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66
* * *
콰아앙-!
신전의 벽면이 부서졌다.
무너진 울타리.
바닥에 깔린 시체와 뒤집어진 땅.
후두두둑-.
위태롭게 흔들리는 신전 안으로 여러 랭커들이 모여들었다.
그들 가운데, 헤라 신전 소속의 랭커 만테우스가 헤라클레스를 마주했다.
“왜 이러시는 겁니까, 대체?”
그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주위에는 수십 명의 랭커들이 있었지만, 상대는 헤라클레스였다.
이 정도 인원으로는 그를 막을 수 없었다.
“헤라를 데려 와라.”
대답은 여전했다.
아마 벌써 세 번째 듣는 말일 것이다.
헤라를 데려오라고.
활활 타오르는 눈빛이나 다짜고짜 신전을 때려 부수는 모습을 보면 단순한 인사가 아닌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분께서는 여기 안 계십니다.”
“그래?”
잠시 고민하던 헤라클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신전이 다 부서지면 오겠지.”
단순명료한 대답.
저벅-.
헤라클레스가 자리에 모인 랭커들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서른두 명. 이게 전부면 더 모이는 게 좋을 거다.”
거리가 한 걸음 가까워지자, 만테우스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한 삼백 명 정도 되면, 좀 버틸 만할지도 모르지.”
삼백 명.
그것도 모두 랭커를 염두에 두고 언급한 숫자였다.
누군가는 콧방귀를 끼며 허세를 부린다고 말하겠지만 만테우스는 지금 이 말을 단순한 허세라 여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건 허세가 아닌 겸손이었다.
‘기간토마키아에서 보여 준 활약만 하더라도 여기 있는 랭커들은 순식간에 끝날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항복을 해야 할까?
아니, 항복을 한다 하더라도 문제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으면 눈을 저렇게 떠?’
살벌한 눈이었다.
절대 봐주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
눈앞에 있는 헤라클레스는 기간토마키아에서 만테우스가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꿀꺽-.
그렇게 만테우스가 속으로 반쯤 싸움을 포기하던 때.
“전쟁 영웅도 옛말이지.”
척-.
올림포스에 새로 들어온 상위 랭커, 헥토르가 앞으로 나섰다.
“시대는 변했다. 천 년 동안 활동을 하지 않은 구시대의 유물은 이제 그만 뒷방으로 물러나시지.”
투구로 머리를 감싸고, 온몸에 은빛 갑옷을 두른 헥토르는 헤라클레스를 향해 다가갔다.
그는 분명 제법 높은 랭킹의 랭커였다.
더군다나 그의 주위에는 서른에 달하는 랭커들이 있는 상황.
“이보게.”
만테우스는 그런 헥토르를 서둘러 만류했다.
“지금은 싸우기보다는 대화로 해결해야 해. 상대는 헤라클레스야.”
“제아무리 헤라클레스라 한들, 이쪽은 랭커만 서른이 넘습니다.”
숫자.
그 함정에 속아 죽어 간 사람이 얼마나 많을 텐데, 헥토르는 그것을 배우지 못한 듯 보였다.
“올림포스에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추가 인원이 도착할 겁니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헤라클레스는 만테우스에게 향한 속삭임을 듣고는 팔짱을 꼈다.
마치, 얼마든지 더 오라는 듯이.
“……저런 걸 보고, 참을 수가 있겠습니까.”
헥토르가 칼과 방패를 들고 헤라클레스에게 다가갔다.
“역시 죽더라도 부딪쳐 봐야…….”
부웅-.
제법 떨어진 거리.
헤라클레스의 주먹이 앞으로 뻗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쩌엉-!
대기에 쩍쩍 금이 가며, 헥토르의 갑옷이 산산이 부서졌다.
퍼엉-!
하늘로 날아가는 헥토르.
유언이나 다른 말을 할 새도 없었다. 한 점의 별이 되어 날아가는 헥토르를 보며, 다른 랭커들은 입을 떡 벌렸다.
“어, 어디까지 날아간 거야?”
“한 방에…….”
하이랭커에 가장 근접한 상위 랭커.
헥토르는 최근 올림포스에서 기대 받는 유망주였다. 핏줄 없이도 그는 잘만 하면 훗날 하나의 지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그 헥토르가, 단 한 방에 날아갔다.
