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78
* * *
어느 날, 제우스가 판도라를 불렀다.
“네 선물이다.”
그것은 상자였다.
랭커가 된 판도라에게, 올림포스의 삼신은 각자 선물을 주었다.
판도라는 기뻐하며 그 선물을 받았다.
그런데 제우스의 선물은 조금 특이했다.
“이 상자를 열어선 안 된다. 절대로.”
선물을 주면서 열어서는 안 되다니.
판도라는 그것을 이상하다 여겼다. 하지만 올림포스의 왕인 제우스의 명령을 거역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수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제우스의 말대로 상자를 열지 않았다.
그것을 열게 된 건 아주 급한 상황에서였다.
살아남기 위해.
그녀는 오랫동안 인벤토리 속에 고이 모셔 두었던 상자를 열고 말았다.
그리고 그 직후.
그녀는 세상의 모든 불행을 떠안게 되었다.
* * *
한 사람의 합류로 바뀔 만큼, 전장의 상황을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이미 꽤 피를 본 하데스와 포세이돈.
삼신 중 두 명이 손을 잡았다 해도 제우스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더군다나 유원은 자신의 실력이 아직 세 사람에게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가 할 일은 정면 승부가 아니다.’
그것은 유원의 싸움 방식과는 맞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지금부터 입을 옷은, 지금까지 입어 온 옷과는 전혀 다른 옷이라는 걸.
“말해라.”
제우스의 시선이 유원에게 고정되었다.
“넌, 이 위에 대해 뭘 알고 있지?”
그 순간.
스윽-.
유원의 시선이 하데스와 포세이돈을 훑었다.
잠깐의 눈치.
그리고 그 눈치를 못 알아차릴 만큼, 둘은 둔하지 않았다.
쏴아아아-.
스아아앗-.
거대한 해일과 어둠이 제우스를 덮쳐 온다. 가만히 서서 유원을 노려보고 있던 제우스는 곧장 팔을 들어 올려 하늘의 구름을 겨눴다.
“떨어져라.”
번쩍-!
콰르르릉-!
구름 아래로 떨어지는 수십 조각의 벼락들.
하나하나의 위력은 약할지언정, 숫자가 숫자인 만큼 그것은 하데스와 포세이돈의 힘을 무력화시키기에 충분했다.
두 명을 갈라놓은 제우스.
이제 무대는 잠시 동안 유원과 제우스, 두 사람만의 것이 되었다.
“말해라.”
낮고 무거운 목소리였다.
속에 담겨져 있는 은은한 위압감은, 가히 한 길드의 수장이자 왕(王)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유원은 제우스를 마주 보았다.
그의 목소리에 맞춰, 이 세계의 마나가 움직이고 있다.
“네가 아는 것과 다르지 않다.”
유원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단지, 넌 그들을 통해 알게 된 거지만…….”
파지지직-!
하데스의 어둠이 제우스가 쏟아 낸 벼락을 집어삼켰다.
단 둘만의 시간은 이제 그리 길지 않았다.
“난 나 스스로 직접 알아낸 게 다를 뿐이지.”
“도달해 보았나?”
“그래.”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아직 랭커조차 되지 못한 유원이었다.
당연히 랭커들이 도달한 최상층보다 더 위에 있다는, 제우스가 바라는 그곳에 도달하기에는 아직 시간도 실력도 부족했다.
하지만.
유원을 바라보는 제우스는 그 말이 허풍이나 거짓 따위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그랬군.”
제우스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이제야 이해가 됐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던 건지.
대체 왜, 저 작은 플레이어 한 명에 의해 모든 게 틀어졌던 건지.
유원은 단지 뛰어난 재능을 지닌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자신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 봤던 존재였다.
“지금껏 무시했던 걸 사과하지.”
파지지직-!
제우스의 몸에 둘러진 황금 갑옷 위로, 전격의 갑주가 씌워졌다.
“이제는 너를 내 적수라 생각하고 상대하마.”
번쩍-!
제우스의 손에서 쏟아진 벼락이 유원을 향해 날아갔다.
빛과 같은 속도로 날아오는 벼락.
캐멀롯 위로 떨어졌던 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웬만한 하이랭커쯤은 잿더미로 만들어 낼 만한 위력을 지닌 힘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콰지지지직-!
유원과 제우스의 사이로,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츠츠, 츠츠츠츳-.
