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20
“지금…… 누구라고……?”
당황한 나머지, 유원은 평소와는 달리 말을 조금 떨고 말았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분명 우마왕은 방금 전, ‘크로노스’라고 말했다.
“크로노스라고 했다.”
역시.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어떻게 그를 아는 거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그걸 묻기 위해서는 시계태엽에 대해서도 말해야 하기에.
“그 반응을 보니, 넌 기억하는가 보구나.”
우마왕의 말에 유원은 속을 다 읽힌 듯한 기분을 받았다.
유원은 잠시 고민했다.
고민은 정말 잠시였다.
“당신은 어떻게 기억하시는 겁니까?”
“형님이라고 해라.”
“예?”
“내 나이가 만 살이 넘었다. 오딘도 나보다는 동생이야.”
다소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갑자기 형님이라니.
당장 입에 붙지도 않는 말이거니와 그렇게 되면 머릿속에 드는 또 다른 걱정이 있었다.
‘그럼 내가 손오공의 동생이 되는 건가.’
유원은 손오공보다 훨씬 어렸다.
당연히 의형제를 맺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다면 손오공에게 있어서는 동생이 되는 셈.
순간, 유원은 아우터를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한 오싹함을 느꼈다.
‘그건 절대 싫군.’
유원은 고개를 저었다.
“생각 좀 해 보겠습니다.”
“그래?”
에둘러 거절한 것이건만 우마왕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호칭이야 천천히 하도록 하지.”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포기하지 않은 모양.
유원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회귀 전이라면 모를까 적어도 저 의형제 관계에 손오공이 얽혀 있는 이상 유원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 일은 없을 것이다.
“아까 질문에 대답이나 해 주십시오.”
“크로노스 말이냐?”
“네.”
“나도 이상하다 생각했다. 왜 그 녀석이 기억이 안 나는지.”
톡, 톡-.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볍게 건드리며, 우마왕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천계 놈들이 내 머리에 무슨 짓을 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천 년이 넘는 시간은 그러기 충분하고도 남은 시간이니까.”
이내 손가락을 엄춘 우마왕의 눈빛이 살벌하게 반짝였다.
“그래서 내가 잊어버린 사람이 누군지, 계속 찾았다.”
“……왜입니까? 어차피 기억도 안 나면서.”
“기억이 안 났으니까. 혹시라도 내게 또 다른 동생이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야.”
확실하지 않은 추측이었다.
하지만 크로노스를 잊어버린 우마왕의 머릿속에는 손오공을 비롯한 ‘다른’ 형제들이 들어 있었다.
만약 잊어버린 게 그들 중 한 명이라면.
그 생각으로 우마왕은 기억을 찾으려 애썼다.
“주술도 아니고, 특별한 스킬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 머릿속에 뭔가를 심은 것도 아니고.”
감옥을 탈출한 이후 줄곧.
우마왕은 몸의 회복과 동시에 유원을 보며 잊고 있던 누군가를 떠올리려 애썼다.
그리고 그 방법을 찾기 시작한 지가 벌써 닷새째.
“그리고 방금, 찾고 있던 ‘누군가’를 잊어버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유가…… 뭡니까?”
“인과율이다.”
“인과율?”
“그를 잊어야만 하는, 이 세계에 씌워진 인과율. 세계를 관통할 정도로 강력한 힘.”
우마왕은 시계태엽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가 이러한 사실을 알아낸 건 어디까지나 크로노스에 대한 기억을 추적하는 과정에서였다.
그는 탑 최고의 주술가로 알려져 있었다.
탑 최고의 마법사로 알려진 오딘조차도, 주술사로서 그의 능력을 그리워할 정도.
우마왕은 인과율의 힘을 뚫고 시계태엽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있었다.
“오딘, 미미르, 크로노스…… 그 밖에도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존재들. 그들의 힘에 의해 크로노스의 존재가 이 세계에서 추방되었다.”
꽤 정확한 이야기였다.
시계태엽이라는 아이템까지 추측해 내지는 못했지만, 우마왕은 크로노스가 이 세계에서 사라진 이유를 거의 정확하게 짚어 냈다.
“너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거지?”
“……좀 복잡합니다.”
