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7
* * *
수르트라는 유원의 칼끝을 바라보았다.
그 불 같은 분노 때문인지 수르트라가 부리는 하수인들, 스컬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나를 사냥하겠다라…….
우우웅, 웅-.
수르트라의 분노에 붉게 변한 하늘이 흔들렸다.
대지는 더 뜨겁게 달궈지고, 갈라진 땅을 통해 솟아오르던 불길이 용솟음쳤다.
아무리 라그나로크 때에 비해 약하다 해도 그는 거인의 후손이었고, 악마였다.
이게 바로 이 세계의 멸망을 주도하는 자.
수르트라가 가진 힘이었다.
-실로 건방지고 오만한 말이로군.
분노하였음에도 수르트라는 옥좌에서 내려 오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턱을 괸 채 유원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말은 여기 오고 나서야 하거라, 어린 인간아.
까득, 까드득-.
까드드득-.
스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를 가라앉힌 수르트라가 다시금 하수인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유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역시, 이 정도 도발로 수르트라가 움직일 리가 없었다.
“엉덩이 무거운 건 알아준다니까.”
수르트라는 악마 중에서는 드물게도 자신의 화를 다스릴 줄 아는 녀석이었다.
수르트의 176번째 자식.
숫자가 높아질수록 힘이 약해지는 수르트의 자식들 중, 녀석은 그리 강한 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수르트라가 위험하다 알려진 이유는 하나.
그는 늘 이기는 전장에서만 모습을 드러냈고,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는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꽤 조심스러운 성격.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지켜보지.
그 성격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유원에게 불주술의 옷이 없었다면 모를까, 수르트라는 유원이 조금은 까다로운 면이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이제 어쩔 수 없었다.
“말이 많아.”
직접 저기까지 가는 수밖에.
콰앗-.
유원은 발을 가볍게 굴렸다.
눈앞을 가득 메운 스컬들.
까득, 까드득-.
파앗-.
유원은 그 가운데로 높게 뛰어올랐다.
* * *
슈악-.
유원의 몸이 한 바퀴 크게 돌았다.
검 끝에 무게를 싣고, 팽이처럼 회전하듯 칼을 휘둘렀다.
쩌어엉-!
순식간에 여섯 마리의 스컬들이 베어졌다.
펑, 퍼퍼퍼펑-!
이어진 연쇄적인 폭발.
유원의 몸이 폭발과 함께 다시 한번 자욱한 연기로 뒤덮어졌다.
화악-!
연기 사이에서 큼지막한 방패와 함께 유원의 몸이 날아들었다.
[마법 무효화의 방패]마법 능력에 대한 저항력이 뛰어난 방패.
무려 2만 포인트짜리였다.
유원은 이 싸움을 위해 불주술의 옷뿐만이 아닌, 손에 들고 몸을 보호할 방패를 구입해 두었다.
스컬들의 폭발력은 그리 치명적이지 않았다.
원래라면 몇 번만 잘못 휘말려도 치명적일 폭발이었지만, 아이템의 효과는 유원의 몸을 훌륭하게 보호해 주었다.
하지만 가랑비에도 옷은 젖는 법.
계속된 전투로 피해가 누적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몸은 망가지게 될 수밖에 없었고, 불주술의 옷만이 아닌 다른 방어 수단이 필요했다.
퍼억-!
[레벨이 올랐습니다.] [민첩이 1 상승하였습니다.] [체력이 1 상승하였습니다.] [마력이 1 상승하였습니다.]언제 들어도 역시 기분 좋은 메시지였다.
두 시간 동안 이어진 전투에서 벌써 3개의 레벨이 올랐다.
스탯의 배분도 나쁘지 않았다.
지금 전투에서 제일 필요한 체력과 가장 올리기 어려운 스탯인 마력이 모두 올랐으니까.
애초에 스컬이라는 괴물이 튜토리얼에서 볼 수 없을 만큼 상위 개체의 괴물인 만큼 경험치의 획득량 또한 높을 수밖에 없었다.
“후우우-.”
유원은 길게 숨을 뱉어 냈다.
체력이 하나 오른 덕분에 숨통은 조금 트였지만, 계속해서 뜨거운 공기를 들이쉬니 몸이 함께 후덥지근해지는 느낌이었다.
