 순간, 이 상황이 멀린의 마법이라 착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마력의 종류도, 질도, 모든 게 달랐다.
친숙하면서도 두려운, 서로 상반되는 감각이 동시에 느껴졌다.
‘잡아먹힌다.’
화악-!
막대한 불길이 랜슬롯의 몸을 집어삼키고.
“크아아악!”
-도망쳐야 한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목소리 같은 게 흘러 들어왔다.
화르륵-.
불길은 더욱 거세졌다.
대체 왜일까.
저 불길을 보자, 가슴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일었다.
-도망쳐라.
“도망……?”
본능과 이성이 서로 다른 판단을 내렸다.
마치 서로 다른 두 개의 인격이 부딪치는 것처럼.
“고작…… 이따위 불에 도망치라고? 멀린도 아니고?”
상대는 아직 랭커도 되지 못한 플레이어였다.
멀린도 아닌, 고작 이런 녀석에게 두려움을 느끼다니.
인정할 수 없었다.
“닥쳐어!”
꽈득-.
팔이 뒤틀리고, 검이 비명을 질렀다.
베어 낸다.
눈이 뒤집힌 랜슬롯의 검이 일도양단의 힘을 품었다.
그 순간.
쫘악-!
쩌어어억-!
랜슬롯의 몸을 감싼 불길과 함께, 멀린이 만들어 낸 마법진의 벽이 베어졌다.
‘됐다.’
드디어 벽이 깨어졌다.
이제 뒤를 돌아볼 것도 없었다.
이 자리를 벗어나기만 하면, 추후 다시 브리튼에 돌아오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랜슬롯은 성문을 향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고 했다.
그 순간.
화악-!
랜슬롯의 검에 의해 걷힌 불길 밖으로, 유원이 튀어나왔다.
쩌엉-!
콰가가각-.
두 자루의 검이 부딪치고, 랜슬롯의 몸이 흔들렸다.
“큭……!”
갑작스러운 공격에 뒤로 밀려나기를 잠시.
거의 동시에 뒤쪽에서 아서가 달려들었다.
쉬익-.
랜슬롯은 남아 있는 한 손을 뻗었다.
콰악-.
등을 찔러 오는 검을 맨손으로 잡는다. 비교할 수 없는 힘과 스탯 덕분인지 랜슬롯의 손바닥은 아서의 검에 작은 생채기를 입을 뿐이었다.
“감히…….”
부우웅-.
검과 함께, 아서의 몸이 위로 높게 떠올랐다.
“감히!”
콰앙-!
있는 힘껏 아서를 바닥에 내리꽂은 랜슬롯이 땅에 칼을 꽂아 넣었다.
그 순간.
[검의 숲]콱, 콰곽, 콰과과곽-.
땅에서 위로, 수천수만 자루의 날카로운 칼날이 솟아올랐다.
도시가 온통 칼날로 이루어진 숲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픽, 피피픽-.
유원의 몸에 자잘한 생채기들이 생겨났다.
“피해……?”
유원이 몸을 비틀고, 허공을 밟는다.
대체 저 많은 칼을 어떻게 다 피한 걸까.
랜슬롯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하늘걸음’을 발동합니다.] [5초 동안 이동속도가 100% 상승합니다.] [5초 동안 하늘을 밟을 수 있습니다.] [‘감각지대’가 활성화됩니다.] [‘화안’이 길을 읽습니다.]회피라면 오래전부터 유원의 전문 분야였다.
더군다나 지금은 ‘화안’과 ‘하늘걸음’까지 있는 상태.
제아무리 광역으로 퍼진 공격이라도, 작은 틈이 존재한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애송이가……!”
랜슬롯의 시야에서 검이 사선으로 움직였다.
제법 멀었지만 충분히 벨 수 있는 거리였다.
양손으로 쥐어진 검.
하지만 베어 내는 느낌이 평소와는 달랐다.
치칙-.
평소와는 달리 검이 천근만근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자연스레 검의 위력과 속도가 줄어들고, 시야가 불투명하게 흐려졌다.
검의 궤적을 방해한 무언가.
‘……물?’
촤악-!
쩍-!
물과 함께 랜슬롯이 휘두른 검의 궤적을 따라 건물들이 베어졌다.
