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68
* * *
황금과 붉은색이 공존하는 듯한 머리.
뚜렷한 이목구비에 광채가 나는 듯한 맑은 피부.
한 손에 리라를 든 남자, 아폴론이 자신의 동생 아르테미스에게 물었다.
“그 녀석, 괜찮을까?”
“하르간?”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
짧은 단발에 얇고 긴 팔로 팔짱을 낀 아름다운 여인.
아르테미스는 ‘그래’라는 아폴론의 대답에 고개를 저었다.
“괜찮을 리가 있나. 지금 같은 상황에.”
“어려운 친구를 사귀었어, 하필이면.”
“하나 있는 친군데. 잘 만들었지.”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지.”
아폴론이 픽 웃었다.
친구.
참 좋은 말이었다. 지금껏 하르간에게는 없던 관계기도 했다.
팀원들을 ‘동료’라고 말하긴 했어도 지금껏 하르간이 ‘친구’라고 말하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물론.
“웃음이 나와?”
아폴론과는 달리 아르테미스는 웃을 수 없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저 높은 신전 때문이었다.
“지금 우리가 누굴 만나러 가고 있는데?”
“그러게나 말이다.”
이 탑에서 가장 거대한 신전.
단 한 명의 거취를 위해 만들어진, 가장 호화롭고도 가장 위대한 장소.
이곳은 올림포스의 왕성이나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이 신전은 자신들의 아버지, 제우스의 것이니까.
“하필 이때 호출이라…….”
하르간에게 보낸 문자를 떠올린 아폴론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래서는 도와주러 갈 수도 없겠네.”
제우스의 호출은 드문 일이었다.
또한, 올림포스의 이름으로 떨어지는 그 어떤 지시보다 무겁고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 제우스의 호출을 무시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공교롭지, 역시?”
“공교롭지. 그것도 아주.”
“무슨 생각이실까?”
“글쎄. 아버지의 그 위대하신 머릿속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
“하긴.”
“일단 가 보자고. 가 보면 알게 되겠지.”
아폴론은 신전의 입구에 좌우로 갈라서 있는 랭커들을 보며 말했다.
“하필이면 이때, 우릴 부른 이유가 뭔지.”
당장 제우스가 자신들에게 손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표면상 드러난 올림포스 부수기는 아직 헤라클레스가 돌아선 것 외에는 밝혀진 게 없으니까.
저벅, 저벅-.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두 사람은 그렇게 제우스를 만나기 위해, 그의 신전에 발을 들였다.
* * *
42층에서 10층으로 내려가는 길은 멀었다.
급히 41층으로 내려온 유원은 태양마차를 빌려 하르간과 함께 이동했다.
“기어이 시작하셨군.”
심각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하르간은 유원의 눈치를 살폈다.
천마신교의 공격.
그것이 유원을 염두 해 둔 움직임이라는 것쯤은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신경 쓸 것 없다. 어차피 한 번쯤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니까.”
“연락은 했고?”
“해 뒀다. 조심하라고.”
유원의 목소리는 예상과는 달리 꽤 덤덤했다.
사실은 별로 걱정하지 않는 걸까.
아니, 그런 거라면 이렇게 서둘러 움직일 리 없었다.
“천마신교에는 하이랭커 천무진이 있으니까. 상위 랭커들도 여럿 있고. 괜찮을 거다.”
위로의 말.
하지만 위로차 그냥 하는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천무진이 있는 천마신교는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강한 세력이었다.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아테나 한 명이라면 그렇겠지.”
이상할 만큼 불안감이 들었다.
포세이돈이 감옥에 갇히고 하데스가 돌아선 지금, 유원은 제우스가 둘 수 있는 수를 떠올렸다.
‘헤르메스, 디오니소스? 아폴론 남매는 하데스에게 붙었고…… 다른 길드에 도움을? 아니, 지금 같은 상황에 올림포스에 개입할 만한 길드는 없을 건데…….’
그렇게 잠시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던 도중.
“……판도라.”
“뭐?”
