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77
“포세이돈을 데리고 가십시오.”
하데스가 유원을 처음 만났던 그날.
헤라클레스를 포섭할 수 있다는 말 이후, 유원은 이 싸움의 큰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녀석은 지금 아스가르드의 감옥에 있다.”
“압니다.”
“알면서도 하는 말이라고?”
“딜을 해 보십시오. 제우스를 치는 데 필요하다고. 그쪽에서도 제우스는 눈엣가시일 테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스가르드와 거인족의 사이를 틀기 위해 올림포스가 한 짓을 생각해 보면, 아스가르드가 올림포스를 견제하고 있을 건 당연했다.
다만 전면전으로 번지기보단 내부에서 분열하는 걸 기다리고 있을 뿐.
“포세이돈을 풀어 주면 삼신의 반목이 더욱 심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포세이돈과 제우스의 대립도 이어질 겁니다. 아스가르드에서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다시 힘을 모아 자신들을 치려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헤라클레스가 돌아선 게 확인되면, 그런 생각은 결코 하지 못할 겁니다.”
하데스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정말 올림포스의 내전이 심각해지면, 그런 상황에서 정말 포세이돈이 필요한 상황이 온다면.
아스가르드에서 포세이돈을 풀어 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걸 위해서는 우선, 헤라클레스를 포섭하는 게 먼저다.”
“알고 있습니다.”
“자신 있나?”
“있습니다.”
너무 단호한 대답이라 의심하기도 민망한 수준.
이야기를 나눈 하데스는 결국, 그간 자신이 그려 두었던 그림을 지우고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어떤 그림을 그리던, 헤라클레스와 포세이돈의 합류만큼 예쁜 그림은 그릴 수 없을 테니까.
‘도박이었는데 결국…….’
하데스는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질 않았다.
‘진짜 이렇게 됐군.’
아래쪽에서는 헤라클레스가 제우스의 군대를.
그리고 위쪽에서는 삼신 중 두 명이 제우스를 견제하고 있다.
이 모든 게.
그래.
모든 게…….
‘그 녀석이 만든 판인가.’
대체 뭘까.
이젠 소름조차 돋았다.
헤라클레스도, 자신도, 포세이돈도.
그리고 눈앞에 있는 제우스마저도.
모두 한 사람의 장기짝처럼, 척척 빈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의심하는 단계는 끝났다.’
애초에 유원이 헤라클레스를 포섭한 순간부터 그는 유원을 믿기로 마음먹었다.
여기까지 왔다.
이제 이 싸움은 그의 손에 달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그림의 마무리는 뭐지?’
콰릉-!
쏴아아아, 펑-!
눈앞에서 터지는 전격과 하늘 위에 흐르는 물결.
“뭐 하냐! 안 도울 셈이냐!”
포세이돈의 외침에 잠시 멈칫했던 하데스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하데스.
올림포스의 삼신 중 한 명이자, 61위의 랭킹을 기록하고 있는 하이랭커.
포세이돈.
해신(海神)이라는 칭호와 함께 72위의 랭킹을 기록하고 있는 하이랭커.
두 사람 모두 100위권 내의 최상위 하이랭커였다.
개인의 힘으로 하나의 길드를 상대할 수 있으며, 백 명이 넘는 랭커와도 대적할 수 있는 존재들.
하지만.
상대는 그런 두 사람보다 훨씬 높은 랭킹을 지닌 자였다.
콰릉-!
“커억!”
쾅-!
포세이돈의 몸이 바닥에 내려와 꽂혔다.
몸에는 전격에 의한 화상이 가득하고, 곳곳이 터져 나가 피가 흐르는 상태.
포세이돈은 황급히 자세를 바로 잡고 삼지창을 움직였다.
쏴아아아-.
허공에 흐르던 거대한 물결이 창끝을 따라 움직인다.
수분이 가득 찬 세상에서 포세이돈은 그것을 하나의 형태로 응축시켰다.
수백 개의 물의 창들.
창끝을 따라 그것은 제우스를 향해 쏘아졌다.
