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28
구우우웅-.
오행산이 뒤흔들렸다.
구름 위, 여의봉 끝에 선 손오공은 눈살을 찌푸렸다.
“거 진짜 더럽게 단단하네.”
“그러게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우마왕의 말에 손오공은 머리를 긁적였다.
“척 보기에는 별로 단단해 보이지 않아서 말입니다.”
“주술부터 풀어야 한다. 그게 첫 번째 목표다.”
“예, 예.”
부우웅, 척-.
다시 줄어든 여의봉이 손오공의 손 안에 들어왔다.
“하이랭커도 몇 명 있는 모양입니다. 심상치 않은데요?”
“이랑진군까지 포함하면 여섯. 그중 한 명은 탁탑천왕이다.”
“탁탑…… 뭐시기요?”
처음 들어 보는 이름에 손오공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자신과 직접 싸운 상대가 아니면 잘 기억하지 않았다.
“나타태자의 아버지로, 전대의 투신이다. 천계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낮았을 당시라 하더라도, 제법 랭킹이 높은 건 분명하지.”
“전대 투신이라…….”
“아들인 나타태자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도 대단한 실력자긴 하지.”
“그렇습니까?”
손오공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그 녀석은 제 겁니다.”
“괜찮겠느냐?”
“어차피 죽기밖에 더 하겠습니까? 그래봤자 전 분신인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분신에게는 죽음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손오공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들이며, 그들의 죽음은 죽음보다는 소멸에 가까웠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 마라. 이쪽에는 숫자도 꽤 있으니.”
“걱정되나 봅니다? 탁탑천왕이라는 녀석이 그렇게 강합니까?”
“강하지. 그 역시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 온 랭커이니.”
“큰형님과 같은 시대라…… 나이 좀 많이 드셨네.”
“지금 나 늙었다고 놀리는 거냐?”
“그렇게 들렸습니까? 제대로 들었습니다.”
낄낄거리며 웃는 손오공.
긴장감이라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은 영락없이 손오공의 본체와 똑같았지만,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렇게 방심하다가는 한 방에 골로 갈지도 모른다.”
우마왕은 오행산 아래, 분주하게 움직이는 인기척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결국 벽에 부딪쳐, 더 앞으로 가지는 못했지만 과거 그의 랭킹은 10위권 안쪽이었으니까.”
“그 말을 들으니 더 궁금합니다.”
손오공의 반응에 우마왕은 고개를 저었다.
하긴.
이런 말에 주의를 할 만큼 손오공은 신중한 성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성격이 필요한 때다.’
이 싸움은 절대 질 수 없었다.
천계의 대장군, 이랑진군을 비롯한 수많은 랭커들이 이 자리에 주둔해 있었다.
그 숫자만 하더라도 수백.
그 밖에도 상위 층계의 플레이어들까지 합치면 수천에 달하는 군대가 자리해 있었다.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그렇기에 이기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물론.
“다 좋은데, 개인행동은 금물이다.”
유원은 그런 손오공의 통통 튀는 성격이 못내 불안했다.
“포지션을 지켜서 움직여라. 하나가 틀어지면 전체가 틀어지니까.”
“……아, 예.”
손오공은 유원의 말에 머리를 벅벅 긁었다.
뇌에 과부하가 올 것 같았다.
유원이 말한 포지션이란 건, 지금껏 손오공의 삶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던 것이니까.
“확실하게 숙지한 거겠지?”
“예, 예. 뭐 어려운 거라고요.”
“워낙 머리가 나빠야지.”
“……지금 너랑 먼저 싸우고 싶은 기분이 드는데?”
“나중에 실컷 싸우거라. 지금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한 마디로 손오공을 제압한 우마왕이, 천계의 군대가 모여 있는 오행산을 바라보았다.
“가자.”
쩌억-.
머리에 난 두 개의 뿔이 위로 더 높게 솟아 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기이이잉-.
오행산을 뒤덮고 있던 주위의 풍경이 온통, 검게 물들었다.
* * *
“온다-!”
“마, 막아!”
오행산을 뒤덮고 있던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무기를 휘두르고, 스킬을 발현시켰다.
몰려들어오는 괴물들.
50층의 세계에서는 요괴(妖怪)라 불리는 수많은 괴물들이 오행산을 향해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끼이, 끼이익-!
음머어어-!
