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67
* * *
아테나는 잠시 침묵했다.
대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천마신교에는 천마가 있습니다.”
분명 오랫동안 활동을 하지 않은 하이랭커였다.
하지만 그는, 기간토마키아 훨씬 이전부터 하이랭커에 이름을 올린 존재였다.
“또한, 김유원의 뒤에는 제천대성의 분신이 있습니다.”
천마.
그리고 제천대성.
게다가 김유원만 하더라도 아레스보다 더 나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상태에서 천마신교를 적으로 만들어 싸우는 건, 전력상으로도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이쪽에서도 저를 비롯해 최소 넷 이상의 하이랭커가 필요합니다.”
“헤르메스를 데리고 가라. 다른 한 명은 내일까지 내가 정해 주지.”
“한 명이시라면…….”
“슬슬 꺼내 줄 때도 됐지, 그녀도.”
아테나의 눈이 번쩍 뜨였다.
‘꺼내 준다’는 말을 쓰는 걸 보면, 떠오르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정말입니까?”
“아마 기다리고 있을 거다. 공을 세워, 밖으로 나오고 싶을 테니까.”
“그녀는 전쟁터에 그리 어울리지 않습니다.”
“안다.”
제우스는 연못에서 일어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연못에서 시선을 떨어뜨려 자리를 벗어나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그녀와 함께 싸울 때에는 잠시 물러나야겠지.”
아테나는 고개를 돌려 제우스가 보고 있던 연못을 보았다.
잔잔한 수면.
‘뭘 보고 계셨던 거지?’
올림포스의 왕이 된 이후.
바깥 활동을 극도로 제한한 제우스는 이 연못을 통해 보고자 하는 세상을 보았다.
요즘처럼 올림포스가 흔들리는 때.
과연 그는, 무엇을 보고 있었던 걸까.
제우스가 가고 없는 지금.
아테나는 무언가에 이끌린 것처럼, 연못 위에 비친 모습을 보았다.
* * *
42층, 지옥.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서 하르간은 기다리고 있던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멀리서도 부른다.”
지하의 가장 깊은 곳.
케로베로스는 물론, 지옥에 서식하는 괴물들 중 웬만큼 위험한 녀석들은 모두 나오는 장소였다.
랭커들조차 출입을 꺼리는 장소에서, 두 사람이 만났다.
“늦었다.”
돌 하나를 받치고 앉은 유원은 플레이어 키트에 떠오른 시간을 보고 있었다.
“열심히 뛰어왔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길이 좀 막혀야지.”
“무슨 교통 체증이냐?”
“교통 체증? 그건 뭐냐?”
“그런 게 있다.”
어깨를 으쓱인 유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장 낮은 공간인 만큼 어두운 사방.
희미한 빛조차도 귀한 주위를 둘러보며 하르간이 물었다.
“그런데 여긴 위험하지 않냐? 아무래도 너무 아래쪽…….”
파지지직-!
환해지는 배경.
유원의 주위로 빛나는 전격의 구체가 몇 개씩 떠올랐다.
그 순간.
“어……?”
하르간은 지금껏 어둠에 가려져 보지 못하던, 괴물들의 사체를 발견했다.
‘뭐가 이렇게 많아?’
몇백 마리.
아니, 어쩌면 한 천 마리는 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유원을 먹기 위해, 그리고 피 냄새를 맡고 모여든 녀석들인 듯했다.
근방에 있는 괴물은 전부 모여든 모양.
풀 한 포기 자라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이 허허벌판에서 유원은 괴물들을 모두 정리하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붓하게 대화나 하자고 부른 건 아닌 것 같고.”
하르간의 말에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도울 일이 있다니까.”
“그러니까, 그게 뭔데?”
“지금 몇 층까지 올라갔지?”
“지금? 61층.”
“빠른데.”
“빠르지, 그럼. 요즘 바쁜 것만 아니었으면 아마 더 빨리 올라갔을 거다.”
하르간은 유원과는 달리 최대한 빠른 속도로 탑을 오르는 데 주력했다. 유원만 하더라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탑을 오르기는 마찬가지지만, 속도만 놓고 본다면 하르간이 유원보다 더 빨랐다.
