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58
* * *
아레스와 아테나 지파의 랭커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며, 뒤를 돌아보지 말 것이라는.
그것은 전쟁을 치를 때 반드시 가져야 할 신념이었다. 두려움이란 그들에게 있어서 결코 가져서도 안 되며, 가진다 한들 극복해야만 하는 산이었다.
분명 그랬어야 했다.
하나.
화아악-!
눈앞에 타오르는 거대한 불길.
거인의 형상을 한 괴물이 검을 치켜든다.
‘뭐냐, 저건 대체?’
그들의 눈에 거인의 형상은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브레스(Breath)를 뿜어내는 용족.
두 개의 뿔이 달린, 온몸에 시커먼 불길을 두른 거대한 악마.
그 외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상상 속의 괴물까지.
오싹-.
“전사는 결코 두려움을 느껴선 안 된다.”
두려움을 멀리하라는 아테나의 가르침.
그녀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지켜왔고, 수하들에게 가르쳤다.
그런데 그 가르침이 지금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눈앞에 있는 저것을 앞에 두고서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으니.
화륵-.
불길이 붙은 검이 올라간다.
저벅-.
저절로 뒷걸음질이 쳐졌다.
“간다.”
친절한 예고였다.
검을 휘두르기 전에, 미리 휘두른다고 말해 주는 꼴이니.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누구 하나, 그것을 우습게 여기지 않았다.
떨어지기 시작하는 거대한 검.
그때, 누군가 입을 달싹거렸다.
“피…….”
검이 떨어지는 순간.
“피해-!”
그 외침이 기폭제였다.
출구를 지키던 랭커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도망쳤다.
콰아아아-!
화아악-!
미처 피하지 못한 자들.
그리고 두려움을 극복하거나, 너무 두려운 나머지 그 자리에 얼어붙은 자들.
그들은 거인의 불에 휩싸였다.
‘공포감에 휩싸인 적은…….’
유원의 눈이 그 불길 속을 바라보았다.
‘성화의 먹잇감일 뿐이지.’
공포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먹고 자라는 불.
그들의 공포심은 성화를 더 크게 불타게 만들었다. 그렇게 온몸이 까맣게 타들어 간 랭커들은 금세 바닥에 쓰러져 재가 되어 갔다.
‘사기는 사기네.’
새삼 느껴졌다.
성화는 비교적 약한 절대 다수와의 싸움에서만큼은 최강이라 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문제가 되는 건 아테나였다.
수없이 많은 전쟁을 겪고, 올림포스 내에서도 손꼽히는 하이랭커인 그녀는 성화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 아테나를 손오공이 막아선 이상, 유원을 막을 사람은 없었다.
“아서.”
-예!
“가자.”
저벅-.
유원은 뻥 뚫린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아서는 유원의 뒤를 따르며 그의 등을 지켰다. 꺼지지 않는 불길이 붙은 출구로는 더 이상 따라오는 사람이 없었다.
‘여기서 아테나를 잡지 못한 건 아쉽지만…….’
유원은 인벤토리 속에 넣어 둔 목걸이를 떠올렸다.
‘어쨌든 성과는 있다.’
지금껏 유원은 올림포스로부터 계속해서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처음으로 유원은 올림포스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그것도 제우스와 헤라의 적통이자, 올림포스의 하이랭커인 아레스를 죽이는 것으로.
본격적인 싸움을 알리는 폭죽이 터진 순간이었다.
* * *
지이이잉-!
아이기스를 때린 여의봉이 아테나의 몸을 밀어냈다.
방패를 쥔 손에 힘을 준 아테나는 몸을 돌리며 하늘을 향해 검을 치켜 올렸다.
촤라라라라-!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천 개의 검들.
그것은 아테나의 검 끝을 따라 움직였다.
“오호-.”
손오공은 눈을 반짝이며 여의봉을 다시 회수했다.
그 직후, 사방에서 자신을 에워싸 날아오는 천 개의 검을 화안금정을 사용해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쉬이이익-!
동시에 날아드는 검들.
휘리리릭-.
떵, 떠더더더더덩-.
