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39
* * *
파짓-.
노란 전류가 손끝을 타고 아래로 떨어졌다.
포세이돈은 연못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바짝 마른 물.
아래로 파여 내려간 구덩이는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깊었다. 제우스의 벼락이 떨어진 자리였다.
‘엄청나군.’
단 한 발뿐이지만,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의 도시를 통째로 소멸시킬 수 있는 힘.
이런 힘을 가진 존재는, 이 거대한 탑을 통틀어서도 열 명은 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예상 밖이로군.”
파짓-.
그 제우스가 실로 오랜만에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예상 밖이라니?”
“실패했습니다.”
“뭐라?”
이건 더 놀라운 소식이었다.
실패하다니?
다른 누구도 아닌 제우스가?
캐멀롯을 통째로 소멸시키는 거라면 그럴 수 있다. 그 정도로 거대한 도시라면 제아무리 벼락을 떨어뜨리더라도 어려울 수 있다. 게다가 거기엔 하이랭커인 멀린이 있는 도시였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실패’라는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자신들이 원한 건 도시 전체가 아닌 왕성 하나뿐이었으니까.
“어떻게 된 일이지?”
“변수가 나타났습니다.”
“변수? 어떤?”
“제천대성.”
포세이돈의 눈이 크게 떠졌다.
놀랄 만한 대답이지만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과연 납득할 만한 대답이었다.
벼락을 막아 낼 만한 존재가 과연 얼마나 될까. 하지만 제천대성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의 여의봉과 근두운의 힘은 충분히 벼락을 막아 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가 왜? 굳이 우리와 적이 되어서 좋을 건 없을 텐데.”
“제멋대로인 존재입니다. 누군가와 적이 되고 말고는 아마 안중에도 없을 겁니다.”
“겁이 없다는 거군.”
“그만한 힘을 가진 자입니다. 무시할 수도, 걸리적거린다고 무작정 적으로 돌릴 수도 없습니다.”
제우스의 말에 포세이돈은 고개를 끄덕였다.
올림포스의 일을 방해한 건 분명 씻을 수 없는 죄이지만, 상대가 만만치 않았다.
제천대성은 단순한 개인으로 볼 수 없는 적이었다.
불사(不死)의 힘과 분신술을 다루는 그는 거대 길드 ‘천계’조차도 끝내 죽이지 못한 존재였다.
더군다나 랭킹마저도 포세이돈, 자신보다도 훨씬 위였으니.
“본체가 직접 움직인 거냐?”
“그럴 리 없지요.”
제천대성의 본체는 현재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상대는 본체가 아닌, 분신 중의 하나였다.
“변수가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혹시 김유원, 그 녀석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혹시나 해서 물었던 것인데 설마 진짜였다니.
제아무리 제천대성의 분신이 도왔다고 하나, 랭커도 아닌 플레이어가 벼락을 막아 냈다는 건 누구도 믿기 힘든 일이었다.
그것은 어떤 랭커를 데려다 놔도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대체, 김유원의 실력은 어느 정도로 잡아야 하는 걸까?
‘설마 벌써 하이랭커에 근접했다는 건가.’
잠시 김유원에 대해 생각하던 포세이돈은 고개를 저었다.
대단한 성장 속도기는 해도, 지금 신경 써야 할 건 그쪽이 아니었다.
이번 일로 인해 그보다 훨씬 더 큰 거인이 움직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럼 이제, 아스가르드에서도 알게 되겠군.”
“그럴 겁니다.”
“어떻게 할 거지? 너라면 이후의 일도 생각해 뒀을 것 같은데.”
포세이돈의 물음에 제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
둘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파지짓-.
츠아아아, 퍼어엉-!
허공에서 부딪친 두 개의 마력.
전격이 쏘아지고, 허공에 나타난 물의 장막이 그것을 막아 낸다. 전격은 물을 타고 포세이돈의 손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치치지, 치직-.
손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감각.
꽈악-.
잠시 얼얼한 손바닥을 내려다보던 포세이돈이 주먹을 쥐고는 다시 제우스의 눈을 노려보았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실패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그리던 상황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밖에 모르던 제우스가, 자신이 이곳에 들어오기를 허락한 게 어쩌면 지금을 대비한 게 아닐까 하고.
“이젠 나까지 꼬리 자르기로 써 먹을 셈이냐?”
“죄송합니다, 형님.”
쿠르르르-.
뻥 뚫린 하늘.
먹구름이 드리우며, 천둥이 내리친다.
