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
* * *
수많은 시계태엽 사이에 파묻혔던 유원은 서서히 눈을 떴다.
‘몸이 과거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시간 자체를 역행시킨 건가.’
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육체를 지탱하던 스탯도, 마력도, 모든 게 사라져 있었다.
조금 아쉬웠다.
가지고 있는 힘 그대로 과거로 돌아왔다면 일이 한결 편했을 텐데.
‘하긴, 그건 훨씬 더 어려웠겠지.’
영혼 자체를 과거로 보내는 것과 육체까지 함께 과거로 보내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육체를 과거로 보내면 서로 같은 인물이 동시간대에 존재하는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시간선을 넘어 과거로 보내야 하는 힘도 훨씬 커진다.
아마 거기까지는 크로노스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결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건데…….’
과거로 돌아온 기분은 길게 잠에 들었다 깨어난 것과 비슷했다. 시간이 얼마나 뒤로 돌아갔을지 알기 위해 유원은 먼저 주위를 둘러보았다.
퍼억-!
얼굴에 둔탁한 충격이 느껴졌다.
돌아오자마자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어쭈? 버텨?”
흐릿해졌던 시야가 돌아오며, 눈앞에 있는 남자가 보였다.
꽤 다부진 체격에 긴 코, 짐짓 무서워 보이려 노력한 얼굴.
‘뭐야, 이건?’
꽤 오래전 일이라 바로 기억은 나지 않았다.
그러다 유원은 남자가 입고 있는 옷을 발견했다.
‘아, 맞다.’
청솔대학교.
남자가 입고 있던 옷은 유원이 다니던 대학교의 과잠바였다.
워낙 오래 된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는데, 과잠바를 보니 자신이 대학생이었다는 사실이 새록새록 떠올랐던 것이다.
유원이 있는 장소는 대학교 내의 한 체육관이었다.
‘이 녀석 이름이 뭐더라…….’
지금 이 순간도 어렴풋이 기억이 날 것 같았다.
쉬익-.
“어?”
주먹이 빗나가자 남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유원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중얼거렸다.
“내일이었던가, 오늘이었던가.”
“뭐?”
“오늘이 며칠이지? 빨리 대답하면 아까 한 대 맞은 건 잊어 주고. 순 물주먹이라 별로 아프지도 않았으니.”
남자의 표정이 한순간에 사정없이 구겨졌다. 아마 자신을 놀리는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 새끼가 지금…… 미쳤어? 뭐라 지껄여? 게다가 반말…….”
쉬익-.
쩌억-!
남자의 눈앞이 핑 돌았다.
체육관의 바닥과 천장이 물감처럼 한데 뒤섞여 보이는 걸 마지막으로, 남자는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너 아니어도 뭐, 폰이 다 알려 주겠지.”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주머니에 넣어 둔 스마트폰의 감촉이 느껴졌으니, 그걸 통해 알아보면 될 일이었다.
스마트폰으로 날짜를 확인한 유원은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학교도 쉴 텐데. 할 짓이 그렇게 없나.”
부재중 전화 기록에 찍혀 있는 남자의 이름이 보였다.
기억났다.
김명훈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
한 학년 위의 선배로, 사회체육과 내에서도 꽤 이름난 꼴통이었다.
‘난 이유도 모르고 여기서 맞고 있었고.’
정말 이유는 모른다.
학기도 끝난 마당에 유원은 갑자기 불려 와, 김명훈에게 두들겨 맞았다.
이유는 스스로 생각해 보라면서.
“너도 고생 좀 해라.”
날짜는 2019년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리고 유원이 기억하는 12월 31일은 처음 튜토리얼이 시작되던 바로 그날이었다.
‘딱 맞게 왔군.’
날짜는 적당했다.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시기.
우연인지 아니면 크로노스가 시간을 따로 설정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꽤 마음에 들었다.
시간은 오후 3시였다.
‘자정까지 남은 시간은 대충 9시간.’
준비를 갖추고 장소를 선정하기에는 꽤 빠듯한 시간이었다.
“바쁘겠네, 오늘부터.”
* * *
김명훈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건 저녁 무렵이었다.
불이 다 꺼져, 어두워진 체육관에서 김명훈을 깨운 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스마트폰의 진동이었다.
‘아, 맞다.’
약속이 있었다.
오후 7시.