시계태엽, 그리고 아우터에 관해 털어놓은 건 손오공 한 명뿐이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50층에서는 그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해서고, 둘째는 손오공이라면 믿을 수 있어서다.
걸리는 건 역시 두 번째 이유였다.
우마왕.
대력왕이라 불리며, 힘뿐만 아니라 주술에 있어서는 이 탑에서 최고라 불리는 존재, 그리고 손오공의 의형제.
하지만 아직 그를 알게 된 지는 오래 되지 않았다.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유원은 대답을 망설였다.
“갚기 어려울 정도로 큰 은혜를요.”
“무슨 은혜?”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괜히 변명하는 것보다는 비밀은 비밀이라고 말하는 게 나았다.
과연 어리석은 혼돈의 씨앗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퍼져 있을까.
시계태엽의 존재가 녀석의 귀에 들어간다면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계획했던 모든 게 틀어질 수도 있고, 당장 어리석은 혼돈이 유원을 죽이겠다며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였다.
유원이 시계태엽의 존재를 계속해서 비밀로 하는 이유는.
그런데 하다못해 헤라클레스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던 걸, 우마왕에게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뭐…… 비밀 한 두 개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법이지. 이 탑에서는 누구나 그래.”
다행히도 우마왕은 유원의 비밀을 이해해 주었다.
다행이었다.
혹시라도 계속 캐묻거든, 뭐라 둘러대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그럼 미안하지만 하나만 더 물으마.”
별것 아닌 말인데도 이상하게 긴장이 됐다.
유원은 별다른 대답 없이 우마왕을 바라보았다. 대답이 떨어지건 말건, 우마왕은 말을 이었다.
“우라노스와는 어떤 관계냐?”
전과 다름없는 평온한 목소리.
오싹-.
하지만 그 질문을 내뱉기 무섭게 우마왕의 표정은 전에 본 적 없을 만큼 사납게 변했다.
“큰형님 전성기 때는 장난 아니었지. 천계와 싸울 때도 그랬지만, 한 번 화가 나면 나보다 더 개차반이었다니까?”
우마왕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유원은 손오공의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렇게 사나운 눈빛이라니.
다른 건 몰라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해야만 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마왕은 자신을 믿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천계의 감옥에 갇힌 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말해 봐라.”
그 이후, 짧지 않은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올림포스와 시작된 악연.
헤파이스토스를 찾던 올림포스와 2차 기간토마키아의 준비.
해신석의 획득과 올림포스 부수기의 시작.
헤라클레스와의 만남.
그리고 올림포스 부수기까지.
“……그렇게 하나로 만들어진 아이템이 이겁니다. 우라노스의 심장.”
유원은 우라노스의 심장을 차고 있던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투명한 장갑이었다.
하지만 그 장갑을 통해 느껴지는 건, 우마왕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한 괴물의 존재감이었다.
“네게서 그놈의 흔적이 보인 게 그것 때문이었나.”
“우라노스를 아십니까?”
“오딘, 크로노스를 만난 게 그때였지. 그 괴물 하나 때문에 탑에 난리가 났었어.”
고대 시절, 우라노스를 잡기 위해 수많은 랭커들이 모였다.
현시대 최강의 하이 랭커라 불리던 여러 하이 랭커들이 힘을 합친 유일한 사건.
그리고 그 속에는 우마왕도 포함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녀석의 심장이라…….”
우마왕은 우라노스의 심장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네가 지닌 아이템이니 버리라 마라 왈가왈부하지는 않으마. 하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할 게다.”
경고는 여기까지인 걸까.
우마왕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야기를 마쳤으니 다시 돌아가려는 모양.
유원은 알겠다는 뜻에서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인사했다.
“그럼, 주무십시오.”
“해 떠 있는 동안 내내 잤더니 잠이 안 오는구나.”
뚜둑, 뚝-.
우마왕은 굳어져 있던 손가락을 풀었다.
그리고 이내.
“마침 너도 몸을 풀던 차이니, 상대가 되어 주지 않겠느냐?”
우마왕의 분위기가 돌변했다.
* * *
유원과 우마왕은 집이 있는 오두막에서 멀찍이 벗어났다.
실전이 아니라지만 최상위 랭킹의 하이 랭커와의 대련이었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하겠지만 아마 싸움의 여파가 상당할 터.