콰릉-!
치지지, 파지지지직-.
하늘에서 떨어진다.
그것은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듯, 제우스의 몸에 휘감기고 그의 손안으로 모여들었다.
“모든 건…….”
마치 떨어져 내리던 벼락을 한 손으로 움켜쥔 것처럼, 제우스의 손안에 막대한 마력이 담긴 ‘무기’가 쥐어졌다.
“올림포스의 부흥을 위하여.”
* * *
의식이 희끗희끗 고개를 들이민다.
굳어진 몸이 느껴졌다. 벌써 며칠이나 움직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눈이 떠지고, 뿌연 시야 속에 높은 천장이 들어왔다.
‘기절했나.’
의식이 끊어질 정도로 싸운 건 오랜만이었다.
아니, 사실은 싸웠다는 표현을 쓰기에도 그리 적합하지 않았다.
자신이 한 건 단지, 제우스의 단 한 발을 막아 낸 게 전부였으니까.
누구도 그런 걸 두고 싸움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철걱-.
상체를 일으키던 유원은 자신의 가슴팍 위에 올라와 있던 흑야검을 발견했다.
대체 누가 한 건지, 흑야검이 몸에 붙어 있었다. 흑야검은 어둠 속, 즉 밤이 되면 체력의 회복력을 높여 주는 효과를 지닌 검이었다.
‘멀린인가.’
덕분에 며칠이라도 빨리 일어날 수 있었으니, 고마운 일이다.
상체를 일으키고 잠시 바람이 들어오는 방 안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머릿속이 개운해지며, 조금씩 기억이 돌아왔다.
‘보상.’
오랫동안 탑을 오르고, 레벨을 오른 랭커라면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더욱이 자신이 기억하는 게 맞다면, 그 보상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나은 것이었다.
[이름 : 김유원] [레벨 : 97] [근력 : 99] [민첩 : 95] [체력 : 99] [감각 : 99] [마력 : 105]아직까지는 형편없는 수준의 스탯이었다.
스탯 자체는 웬만한 랭커들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지만, 유원은 이보다 훨씬 높은 스탯을 기록했었다.
아직 부족하다. 그것도 한참.
하지만 그래도 이중, 그나마 봐줄만한 스탯이 하나 있었다.
[마력 : 105]“진짜…… 였나.”
마력 스탯 3.
수치만 놓고 보면 그리 대단한 폭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력은 그동안 지독할 만큼 변화가 없었다. 스사노오의 던전을 공략하고, 레벨을 올리면서도 단 2개밖에 오르지 않은 스탯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일로 오른 스탯만 무려 3개라니.
‘몇 개의 레벨이 오른 것보다 훨씬 낫군.’
100레벨에 가까워지며 점점 레벨을 올리기가 어려워지는 것처럼, 세 자릿수에 올라간 스탯은 올리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또한, 그렇게 어렵게 올린 하나의 스탯은 이전보다 훨씬 높은 효율을 보여 주기 마련이었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보상.
아니.
따지고 보면 이건, 시험의 보상도 아니었다.
‘이중 2개의 스탯은 퀴네에를 통해 흡수한 마력이다. 보상으로 얻은 스탯이 추가로 하나고.’
웅, 웅웅웅-.
유원을 중심으로 수십 개의 마나포가 만들어졌다.
푸르스름한 색의 마나포는 구슬처럼 매끄럽게 중심이 잡혀 있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마나포의 숫자가 스물을 넘어, 서른 개에 도달했다.
“확실히 편하군.”
스탯의 중요성은 하나가 오를 때마다 새삼스레 다시 깨닫게 된다.
똑같은 사람이라 해도 스탯의 수치에 따라 이렇게나 마나의 운용이 편해지다니.
단지 세 개의 스탯이 올랐을 뿐인데도 당장 만들어 낼 수 있는 마나포의 최대 수가 열 개는 넘게 늘어난 것 같았다.
게다가…….
[벼락의 조각]# 랭크 : S-
# 숙련도 : 0.00%
# ‘벼락’의 작은 파편. 뇌기(牢氣)를 다룰 수 있다.
# 전격에 대한 강한 내성.
# 전격 속성 마나 증폭률 10% 상승.
‘이걸 스킬로 얻게 될 줄은 몰랐는데.’
벼락의 조각.
이번 ‘캐멀롯의 멸망’ 시험을 통과하고 얻은 스킬이었다.
전격에 대한 강한 내성과 힘, 그리고 마나의 증폭률.