파직, 파지지지지-!
제우스의 앞에 솟아난 전격의 장막이 그것을 막아 냈다.
그것을 본 포세이돈은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 내며 짜증스레 중얼거렸다.
“재수 없는 놈.”
“형님과 저는 상극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불과 얼마 전.
포세이돈은 제우스와의 싸움에서 패배했고, 아스가르드의 감옥에 갇혔다.
그 싸움에서 포세이돈이 확인한 건 압도적인 실력 차이였다.
도무지 닿을 수 없는 하늘.
애초에 물 속성의 마나를 다루는 포세이돈과 전격 속성을 다루는 제우스는 상성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렇다면…….”
스으으-.
제우스의 코앞으로 손바닥 하나가 뻗어 나왔다.
“나라면 어떻겠느냐?”
콱-.
포세이돈보다 높은 랭킹을 지닌 삼신.
하데스의 손이 제우스의 목을 움켜잡았다.
포세이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방금 전의 공격은 애초에 지금 같은 상황을 만들어 내기 위한 시간벌이였다.
스으으으-.
어둠 속성의 마력이 제우스의 머리를 뒤덮는다. 피부가 녹고, 뼈가 부식되는 노화의 힘이었다.
승부가 났다.
두 사람의 머릿속에 순간 같은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수는 좋았지만…….”
콱-.
제우스는 자신의 목을 붙잡은 하데스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역시, 닿지 않습니다.”
“……!”
콰릉-!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 한 발.
그것을 피해 하데스는 다시금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지만, 근소한 차이로 늦은 후였다.
“큭…….”
하데스는 포세이돈과 마찬가지로 땅 위로 추락했다.
충격에 무릎을 꿇고 앉은 하데스는 충격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먹히지 않았다.’
제우스의 머리에 난 상처는 조금 긁힌 정도.
그것이 방금 전, 포세이돈과 합작으로 만들어 낸 성과였다.
반면 자신들 둘은 벼락에 얻어맞아 하늘에서 땅으로 추락한 상태였고.
“그간 수련을 게을리하셨나 봅니다.”
제우스의 몸이 부유하여 아래로 내려왔다.
올림포스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올림포스의 모두가 등을 돌린다 해도, 제우스 하나를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아니.
그것은 비단 올림포스뿐만이 아니라 다른 거대 길드에서도 같은 의견이었다.
한 자릿수 하이랭커의 힘은 그야말로 격이 달랐으니까.
물론.
같은 삼신의 반열에 들어 있는 포세이돈과 하데스는 그 말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나 차이가 난다고?’
다른 그림은 필요하지 않다고 여겼다.
어쩌면 김유원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 싸움을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그것은 삼신으로서 자존심의 문제였으니까.
“신전에 처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은 놈이, 수련이 어째?”
머리에 힘줄이 돋아난 포세이돈이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실제로도 제우스는 기간토마키아 이후 천 년 동안, 대외적인 활동을 모두 끊은 상태.
그런 그가 수련을 논한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었다.
“아무것도라…….”
하지만.
“그렇게 보였나 봅니다.”
그 말을 듣는 제우스는 실소를 지어 보였다.
“정작 현실에 안주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당신들이면서.”
“뭐?”
“더 위로 올라갈 생각, 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더 위.
아직도 제우스는 탑의 꼭대기가 아닌, 그보다 높은 곳을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처음, 제우스가 그들 형제와 함께 랭커가 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난 이 위로 올라갈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진짜 이 탑의 왕이 될 수 있겠지요.”
크나큰 포부였다.
이 광활한 탑에서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겠다는 것이니까.
제우스는 단지, 올림포스 하나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다.
“넌 이미 올림포스의 왕이다. 그 자리에 오른 걸로는 만족할 수 없는 거냐?”
“위를 바라보지 않는 삶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탑에서는 더더욱 그렇지요.”
하데스는 떠올렸다.
지금과 같은 대화를 나눈 건 처음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위를 원했고, 누군가는 안주를 원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제우스와 포세이돈, 하데스.
