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73
* * *
연못 위에 머무르던 세 개의 시선.
꽤 오래 된 적막 가운데, 작은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졌군요.”
긴 침묵을 깨고 입을 연 건 아폴론이었다.
연못 위에는 아이기스를 바닥에 떨어뜨리는 아테나와 그런 아테나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는 천무진의 모습이 보였다.
싸움은 끝났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이제 말씀하시지 그러십니까. 저희를 왜 부르셨는지.”
“…….”
제우스는 말이 없었다.
가장 두려운 침묵이었다.
표정의 변화조차 없는 제우스는, 늘 가까이 있는 이로 하여금 그를 두렵게 만들었다.
“아버지?”
아르테미스의 부름.
그 순간, 제우스의 고개가 돌아갔다.
“또다시 삼천 년을 봐야겠군.”
“예?”
질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대답이었다.
아폴론은 긴장했다. 그는 당장에라도 자리를 벗어날 준비를 하며 다시 물었다.
“삼천 년이라는 건, 무슨 말입니까?”
“또다시 여러 자식을 낳고, 기르고. 그들이 랭커가 되고…….”
아쉬운 듯 말끝을 흐리는 제우스.
“깎여 나간 올림포스의 힘이 다시 회복될 때까지 걸릴 시간이다.”
그 말에 아폴론은 오싹 소름이 돋았다.
그것은 처음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우리들 역시, 깎아 내실 생각이십니까?”
“너희가 잘 알지 않으냐?”
“필요가 없어져서요?”
“그래.”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는 제우스의 뜻과는 달리 기간토마키아에 참전을 하지 않았다.
그 뒤부터였다.
아폴론 남매가 제우스의 눈 밖에 나게 된 게.
‘왜 하필 지금인가 했더니…….’
아폴론의 시선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전쟁터를 비추고 있던 연못으로 향했다.
‘우리를 묶어 두기 위해서였나.’
하르간과 자신들이 접촉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걸까.
본격적인 올림포스 부수기에 앞서, 두 사람은 저 싸움에 끼어들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제우스는 그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다 어그러졌군.”
제우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지지직-!
아폴론과 아르테미스가 서 있는 주위로 거대한 전격이 뿜어졌다. 잔뜩 화가 난 듯, 제우스의 마력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주위를 감쌌다.
‘도망쳐야 한다.’
확실히 결정을 내렸다.
아폴론의 눈이 힐끗, 위로 향했다.
이럴 때를 대비한 건 아니지만 그는 태양마차를 끌고 온 상태였다.
‘마차를 탈 수만 있다면…….’
제아무리 제우스라 해도, 쉽게 따라오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번쩍-.
하늘 위, 뿌옇게 껴 있던 구름.
그 속에서 환한 빛 무리가 뿜어졌다.
“오랜만의 부자 상봉인데, 벌써 가려니 섭섭하구나.”
후둑, 후두두둑-.
뻥 뚫린 하늘 위로 새까맣게 탄 무언가의 잔해가 떨어져 내린다.
그것을 보는 순간, 아폴론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이 잔해가 무엇의 것인지, 아폴론은 바로 알아차렸다.
‘태양마차가…….’
헤파이스토스가 수 년에 걸쳐 만들어 낸, 탑에서 손꼽히는 이동 수단.
그것이 제우스가 뿜어 낸 힘에 잿가루가 되어 버린 것이다.
“너희에게 한 번만 더 묻겠다.”
저벅-.
제우스가 아폴론 남매를 향해 다가왔다.
“너희는, 어느 쪽이냐?”
* * *
아테나와 헤르메스는 무림의 가장 깊은 감옥에 갇혔다. 마력을 억제하고, 하이랭커도 끊어 낼 수 없는 밧줄로 몸을 묶은 채였다.
천산이 무너졌다.
싸움에서는 승리했지만, 천마신교는 터전을 잃어버렸다.
“완전히 본거지를 옮겨야겠군.”
“어디로 말이지?”
“남궁세가가 있는 합비는 어떤가?”