2미터가 넘는 거구의 원숭이 괴물과 작은 코끼리만 한 덩치의 황소 떼.
그것들의 돌진에 순식간에 오행산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우마왕의 주술이다! 속지 마!”
“어디다 칼질을 하는 거냐! 거긴 아무것도 없어!”
제법 랭킹이 있는 랭커들은 허우적거리며 혼자 자리에서 쓰러지는 플레이어들을 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갑작스럽게 오행산 주위에 펼쳐진 주술.
그리고 그 주술에 걸려 든 플레이어들이 보이지 않는 가상의 적들과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이런 젠장…….”
“먼저 주술을 깨!”
“어떻게 말입니까?”
“우리 쪽에는 주술가 없어?”
“있긴 합니다만, 상대는 우마왕입니다!”
“안 되면 힘으로라도 부숴!”
오행산을 빙 두른 검은 안개.
그 안개가 바로 주술의 매개체라는 것쯤은 누구든 알 수 있었다.
먼저 이 안개를 걷어 내야 주술을 풀어낼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랭커들은 휘하의 플레이어들을 구해 내기 위해 안개를 걷어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부우웅-.
쩌어어엉-!
안개를 향해 달려들던 랭커들이 우르르 튕겨지며, 오행산의 벽면에 날아가 박혔다.
“동천장군!”
“대장님!”
순식간에 열 명의 랭커들이 힘 없이 날아가자, 놀란 천계의 병사들이 주춤거렸다.
그리고 그들이 달려갔던 안개 속 너머.
저벅-.
모두가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발걸음이었다.
두 개의 거대한 뿔이 솟아오른, 장신의 남자.
그는 천계의 군대를 향해 느릿한 발걸음을 옮기며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거기 있으면 다 죽는다.”
구구, 구구구-.
저릿-, 저릿-.
어깨를 짓누르는 마력.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운 무게감에, 천계의 병사들은 혼란 속에서도 무릎을 꿇었다.
“대체…… 무슨 스킬을…….”
“스킬이 아니다.”
병사들의 당황에 장군급의 랭커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마력을 움직인 것뿐이지.”
랭커 정도 되는 실력자면 알 수 있었다.
이건 특별한 스킬이 아니었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이 무게감은 단지, 우마왕이 퍼뜨린 마력의 무게에 지나지 않았다.
제천대성의 의형제.
고작 둘이서, 천계와 전쟁을 치른 하이랭커.
저벅-.
그가 더 가까이 다가올수록 어깨를 짓누른 무게감 역시 더해졌다.
“천계에 대단한 충성심을 지닌 게 아니거든, 비켜서기를 권한다.”
쿠득, 쿠드드-.
발걸음 하나, 하나.
우마왕의 발 아래로 지면이 솟아오르며, 그의 뒤로 거대한 소의 형상이 떠올랐다.
“안 그럼 다 죽을 테니.”
꿀꺽-.
막대한 중압감에 숨이 막히기를 잠시.
“……막아라!”
천계의 장군들이 우마왕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니.
달려들려 했다.
“물러나라.”
낮고 묵직한 음성.
조용하지만 전장을 관통해 울리는 그 목소리에, 우마왕을 향해 달려들던 천계의 군대가 멈춰 섰다.
시선이 한데 모아졌다.
동시에, 목소리의 주인을 발견한 병사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만들었다.
쿵-.
묵직한 발걸음.
갈라진 길 끝과 끝에, 우마왕과 이랑진군이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오랜만입니다, 평천대성.”
평천대성.
그것은 제천대성이라는 칭호와 마찬가지로 세간에서 우마왕을 높여 부르는 말이었다.
이랑진군은 적이라고는 하나 우마왕을 무시하지 않았다.
되려, 그를 누구보다도 존중했다.
“오랜만이구나, 꼬마야.”
꼬마.
천하의 대장군을 부르는 말 치고는 얕잡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부름에도 이랑진군은 별로 기분 나쁜 내색을 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우마왕은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을 지닌 존재였다.
천계의 역사보다도 더 오래된 하이랭커.
현 옥황상제와 마찬가지로, 가장 오래 된 고대의 하이랭커 중 한 명.
그의 실력과 그의 육체와 정신이 지닌 역사는 자신을 꼬마라 부를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손이 좀 가벼워 보이십니다.”
지금이라면 이야기는 달랐다.
우마왕의 빈 손.
