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27
* * *
구우우우웅-.
땅이 흔들렸다.
그것도 아주 잠시.
드르륵-.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 남자가 중얼거렸다.
“뭐야, 지진인가?”
아주 잠깐이지만 땅이 울리는 게 느껴졌다. 걱정도 되긴 했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한참 떨어진, 세상의 끝.
그곳에 깊은 구덩이가 생겨났다.
구구구구-.
깊이만 수십 미터, 넓이는 그 길이를 짐작하기도 어려운 거대한 구덩이.
드드드-.
그 한가운데서 손오공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끄으응…….”
손오공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 옛날, 긴고아가 머리에 둘러졌을 때처럼 두통이 밀려왔다. 고개를 두리번거려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엄청나네, 진짜.”
이 큰 구덩이가 자신들이 아래로 떨어지며 생겨났다.
땅이 흔들리며 순간 지진이 날 정도의 충격. 그리고 그 충격을 만들어 낸 게 바로 자신과 유원, 두 사람의 낙하였다.
“대단한 돌 머리지.”
드드드드-.
바윗더미들을 손으로 치워 내며 유원이 밖으로 나왔다.
“설마하니 머리로 떨어질 줄이야.”
지잉-.
머리에서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어지러운 머리와 뇌를 울리는 찌릿함에 유원은 고개를 저었다.
“너도 똑같아, 인마. 어떻게 이러고도 기절을 안 해?”
그리고 그건 손오공도 마찬가지.
한참을 두 사람은 어지러운 머리를 흔들었다.
결국 두 사람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더 이상 싸움을 지속하다간 정말, 한 명이 죽거나 소멸될 것 같았다.
“네 몸뚱이도 단단하긴 마찬가지네.”
“그 단단한 몸뚱이 하나 믿고 이 난리를 친 거냐?”
허탈함에 유원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런 황당한 싸움은 오랜만이었다. 싸움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손오공은 자신의 몸뚱이를 믿고 승부를 걸어왔다.
“그럼 뭘 믿고 이러겠냐.”
“그러다 진짜 죽으면 어쩌려고? 네가 본체도 아니고.”
“안 죽을 만큼만 했다. 걱정 마라.”
“안 믿는다.”
그냥 아래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근두운의 속력까지 더한 채로 함께 떨어질 생각을 다 하다니.
이런 방법은 또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이건 함께 죽자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무식한 건 본체나 분신이나 똑같았다. 순간, 유원은 오래전 손오공과 싸우던 때를 떠올렸다.
‘진짜 비슷하단 말이지.’
분신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상하리만치 본체와 같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발상은 좋았다.’
만약 눈앞에 있는 게 분신이 아닌 본체였다면.
더 단단한 불사의 육체를 지닌 손오공이라면 꽤 유효한 싸움 방식이었다.
‘그 녀석에게도 나중에 알려 줘야겠어.’
그렇게 머리를 부여잡은 채 잠시 시간이 흐르고.
깨질 것처럼 지끈거리던 머리의 통증이 멎어질 즈음, 유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갈까?”
“……들어가자.”
손오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두 사람이 다시 근두운에 올라탔다.
* * *
그날 이후.
유원과 손오공은 거의 매일같이 치고 박고 싸웠다.
하루걸러 하루. 그렇게 며칠이라는 시간 동안, 유원은 화안금정의 사용법을 터득해 나갔다.
[화안금정의 숙련도가 0.07% 상승하였습니다.]눈에 익숙해진다는 건, 숙련도의 상승을 뜻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유원은 손오공이 언급한 ‘예지안’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아주 잠시. 한 치 앞의 미래를 내다보는 힘.’
화안은 미세한 상대의 근육과 움직임의 흐름을 파악해 내는 눈이었다.
화안금정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 실제로 벌어질 한 치 앞의 ‘미래’를 내다보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 차이는 상당했다. 서로 같은 눈을 지니고 있는 탓에 효과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손오공과의 싸움에서도 미래를 예지하는 힘은 꽤 도움이 됐던 것이다.
