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63
* * *
푸욱, 푹-.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눈앞에서 어머니가 죽어 가는 걸 보니, 눈앞이 핑 도는 기분이었다.
화가 났다.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아레스를 찾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었다.
“그만해…….”
목소리가 떨렸다.
작기도 하지만 그 목소리가 눈앞에 있는 아레스나 알크메네에게 닿을 리 없었다.
콰아아앙-!
“그만하라고-!”
땅을 짓밟아 주위에 마나를 퍼뜨려 보지만, 목걸이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화악-.
사방으로 퍼지는 붉은 기류의 마나.
알크메네의 마나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헤라클레스의 기억을 괴롭혔다.
스스스스-.
흩어진 마나가 다시 합쳐진다.
더 이상 칼과 창에 찔리는 알크메네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알크메네의 또 다른 기억이 시작된다.
-아마 난 죽을 거야.
마주 앉아 있는 두 사람.
알크메네, 그리고 그녀의 언니 알레나였다.
-병기로 키운다는 아들을 왜 내 품에 안겨 두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어.
-웬데?
-내가 죽으면, 헤라클레스는 과연 어떤 반응일까?
알크메네의 물음에 알레나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그 질문으로 인해, 알레나는 제우스가 헤라클레스를 알크메네와 붙여 둔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럼 널 죽이고……?
-그거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어.
-엄마와 아들이 함께 지내도록 내버려 두는 데에 설마 그런 뜻이 있으려고? 너무 생각이 많은 것 아니야?
-언니.
알크메네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언니는 제우스를 몰라. 그에게 있어 어떤 일에 ‘그냥’은 없어.
-그럴 수가…….
응애-!
안쪽 방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젖을 떼지 못한 헤라클레스의 울음소리였다.
흠칫 놀란 알레나와 자리에서 일어나는 알크메네.
알레나는 서둘러 방문을 향해 달려가 알크메네의 앞을 가로막았다.
-헤라클레스를 멀리해, 알크메네.
만약 정말, 제우스의 목적이 그런 거라면.
피로 맺어진 부모 자식임에도, 알크메네는 헤라클레스와 가까워질수록 죽음과 더 가까워질 것이다.
-모르는 척해. 보모는 내가 찾아 줄게. 그럼 넌…….
-난 그렇게 못해, 언니.
알크메네는 알레나가 가로막고 있는 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아직 들려오고 있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헤라클레스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다 너 죽어!
-설령 그렇다 해도, 난 못해.
-대체 왜?
-내 아들이잖아.
-책임감 때문이야?
-아니.
-그럼?
-그냥 내가, 내 아들을 너무 사랑해서 그래.
그 대답에 순간 말문이 막힌 알레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
그것을 탓할 자격은 세상 그 누구에게도 없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알크메네의 언니로서, 알크메네를 지켜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알크메네는 헤라클레스와 함께 있어서는 안 된다.
-저 녀석은 제우스가 계획한 전쟁 병기일 뿐이야.
-언니도 그렇게 생각해?
꽈악-.
친언니, 알레나를 노려보던 알크메네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알레나가 가로막고 있는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랭커인 알크메네와는 달리, 승탑을 포기한 플레이어인 알레나는 그녀를 막을 힘이 없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나라도 저 아이의 편이 되어 줘야지.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나만큼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제우스가 마음먹은 이상, 저 어린아이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는 헤라클레스를 전쟁터로 내몰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전쟁 병기가 될 것이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수많은 거인들을 죽이게 될 것이다.
끼이이이-.
저벅, 저벅-.
기어이 문을 연 알크메네는 힘차게 목젖을 열어젖히고 울고 있는 헤라클레스를 안아 들었다.
“엄마…….”
그 모습을 바라보며, 어른이 된 그가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고마워, 헤라클레스.
아직 어린 자신을 바라보는 알크메네의 따뜻한 눈이,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내 아들로 태어나 줘서.
* * *
화아아아-.
헤라클레스를 감싼 붉은 마나가 시시각각 변한다.