손오공은 한 손으로 여의봉을 빙빙 돌리며, 그것을 이용해 그 모든 검들을 일일이 쳐 냈다.
떠더덩, 떠덩-.
후두두둑-.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진 검들이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아테나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것인 만큼, 그녀가 더 이상 힘을 쓰지 않자 소멸한 것이다.
사라진 천 개의 검들.
탁-.
손오공은 한 손으로 돌리던 여의봉을 다시 손안에 감아쥐었다.
그렇게 그가 다시금 여의봉을 휘두르려던 때.
“잠깐.”
검과 방패를 아래로 내려뜨린 아테나.
한창 싸움에 집중하던 손오공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계속 싸울 필요는 없겠군.”
“왜?”
“김유원이 자리를 벗어났다.”
아테나의 말에 손오공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불타는 신전.
그 속에서 넋을 놓고 있는 랭커들.
아수라장이 된 전장을 태연히 내려다보는 손오공의 모습에 아테나는 이 상황이 즉석에서 만들어진 게 아님을 깨달았다.
“미리 약속되어 있던 건가.”
“저 녀석은 계획을 벗어나는 걸 안 좋아해.”
“김유원 말인가?”
“그래.”
짧은 대화였지만 아테나는 그 속에서 많은 걸 유추할 수 있었다.
‘내가 올 걸 알고 있었나.’
아레스와 아테나의 관계는 올림포스 바깥의 랭커들에게도 유명했다.
같은 아버지를 둔 남매.
또한, 함께 전쟁을 치르며 같은 사상을 지닌 동료.
유원은 아레스의 신전을 공격할 때부터 이미 아테나의 지원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손오공을 이용해 그녀를 막을 방법을 마련해 둔 것이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지?’
아테나는 어느새 여의봉을 거두어 등에 맨 손오공을 노려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를 붙잡아 아는 걸 모두 불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분신일 뿐.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그가 죽음을 두려워 정보를 뱉어 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제천대성.
만약 본체였다면 자신이 감히 쳐다보기도 힘든 드높은 존재였다.
스스스-.
손오공이 올라타고 있는 근두운이 점차 크기를 키워 갔다.
그 순간, 아테나는 깨달았다.
그에게서 정보를 캐내는 건 둘째 치고, 근두운을 가진 손오공을 붙잡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뭐, 어쨌든 재밌었다. 조만간 또 보자고.”
투화아아악-!
새하얀 선을 그리며 하늘 높이 사라져 가는 손오공.
아테나는 그런 손오공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조만간……?”
* * *
신전을 빠져나온 유원은 곧장 두 개의 층을 내려왔다.
38층.
땅의 9할이 산과 숲으로 뒤덮이고, 남은 1할은 사막인 세계.
수천 개의 화산이 들끓는 탓에 그리 많은 인구를 가지지 못한 세계이기도 했다.
물론.
“심심해서 이런 데 어떻게 사나 몰라.”
짹, 짹짹-.
울려 퍼지는 새소리.
위로는 나뭇잎 사이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
코끝을 자극하지 않고 편안한 기분 좋은 풀 내음.
정말 기분 좋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누가 알겠어.’
찰박-.
빗물이 남아 있는 땅을 걸으며, 유원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 핵폭탄 하나가 숨어 있을 거라고.’
유원은 앞을 가로막고 있는 나뭇가지와 수풀들을 칼집으로 쳐 내며 걸음을 옮겼다.
정말 징글징글하게도 넓은 숲이었다.
마을도 거의 없고, 플레이어들 역시 그저 잠시 지나쳐가는 층으로 여기는 만큼 개발되지 않은 지역이 대부분이었다.
이곳 역시 그런 지역 중 하나.
그런 곳에서 길을 찾는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쯤이었나.”
유원은 오래 된 기억을 되짚으며 길을 찾았다.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숲.
하지만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숲이기에, 찾고 있던 사람의 흔적을 찾는 건 더더욱 어렵지 않았다.
스윽-.
유원은 몸을 숙여 바닥을 살폈다.
붉게 변한 눈동자.
그 눈동자를 통해 희미해진 바닥의 자국이 보였다.
“여기 있었군.”
발자국.