“너도 있지? 이거.”
파지직-.
허공에 떠오른 전격의 구체.
유원은 자신이 만들어 낸 ‘벼락의 조각’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있지, 그럼.”
파직-!
하르간의 몸에 흐르기 시작한 노란빛의 전격.
시험의 보상으로 얻은 유원의 것과는 달리, 그것은 하르간의 유전자에 섞여 있는 능력이었다.
보다 순수하고, 보다 완전한 스킬.
단순히 마력의 질과 양만 놓고 보자면 유원의 힘이 더 강하지만, 스킬의 완숙함은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왜?”
“아버지와의 싸움은 각오한 거냐?”
하르간의 눈이 잠시 커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유원은 제우스와의 싸움을 가리켜 ‘아버지’와의 싸움이라 말했다.
바로 아버지와 다른 길을 갈 각오를 다졌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그걸 묻는 건 왜, 내가 고민이라도 할 것 같아서?”
“혹시나 해서 묻는 거지.”
“아닌 건 아닌 거다. 그건 아무리 아버지라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낳아 준 건 감사하지만, 길러 준 건 어머니셔.”
서슴없이 대답을 내 놓은 하르간은 조금 쓴 표정을 지었다.
“하물며 헤라클레스, 그 형님만 놓고 봐도…….”
헤라클레스.
제우스에 의해 계획되어 만들어진, 올림포스의 전쟁 병기.
헤라클레스의 변심 이후 하르간은 유원에게 헤라클레스에 대해 물었고, 그 대답을 듣고 난 하르간은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혹시 자신도 그런 게 아닐까 하는.
“내가 본 올림포스는 대의나 정의보다는 목적이나 결과가 더 중요한 곳이다. 그걸 위한 수단이 무엇이든, 정도를 모르고 움직였고.”
“그걸 바꾸겠다는 거냐?”
“적어도 내 어머니는 그래야 한다고 가르치셨으니까.”
유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리 길지 않은 대화였다.
하지만 적어도 이 대화만으로도 확신할 수 있었다.
‘바뀌지 않았군.’
자신의 개입으로 혹시나, 미래에 알던 하르간과 지금의 하르간이 달라졌으면 어떡하나 싶었다.
하지만 그는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빨리 유원이 알고 있는 하르간의 모습으로 성장했다.
이제 부족한 건 따로 있었다.
“그걸 위해 네가 도울 일이 있다.”
“내가? 뭔데?”
“네 아버지. 제우스와의 싸움.”
순식간에 커지는 하르간의 동공.
“거기 너도 참여해.”
“너 미쳤냐?”
하르간의 언성이 높아졌다.
목숨이 아깝다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거길 왜 껴? 너나 나나…… 아니, 넌 빼고. 이건 실수. 아무튼, 그 싸움에 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다고?”
주위에 널려 있는 괴물들의 사체. 그리고 아레스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전적.
황급히 두 가지를 떠올린 하르간이 횡설수설하며 말을 바꿨다.
하지만 결론은 다르지 않았다.
“자신이 없냐?”
“……자존심은 놓고 생각해야지. 자신? 감히 누구 앞에서 그걸?”
상대가 상대인 만큼, 충분히 이해할 만한 말이다.
제우스.
올림포스의 왕이며, 그 자체이기도 한 존재.
그와의 싸움에서 하르간은 한 줌의 먼지나 다름없을 뿐이었다.
“제우스. 올림포스의 왕, 하늘의 권좌, 벼락의 주인. 이름은 많지. 현 시점에서 랭킹은 9위.”
유원은 제우스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읊었다.
랭킹 9위.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현 시점에서일 뿐이다.
‘나중에는 5위까지 올라갔지.’
최상위권에 들어선 하이랭커 중에서는 드문 상승세.
훗날에 올림포스의 세력이 약해졌음에도 정작 제우스의 힘 자체는 더 강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잘 아네. 아니, 모르는 건가? 이 탑에서 랭킹 9위라는 게, 얼마나 높은 건지.”
“안다, 나도.”
아마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이 시대에서 유원만큼 최상위권의 하이랭커들을 많이 만나 본 자도 드물 테니까.