벌써 두 시간이었다.
스컬의 공격력은 그리 대단할 게 없지만, 녀석이 죽으며 발생하는 폭발은 꽤 위협적이었다.
데미지는 크지 않았다.
문제는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
‘원거리 요격 방법을 쓰지 않는 이상, 이놈들의 폭발은 몸으로 막아 낼 수밖에 없다.’
유원의 전투 방식은 전장의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스타일이었다.
마력포를 사용할 수야 있지만 아직 그건 마나의 소모량이 너무 컸다.
장기전을 생각해야 하는 유원으로서는 부담이 되는 방법.
‘방패는…….’
쩍-.
마법 무효화의 방패에 금이 생겨났다.
수리가 필요한 시점.
‘슬슬 한계군.’
2시간 동안 유원이 사냥한 스컬의 숫자는 무려 천 마리에 가까웠다.
그 많은 스컬의 폭발을 모두 받아 냈으니, 방패에 무리가 가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이, 수르트라!”
유원은 현저하게 줄어든 스컬들을 보며 2시간 만에 처음으로 수르트라를 불렀다.
“슬슬 내려 오지 그래? 잔챙이들 그만 보내고.”
유원의 말에 수르트라의 이마에 붉은 힘줄이 꿈틀거렸다.
둘의 거리는 어느새 확연히 가까워져 있었다.
이제는 유원이 마음만 먹으면 금방이라도 도달할 수 있을 정도.
수르트라는 턱을 괴고 있던 팔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확실히…… 대단한 아이템들이다.
후웅-.
수르트라의 몸이 위로 날아올랐다.
다음 순간, 높게 떠오른 수르트라의 거대한 몸체가 유원의 눈앞에 착지했다.
쿠우웅-!
순간, 지면이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옥좌에서 내려 와 땅 위에 착지한 수르트라는 자신의 몸집만 한 길이의 거대한 칼을 어깨에 걸쳤다.
-대체 그런 걸 어떻게 튜토리얼 지역에서 얻었는지 신기할 정도야.
수르트라를 눈앞에 둔 유원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압박감을 느꼈다.
그렇지 않아도 후덥지근하던 주위의 공기가 더욱 뜨겁게 변했다. 불주술의 옷의 저항력을 뚫고 더위를 느끼게 하다니, 역시 수르트의 자식다웠다.
“그러는 너야말로, 튜토리얼 지역에서 행패나 부리고 쪽팔린 줄 알아라.”
-자격이 없는 자들에 대한 징벌일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군.
구구구-.
수르트라의 거대한 검이 유원에게로 향했다.
-너는 자격이 있다. 저 광활한 탑에 올라, 랭커가 되어 탑의 지배자가 될 자질이 있지. 그런데 너는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동료를 대신하여 도태되었나?
“아까 말하지 않았냐?”
유원은 시끄럽다는 듯 귀를 후볐다.
“난 널 사냥할 거라고.”
-날 잡으러 왔다?
수르트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 으하하핫! 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상대해 드려야지.
거대한 검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유원은 고개를 들어 수르트라의 검을 바라보았다. 악마의 불길로 이루어져 있는 검은 세상의 모든 것을 불태울 것처럼 뜨겁게 이글거렸다.
‘이걸로 마지막이다.’
유원은 이를 악물고 방패를 들었다.
몸속에 쌓인 화기(火氣)는 이미 충분했다.
이 지긋지긋한 과정도 이제 마지막이었다.
화아아악-!
수르트라의 검이 아래로 떨어지자.
쩍, 쩌저저-.
마법 무효화의 방패에 생겨난 금이 빠르게 늘어났다.
다음 순간.
쩍-.
방패가 부러져, 수르트라의 화염 검이 유원의 몸을 덮쳤다.
콰아아아-.
유원의 몸이 바닥에 깔렸다. 겨우 몸을 웅크리고 버텼지만 결국 지면이 버티지 못했다.
이내 딛고 있던 지면이 뜨거운 열기를 못 이기고 움푹 내려앉고.
투콰아-.
홍대 거리 한가운데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 * *
유원과 제천대성, 손오공은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다.