유원은 희끗희끗 보이는 그것을 따라갔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
하나 있는 발자국을 따라 걷다 보니, 햇살이 쏟아지는 큰 공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쿵-.
땅이 흔들리며, 나무를 패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지끈-!
저 멀리, 높게 솟아 있는 두꺼운 나무가 옆으로 기울어진다.
두께만 해도 수 미터에 달하는 나무들.
그것이 넘어가며 다시 한번 땅을 울렸다.
쿵-.
유원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무는 규칙적으로 쓰러졌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나무를 패는 소리와 함께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길을 잃었나?”
묵직한 중저음의 목소리.
한 치도 다르지 않은, 기억 속의 목소리 그대로였다.
우지끈-!
또 다른 나무가 넘어간다.
남자가 나무를 캐는 방식은 특이했다.
그는 나무꾼처럼 도끼를 들고 나무를 찍는 게 아닌, 주먹으로 나무를 쳐서 부러뜨렸다.
그렇게 쓰러진 나무들은 한쪽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확실히 평범한 나무꾼은 아니었다.
이 정도로 두꺼운 나무를 주먹으로 툭툭 부러뜨릴 정도면, 최소한 랭커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유원은 넓게 퍼진 남자의 등을 향해 다가가 물었다.
“여기서 뭐하고 있지?”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외워 말한 듯한 부자연스러운 말투.
역시.
이런 연기는 아무래도 어색했다.
‘이런 쪽은 영 꽝이란 말이지.’
유원의 질문에 남자가 몸을 돌렸다.
2미터쯤 되는 큰 키.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이 선명한 근육들.
나시티 한 장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서 나무를 하고 있던 남자는 유원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벌목하고 있었네.”
“직업이 나무꾼인가?”
“지금은 그런 셈이지.”
“그럼 집도 이 근처겠네.”
“……그런데?”
“좀 피곤해서 말이지. 며칠만 좀 쉬었다 갈 수 있나 해서.”
“…….”
남자는 유원을 빤히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대뜸 신세를 지겠다니. 황당하고 뻔뻔한 요구였다.
“길을 잃은 거라면 지도를 그려 주지. 이 주위는 위험하니 서둘러 벗어나는 게 좋을 거다.”
“이렇게 평화로운 숲이 위험할 게 뭐 있어?”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그래?”
예상한 대답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고 제멋대로인 손오공과는 달리, 그는 성격이 단순한 데가 있었으니까.
“그래도 조금만 신세 지지. 숙박비 정도는 지불할 테니까.”
“그래도…….”
“정말 피곤해서 그런다. 당장 쓰러질 것 같거든.”
조금 과장하긴 했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아레스와 싸우고, 곧장 랭커들과 싸웠다. 유원은 퀴네에와 성화를 무리해서 사용하느라 피곤함이 꽤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실제로도 피곤해 보이는 얼굴.
유원의 얼굴을 살피던 남자는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따라와라.”
남자는 한쪽에 쌓아둔 나무더미를 향해 다가갔다.
족히 수십 그루는 되어 보이는 나무더미.
수십 톤은 됨직한 나무더미를 번쩍 들어 올린 그는, 성큼성큼 어디론가 향해 걸어갔다.
유원은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저 바보 같은 성격은 여전하군.’
남자를 다루를 법은 단순했다.
우기면 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착해빠진 남자는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는 법을 모르고 살아왔으니까.
“나한테 접근하는 방법은 아마 어렵지 않을 거다.”
헤라클레스는 회의에서 자신에게 접근할 방법을 말하려 했지만, 그것은 애초에 방법을 논의할 필요조차 없는 주제였다.
“그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차피 부탁하면 들어줄 거니까.”
“……맞다. 잘 알고 있네.”
헤라클레스.
이번 올림포스 부수기의 열쇠가 되는 하이랭커.
그는 이 한적한 숲에서 나무를 캐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상상이 안 된단 말이지.’
저벅-.
나무를 캐던 남자, 헤라클레스의 뒤를 따라가며 유원은 그의 또 다른 이름을 떠올렸다.
‘저런 녀석이 어떻게, 거인 학살자라는 칭호를 얻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