원래라면 손오공의 여의봉과 같은 그의 주력 무기, 혼철곤이 들려 있어야 할 자리였다.
“거치적거려서 두고 왔다. 꼬맹이 상대하는 데는 너무 흉한 물건이라.”
“당신의 무기는 지금 천계에서 보관 중입니다.”
“잘 가지고 있거라. 곧 다시 가지러 갈 테니.”
“정말 저희와 함께하실 생각이 없는 겁니까?”
이랑진군의 제안에 우마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말을 지난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말 지겹도록 들었지.”
천계가 굳이 우마왕을 살려 둔 이유.
그것은 차기 대장군의 자리에 그를 앉히기 위함이었다.
천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강해졌다. 투신의 자리도, 대장군의 자리도, 줄곧 더 강한 자들로 바꿔 나갔다.
그리고 우마왕은 그런 천계의 대장군 자리에 부족함이 없는 존재였다.
“당신이 온다면 대장군 자리 따위는 내놓을 수 있습니다. 또한, 대장군의 권한과 천계의 전폭적인 지지까지도…….”
“난 제천대성의 큰형님이다.”
우마왕은 이랑진군의 너머, 손오공이 갇혀 있는 오행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 내가, 천계와 손을 잡을 수야 없는 노릇이지.”
“정말 그러셔야겠습니까?”
“정 내가 필요하거든, 내 요구 사항은 전과 다르지 않다.”
펑-.
우마왕의 주먹이 자신의 손바닥을 때렸다.
“옥황상제의 목. 그게 내 요구 사항이다.”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겠습니다.”
“그걸 이제 알았느냐?”
스윽-.
이랑진군은 언월도를 꺼내 들었다.
묵직한 언월도의 무게감이 손안에 전해졌다. 다행히 눈앞에 있는 괴물의 손에는 혼철곤이 들려 있지 않았다.
“오거라.”
부우웅-.
이랑진군이 뛰어올랐다.
언월도의 창끝이 하늘로 향한 그 순간.
쫘아아악-!
우마왕이 만든 안개가, 반으로 갈라졌다.
* * *
오행산의 반대편.
천계의 병사들은 반대쪽에서 들려온 소리에 움찔 몸을 떨었다.
“벌써 싸움이 벌어졌나?”
“이 정도 규모의 마력이면…… 대장군이신 것 같은데.”
“어마어마하네, 진짜. 거리가 이렇게 먼데…….”
대장군과 우마왕의 격돌로 인한 마력의 흐름은 산의 반대편에서도 몸이 저려 올 지경이었다.
내심 그들은 자신들이 저 싸움에 끼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는 하이랭커들 간의 싸움이 언제 여기까지 번질지 몰라 조마조마했다.
“그나저나 대장군께서는 왜 이런 명령을 내리신 거지? 싸움이 벌어져도 자리를 지키라니…….”
“무슨 생각이 있으신 거겠지.”
싸움이 시작되기 전, 이랑진군은 플레이어 키트를 통해 병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다른 곳에서 싸움이 벌어지더라도 절대 움직이지 말라는.
만약 그 메시지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원칙대로 이랑진군을 도우러 움직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싸움이 시작되고 잠시 후.
파직-.
쿠르르르-.
하늘 위에 자욱이 낀 구름 속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비라도 내리려…… 응?”
“어, 어어?”
구름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그렇게 아차 하는 그 사이.
번쩍-!
콰르릉-!
밀집되어 있던 천계의 병사들 사이로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콰아앙-!
“아아아악!”
“뭐, 뭔 일이야?”
“벼락이…….”
그 벼락에 휩쓸린 수많은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고, 겨우 범위 바깥으로 도망치거나 휘말리지 않은 병사들은 주위를 경계했다.
혹시라도 또 다른 적이 나타났을지도 모르기에.
아니나 다를까.
“어렵게 됐네.”
벼락과 함께 등장한 유원은 칼을 빼어든 채 한숨을 내쉬었다.
우마왕이 시선을 끌어 주어, 반대쪽으로 병사들이 움직인다면 자신들이 움직이기가 훨씬 수월했을 텐데.
“이랑진군 때문이야.”
“이랑진군 때문이야.”
“이랑진군 때문…….”
메아리처럼 울리는 목소리.
시끄러운 울림에 유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두르자는 듯 손을 흔들었다.
“가자.”
저벅-.
“손오공‘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