‘이거면 이길 수 없는 적과의 싸움도 이길 수 있다.’
지금의 실력으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상대.
그런 상대와의 싸움에서마저도 이 힘이라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대련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이제 시작하자꾸나.”
어느 날 갑자기, 식사 자리에서 우마왕이 꺼낸 말이었다.
산에서 잡아 온 사슴의 고기를 열심히 뜯어먹던 손오공이 고개를 들었다.
“진짭니까?”
“넌 저기 있으라니까 왜 자꾸 내려 와 있느냐?”
“이 녀석 때문이지, 뭐.”
손오공은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유원을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봐 주고 있잖아?”
말하자면 유원의 훈련을 자신이 도와주고 있다는 뜻.
하지만 두 사람의 싸움을 몇 번 구경한 적이 있던 우마왕은 고개를 저었다.
“승률이 대충 반반이더구나. 최근에는 네가 더 많이 졌고.”
손오공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아니, 뭐 그거야…….”
“몸은 다 괜찮아지신 겁니까?”
말이 잘린 손오공은 고개를 돌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마왕은 들고 있던 고기를 불속에 툭 던지며 대답했다.
“며칠 됐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기다리고 있던 거고.”
“신중하셨네요.”
“신중해야지. 완벽하려면.”
우마왕의 시선이 저물어져 가는 해로 향했다.
노을이 진 하늘.
그 하늘을 바라보던 우마왕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날이 트는 대로 움직인다.”
결연한 얼굴의 우마왕은, 처음 감옥에서 나왔을 때와는 달리 완전히 혈색이 돌아와 있었다.
“막내를 구하러.”
* * *
날이 밝았다.
묘한 기분이었다.
긴장이라도 될 법한데, 평소와 다를 게 없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머릿속은 평소보다 더 차갑게 식었다.
새소리가 들리는 창밖.
서늘한 공기가 방 안으로 들어오고, 이불 밖으로는 찬 기운이 감돌았다.
잠에서 깬 탓인지, 실감은 조금 늦게 들었다.
“왔네.”
여기까지.
뒷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머릿속에는 여러 말들이 떠올랐다.
50층.
그리고 손오공의 구출.
딱 여기까지가, 유원의 목표점 중 하나였다.
‘이제 반 왔다.’
손오공을 더 이른 시기에 구출하는 건 앞으로 계획된 여러 일들 중, 가장 중요한 일로 꼽혔다.
그만큼 손오공이라는 전력은 반드시 필요했다. 그는 누가 뭐래도 유원 다음으로 최고의 재능을 가진 하이랭커였다.
더군다나, 천계와의 싸움은 손오공이 없다면 애초에 성립조차 될 수 없었으니.
짹-.
귓가를 찌르는 새소리에 유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틀로 걸어갔다.
“오래도 버텼다.”
가끔 손오공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 답답한 바위더미 속에 갇혀 있었는지를.
그 속에 얼마나 어둡고, 답답하고, 외로웠는지를.
손오공은 그때의 이야기를 할 때가 가장 슬퍼 보였다.
우마왕은 구해 냈다.
“이제, 구하러 가마.”
다음은 손오공의 차례였다.
* * *
오행산.
손오공이 나고 자란, 50층의 세계에서 가장 단단한 바위산.
평소에도 경계가 삼엄한 그곳은 최근 몇 달 동안 천계나 다름없는 요새가 되어 있었다.
“장군만 대체 몇 명이야?”
“장군이 문제야. 하이랭커도 다섯 명이 넘어.”
“게다가 이랑진군까지 있고…….”
오행산 곳곳에 포진되어 있는 천계의 랭커들.
그 숫자는 족히 수백에 달했다. 그 중에는 하이랭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고, 심지어는 천계의 최고 전력인 이랑진군까지 있었다.