뚜둑-.
“이제 시작하자.”
콰아앙-!
콰드, 콰드드드드-.
발로 지면을 밟자, 그렇지 않아도 금이 가고 있던 신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올림포스 부수기.”
* * *
[계약이 완료되었습니다.] [‘전쟁과 투쟁의 전사’의 충성을 받습니다.] [‘전쟁과 투쟁의 전사’의 힘이 복원됩니다.] [해당 영혼은 올림포스 소속 플레이어와의 싸움에 참전할 수 없습니다.]척-.
계약을 마친 아레스는 유원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아서와 같은, 충성의 서약.
‘살다 보니 이런 날이 다 오는군.’
그 개차반 망나니라 소문난 아레스가 제우스가 아닌 자신에게 무릎을 다 꿇다니.
비록 올림포스와의 싸움에 참전시킬 수는 없지만, 현 시점의 유원에게 온전한 상태의 아레스는 꽤 큰 힘이 될 것이다.
유원은 잠깐의 휴식으로 바닥을 드러낸 마력을 회복하고 천장 위로 올라왔다.
그렇게 38층에서의 볼일을 끝내고 돌아온 지, 며칠이 흘렀다.
웅-.
인벤토리 속, 플레이어 키트가 진동을 울렸다.
[하르간 : 진짜 성공한 거냐?]막 잠에서 깨고 일어난 유원은 답장을 보냈다.
[무슨 일 있냐?] [하르간 : 헤라의 신전이 공격받았다. 헤라클레스에게.] [그쪽부터 치라고 했다. 이제 그 녀석, 우리 편이야.]답장을 보낸 유원은 플레이어 키트를 다시 집어넣으려 했다.
그 순간.
지이잉-.
[하르간 : 뭐? 진짜?] [하르간 : 아니, 뭘 어떻게 한 거야? 미친, 헤라클레스가? 정말이야?] [하르간 : 네가 미친놈인 건 알았지만, 대체 무슨 수로 헤라클레스를 설득한 거냐?]쉼 없이 울리는 메시지.
아무래도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었다.
유원은 답장을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별로 생산적인 대화도 아니었다. 헤라클레스가 헤라의 신전을 공격한 이상,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는 건 구태여 설명을 하지 않아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시작됐군.’
헤라의 신전을 첫 번째 타깃으로 잡은 건, 유원이 준 정보 덕분이었다.
알크메네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모든 존재들.
그중, 제우스와 아레스를 제외하고 가장 알크메네의 죽음과 관련 있는 사람이 바로 헤라였다.
‘올림포스라면 무조건 다 죽이고 다니는 것보다는 하나하나 요격하는 게 낫다. 대략적인 위치도 플레이어 키트에 보내 두었고.’
올림포스에서 헤라클레스를 막을 수 있는 랭커는 제우스밖에 없다. 아니, 그를 막을 수 있는 랭커는 이 탑을 전부 뒤져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올림포스 부수기는 시작됐다. 이제 남은 준비는 하난데…….’
지잉-.
또다시 시작된 진동.
분명 똑같은 진동일 텐데,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유원은 플레이어 키트를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하데스 : 준비는 끝났다.]기다리고 있던 메시지.
그것을 확인한 유원은 방금 전에 무시했던 하르간의 메시지에 답을 보냈다.
[이제 시작할 거다.]하르간.
제우스의 아들로서, 훗날 올림포스의 멸망을 이끈 장본인이 될 플레이어.
[하르간 : 시작? 시작은 이미 된 거 아니었어?] [그게 아니라-.]비로소 지금껏 하르간에게 건 투자를 회수할 때가 왔다.
[네가 도울 일이 있다.]* * *
뿌옇게 구름이 낀 하늘.
1년 사시사철, 하루도 흐리지 않던 하늘이 오늘따라 유난히 뿌옇게 변해 있다.
저벅, 저벅-.
하늘의 권좌.
올림포스의 왕, 제우스의 신전.
그곳을 방문한 전쟁과 지혜의 권좌, 아테나가 자신의 아버지를 찾았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테나의 방문에 신전을 지키던 랭커들이 옆으로 비켜섰다.
