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41
“너, 나 알지?”
그 말을 듣고 유원은 표정 관리를 하느라 꽤 애를 먹었다.
당연히 안다.
그것도 아주 잘.
제우스의 벼락이 떨어지는 때, 손오공의 분신이 자신을 도울 것이라는 것도 그래서 나온 판단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몰라야 한다.
그게 정상이었다.
“잘 알지.”
그래서 유원은 대답했다.
“제천대성 손오공. 천계와 싸우고 있는 하이랭커.”
모두가 알 수밖에 없는, 손오공의 이야기를.
“활동을 멈춘 지 꽤 오래 됐다고 들었는데?”
형식적인 대답이었다.
제천대성이라는 손오공의 칭호. 천계와 싸우고 있는 상황.
그리고 활동을 멈춘 지 오래 되었다는 것까지, 모두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니, 그거 말고.”
손오공은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었다.
“너, 나랑 아는 사이냐고.”
말이 이상했다.
아는 사이냐니.
기억상실이라도 걸린 게 아니고서야, 이런 질문을 할 리가 없었다.
유원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손오공의 반응이 이상했다.
‘단순히 화안 때문에 날 찾아온 게 아닌 건가.’
처음 유원은 손오공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화안(火眼)’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화안은 ‘원숭이의 눈’과 히든피스가 만났을 때에 얻을 수 있는 스킬.
그 말은 즉, 애초부터 유원이 ‘원숭이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원숭이의 눈은 손오공의 가족이었던 화과산 원숭이들이 가지고 있던 스킬.
하지만 지금은 손오공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스킬이었다.
벼락이 떨어지는 걸 손오공이 그냥 두고볼 리 없다는 생각 역시, 여기에서 나온 것이고.
‘화안을 가진 플레이어를 죽게 내버려 둘 리 없다…… 라는 생각이었는데.’
거기에 대한 변명거리는 이미 생각해 둔 상태였다.
‘원숭이의 눈’을 튜토리얼에서 구입하는 플레이어는 여태껏 한 명도 없었다. 애초에 원숭이의 눈은 튜토리얼에서 구입하기에는 가격도 터무니없이 비쌀뿐더러 효과 자체도 별로였다.
하지만 어쨌든 튜토리얼에서 구할 수 있는 스킬인 건 확실한 바.
어떻게든 둘러 댈 방법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확실히 말해라.”
“척 하면 척, 몰라? 바보도 아니고 뭐 이리 말귀를 못 알아들어?”
“바보라…… 그런 말을 너한테 들을 줄은 몰랐는데.”
“이거 봐, 이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손오공이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너, 나 안다니까?”
“…….”
유원은 말없이 미간을 구겼다.
자신답지 않게 실수를 하고 말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처음 만난 척했어야 하는 건데 손오공의 말에 오래된 평소 버릇처럼 말해 버린 것이다.
‘역시 이 녀석 앞에서 연기하는 건 어렵나.’
유원은 손오공의 눈을 바라보았다.
의미심장한 눈빛.
녀석은 분명, ‘역시’라고 말했다.
자신을 찾아온 용건이 뭔지 모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뭔가 알고 온 건 확실해 보였다.
“너는, 뭘 알고 왔지?”
“나한테는 그 반쪽짜리 눈에는 안 보이는 게 보이거든.”
화르륵-.
기이이잉-.
화안금정의 두 눈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유원의 몸을 파고든다.
“특히나 같은 눈이라면 더더욱 말이지.”
새삼 다시 느끼는 기분이었다.
모든 걸 파악당하고, 꿰뚫리는 기분.
상대의 눈앞에 발가벗겨져 있는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화륵-.
유원의 두 눈이 붉게 변했다.
그 순간.
[‘화안’이 ‘화안금정’에 저항합니다.] [저항을 실패합니다.]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안 되나.’
화안은 화안금정의 아랫단계의 스킬이었다. 애초에 진화되지 못한 스킬이 진화한 스킬로부터 저항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이 순간, 손오공은 자신의 눈을 통해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래서? 그 잘난 눈에는 뭐가 보이지?”
“네가 알고 있는 나.”
손오공의 황금빛 눈동자 속에, 하나의 또 다른 세계가 비춰진다.