하지만 이미 목표로 했던 유원은 그 자리에 없었다. 검격이 느리고 약해짐에 따른 결과였다.
탁-.
단숨에 거치적거리는 상대를 처리하고 도망치려던 랜슬롯은 ‘검의 숲’ 스킬의 효과가 사라져 다시 평지가 된 땅에 착지한 유원을 노려보았다.
말로는 애송이라고 했지만 느낌은 전혀 달랐다.
‘대체 뭐냐.’
힘은 자신보다 훨씬 약하고, 마력에 있어서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다루는 힘 자체에는 특별한 구석이 있지만 스킬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스탯과 레벨의 한계는 분명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종합적인 전투 능력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마치 이 탑의 절대자가 되어 있는 최상위 하이랭커가 접신해 대신 싸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넌 대체 뭐냐고!”
녀석이 자신의 모든 걸 망쳤다.
녀석만 아니었다면.
아니었다면…….
콱-.
검을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랜슬롯의 시야에 유원의 모습이 꽉 차게 들어왔다.
얼굴을 마주하자 분노와 함께 두려움이 엄습했다. 거리가 꽤 있음에도 불구하고 느낌은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았다.
아니.
그 반대였다.
유원이 자신을 향해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다.
오싹한 기분.
유원의 입이 열린 건 그때였다.
“이제 네 차례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 걸까.
이 자리에는 아서와 멀린밖에 없었다.
아서는 이미 전투불능이나 다름없었다. 멀린은 마치 이 싸움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듯,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팔짱을 끼고 있을 뿐이었다.
-도망쳐라.
또다시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두려움의 정체는 바로 이것이었다.
“닥쳐!”
랜슬롯이 소리를 질렀다.
두려움이라니.
자신이 고작, 랭커도 되지 못한 플레이어 따위에게 두려움을 느끼다니!
쾅-!
발이 땅을 걷어차고, 몸이 앞으로 뻗어 나간다.
랜슬롯은 유원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 나갔다.
도망?
이미 그런 것 따위는 뒤로 밀려난 지 오래였다.
눈앞에 있는 빌어먹을 플레이어를 찢어 죽이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 같았다.
그런데.
-결국 죽음을 선택하는군.
콰직-.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가던 랜슬롯의 몸이 멈추며, 상체가 앞으로 휘청거렸다.
“뭣…….”
멀린이 마법이라도 부린 걸까?
랜슬롯은 단단하게 묶인 자신의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콰득, 콰드득-.
“이게 뭐…….”
발아래를 뒤덮은 새까만 어둠.
그리고 그 속에서 눈을 감고 있는 눈들과, 떠져 있는 몇 개의 눈.
그리고.
쩌억-.
까드득, 까득-.
그 속에서 자신의 발을 씹어 먹고 있는 이빨들.
[‘?의 알’이 모습을 드러냅니다.]“내가 살던 세상에 이런 말이 있었지.”
이곳에 오기 전.
유원은 알을 향해 한 가지 협박 같은 제안을 했다.
-안 도와주면, 네가 먹을 것도 없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
몇 번의 회유보다는 한 번의 협박이 나은 건지, 알은 그제야 반응했다.
“겁이 많은 건지 늦게 나오긴 했지만, 오히려 타이밍은 딱 좋았네.”
까드드득-.
“아아아아악!”
이빨은 발목을 넘어, 어느새 랜슬롯의 허벅지를 물어뜯었다.
산 채로 잡아먹히는 건 고통이 문제가 아니었다.
두려움.
삶에 대한 미련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고통을 이기고 그의 모든 것이던 명예와 자존심을 버리게 만들었다.
“살려…… 줘!”
혹시 모른다.
간절히 바라고 빌면 살려 줄지도.
가능성이 일 할.
아니, 일 푼이라도 있다면 거기에 기대야 한다.
“으아아아악! 제발! 시키는 건 다 할……!”
“트할, 롤릿.”
랜슬롯의 뒤.
까끌까끌하고 서늘한 언데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모드레드 팬드레건.”
아들의 이름.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랜슬롯은 한 톨이나마 남아 있던 희망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네가 죽어야만 하는 이유다.”
콰직-!
[‘?의 알’이 ‘배신과 탐욕의 랜슬롯’을 포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