“아직 무림에서는 천마신교를 두려워하는 자들이 많아. 본거지를 옮기는 건 시기상조일세.”
“그렇다고 여기 계속 있을 수도 없잖은가? 지금은 무림에 협조를 요청해야 할 때야.”
“나도 동감하네. 이렇게 된 거, 이참에…….”
천마신교의 인사들이 천산 인근의 마을이나 간이 막사에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
주제는 두 가지였다.
생포한 아테나와 헤르메스를 비롯한 올림포스 측 랭커들의 처우와 천마신교 본거지의 이주.
둘 모두 중요한 일이라, 회의는 하루 내도록 이어져도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각.
유원은 천마신교로부터 얻은 막사에 누워, 한숨을 쉬고 있었다.
“오래도 걸린다.”
쩍-.
또 하나 늘어나는 금.
알은 꼭 톡 치면 산산조각이 날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런 식으로 부화시킬 거였으면 진작 알을 부수든 부쳐 먹든 했을 테지만.
[부화 중입니다.]지겨운 메시지.
유원은 언제 부화할지 모르는 알을 꺼내 놓고,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부화율이 꽉 찬 덕분인지 보랏빛의 문양은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알의 표면이 보라색으로 꽉 차서 다른 부분이 없어졌다.
‘신기하단 말이지.’
[‘화안’이 내면을 파악합니다.]유원은 혹시나 해서 또다시 화안을 사용해 금이 잔뜩 간 알의 안쪽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보이질 않다니.’
여전히 알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화안을 사용해도 알은 여전히 보라색의 구체로만 보일 뿐이었다.
‘이쪽도 이쪽이지만…….’
유원은 고개를 돌려 맞은편 침상에 앉아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이쪽도 난감하긴 마찬가지군.’
판도라.
그녀는 멍한 눈으로 유원과 마찬가지로 알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감정이라고는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는 표정이었다.
‘먹어치운 건 아우터의 힘뿐. 육체에는 작은 생채기도 나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분명 알에게 먹히는 것 같아 보였는데, 정작 겉으로 보이는 판도라는 아무렇지 않았으니.
알이 먹어치운 건 정말로 딱, 판도라에게 깃들어 있던 ‘아우터’뿐이었다.
‘감정이 없는, 속이 텅 빈 인형.’
그것이 바로 유원이 결론지은 현재 판도라의 상태였다.
주체할 수 없는 거대한 감정의 덩어리를 모두 잡아먹힌 그녀는 말 그대로 텅 빈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 하냐?”
그때, 천을 걷고 막사 안으로 고개를 들이민 하르간이 유원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유원은 고갯짓으로 알을 가리켰다.
“왜? 먹으려고?”
“아니. 곧 깰 것 같아서.”
“아, 혹시 신수냐? 그거?”
호기심이 동하는지 하르간이 눈을 반짝이며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런데 그때.
“으악! 아! 깜짝야!”
유원의 막사 안에 있던 판도라를 발견한 하르간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적이었던 사람이었다.
더욱이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자살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찝찝한 기분이 들었던 만큼, 하르간은 판도라를 보는 게 무서웠다.
“뭐, 뭐, 뭐야? 왜 여기 있어?”
“가라고 해도 안 간다. 말도 안 하고.”
“그럼 쫓아내면 되잖아?”
“나도 그러고 싶다.”
어깨를 으쓱인 유원이 하르간을 보며 물었다.
“근데 넌, 그럴 수 있냐?”
“……아니.”
판도라는 유원의 옆에 붙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손을 잡아끌어도 소용없었고, 스스로 나갈 의지도 없었다.
힘으로 끌어내는 건 불가능했다.
더 이상 성화도 통하지 않았을뿐더러 단순히 힘만 놓고 보면 그녀는 아테나 이상이었다.
‘하데스가 직접 오지 않는 이상, 이쪽 편에 판도라를 끌어 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지.’
그런 이유로 판도라는 유원의 옆에 꼭 붙어 있었다.
사실, 꼭 쫓아낼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정말 유원의 옆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
“아무래도 난 여기 못 있겠다. 간다.”