“판도라다. 그녀가 풀려난 거야.”
머릿속에 한 명의 이름이 스쳤다.
물론, 하르간은 모르는 이름이었다.
“판도라가 누군데?”
수천 년 전에 봉인된 하이랭커.
죄를 짓고 올림포스의 감옥에 갇힌 그녀는 2차 기간토마키아에 풀려나 공을 세우고 다시 원래의 자리를 찾는다.
그녀는 제우스가 아껴 두고 있던 히든카드였다.
애초에 2차 기간토마키아를 위해 아껴 두고 있던 그녀를, 지금에 와서 풀어 준다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올림포스의 감옥에 봉인된, 꽤 오래된 하이랭커다. 아마 이름을 아는 자는 올림포스 내에서도 열 명이 넘지 않을 거다.”
“그런 녀석을 넌 어떻게 아는데?”
“그런 게 있다.”
“……하긴. 네가 모르는 게 어디 있겠냐.”
이미 하르간은 유원이 지닌 정보에 대해 의심하는 단계를 넘어선 듯,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제는 그저 유원이 몸을 담고 있던 곳이 어딘지 궁금해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랫동안 봉인되었던 하이랭커가, 하필 지금 풀려난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더 이상 아낄 이유가 없으니까.”
“왜?”
“어차피 다음 기간토마키아는 물 건너갔다. 가능하더라도 수천 년은 더 미뤄지겠지.”
삼신이 분열하고, 헤라클레스가 돌아섰다.
헤파이스토스 역시 포섭하지 못해 무기의 공급도 불가능해진 상황.
다음 기간토마키아가 벌어지더라도 올림포스는 패배할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제우스가 판도라라는 수를 둔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지. 조금 위험하더라도 말이지.”
“위험해? 아버지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당연한 의문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제우스의 위험을 논하다니.
유원은 하르간의 의문에 더 답하지 않았다.
사실 판도라에 대해 잘 모르는 건 유원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그녀가 저지른 짓에 대해 얼추 들었던 것뿐이었다.
‘괜한 기우였으면 좋겠는데…….’
제우스가 직접 나서는 게 아닌 이상, 현 시점에서 올림포스 내에서 크게 위협이 될 만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게 판도라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조금 서두르지.”
유원은 태양마차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아무래도 좀 더 속도를 내야 할 것 같았다.
* * *
척, 척-.
수만 교인들이 자리에 모였다.
하나같이 모두 자신의 병장기를 챙기고, 행과 열을 맞춰 전투태세를 갖춘 채였다.
“천세, 천세, 천천세!”
자리에 앉은 천마, 천무진.
그의 주위에 네 명의 천주들이 서서 말을 주고받았다.
“이 정도 싸움은 정말 오랜만이군.”
“사실, 처음 아닌가?”
“하긴. 다름 아닌 올림포스와의 전쟁이라…….”
걱정과 기대, 그리고 전율로 가득한 표정들.
창천주와 권천주는 곧 있을 싸움을 기대하며 전율했고, 도천주와 검천주는 걱정부터 앞섰다.
제아무리 천마신교라 한들, 상대는 올림포스.
그들과의 전쟁에서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정보는 확실한 거겠지?”
도천주 장천일의 물음에 권천주, 풍백림이 답했다.
“소교주님의 전언이다. 확실하고말고.”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알았지만…….”
불만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장천일.
그에 풍백림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지금 그 말, 소교주님의 행보에 불만을 드러낸 거라고 봐도 되겠나?”
“난 그분께서 언젠가 천마신교를 위험으로 내몰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 아닐까 싶군.”
장천일은 풍백림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유원에 관한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늘 우려를 표해 왔다.
올림포스의 적이 된 소교주.
그로 인해 올림포스와 전쟁이 벌어진다면 천마신교의 평화가 깨어질지도 모른다고, 그는 늘 이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 왔다.
“천산에 호적도 없고, 힘조차 없던 그가, 단지 성화를 얻었다는 것만으로 소교주 자리에 앉다니. 그것부터가 이 사단의 시작이었던 거다.”