저녁 약속 겸, 친구들과의 술자리 약속이었다.
“시이발…….”
자신이 왜 기절했는지를 떠올린 김명훈은 짜증이 가득한 욕설을 중얼거렸다.
후배 교육 도중에 얻어맞고 기절이나 하다니.
어디 가서 쪽팔려서 말도 못할 일이었다.
‘조만간 다시 제대로 교육시킨다, 그 새끼.’
잘못 들어온 럭키 펀치 한 대.
김명훈은 그렇게 생각했다.
나름대로 싸움이라면 지역에서 알아줄 만큼 했고, 김유원은 후배들 중에서 체격도 작은 편에다 만만한 녀석이었으니까.
“어, 전화했냐? 어, 그래. 교육 좀 하느라. 어디?”
급히 짐을 챙긴 김명훈은 택시를 잡아 홍대로 향했다.
코에서 흐른 코피 자국을 급하게 지우고,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자 금세 멀끔해졌다.
12월 31일 목요일, 게다가 다음 날부터 3일 동안 황금연휴라 홍대에는 사람이 넘쳐 났다.
“사람 한 번 더럽게 많네.”
“야, 여기야 여기!”
“늦었다, 벌금 있어!”
이미 친구들은 김명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18학번 동기들.
이제 곧 군대에 갈 녀석들이었다.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됐냐?”
“한 시간 늦었어. 오만 원이다.”
“지랄 마.”
자리에 도착한 김명훈은 먼저 술부터 받았다.
한 시간째 마시고 있다더니, 이미 한 명은 꽤 얼굴이 벌겋게 변해 있었다.
“뭐야? 이 새끼 왜 이렇게 저기압이야?”
“스트레스 풀고 온 거 아니었냐?”
“아, 몰라. 한 잔 더 주기나 해.”
일단 조금 취해야 할 것 같았다.
김명훈의 말에 친구는 맥주와 소주를 섞어 한 잔을 더 타 주었다. 분위기를 전환시킬 생각이었는지, 친구는 술을 건네며 물었다.
“김유원은? 어떻게 됐냐?”
순간, 술을 받아 입으로 가져가던 김명훈의 손이 멈칫했다.
아주 잠깐 고민하던 김명훈은 픽 웃으며 대답했다.
“죽여 놨지. 병원은 갔으려나 모르겠다.”
“야야, 적당히 해라. 그러다 애 자살한다.”
“뭐 어때? 그 새끼 부모도 없다며? 뒤탈 없는 거 아냐?”
“하긴, 뭐. 자살이 뭐 우리 책임인가. 몇 대 때렸다고 뒤지면 그건 그 새끼 책임이지.”
친구들의 호응에 김명훈은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분위기는 금방 시끌벅적해졌다. 낮에 있었던 기분 나쁜 일은 금방 잊혔다.
‘어차피 곧 다시 만나서 뒤지게 패면 되니까.’
그렇게만 되면 이번 일은 없던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1차, 2차.
소맥과 맥주에 이어, 3차로는 비싼 양주를 먹기로 마음먹었다.
“사람 드럽게 많네.”
“한 사흘 쉬잖아.”
“지금 몇 시냐?”
“11시 50분.”
“이제 곧 20년이네.”
차가운 바람을 맞다 보니 조금씩 술이 깨는 기분이었다. 몽롱하던 정신이 조금씩 살아날 즈음, 김명훈은 다 태운 담배를 바닥에 툭 떨어뜨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야, 가자. 술 깬다, 아깝게.”
“야, 저거 김유원 아니냐?”
“어디?”
“진짜네?”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김명훈의 몸이 굳어졌다.
김명훈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고개를 돌렸다.
‘저 새끼가 여기 왜?’
진짜였다.
사람들 사이 한복판, 유원은 캐리어 하나를 손에 들고 서 있었다.
우두커니 서 있는 유원을 피해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움직이지 않는 걸 보니 누굴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짜증 나게, 진짜…….’
재수가 없어도 한참 없었다.
하필이면 제대로 손을 봐 주기도 전에 여기서 김유원을 마주치다니.
“멀쩡해 보이는데?”
“그러게.”
“누구 기다리나? 옆에 캐리어는 뭐야?”
“인사나 하자.”
“인사는 무슨. 또 뭐 하려고?”
일행은 이미 유원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넌 뒤졌다, 진짜.’