호전적인 성격의 손오공은 늘 유원과 싸우고자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재미있다는 이유였다.
유원은 그런 손오공이 귀찮았다. 매번 싸우자고 달려드는데, 유원은 싸우는 걸 그리 즐기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래도 손오공은 유원에게 꽤 좋은 상대였다.
‘싸움’이라는 분야에 있어 손오공은 천부적인 자질이 있었고, 그 경험과 기술을 유원에게 꽤 많이 알려 주었으니까.
어쩌면 친구라기보다는 스승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가르침 중에는, 이런 게 있었다.
“이 눈?”
“그래. 그게 있으니 이길 수가 없잖아.”
“네가 가진 ‘감각 지대’도 충분히 사기야.”
“네 눈에 비할 건 아니지.”
유원은 매번 손오공에게 패했다.
수백 번이 넘는 싸움 가운데, 유원이 손오공에게 이긴 건 단 몇 번에 불과했다.
이유는 여럿 있었다.
무한대로 늘어나는 제천대성의 신물, 여의봉.
벼락을 뿌리고 빠르기로서 우주의 끝에 도달하였다 알려진 최초의 구름, 근두운.
천계의 보물, 반도(蟠桃)원의 반도를 모조리 먹어치우고 생겨난 무한의 마력.
하지만 손오공을 상대할 때 가장 까다로운 점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바로 제천대성의 눈, ‘화안금정(火眼金睛)’이었다.
“이걸 어떻게 얻었냐고?”
그래서 유원은 물었다.
만약 전쟁에서 패해 시계태엽을 이용해 과거로 간다면, 손오공이 어떻게 그 눈을 손에 넣었는지를 꼭 알아야 했다.
“조금 특이한 방법이 있었지. 튜토리얼 기억 나냐?”
“몇 번?”
“3번.”
“기억난다.”
“난 그거 실패했어.”
의외의 말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손오공이?
전투에 있어서라면 천부적인 능력을 지닌 손오공이었다. 고작 정수 50개 정도를 못 구해서 그가 튜토리얼에 실패했다는 건 믿기지 않았다.
“뭐,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는데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중요한 건 그다음이었지.”
“그다음?”
“넌 튜토리얼 구역에 찾아온 ‘멸망’ 이 뭐였는지 아냐?”
알 턱이 없었다.
아마 아무도 모를 것이다.
3번 튜토리얼 정도를 실패한 녀석은 여기에 아무도 없었고, 있다고 해도 튜토리얼의 실패는 곧 죽음을 의미했으니까.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유원은 어서 말해 보라는 듯, 말을 아끼고 손오공의 눈을 보았다.
대화가 퍽 즐거운지 손오공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잘 들어. 이 눈은 말이야…….”
* * *
검의 불꽃에 짓눌린 대지가 움푹 아래로 꺼졌다.
수르트라는 구덩이 아래를 바라보았다.
화륵, 화르륵-.
불의 검에 무너진 구덩이는 온통 새빨간 불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저 불길은 자신의 힘이 다하지 않는 이상 결코 꺼지지 않는다.
제아무리 좋은 아이템을 몸에 두르고 있다고 해도 죽거나,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이상하군.
방금 전, 유원의 행동은 공격을 막아 냈다기보다는 일부러 피하지 않고 맞아주었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거대한 불길을 일부러 맞아주다니?
대체 왜?
수르트라는 의문을 가지고 구덩이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화르르-.
새빨간 불길로 이글거리는 구덩이 속.
저벅-.
그 속에서 몸이 거뭇하게 변한 유원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뜨거워 죽는 줄 알았네.”
몸 안에 쌓인 화기를 뱉어 내며, 유원은 비틀거리며 수르트라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유원과 눈이 마주친 수르트라의 눈이 크게 떠졌다.
-네놈 눈이…….
화륵-.
붉게 변한 눈동자.
만물의 모든 것을 통찰하고, 꿰뚫어 보는 눈.
화안금정(火眼金睛)의 첫 번째.
대신(大神) 제천대성.
[히든피스의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원숭이의 눈’이 변화합니다.] [‘화안(火眼)’을 획득하였습니다.]“고맙다, 수르트라.”
그 신의 힘이 지금, 유원의 눈에 깃들었다.
“이제……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