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02
* * *
“김유원이 나타나?”
창밖을 보고 있던 아마테라스가 몸을 돌렸다.
플레이어 키트에 도착한 메시지.
김유원의 등장 소식은 그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아니, 이번 같은 경우는 단순히 흥미에서 끝날 일이 아니었다.
‘녀석이 야타의 거울을 손에 넣었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사라진 녀석.
대체 어딜 간 건지, 44층뿐만 아니라 탑의 각 지역에 수소문을 해 봤지만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치 하늘로 솟거나 땅으로 꺼진 것만 같았다. 그게 아니면 어디 산이나 숲에 틀어박혀 숨어 있거나.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없었다. 제아무리 야타의 거울이 탐이 나도 그렇지, 그걸 손에 넣고자 영영 숨어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거울을 찾고 있던 거다.’
아마테라스는 지금껏 유원이 잠적해 있었던 이유를 야타의 거울을 찾던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무래도 어디선가 야타의 거울에 대한 단서를 얻는 데 성공한 모양.
그리고 그런 거라면 곧장 자신에게 야타의 거울을 가지고 왔어야 했다.
그게 유원과 자신의 약속이었으니까.
‘애초에 약속을 지킬 생각 따위는 없었지만…….’
그래도 괘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곧장 움직이고 싶었다.
도망치고 있다는 김유원을 쫓아, 야타의 거울을 빼앗고 녀석을 처참히 도륙해야 속이 후련할 것 같았다.
하지만.
‘대체 원하는 게 뭐지?’
유원의 행동은 아무래도 수상했다.
[다른 의도가 있어 보입니다.]그것은 시험장 주위를 감시하고 있던 삼귀자의 수하에게 도착한 메시지였다.
그것은 굳이 말로 전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상한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유원은 마치 자신이 삼신기에 대한 단서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라도 내고 싶은 것처럼 도시를 뒤졌다.
그 직후 자신을 만났고, 곧장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야타의 거울을 찾는 데 성공,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린 후 도주하고 있었다.
‘마치 날 꾀어내려는 것처럼.’
가소로울 따름이었다.
제아무리 최강의 플레이어라 불리는 녀석이라지만, 고작 플레이어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에 반해, 자신은 하이랭커였다.
이 탑에서 52번째로 강한 존재.
그게 바로 자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테라스는 선뜻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
‘함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 어떤 함정이라도 능히 돌파할 자신이 있었건만.
지금은 그 자신감마저도 상대가 파 놓은 함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 모든 게 정말 김유원이 원한 상황이라면.
‘……정말 잘 만든 함정이군.’
그 함정을 판 주체가 가소로울 뿐, 상황 자체는 군더더기가 없다.
함정이라는 걸 들키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상대는 함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들어올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더욱이 문제는 이 정도 함정을 팔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서도 상대는 굳이 그것을 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지.’
저벅-.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마테라스는 곧장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네가 뭘 준비했든 상관없다.’
팔척경곡옥을 손에 쥐며, 아마테라스가 흉흉한 눈을 빛냈다.
‘어차피 이기는 건 나다.’
* * *
“허억, 헉-.”
“뭐가 저렇게 빨라?”
“민첩 스탯이 대체 몇이나 되는 거야?”
유원을 쫓던 플레이어 들이 숨을 몰아쉬었다.
한 번 마음먹고 도망치는 유원을 쫓기란 쉽지 않았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유원은 미꾸라지처럼 포위망을 뚫고 나갔다.
“어느 쪽이래?”
“북동쪽.”
“그러니까 북동쪽이 어딘데?”
“몰라, 내가 아냐? 그냥 나도 메시지로 받은 거야!”
유원이 바로 도망칠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그들은 우왕좌왕하며 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눈에 보이는 유원을 쫓아 움직이고, 우르르 몰려다닐 뿐이었다.
‘꼭 양치기라도 된 것 같군.’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 선 유원은 어느 건물 안에 숨어 인벤토리 속에서 육포를 꺼내 먹었다.