설명만 보면 그리 대단한 스킬은 아니었다. 하지만 스킬에 설정되어 있는 ‘다룬다’는 의미는 다른 스킬들과는 궤가 달랐다.
유원은 방 안 가득 반딧불이처럼 퍼진 마나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파짓, 파지지지-!
맹렬히 튀어 오르는 스파크.
순식간에 방 안 가득, 전류가 가득 찼다.
그 한가운데 있었음에도 유원은 별다른 느낌을 받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의 마나에 영향을 받는다는 건, 그만큼 컨트롤이 미숙하기 때문. 유원에게는 해당이 없는 이야기였다.
‘다룬다…… 는 건.’
앞을 향해 뻗은 유원의 손이 꽉 쥐어졌다.
‘이런 뜻이지.’
쿠르르, 쿠릉-.
천장 위.
새까만 먹구름이 만들어진다. 그 구름 속에 전격의 힘을 품은 수십 개의 마나포가 스며들고, 작은 ‘벼락’이 만들어졌다.
그 순간.
“적당히 해라.”
끼익-.
닫혀 있던 방문이 활짝 열리며 멀린이 안으로 들어왔다.
“힘들게 막아 놓고, 네놈이 이 성을 날려 버릴 셈이냐?”
쩍, 쩌저저-.
구름 주위를 가두는 마나의 장막.
유원은 앞으로 뻗었던 손을 내리고는 멀린을 돌아보았다.
“영감님.”
“또, 또. 그놈의 영감 소리는.”
낮게 혀를 찬 멀린이 고개를 저으며 방 한쪽에 있던 소파에 앉았다.
“새로 얻은 스킬이냐? 그 빌어먹을 전격을 며칠 새 또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얼마나 지났습니까?”
“한 닷새 됐다. 오래도 자더구나.”
닷새.
한 사흘 정도 쓰러져 있었나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긴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그만큼 충격이 컸던 모양이었다.
“대체 뭔 짓을 한 거냐? 갑자기 네놈이 벼락을 얻어맞고 떨어지더니, 벼락이 사라지던데. 게다가…….”
멀린은 방 구석구석에 생겨난 거뭇한 흔적을 살펴보았다.
“갑자기 이런 힘까지 얻고 말이다.”
“아직 조절이 조금 어려워서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나무라려는 게 아니니까, 말이나 좀 해 봐라.”
“이건 시험을 통과하고 얻은 보상입니다. 그리고 그때 그건…….”
설명을 이어 가던 유원은 고개를 저었다.
“정확히 말로 설명은 못하겠습니다. 그냥 감이 왔었습니다.”
“감? 네가 말이냐?”
어이없다는 듯, 멀린이 헛웃음을 지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지만 지금껏 멀린이 보아 온 유원은 막연한 감 따위를 믿고 움직일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가끔은 저도 그럽니다.”
어깨를 으쓱이며 장난스레 대답했지만 근거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흑신석과 해신석.
그리고 제우스가 지닌, 천신석.
유원이 알아낸 게 사실이라면 세 개의 돌은 처음부터 따로 나누어져 있던 게 아니었다.
‘하나가 되려는 속성인 건지.’
정확히 어떤 이유로 퀴네에가 벼락의 힘을 먹어치웠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덕분에 훗날 제우스와의 싸움에 필요한 스킬을 얻을 수 있었다.
‘벼락의 조각 스킬은 전격에 대한 강한 내성을 지닌다. 언젠가 제우스를 만난다면 꽤 유용하게 쓸 수 있겠어.’
고생은 좀 했지만 어쨌거나 이번 브리튼에서 얻은 게 꽤 컸다.
“좀 움직일 만하면 일어나 봐라. 그렇지 않아도 네놈을 기다리던 손님이 있으니.”
멀린의 말에 유원은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물었다.
“손오공 말입니까?”
손오공의 이름에 멀린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먼 미래의 일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멀린과 손오공은 서로 그리 친하지 않은 사이였다. 더군다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의 손오공은 원탁의 입장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나 다름없었다.
“……그 녀석 이름은 함부로 부르지 않는 게 좋을 게다. 괴팍하기로 유명한 놈이니까. 아무튼, 그 녀석은 아니야.”
“그럼?”
“나다, 이놈아.”
끼이익-.
참다 못 해 찾아온 손님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예상 못한 얼굴의 등장에 유원의 눈이 커졌다.
“아저씨?”
헤파이스토스.
그가 캐멀롯에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