“네 옆에 서 있는, 내 본체의 모습이 보인다.”
화안금정.
보이지 않는 진실을 꿰뚫어 보는, 이 탑에서 손오공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스킬.
그것은 유원의 눈을 통해 그가 알던 또 다른 세계를 보았다.
“넌 분명 내 본체를 알고 있다. 그것도 아주 잘. 아니냐?”
유원은 잠시 눈을 감았다.
자신의 눈을 통해 누군가에게 모든 걸 꿰뚫리는 기분은 역시, 썩 좋지는 않았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하지만 변명한다고 속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맞다.”
결국,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있던 세계에서 너는, 나와 아는 사이였다.”
“내가 있던 세계?”
조금 뜬구름 같은 말이었다.
특히나 머리가 나쁜 편에 속하던 손오공에게는 이해하기 더 어려운 말이었다.
그래서인지 손오공은 그 말을 그냥 한 귀로 흘려 듣고 넘기고는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아는 사이였는데?”
제아무리 화안금정이라 해도 모든 걸 알아보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유원이 답을 내놓았다.
“친구였다.”
손오공의 눈을 바라본 화안이 밝게 타올랐다.
[‘화안’이 공명합니다.]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아주, 웬수 같은.”
공명.
손오공은 활짝 열린 유원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제부터는 손오공이 유원의 눈을 엿보는 게 아니었다.
스스로 보여 주는 것이다.
서로 닮아 있는 눈을 통해서.
* * *
넓고 높던 하늘과 연무장의 풍경이 사라졌다.
두 사람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 건, 바위 위에 늘어져 있는 유원과 그 앞에 있는 손오공의 모습이었다.
-“뭐냐, 너?”
-“…….”
-“설마 자냐?”
손오공은 자신의 자리에 드러누워 있는 유원에게 따져 물었다.
잠깐 소피를 보러 간 게 전부였는데, 그 사이 누군가 안대까지 낀 채 잠에 들어 있었다.
-“아직 안 잔다.”
-“그럼 얼른 일어나서 꺼져. 내 자리다, 거기.”
-“여기가 햇볕이 제일 잘 든다.”
막 좋은 자리를 찾아 잠에 들려던 유원은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그걸 보며, 손오공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저러고 나한테 안 죽었어?”
“그러게 말이다.”
콰릉-!
대뜸, 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졌다.
제우스의 벼락보다는 훨씬 못하지만 땅 위로 떨어진 번개는 순식간에 유원이 누워 있던 바위를 쪼갰다.
순식간에 사라진 바위.
-“후딱 일어나라.”
팡-.
손오공이 제 주먹으로 손바닥을 때렸다.
-“안 죽은 거 아니까.”
파지직, 파짓-.
깊게 파인 구덩이 속.
아직까지 꺼지지 않은 전류의 틈에서 유원이 일어났다.
그 직후.
싸움이 시작되었다.
콰릉-!
둘의 싸움은 꽤 오래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래도 손오공에게는 꽤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던 모양이었다.
“오, 잘 싸우는데.”
흥미진진한 얼굴로 싸움을 지켜보던 손오공이 물었다.
“그런데 진짜 저거 너 맞아? 지금이랑은 아무래도 영 다른데.”
“저 때는 랭커가 되고 몇십 년은 됐을 때였으니까.”
“몇십 년? 너 아직 랭커도 아니잖아?”
콰앙-!
유원과 손오공의 주먹이 부딪쳤다.
산이 아래로 무너지고, 근두운에서 떨어진 번개가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저게 정말 너라고?”
손오공 역시 빠른 속도로 랭커에 도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최단 기간에 랭커, 그리고 하이랭커가 된 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보고 있는 유원의 성장 속도는 그런 손오공조차 놀랄 만큼 빨랐다.
“그래서 누가 이겼지?”
“내가 졌다.”
아무리 빠르게 강해졌다고 해도 상대는 제천대성이었다.
첫 번째 싸움에서 유원은 손오공에게 패했다. 싸움이 끝난 손오공은 유원을 죽이지 않았고, 몇 년 후쯤 둘은 다시 싸울 수 있었다.