낮에 있던 일을 떠올린 김명훈은 유원을 향해 이를 갈았다.
그는 이렇게 된 거, 친구들에게 조금 쪽이 팔리더라도 유원을 확실하게 밟아 둘 생각이었다.
“야, 김유원!”
김명훈은 앞장서 유원에게 다가갔다.
양 옆으로는 김명훈까지 모두 여섯 명.
쪽수가 앞서면 어깨가 펴지고 무서울 게 없어지는 법이었다. 김명훈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물었다.
“여긴 무슨 일이냐?”
여섯 명이서 한 명을 둘러쌌다.
험악한 분위기에 거리에 한가득 있던 사람들이 비켜섰다. 금방이라도 싸움이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유원은 김명훈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손목에 찬 전자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곧 12시다.”
[11 : 57 : 12]시간을 확인한 유원은 손목시계를 벗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러니까 남은 3분을 즐겨.”
툭-.
지이익-.
유원은 가지고 온 큼지막한 캐리어를 열었다.
주섬주섬, 그 안에 있는 물건을 꺼내며 유원이 말을 이었다.
“그 뒤는 지옥이니까.”
저들은 모른다.
이제부터 벌어지게 될 일들, 우리들이 살아가게 될 세계가 어떤 것들인지.
그렇기에 지금부터 있을 3분이 얼마나 귀하고 달콤한 시간인지도 모를 것이다.
“뭐?”
“새끼가, 무슨 이상한 소릴…….”
위협적으로 유원을 향해 다가가던 김명훈은 화들짝 놀라며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유원이 캐리어에서 꺼낸 물건 때문이었다.
“너, 너 이 시발…… 미, 미쳤어?”
캐리어 밖으로 보인 물건들은 하나같이 위험해 보이는 무기들이었다.
사시미 칼과 맥가이버, 캠핑용 정글도와 도끼…….
그리고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를 가방 하나.
그중, 유원은 허리춤에 맥가이버와 도끼를 차고 사시미 칼을 쥐었다.
“야, 어, 얼른 사과해!”
“애, 애를 얼마나 때렸으면 이러냐?”
“맞아, 인마. 너, 네가 잘못했네!”
“유원이 너, 너도 이러는 거 아니야!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온갖 종류의 무기들에 유원을 중심으로 큰 원이 생겨났다.
주위가 술렁거렸다. 손에 있는 사시미 칼이 무서웠던 건지 김명훈은 무서워 다가오지 못했다. 지나가던 누군가는 경찰에 전화를 걸기도 했다.
‘58분.’
시간이 길게 남지 않았다.
유원은 캐리어에서 꺼낸 가방을 어깨에 메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은 충분하다.’
홍대.
유원이 기억하는, 서울에서 가장 유동 인구가 많은 장소 중 하나였다.
‘예전에는 안양이었지.’
유원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멈춰 있었다.
주위는 시끌벅적했다. 아무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유원이 들고 있는 무기들을 보며 소란을 떨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그 소란 속.
유원은 바닥에 떨어뜨린 시계를 확인했다.
“시작이군.”
지이잉-!
귓가에 이명이 울렸다.
그것은 단순히 유원의 귀에만 울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홍대 거리를 지나다니던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귀를 부여잡고 있었다.
귀와 머리를 울리는 소리에 쓰러지는 사람도 있었다. 유원은 그 자리에 서서, 뒤바뀌는 주위의 풍경을 지켜보았다.
쩍, 쩌저적-.
찌걱, 쩍-.
바닥이 갈라지고 그 위로 기상천외한 모양의 식물들이 자라난다.
구우우우-.
하늘 위에 떠다니던 구름은 반대로 뒤집혀, 검은색으로 뒤바뀌었다.
전자시계는 2020년, 0시를 기점으로 멈춰 있었다.
[제 20131구역] [인구 : 12,014명]반가운 메시지였다.
12,000명.
홍대를 선택한 건 틀리지 않았다.
그우어어-!
갸아아-.
이명이 멈추고 가장 처음 들린 것은 괴상한 울음소리들이었다.
“……왔군.”
주위 건물들 틈 사이사이.
손에 칼을 든 유원은 여전히 귀와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김명훈과 그 일행의 옆을 지나쳐갔다.
“끝났다.”
[지금부터 튜토리얼을 시작합니다.]“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