“어디서 감히…….”
“그만하게, 둘 다.”
두 사람 사이에 검천주 신무극이 끼어들었다.
서로를 노려보며 기세를 끌어올리던 두 사람이 신무극을 돌아보았다.
네 명의 천주들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그였다.
랭킹만 놓고 보더라도 이미 하이랭커에 거의 근접한 그는, 차기 무림맹의 군사 작위에 거론되고 있었다.
네 명의 천주들은 모두 동등하지만 신무극은 예외였다.
“분노는 아군이 아닌 적에게 하는 것이야. 지금 상황을 인지하게.”
“하지만……!”
“감히 누구 앞이라고 언성을 높이려는 건가?”
풍백림의 항의에 신무극은 한 마디로 그의 입을 닫게 만들었다.
도열한 천마신교 교인들을 바라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는 천무진.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중얼거리듯 말을 뱉었다.
“오셨군.”
네 명의 천주들의 시선이 천무진의 시선을 따라 움직였다.
구구, 구구구-.
환한 달빛 아래, 구름 낀 하늘이 열리고-.
쩌억-!
기다리고 있던 손님이 도착했다.
“요란하게도 오는군. 저 동네 친구들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도 천무진의 목소리는 잔잔하고 느긋했다.
열린 하늘 위로, 한 척의 배가 아래로 내려왔다.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이에 하늘을 나는 배.
그것은 마치, 하나의 작은 섬처럼 보였다.
“오디세우스인가.”
저만한 배를 이끄는 올림포스의 랭커라면 한 명뿐.
천마신교는 오랫동안 천산에 틀어박혀 있었지만, 그렇다고 바깥의 정보에 문외한인 것도 아니었다.
오디세우스라면 아테나, 아레스와 함께 올림포스의 전쟁을 이끄는 주요 랭커 중 한 명.
그가 이끄는 배에 관한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스윽-.
천무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네 명의 천주들이 황급히 다가왔다.
“교주께서 먼저 나설 필요는…….”
“저희가 앞장서겠습니다.”
천마신교의 우두머리이자 정신적 지주인 천마가 먼저 나선다면 천마신교의 위신이 말이 아니게 된다.
천마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건 천마신교가 위험에 닥쳤을 때뿐.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외적인 활동을 하지 않던 그가, 이렇게 빨리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싸움이 그런 걸 따질 때냐?”
“…….”
너무나도 당연한 말에, 네 명의 천주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올림포스였다.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아니 오히려 이쪽이 사력을 다해야만 하는 상대.
스칵-.
그 상대를 향해 천무진은 먼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럼…….”
우우우우-.
천무진의 몸에서 불그스름한 마나가 뿜어져 나왔다.
“이 먼 곳까지 온 환영 인사를 해 줘야겠지.”
[천마령]천무진의 뒤에 나타난 거대한 붉은 거인의 형상.
그것이 천무진을 따라 검을 들고, 산처럼 거대한 덩치를 한 채 천산 옆에 섰다.
[1초식]스윽-.
뽑혀져 나온 천무진의 검이 아래에서 위로 향한다.
그 움직임을 따라서 천무진의 천마령이 고고한 기세를 뿜어내며 검 끝이 정확히 하늘 위에 나타난 올림포스의 배에게로 향했다.
[기본 베기]쉬익-!
쉬이익-!
천마령의 검이 위로 움직였다.
쩌억-!
동시에 갈라지는 구름.
감춰져 있던 흐릿한 달빛이 지상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그 모습은 마치 단칼에 하늘을 갈라 두 쪽으로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어, 어어?”
“배, 배가……!”
기기기긱-.
쩌어-!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올림포스의 배가, 반으로 갈라졌다.
“이만하면-.”
척-.
천무진.
수천 년 동안 활동을 하지 않던, 고대의 하이랭커.
또한.
“환영 인사로 섭섭하지는 않겠지.”
홀로 무림 세계의 절반에 달하는 전력을 지녔다 알려진, 천마의 은거가 비로소 깨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