아마 저 속에서 헤라클레스는 자신이 알지 못했던 진실을 보고 있을 것이다.
『 이런 사연이 있었군. 』
기간테스의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유원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뒷목이 뻐근할 만큼 높은 키.
하늘까지 닿을 만큼 거대한 기간테스를 올려다보자, 뒷목이 다 뻐근한 느낌이 들었다.
‘다 보이는 건가.’
알크메네의 스킬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다.
목소리에 저장된 기억을 보여 주는, 하나의 영상에 지나지 않는 스킬.
삼신에 비견되는 거인인 기간테스가 그런 알크메네의 스킬을 파악하지 못할 리 없었다.
“고맙다.”
『 뭐가 말이지? 』
“그냥 지켜만 봐 주는 거. 혹시라도 이때가 기회라고 공격하면 어쩌나, 조금 걱정했거든.”
거인 학살자 헤라클레스.
그를 죽일 수 있는, 어쩌면 몇 안 되는 기회였다.
만약 그가 지금을 기회라 여겨 헤라클레스를 공격했다면, 아마 이곳에서 헤라클레스와 기간테스의 싸움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 넌 헤라클레스와 우리 거인족의 오해를 풀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이곳에 왔다. 그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순 없지. 』
“고맙다는 뜻인가?”
『 그건 조금 더 지켜봐야겠군. 』
지켜봐야 한다.
그것은 헤라클레스가 앞으로 보일 반응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뜻이었다.
‘생각이 많은가 보군.’
목걸이의 기억을 보고 있는 건 유원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이야기를 들어서 대강의 사연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는 건 느낌이 달랐다.
‘기간테스가 흔들렸다.’
미리 줄 수 있었던 목걸이를, 굳이 이 순간에 와서 건네준 건 이유가 있었다.
거인 학살자로서 수많은 거인들을 죽여 온 헤라클레스.
진실을 알게 됐을 때 그가 거인 학살을 멈추더라도, 그가 거인들의 적인 건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헤라클레스의 거인에 대한 적의가 제우스에 의한 것임이 밝혀진다면?
그 사실을 거인들의 우두머리, 기간테스가 직접 보게 된다면?
‘도와주십시오, 알크메네.’
천 년도 넘게 전에 죽은 그녀에게, 수백 수천만 명의 목숨이 달렸다.
앞으로 일어날 거대한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알크메네의 목소리가 헤라클레스를, 기간테스를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유원이 헤라클레스가 있는 방향을 지켜보고 있는 사이.
구구구구-.
기간테스의 거대한 머리가 아래로 내려왔다.
수백 미터에 달하는 높이에서 내려온, 집채만 한 눈동자가 유원을 향했다.
유원은 고개를 돌려 한참 만에서야 기간테스의 초점을 찾아 그를 바라보았다.
“왜?”
『 그래. 기억나는군. 우르파에게 들었다. 』
우르파.
20층에서 만난, 바다의 돌을 구할 방법을 알려 주었던 거인족의 오래된 하이랭커.
아무래도 기간테스는 그에게서 유원에 관한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자고 있던 거 아니었나?”
『 설마 여기서 내내 잠만 자려고. 가끔 깨서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듣고 그랬다. 』
“그럼 왜 지금까지 헤라클레스를 막지 않았지?”
『 여기. 』
기간테스는 팔을 들어 올려 자신의 가슴을 내 보였다.
가슴과 겨드랑이 사이로 보이는 지져진 흉터.
『 제우스의 벼락에 당한 상처다. 아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 』
“다쳤다는 건가? 그래서 숨어 있었던 거고?”
『 숨은 게 아니다. 』
기간테스는 들어 올렸던 팔을 내려 다시금 자신의 상처를 숨겼다.
『 다음 싸움을 준비하던 거지. 』
‘다음 싸움.’
2차 기간토마키아.