두 팔로 벼락을 막아 내고, 텅 빈 눈동자를 들어 올리는 여인.
“제우스.”
눈빛과는 달리 오뉴월처럼 시리디시린 목소리였다.
판도라는 제우스를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당신, 나한테 뭐 했어?”
그녀는 똑똑히 기억했다.
자신에게 상자를 건네던 그의 모습을.
꼭, 반드시 열어 달라는 눈과 목소리로 ‘열면 안 된다’고 말하던 그를.
판도라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그 상자를 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뭐, 했어?”
하나하나 씹어 뱉듯, 그녀는 제우스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제우스는 그녀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도 네가 준비한 패인가?”
“아쉽게도, 그건 아니야.”
분명 판도라는 아테나 이상 가는 수준의 랭커였다.
비록 지금은 활동을 하지 않은 지 오래 되어 제대로 랭킹이 매겨져 있지 않지만, 랭킹만 놓고 보면 삼신의 바로 아래쪽일 게 분명했다.
그녀라면 제우스를 꺾을 수는 없을지언정 벼락을 버텨 낼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그녀는 유원의 계획에 없던 존재였다.
“그녀는 네가 만들어 낸 업보다.”
“……그렇군.”
방금 전의 말대로 제우스는 지금 이 순간, 유원을 경계하고 있었다.
물론, 경계하는 건 그가 가진 실력이 아니었다.
그가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그려 두었던 ‘그림’이었지.
“계획에 없던 거라면, 두려워할 필요 없지.”
그리고 그 그림 바깥의 것이라면 상관없었다.
판도라가 몇 명이든 간에 제우스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자신은, 오만 따위가 아닌 분명한 사실이었으니까.
그렇게 제우스가 다음 벼락을 준비하던 그 순간.
쏴아아아-!
그가 만들어 놓은 경계선을 뚫고 하데스와 포세이돈이 안으로 들어왔다.
“결국 오셨군.”
제우스가 두 사람을 돌아봤다.
“네가 준비한 패들이.”
이제 제우스의 눈에는 그들이 더 이상 형제로 보이지 않았다.
이미 그렇게 된 지 오래였고, 그렇기에 그저 지나가는 사람 한 명, 두 명 정도로만 보았다.
하지만 이 순간, 제우스는 그런 둘이 달라져 보였다.
김유원이 준비한 패.
자신보다 더 높은 곳에 올랐던 그가, 아래로 추락해 준비해 둔 패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판도라인가.”
벼락을 뚫고 들어온 하데스는 유원과 제우스를 번갈아보았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유원이 버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사이에 판도라가 끼어 있었다.
판도라라면 제우스의 벼락을 버텨낼 수 있는 올림포스 내의 몇 안 되는 존재.
그녀가 유원을 돕고 있다면 이해 못할 상황은 아니었다.
한데…….
‘그런데 판도라는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 왜 저 녀석을 돕고 있는 거고?’
도통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판도라의 실력이야 인정하지만 자신들조차 쉽게 뚫고 들어오지 못한 이 장벽을 그녀가 먼저 뚫어 냈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건 제우스 역시 마찬가지.
“그럼 나도 이제…….”
파짓-.
제우스의 몸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판도라의 눈이 돌아갔다. 다음 순간, 제우스의 주먹이 전격을 품고 유원의 머리를 향해 뻗어 갔다.
콰아앙-!
튕겨져 날아가는 판도라의 몸.
그녀는 본능적으로 유원을 지키고 있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싸워 보도록 하지.”
자신들이 아닌 유원을 노린다.
그 사실을 깨달은 하데스는 이 싸움의 룰을 깨달았다.
“포세이돈!”
“알아, 안다고!”
제우스가 노리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이 전장의 킹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전장의 킹은 바로 유원이 되어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스으으-.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추는 하데스.
‘그래도 일단, 저 녀석 뜻대로 둘 수는 없지.’
포세이돈은 사방의 수분을 모두 끌어당겨 또 다른 파도를 만들었다.
튕겨져 날아간 판도라는 어느새 제우스의 한 수를 더 막아 내고, 한쪽 팔이 부러진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지옥’이 소환됩니다.]파스스스-.
유원의 퀴네에를 통해, 주위의 색이 바뀌기 시작했다.
까맣게 변한 사방.