설령 삼신 포세이돈이라 한들 일방적인 방문을 막는 그들이, 아테나의 방문을 허용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미리 언질이 되어 있던 건가.’
이 상황이 낯설게 느껴졌다.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위기감.
어쩌면 정말, 수천 년 동안 견고히 쌓아 올린 올림포스라는 공든 탑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 뿌옇다.’
쿠릉, 쾅-!
심지어는 천둥이 치는 하늘.
이 세계에서 이런 하늘을 보는 건 아테나도 처음이었다.
‘많이 분노하신 건가.’
꿀꺽-.
자신을 낳아 기른 아버지이지만 그녀는 이 순간, 제우스가 두려웠다.
아니.
본래도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제우스는 그녀가 알고 있는 모든 랭커들 중 가장 강하고, 가장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에 비하면 평소는 순한 양이나 다름없었다.
아테나는 복도를 걸어, 제우스가 머물고 있는 신전의 정 중앙에 도착했다.
연못을 내려다보고 있는 제우스의 뒷모습.
“왔느냐?”
목소리의 고저는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아테나는 그가 꽤 많이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의 표정이나 목소리보다 더 큰, 뻥 뚫린 천장 위의 하늘이 그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아레스가 죽었다지?”
“……예.”
“헤라클레스가 신전을 부수고 다닌다고?”
“……예.”
“곤란하게 됐군.”
당연한 말이지만 아테나는 화들짝 놀랐다.
곤란하다니.
아스가르드와의 관계가 틀어져, 전쟁을 피하고자 포세이돈을 직접 그들의 감옥에 집어넣을 때에도 하지 않았던 말이었다.
아니.
그것은 아테나가 기억하는 지난 어떤 역사 속에서도 한 번도 내뱉지 않았던 말이었다.
천하의 제우스가 곤란하다니.
“당장 병력을 소집하겠습니다. 디오니소스와 아폴론 남매, 헤르메스를 모아…….”
“아폴론 남매는 내 패가 아니다.”
아폴론 남매가 하르간과 접촉하고 있는 건 알고 있었다.
거기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최근, 하르간이 하데스를 만나면서부터 이야기가 달라졌다.
“큰아버지와 그들이 접촉한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헤라클레스가 돌아선 것도, 그것과 연관이 있는 걸까요?”
“처음에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제우스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렇게 멀리 갈 필요가 없더군.”
“예?”
“아레스를 죽인 자가 누군지 알고 있느냐?”
알다마다.
소식을 듣고, 직접 무너져 가는 아레스의 신전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이제 막 40층에 도달한 플레이어. 전부터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는 벌써부터 올림포스의 지파 하나를 상대할 만한 힘을 갖췄다.
하지만…….
“혹시 제천대성과 관련이 있는 겁니까?”
아직까지 아테나는 유원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옆에 있는 제천대성의 분신이 신경 쓰였을 뿐.
벌써 하이랭커급의 힘을 지녔다고는 하나, 그녀는 유원이 몇 명이든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하물며 제우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그런데.
“제천대성, 그자 역시 헤라클레스와 마찬가지인 거겠지.”
“무슨 말씀이신지…….”
“그런 게 있다.”
아레스가 죽고, 헤라클레스가 변심했다.
생전 한 번 보지 못했던 두 사람의 인과관계라면 하나뿐이었다. 돌아가는 상황에서 제우스는 헤라클레스가 변심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헤라클레스를 끌어들이기 위한 밑 작업이었나.’
대체 어떻게 알크메네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됐는지는 몰라도, 제법 머리를 잘 굴린다 싶었다.
이미 올림포스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더는 두고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테나.”
진중한 부름.
척-.
“예, 왕이시여.”
아테나는 명령을 기다리는 충직한 신하처럼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제우스는 아테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가 보고 있는 건, 바람이 부는데도 잔잔한 우물의 표면일 뿐이었다.
“천마신교를 쳐라.”
아테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천마신교.
그것은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는, 유원과 관련이 있는 유일한 길드였다.
“그 말씀은…….”
“그래.”
현 시점에서 올림포스가 천마신교와 엮일 만한 이유라면 단 하나뿐.
“김유원을 먼저 끌어들인다.”
그가, 제우스의 표적이 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