예고되지 않았던 첫 번째 전쟁과는 달리, 두 번째 기간토마키아는 처음보다 몇 배는 큰 규모의 전쟁으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된 걸까 싶었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 봤지만 제우스가 판을 키웠다는 것 말고는 달리 생각나는 원인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전쟁을 준비했던 건 올림포스만이 아니었나.’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고, 전쟁이란 것도 결국 상대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두 번째 기간토마키아를 준비하던 올림포스. 거인족의 우두머리인 기간테스의 말처럼, 그들 역시 전쟁을 준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 기간토마키아에서 거인족은 멸망한다.’
거인족은 탑의 전력 중 꽤 큰 부분을 차지하던 종족이었다.
두 번째 기간토마키아로 인해 그런 거인족이 멸망하고, 올림포스를 비롯한 여러 거대 길드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탑의 전력이 크게 줄어들었던 사건.
‘올림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건 차선이다. 최선은 전쟁 자체가 벌어지지 않는 것이지.’
그걸 위해서라도 기간테스의 판단은 중요했다.
눈앞에 있는 그는 올림포스의 제우스처럼 전쟁의 열쇠를 쥐고 있는 존재였다.
『 포세이돈에게 시원하게 한 방을 먹인 걸 보면, 넌 분명 올림포스의 적일 텐데. 』
“그건 맞아.”
『 그럼 우리들의 편인가? 』
“그건 아니고.”
『 푸흐흐. 듣던 대로 도통 모를 놈이군. 』
기간테스는 유원을 보며 기괴하게 웃었다.
웃음소리가 너무 큰 나머지 유원의 귀에는 그것이 마치 자연재해처럼 느껴졌다. 기간테스는 귀를 막는 유원을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 이렇게 빨리 탑을 오르는 것도, 아레스에게서 아이템을 빼앗은 것도, 올림포스도 찾지 못한 이곳을 찾은 것도. 모두 상식 범주를 벗어난 일이다. 그리고 넌 그 상식을 모두 벗어나 지금 여기서 나와 거인 학살자의 사이에 서 있지. 』
하나하나 떼어 놓고 보더라도 결코 범상치 않은 일이었다.
이미 웬만한 랭커들을 뛰어넘는 실력.
포세이돈이 찾던 바다의 돌을 쟁취하고, 아레스가 지니고 있던 아이템을 빼앗는 업적.
그로 인해 헤라클레스와 기간테스에게 그간의 진실을 알리기까지.
『 바로 여기서, 넌 역사를 만든 거다. 』
역사를 만든다.
거창한 말이지만, 유원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틀렸다.
자신이 하고 있는 건 역사를 만드는 게 아니라 바꾸는 거였으니까.
“내가 좀 대단한 편이다.”
『 겸손은 못 배웠군. 그것만 있으면 딱인데 말이지. 』
시끄러운 목소리에 귀를 막고 있는 유원의 반응을 신경 쓴 건지, 기간테스는 아까보다 작게 웃었다.
『 어쨌든 올림포스의 적이지만 어느 쪽도 아니고, 그렇다면 중립이라는 건데. 어느 쪽에도 붙지 않는다는 건, 위험에 처했을 때 널 도울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
“꼬드기지 마라. 안 그래도 인기 많으니까.”
『 정말 괜찮나? 』
“그래.”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면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유원에게 있어 단체의 힘은 독이 든 성배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단체의 힘은 유원의 발목을 잡을 것이고, 더 큰 힘을 주는 대신 자유를 빼앗을 테니까.
자유.
그것은 유원이 가진 가장 큰 힘이었다. 그 어떤 길드라 해도 그보다 더 큰 매력을 가지지 못했다.
『 네 뜻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지. 』
다행히 기간테스는 대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유원의 대답에 아쉬워하는 대신, 눈을 굴려 헤라클레스가 있는 곳을 돌아보았다.
『 그럼 이제…… 』
화아아악-!
다시 목걸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붉은 색상의 마나.
『 저 녀석이 선택할 차례군. 』
안개처럼 번져 있던 마나가 걷히고, 멍한 얼굴의 헤라클레스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