세 사람의 사이가 갈라지기 시작한 것이.
“이래서 전, 당신들을 경멸합니다.”
더 이상 제우스는 두 사람을 형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들을 향한 제우스의 눈빛은 여전히 미동조차 없었다. 이미 경멸과 분노 같은 감정을 내비추기에는 너무 확고히 자리 잡은 생각이었다.
화를 낼 것도, 따져 물을 것도 없었다.
이미 자신들은 다른 길을 가기 시작한 지 오래이니.
“혹시 2차 기간토마키아가 그 발판인 거냐?”
제우스와 함께 기간토마키아와 라그나로크를 기획한 포세이돈은 제우스의 뜻을 얼핏 깨달았다.
그는 제우스와 하데스, 두 사람의 가운데에 있는 성향이었다. 목표는 전쟁을 통한 올림포스의 확장이었지만, 어쩌면 그것이 제우스가 말하는 ‘위’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해도, 믿지 않으실 거잖습니까?”
제우스는 더 이상 두 사람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았다.
시스템의 축복을 받아 랭커가 되고,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살아온 존재들.
그들을 설득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음 층, 그런 건 없다. 허무맹랑한 소리야.”
더 이상 탑의 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 탑의 정상을 본 수많은 랭커들의 공통된 생각이었으며, 그건 하데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니, 있습니다.”
그 대답은 제우스가 아닌, 전혀 다른 방향에서 들려왔다.
“위는 분명히.”
하데스의 고개가 돌아갔다.
제우스는 이미 꽤 전부터 눈치를 채고 있었던지, 이미 그쪽을 보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
유원이 단풍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수고했다.”
“아밧, 바아-.”
팔을 들어 올려 대답하는 녀석.
대충 반응을 보니 ‘뭐 이런 걸 가지고’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유원을 발견한 포세이돈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 녀석이…….”
바로 김유원.
그리 든든한 지원군은 아니지만, 이야기를 들어 보면 범상치 않은 녀석임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애초에 포세이돈이 이 지경이 된 데에는 유원의 몫도 있었다.
원탁의 치부를 드러낸 것도, 제우스의 벼락을 막아 낸 것도 모두 유원이었으니까.
더군다나 그는, 포세이돈이 원하던 바다의 돌을 빼앗아 간 당사자이기도 했다.
뿌득-.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아군이다.
당장 눈앞에 있는 제우스만 하더라도 감당키 어려운데, 또다시 이쪽에서 분열이 나서 좋을 건 없었다.
‘일단은 제우스가 먼저다.’
포세이돈은 그렇게 다짐하며 속으로 분을 삼켰다.
반면.
제우스는 이 싸움이 벌어지고 처음,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위가 있다라…….”
제우스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의 귀에 방금 전, 유원의 말은 단순한 허세 같은 것으로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뭔가 알고 있는 거냐?”
“아마 당신이 아는 것보다 더.”
그리 성의 있는 답변은 아니었다.
애초에 유원은 제우스의 눈을 보고 대답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다행히 늦진 않았다.’
다섯 번째 신전.
그것은 회귀 이전, 헤라클레스가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을 때와 같은 숫자였다.
그리고 무너져 가는 올림포스를 두고 보지 못한 제우스가 직접 움직였을 시점이기도 했다.
사람이 달라지지 않는 한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유원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
파직, 파지직-.
제우스의 몸에 흐르는 매서운 전류.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몸이 까맣게 타 버릴 것만 같았다.
그는 명실상부, 이 탑의 최강자라 할 수 있는 10위권 이내의 하이랭커였다.
‘드디어 괴물을 만났군.’
처음으로 긴장해야 할 상대.
다행히 하데스와 포세이돈은 도착해 있었다.
“같이하는 첫 싸움이다.”
유원은 어깨 위에 올라가 있는 단풍을 향해 말했다.
“배탈 안 나게 조심해라.”
쩌억-.
제우스를 바라보는 유원의 속에서, 포식자가 입을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