그와 동시에 하데스의 마력이 돌변했다.
‘이건…….’
그게 끝이 아니었다.
쏴아아아-.
그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대량의 물.
향긋한 짠 내음과 함께, 포세이돈의 몸을 감싸는 익숙한 마력.
[‘바다’가 소환됩니다.]그 순간, 포세이돈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바다의 돌…….”
흑신석과 해신석.
두 개의 아이템이 지니고 있던, 각기 다른 종류의 힘이 이 장소에 발현되었다.
두 사람이 최대한의 능력치를 발휘해 싸울 수 있도록 환경을 바꾼다.
그것이 이 싸움에서 유원이 첫 번째로 준비한 수였다.
‘상어는 물속에서 비로소 힘을 발휘하는 법이지.’
쏴아아아-.
막대한 마력이 퀴네에와 트라이앵글을 통해 소모되었다.
그것은 본래 유원의 힘이 되어야 할 환경이었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이 두 가지 힘은 본래 삼신이었던 포세이돈과 하데스의 것.
두 사람의 랭킹은 흑신석과 해신석을 얻은 기점으로 보다 높게 뛰어올랐다.
그 증거일까.
유원을 바라보는 포세이돈의 눈은 탐욕으로 번들거렸고, 흑신석의 존재를 모르는 하데스는 의아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삼신 정도 되는 하이랭커인 두 사람은 이 상황에서 어영부영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파스스슷-!
지옥의 힘을 빌린 하데스의 어둠이 제우스의 빛을 집어삼킨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상대조차 되지 않던 힘이, 이제는 어느 정도 힘겨루기가 되고 있었다.
제우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포세이돈 역시 마찬가지였다.
쏴아아아-.
지금까지 본 적 없던, 거대한 해일.
삼지창의 끝으로 그것을 조종한, 포세이돈의 해일이 제우스의 몸을 집어삼켰다.
퍼어엉-!
쏟아지는 바닷물.
콰지지지-!
벼락을 쥔 제우스의 손이 그것을 홍해처럼 반으로 갈랐다. 하지만 해일은 하나가 아니었다.
퍼엉-!
순식간에 그 위를 다시 덮치는 아까보다 더 큰 해일.
그렇게 포세이돈의 파도가 제우스를 집어삼키는 순간, 하데스가 유원에게 다가왔다.
“뭘 어떻게 한 거지?”
“환경을 조금 바꿨습니다.”
“뭘, 어떻게?”
“알려 주면, 빼앗으실 겁니까?”
유원의 말에 하데스는 저 멀리서 유원을 바라보는 포세이돈의 눈빛을 발견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바다의 돌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다니.
이미 아스가르드의 죄인이 된 마당에 그것을 얻는다 해도 달라질 건 없을 텐데 말이다.
“난 저 녀석처럼 되고 싶지는 않군.”
탐이 나지 않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데스는 포세이돈이 왜 저렇게 됐는지 알고 있었고, 이 대답 여하에 따라 자신도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눈앞에 있는 플레이어는 이미 그런 존재였다.
“현명합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하데스는 어느새 이 판을 주도하는 사람을 유원이라 인정하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껏 이 싸움을 만들고 그것을 주도하는 사람이 유원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으니.
“이걸로 승산이 0에서 1정도로는 올라갔을 겁니다.”
“1할?”
“예.”
“……너무 낮군.”
아직까지도 희박한 가능성이었다.
하데스는 그 말을 의심했지만 적어도 유원은 확신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한 자릿수의 랭커가 모두 모이면 이 탑을 멸망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그만큼 제우스의 전력은 절대적이라고 봐야 한다.
거기다 제우스에게는 아직, 보이지 않은 패가 한두 개 정도는 더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고려해서 1이라는 거긴 하지만…….’
그건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보이지 않는 부분은 내 몫이다.’
유원은 기다리고 있었다.
천신(天神) 제우스.
올림포스의 하늘.
그가 궁지에 몰려, 숨겨 두고 있던 것을 모두 드러내는 그 순간을.
‘그러니 얼른 꺼내 봐라, 제우스.’
퍼엉-!
솟아오른 바다.
하늘 위를 관통하는 거대한 황금빛 전격의 기둥.
저벅-.
제우스가 포세이돈의 바닷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이제부터가 진짜 삼신(三神)의 싸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