몰이를 시작한 지 벌써 한 시간이 넘었다. 다행히 도망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저들 중에는 랭커급의 플레이어도 몇몇 섞여 있었지만 그들의 발은 그리 빠르지 않았다.
한 번 포위망을 뚫어내고 나니 원하는 방향으로 향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 따라붙기 시작한 적들의 숫자는 서서히 늘어나, 어느덧 수천을 넘어 만 단위에 이르고 있었다.
‘도시에 모여 있던 범죄자는 거의 다 모였다.’
우우웅-.
콱-.
유원은 허리춤에 채워져 있는 쿠사나기의 손잡이를 잡아 눌렀다.
‘문제는 정작 와야 될 녀석이 안 오고 있다는 건데…….’
유원은 힐끔 창밖을 내다보았다.
밖에서는 자신을 찾는 녀석들이 소란을 벌이고 있었다.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물론 들킨다 하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다시 도망치면 그만이니까. 저런 뜨내기들 정도쯤, 뚫어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이 길어져서 좋을 건 없다.’
유원은 육포를 천천히 씹었다.
이렇게 잠깐 쉬는 동안이라도 먹을 건 먹으며 힘을 비축해 둬야 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하여간 굼뜬 건 알아줘야겠군.’
자리에 앉아 기다리던 유원은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앞에 도착해 있는 흐릿한 인영.
처음에는 아마테라스인가 싶었지만, 그는 아니었다.
“츠쿠요미인가.”
흐릿한 인영이 점차 선명해져 간다. 그러자 새하얀 피부에 달빛을 받은 것처럼 아름다운 은빛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린 여인이 나타났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유원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삼귀자 중 가장 오래 살아남은 랭커였지.’
츠쿠요미, 그녀는 이 탑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움을 지닌 미녀였다. 그녀는 늘 올림포스의 하이랭커, 아프로디테와 비교되곤 했다.
“무슨 생각이야?”
츠쿠요미의 첫 인상은 아마테라스와는 많이 달랐다.
그녀는 다짜고짜 유원에게 살기를 드러내거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력을 뿜어내지 않았다.
“죽고 싶어서 그래?”
살벌한 말과는 달리 그녀의 얼굴 위에는 호기심과 궁금증이 떠올라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유원의 등에 있는 야타의 거울로 향해 있었다.
“왜? 이게 가지고 싶나?”
“묻는 거에나 대답해.”
“이렇게 열심히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어? 난 죽을 생각 없다.”
“그런 놈이 그래?”
정말 궁금한 모양이었다.
츠쿠요미는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히 정보나 캐려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렇다고 야타의 거울을 노리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애초에 아마테라스가 모든 삼신기를 모았을 때, 그녀는 딱히 아마테라스와 싸우거나 하지 않았다.
그녀는 삼신기를 찾고 있을 뿐, 딱히 그것을 탐내 하지는 않았다.
대체 왜일까.
‘혹시…….’
-…….
유원은 격하게 흔들리고 있는 스사노오의 감정을 느꼈다.
평소 사람 죽이는 것과 싸우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던 녀석이었다. 그랬던 그가, 츠쿠요미의 등장 이후 요동치는 감정을 주체하질 못하고 있었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느낌은 하나뿐이다.
‘너 쟤 좋아하냐?’
-아니다.
‘맞네.’
-아니라고 했다.
‘다른 놈은 몰라도 날 속이는 건 안 되지.’
유원은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그러다 한 가지.
‘그럼 혹시…….’
유원은 눈앞에 있는 츠쿠요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삼신기에 큰 욕심이 없음에도 꽤 오랫동안 다른 삼신기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유원의 등에 있는 야타의 거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삼신기는 하나.
‘쿠사나기의 검을 찾고 있던 건가?’
유원이 차고 있는 쿠사나기의 검은 겉으로는 평범한 검처럼 보였다.
그렇기에 눈에 띄지 않은 모양.
다른 삼신기에는 관심이 없는 그녀가 쿠사나기의 검을 찾는 이유라면 하나뿐이었다.
‘서로 좋아했나 보군.’
쿠사나기의 검은 스사노오가 남긴 유물이었다. 아마도 그녀는 스사노오의 유물이라는 점에서 쿠사나기를 찾고 있는 것이리라.