“이 때는 말이지.”
몇 번이나 반복된 싸움.
열 번쯤 되었을 때, 유원은 첫 번째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싸우다 보니 정이 들었는지, 어느 순간부턴가 네가 날 따라다니더라고.”
“본체가 널? 왜?”
“내가 아냐. 네가 알지. 왜 그랬는지.”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게 자연스러워졌다.
친구도 아니고, 그렇다고 적도 아닌. 한 번도 팀을 만들지 않았던 유원은 그때 처음, 누군가와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엔 짜증 났다. 누가 옆에 있다는 게. 그런 건 익숙하지 않았거든.”
유원은 누구와 함께 있던 적이 없었다.
고아원에 있던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꺼림칙하게 여겼다. 그것은 무시나 폭력, 둘 중 하나로 이어졌고 옆에 사람을 두는 걸 껄끄럽게 여겼다.
그래서였을 거다.
혼자 탑을 오른 게.
“근데 왜 나랑 다녔지? 나한테는 마음이 열렸나?”
“죽지도 않는 놈을 어떻게 떼어 내냐. 방법이 없으니 강제로 같이 다닌 거지.”
스으으-.
유원의 눈을 통해 바라보던 손오공의 시야가 바뀌었다.
일방적으로 따라다니는 손오공과 그런 손오공을 떨쳐 내기 위해 팔을 뿌리치는 유원의 모습.
그리고 그 뒤에 또다시 반복되는 싸움.
확실히 친구인지 적인지 분간이 안 가는 모습이었다.
“그러던 중, 벽이 부서졌다.”
쿠르르르-.
잠잠하던 하늘이 흔들리던 때.
유원과 손오공은 거의 동시에 소름 끼치는 이질감을 느꼈다.
결코 꿈쩍도 하지 않던 벽이 처음으로 무너지고, 그 밖에서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던 존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뒤로는 단순해. 싸우고, 또 싸웠다. 서로 죽어라 싸울 때보다는 역시 같이 싸울 때가 더 친해지긴 쉽더라고.”
세상을 집어삼키며 랭커들을 씹어먹는 상식 밖의 괴물들.
그들을 바라보는 손오공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뭐냐…… 저것들은?”
눈앞에 보이는 괴물은 유원의 시야를 통해 공유된 것뿐, 진짜 외신은 아니었다.
“아우터 갓. 외신. 탑 밖의 신…… 불리는 이름은 많지.”
“다 신이군, 어쨌든.”
“그렇게 불릴 만한 존재들이니까.”
분명 탑에도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는 자들이 무수히도 많이 존재했다.
올림포스의 삼신, 아스가르드의 오딘과 토르, 삼귀자들.
그들 모두,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며 그에 걸맞은 능력을 과시한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진짜 신이라 불릴 만한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저런 게…… 어떻게 존재하는 거지?”
손오공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열두 번째 분신.
그는 진짜 손오공, 제천대성의 본체와는 달랐다.
그렇기에 그는 유원의 눈을 통해 공유한 외신들의 감각에 사색이 되었다.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말로 설명을 듣는 것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었기에.
“저런 거랑 싸웠나, 넌?”
“나뿐만이 아니지.”
빙 둘러앉아 있는 사람들.
오딘과 헤라클레스, 크로노스와 아수라, 손오공…….
그리고 유원.
수많은 이들이 함께 모여 대화를 시작했다.
“여기 있는 모두가 싸웠고, 우리는 패배했다.”
“말도 안 된다.”
모두 하이랭커. 그중에 몇 명은 세상사에 별 관심이 없는 손오공도 아는 자들이었다.
특히, 오딘의 얼굴은 아마 모르는 랭커가 없을 것이다.
“진짜냐? 이렇게 모였는데도 졌다고?”
“그것도 아주 처참하게 말이지.”
외신과 싸우던 랭커들은 대부분이 죽었고, 살아남은 건 소수에 불과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모두가 그렇게 판단했다.
그래서 이 자리가 만들어졌다.
“이제 정해 보자고.”
회의를 주관한 사람은 오딘.
그는 유원과 손오공, 두 사람을 보며 운을 뗐다.
“이중에서 과연 누가, 과거로 돌아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