“왜?”
“너랑 달리, 난 담력이 약해서 말이야. 아직도 속이 좀 그래.”
하르간은 도망치듯 막사를 나갔다.
어차피 들어온다고 해도 내보낼 생각이었으니,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쩍-.
또다시 벌어지는 금.
이제 정말 슬슬 시간이 된 모양이었다.
스르르르-.
유원의 그림자를 통해 사람의 인영이 올라왔다.
랜슬롯의 얼굴을 한 언데드.
“아서.”
아서가 유원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말씀하십시오.
“막사 입구를 지켜라.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지금부터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지금껏 알아 먹어치운 아우터의 힘은 이런 작은 막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한 게 아니었다.
어쩌면 이 안에 누군가 들어와 휘말리게 될지도 모르고, 정말 위험한 괴물이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게 바로 유원이 아서를 불러 막사를 지키게 한 이유였다.
그런데.
-예, 알겠습니…….
스윽-.
아서보다 한 발 앞서, 유원의 말을 듣고 막사 앞에 선 사람이 있었다.
“판도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유원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판도라.
그녀가 막사의 입구를 지키듯 서서, 유원에게 등을 보이고 있었다.
“뭐 하는 거냐?”
“막으라 했어.”
“너한테 한 말이 아닌데.”
“내가 들었어.”
막무가내였다.
나가라고 할 때는 귀가 안 들리나 했는데, 이런 건 또 너무 잘 들어서 탈이었다.
“아, 그래.”
유원은 방금 전의 일을 통해 입 아프게 말해 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굳이 사양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판도라가 지키고 서 있으면 상대가 천마건, 아테나건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을 테니까.
‘뭐가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판도라에게 생긴 변화.
그게 대체 어떤 것인지는 나중에나 알아볼 일이었다.
‘지금은 이쪽이 먼저다.’
쩍, 쩌저적-.
알의 보라색 표면에 금이 늘어난다.
그렇게 늘어나던 금 사이사이로 보라색의 빛이 새어 나오며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역시.’
오로치의 머리와 랜슬롯, 판도라.
아우터의 잔재를 잡아먹고 부화율을 높인 녀석이었다.
당연히 그 정체 역시 아우터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걸로 그 추측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이제 문제는 하나.
아우터 갓.
외신(外神)이라 불리는 그들 가운데, 이 안에 있는 녀석이 어떤 녀석인가 하는 것이다.
쩌, 쩌저저적-.
점점 빠르게 갈라지는 금.
그것이 알 전체로 퍼지며 표면이 깨어지는 건, 오랫동안 기다려 온 시간에 비해 정말 순식간이었다.
깡-!
화아아악-!
알 속에서 뿜어지는 빛 무리.
유원은 그것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의 알’이 부화합니다.] [‘……?’와의 계약을 시작합니다.]“……뭐?”
부화는 알겠는데 계약이라니.
이건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빛 무리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뿜어지는 기운도 점점 강해져, 가까이서 버티고 서 있기가 어려운 지경이 되어 갔다.
어느새 판도라는 몸을 돌려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츠릇, 츠츠-.
깨어진 알에서 뿜어진 빛 무리와 기운이 유원을 감싸며, 몸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탑 밖에 존재하는, 그 불가해(不可解)의 힘.
그 힘을 받아들이는 순간, 유원은 깨달았다.
‘이게 계약이라는 건가?’
이 힘은 본래 알이 지니고 있던 것.
그 힘을 나눠가지는, 아니 함께 공유하는 것이 바로 계약의 과정이었다.
쏴아아-.
알 속에서 뿜어져 나오던 힘은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었다.
또한, 빛 역시 서서히 약해져 그 안쪽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났다.
그리고 그때.
[‘……?’가 부화를 성공합니다.] [‘……?’의 성장률은 0%입니다.] [‘……?’의 이름을 지어 주십시오.] [‘……?’의 레벨은 1입니다.]“레벨?”
황당한 메시지가 유원의 앞에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