‘확실한 건, 츠쿠요미는 야타의 거울에는 관심이 없다.’
이러면 계산이 달라진다.
유원은 잠시 동안 츠쿠요미라는 변수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는 이 싸움에서 가장 유용한 조커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슨 생각해?”
유원이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자, 참다못한 츠쿠요미가 물었다.
그러자.
“넌 어느 편이냐?”
유원은 결국 승부수를 던졌다.
츠쿠요미의 미간이 가늘게 좁혀졌다.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유원을 바라보던 그녀는 더 자세한 설명을 물었다.
“무슨 소리지?”
“아마테라스? 아니면 스사노오?”
그 물음에 커져 가는 눈동자.
“그 둘이 적이라면, 어느 쪽에 설 거지?”
“너…….”
잠시 동공이 흔들리던 츠쿠요미는 곧이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뭔가 알고 있구나.”
“알지.”
“정말, 그가 스사노오를 죽였어?”
짐작은 하고 있지만 확신은 하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
“직접 죽인 건 아니야. 하지만 연관은 있지.”
“무슨 소리야?”
“의도했다는 소리다. 스사노오가 죽도록.”
츠쿠요미의 표정이 몇 번이나 흔들렸다.
그녀는 눈앞에 있는 유원을 의심하면서도 그 말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녀는 삼귀자라는 이름으로 탑에 이름을 떨친 하이랭커였다.
86위라는 높은 랭킹을 지닌 츠쿠요미는 최대한 흔들리지 않고 질문을 이어 나갔다.
“대체 왜, 어떻게 말이지?”
“야마타노 오로치. 그 괴물과 스사노오가 부딪치도록 한 게 바로 아마테라스였다. 원래라면 둘이 함께 잡아야 할 녀석이었지만…….”
유원은 스사노오와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는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스사노오는 야마타노 오로치와 단둘이 싸움을 벌였지.”
“아마테라스가 야마타노 오로치를 이용해 스사노오를 죽였다…….”
잠시 골똘히 생각하던 츠쿠요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은 분명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아. 맞아. 이상하지. 제아무리 스사노오라 해도 그 괴물과 혼자 싸울 만큼 바보는 아닌데 말이야.”
스사노오는 싸움에 미친 검사였지만, 그렇다고 죽을 자리조차 모르는 불나방은 아니었다.
그는 늘 생사의 기로에서 싸워 왔다.
하지만 죽거나, 살거나의 싸움이면 몰라도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하지는 않았다.
질 걸 알면서도 싸울 만큼 스사노오는 무대포가 아니었다.
그가 진정으로 즐기는 건 타인을 베는 순간이었지, 자신이 베이고 고통 받는 게 아니었다.
“네 말대로 아마테라스는 분명 오로치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 그래서 이상했어. 왜 그는 스사노오를 돕지 않았을까. 그렇게나 오로치가 두려웠던 걸까…….”
말을 이어 가던 츠쿠요미는 고개를 저었다.
“별로 친구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았어. 이제 하나 남은 친구니까. 그래서 왜 그랬냐고, 지금껏 물어보지도 못했는데…….”
쏴아아-.
쩍, 쩌저저-.
츠쿠요미의 마력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서늘한 한기가 몸을 얼리고,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한파처럼 차가워졌다.
아서와 같은 얼음 속성의 마력.
하지만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힘이 느껴졌다.
“말해 봐. 넌 뭘 믿고 그렇게 확신하지? 그를 죽게 만든 게 아마테라스라고 말이야.”
그녀는 한 마디라도 잘못 입을 놀렸다가는 곧장 칼을 뽑을 것 같았다.
유원의 말은 어쩌면, 스사노오와 함께 그녀의 평생을 함께 해 온 친구를 욕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기에.
그래도 다행이었다.
대답은 어렵지 않았으니까.
“본인에게 직접 들었다.”
“……직접?”
츠쿠요미가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너도…….”
스멀-.
“본인과 이야기해 보든지.”
유원의 그림자 속.
익숙한 형체의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올라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