그로 인해 괜히 묵어야 할 집까지 없어지는 건 사양이었다.
“호기심이 많은 건 분신도 마찬가지군.”
고개를 들어 올린 우마왕은 하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분신들의 시선을 하나하나 마주 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형님이니까요.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추한 모습을 보일까 봐 걱정이야.”
우마왕은 따로 무기를 들지 않았다.
걸치고 있는 아이템도 하나 없었다. 전성기 시절, 그는 혼철곤(混鐵棍)이라는 무기를 휘두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가벼운 대련이니 너무 힘 빼지 말자꾸나.”
“제가 부탁드릴 말입니다.”
유원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우마왕.
그는 회귀 이후, 제우스와 더불어 유원이 마주한 가장 강한 상대였다.
혼철곤이 없어 비록 전성기 시절만은 못할 것이나 그의 실력은 천하의 손오공도 보증할 정도였다.
엄밀히 말해 제우스의 상대는 하데스와 포세이돈, 헤라클레스가 한 것이나 마찬가지.
유원이 했던 일은 단지 벼락을 빼앗은 게 전부였다.
그에 반해 지금은.
‘최상위 하이 랭커를 상대로 시험해 볼 기회다.’
천하의 우마왕을 정면에서 상대하는 것이다.
‘지금 내 실력으로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무뎌져 있던 감을 살리는 데에는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와 싸우는 것만 한 게 없었다.
꽤 괜찮은 기회였다.
팽팽하게 당겨진 유원의 긴장감을 알아차려서일까.
우마왕은 낮게 혀를 차며 손으로 허공에 대고 그림을 그렸다.
“이대로는 안 되겠군.”
웅-.
잘게 떨리는 마력의 흐름.
그것은 우마왕에게서 느껴지는 게 아니었다. 대기 중에 옅게 퍼져 있던 마나가 스스로 움직여, 두 사람을 중심으로 넓게 퍼지기 시작했다.
주위의 풍경이 빠르게 달라졌다.
푸르던 숲은 구름 위처럼 하얗게 변하고, 하늘은 더 가까이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앞으로 달려들 것처럼 긴장하던 유원이 잠시 멈칫했다.
“천계에서 눈치챌 수도 있으니 말이야. 조심하자는 의미에서.”
저벅-.
우마왕은 그렇게 말하며 유원을 향해 성큼 걸어왔다.
뒤바뀐 풍경에 유원은 한껏 들이마셨던 숨을 다시 내뱉었다.
‘판을 깔아 준 건가.’
천계를 의식하느라 마음껏 싸울 수 없었던 상황.
아마 천계는 지금도 우마왕을 찾고 있을 것이다.
그를 찾기만 한다면 제천대성의 탈환 따위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렇게 밖으로 퍼져 나가는 마나를 가둬 둔 상태라면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적어도 이 안쪽은 바깥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셈.
최소한 자신이 우마왕이 펼쳐 낸 스킬을 부숴 버릴 정도의 힘을 내지 않는 이상, 이 안쪽의 마력이 바깥으로 새어 나갈 일은 없는 것이다.
‘그만큼 이게 궁금하다는 뜻이겠지.’
유원은 우마왕의 이런 행동이 단순한 호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마왕은 크로노스, 오딘과 함께 우라노스에 대해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고대의 하이 랭커였다.
그는 우라노스의 심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우라노스의 심장에 대해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직접 그 아이템과 싸워 보는 것.
우마왕은 지금 자신과 싸우려는 게 아니었다.
‘조금…… 자존심 상하는군.’
한낱 아이템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는 기분.
하지만 그건, 우마왕이 자신을 다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취급이었다.
[‘화안’이 길을 읽습니다.] [거인의 힘이 전신에 깃듭니다.] [감각지대가 활성화됩니다.] [‘타르타로스’가…….] [‘바다의 가호’가…….]순식간에 활성화되는 스킬들.
그리고 서서히 개방되어가는 마력.
저벅-.
다가오는 우마왕을 향해, 유원도 마찬가지로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유원은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손오공 구출을 위한 천계와의 싸움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이 싸움을 통해 자신이 어디까지 올라왔는지, 확실히 알아야 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