“그래서? 지금 당장은 상대가 안 되니까, 직접 얼굴 보고 싸우는 건 못하겠다는 건가?”
“못하겠다는 게 아니라 의미 없는 싸움이라는…….”
“의미 있다.”
파지지직-!
유원의 전격이 치솟아 오르며 하르간의 것과 섞여들었다.
“반드시.”
“……네가 헛소리하는 성격은 아니란 건 아는데.”
하르간은 길게 한숨을 뱉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란 건 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유원은 그 말도 안 되는 일은 매번 해내 왔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이번에도 그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거가 뭐지?”
“두 가지가 있는데, 뭐부터 들을래?”
“순서가 상관이 있나?”
“있다. 첫 번째로 인해 두 번째 근거가 만들어지니까.”
“그럼 그 순서대로 말하면 되는 거잖아? 굳이 왜 물어?”
“네가 충격 받을 테니까. 마음의 준비는 하고 들으라고.”
“내가 충격 받아? 왜?”
“왜냐면 넌…….”
유원이 하르간을 선택한, 두 가지 이유 중 하나.
“제우스가 사랑한, 유일한 자식이니까.”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는, 올림포스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열쇠인 셈이었다.
* * *
잔인한 말이었다.
나를 사랑하는 아버지를 상대로 싸워야 하다니.
유원의 말에 하르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놀랐고, 그 말을 부정했다.
하지만 어차피 믿고 안 믿고는 상관없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 한들, 제우스가 엇나가고 있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으니까.
다만.
‘이걸 알면서도 같은 선택을 할지는, 두고 봐야 하려나.’
유원은 괴물들의 사체 한가운데 주저앉아 있는 하르간을 바라보았다.
파지직, 파짓-!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전격.
그것은 그만큼 하르간의 감정이 조절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유원은 ‘왜’냐는 하르간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사실이었다.
아마 지금 하르간은 유원이 한 말의 진위 여부를 비롯해, 온갖 생각이 다 떠오르고 있을 것이다.
“미치겠군.”
머리를 벅벅 긁으며 몇 시간 만에 입을 연 하르간.
유원은 하르간에게 다시 다가가 물었다.
“생각은 정리됐냐?”
“정리하고 말 것도 없지. 네 말이 진짠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안 믿으면 할 말은 없고.”
“아니. 사실 믿는다. 네가 한 말들은 신기할 만큼 맞으니까.”
“보통 그런 편이지.”
“자랑은. 넌 뭐, 미래에서 오기라도 했냐?”
유원은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두루뭉술하게 답했다. 물론, 속으로는 아주 조금 찔렸다.
“아무튼 그럼, 내 말을 믿는다 치고.”
“뭐 달라질 게 있냐? 있으면 내 마음뿐이지.”
“그러니까 그 마음이 뭐가 어떻게 달라졌냐는 거다.”
“싸울 거다. 그건 변함없어.”
결과는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아프겠지. 아버지가 날 사랑하신다면. 내가 그런 아버지를 끌어내리는 데 손을 보탠다면.”
하르간은 생각보다 담담한 말투였다.
생각을 잘 정리한 걸 수도 있고, 어쩌면 아직 실감을 못하고 있는 걸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의 대답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그래도 전쟁은 안 된다. 의미 없는 전쟁으로 수백, 수천만 명이 죽는 건 안 돼.”
“그렇다면 다행이군.”
“그럼 이제 들어나 보자.”
잠시 끊어졌던 대화의 흐름.
“내가 필요하다는 두 번째 이유가 뭐냐?”
하르간이 그 흐름을 다시 억지로 이어 붙인 그때였다.
지이잉-.
하르간의 품속에서 플레이어 키트가 울렸다.
“잠깐만.”
최근 중요한 연락이 많아 하르간은 서둘러 플레이어 키트를 확인했다.
그렇게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야.”
하르간의 표정이 싹 굳어지고, 그는 플레이어 키트를 돌려 화면을 유원에게 보였다.
“이거 봐라.”
그리고 그 속에는.
[아폴론 : 아버지께서 천마신교 공격을 명령하셨다.] [아폴론 : 네 친구, 거기 소교주라면서?]하르간보다는 유원에게 더 급한 용건이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