“최근 마왕들과의 갈등도 심해지지 않았어? 천계는 어쩌고 대장군께서?”
“천계에는 나타태자께서 계시니까.”
“대체 뭔 일이래? 설마 전쟁이라도 벌어지는 건가?”
“소문으로 듣기론 우마왕이 탈출했다던데?”
“우마왕? 지난 전쟁 때 죽은 거 아니었어?”
“랭킹에는 아직 남아 있잖아. 랭킹 관리국은 아직 죽지 않은 걸로 판단한 거지.”
“그놈들도 실수할 때가 있잖아?”
“그런 게 몇 번이나 있었냐? 수르트 때 말고는 있긴 했어?”
“하긴…….”
오행산에 배치된 천계의 병사들은 불안감에 말이 많아졌다.
우마왕이 탈출했다.
그 말이 사실인 즉, 제2의 천계대전이 또다시 발발할 거라는 뜻이었다.
우마왕과 손오공의 관계는 천계의 병사들은 물론, 탑 내의 플레이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
더군다나 손오공이 오행산에 갇힌 이유가 우마왕을 구출하기 위해서였다는 소문이 돌면서부터는 더더욱 우마왕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 갔다.
만약 우마왕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면, 필시 그 역시 손오공을 구하려 할 것이기에.
“우마왕의 위치는 아직인가?”
오행산 안쪽, 동굴.
이랑진군은 산짐승들이 쓰던 동굴을 몇 개의 횃불로 밝혀 쓰고 있었다. 천계의 대장군이 쓰기에는 많이 누추할지 몰라도 지금 환경에서는 썩 나쁘지 않은 장소였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는 천계의 장군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예, 아직……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기대하고 물은 게 아니었던 것인 만큼, 이랑진군은 실망하지 않았다.
“애초에 우마왕이 숨고자 한다면 찾을 수 없을 수밖에. 그는 내가 아는 최고의 주술가이니.”
신기하게도 우마왕의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50층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천계였지만, 그런 그들조차도 한 줌 마력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 우린, 이렇게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겁니까?”
한 장군의 물음에 이랑진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찾는 건 멈추지 말고.”
“어쩌면 이대로 영영 숨어 버린 걸지도 모르…….”
“아니.”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이랑진군은 평소 그답지 않게 말을 잘라 내고는 대답했다.
“그는 반드시 올 거다.”
한 치 의심조차 없는 확신에 찬 목소리.
그 말에 다른 장군들은 달리 반박할 수가 없었다.
회의는 길지 않았다.
사실, 할 말이 없었다.
오행산에 배치된 장군들이 할 일이라고는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우마왕이 움직일 때까지.
“흐아아-.”
오랫동안 이어진 침묵에, 한 장군이 입을 벌렸다.
작게 한 그 하품에 시선이 모아졌다. 그는 눈을 굴려 주위를 둘러보다 조심히 입을 다물었다.
“암…….”
그를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
할 일이 없다는 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자리에서 긴장을 풀고 있었던 걸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죄송합니다.”
“…….”
사과에도 이랑진군은 대답이 없었다.
조용한 침묵에 잠시 머뭇거리던 장군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대장군.”
이랑진군의 손이 위로 올라갔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이랑진군이 손가락으로 입을 가렸다.
조용히 하라는 손짓이었다.
“……?”
대체 무슨 일인 걸까.
아까까지도 조용하던 동굴 안이 이제는 숨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해졌다.
이제 들리는 거라고는 동굴 안에 살고 있는 벌레들이 기는 소리뿐이었다.
그 순간.
“왔다.”
“예? 뭐가 말입니까?”
이랑진군은 그 속에서 어떤 소리를 들은 건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옆에 놓아둔 언월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니, 뻗으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언월도를 향해 손을 뻗던 이랑진군의 손이 멈췄다.
“하나가…… 아니야?”
이랑진군이 고개를 들어 올려 동굴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구우웅-.
손오공이 봉인되어 있는, 오행산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