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3
* * *
쿵-.
던전의 보스가 쓰러졌다.
녀석의 위에 올라탔던 유원은 짧게 혀를 찼다.
“더럽게 질기네.”
수백 개의 다리를 가진 괴물.
탑에서는 흔히 ‘기생용’으로 통하는 녀석은 벌레를 닮은 외형과는 달리 생명력이 꽤 질겼다.
덕분에 유원은 거의 삼십 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녀석을 상대해야 했다.
물론, 그 덕분에.
[레벨이 올랐습니다.] [근력이 1 상승하였습니다.] [민첩이 1 상승하였습니다.] [마력이 1 상승하였습니다.]레벨을 올릴 수 있었지만.
‘거인화(巨人化)의 사용은 신중해야겠어. 마력은 둘째치고, 지금 체력으로는 몸에 부담이 커.’
이번 보스 공략에서 얻은 게 많았다.
레벨 업은 당연하고 현재 가지고 있는 스킬들을 마음껏 사용해 볼 수 있었으니, 현재의 전투력 수준을 보다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걸로 됐다.’
어쨌든 기생용을 잡았으니 이 던전에 찾아 들어온 두 번째 목적은 해결 된 셈.
거기에 부가적인 수확도 있었다.
[보스룸의 공략으로 3,000p를 획득하였습니다.] [천살성의 완성도가 1% 상승하였습니다.]이 질긴 보스를 잡았는데 고작 1퍼센트라니.
하지만 지금까지 천살성의 완성도가 이 정도로 많이 오른 경우는 없었다. 며칠 동안 수천 마리의 괴물들을 사냥하며 올린 완성도는 고작 2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더 상위 계층에 속하는 괴물을 사냥할수록 빠르게 완성도가 올라가는 건가?’
무작정 많이 죽이기만 해서 능사가 아니다.
그것을 이번에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다.
‘완성도의 상승 속도가 더디다. 제대로 스킬을 완성시키려면 보스를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하나?’
아직까지 천살성은 처음 주어진 스탯 포인트를 제외하면 마땅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스킬의 효과를 보면 완성도에 따라 추가 스탯이 부여된다고 했는데, 그게 어느 정도일지도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스킬이 완성되어야 제대로 효과가 나오는 건가.’
유원은 잠시 거대 지네의 시체 위에 앉아 오른팔을 주물렀다.
어쨌거나 체력 스탯이 필요한 유원으로서는 스탯을 상승시켜 주는 스킬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끼이이이-.
그때, 유원이 들어온 입구의 반대쪽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리며 한 무리의 참가자들이 들어왔다.
“뭐, 뭐야 이건?”
“대체 누가…….”
그들은 보스룸 안쪽의 상황을 보고는 잔뜩 놀란 반응을 보였다.
하긴.
수백 마리의 지네 괴물들, 그리고 마치 한 마리의 용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보스의 시체.
이 방 안은 온통 놀랄 만한 것들투성이였다.
‘운이 좋았네.’
마지막 튜토리얼 지역 안에 숨겨져 있는 히든 던전.
대체 저들이 어떻게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보아하니 저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것 같았다.
‘나보다 빨리 왔으면 전멸…… 아니면 몇 명 정도는 죽고 도망칠 수 있었으려나.’
일행을 하나둘 살펴보던 유원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엘라도르라면 팔라딘테와 함께 움직일 텐데? 그리고 저 녀석은…….’
자신과 같은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 참가자.
‘이성윤인가?’
꽤 랭킹이 높은 참가자들이었다.
저들이 한데 뭉쳐 팀을 이루고 있었다니.
재미있는 파티였다.
“조금 늦었다.”
유원의 말에 보스룸을 살펴보고 있던 일행이 유원을 발견했다.
“이 녀석, 방금 숨이 끊어졌거든.”
“넌…….”
“설마, 이놈들을 다 혼자서?”
유원을 발견한 참가자들이 하나둘씩 몸에 힘을 주고 경계하는 자세를 취했다.
아무래도 혼자서 보스룸을 공략해 낸 유원을 위험인물로 판단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팀장이라면 가능할까?’
이성윤은 보스룸에 널려 있는 괴물들의 시체를 보며 생각했다.
황금빛의 전격을 몸에 두르고 일권(一拳)에 십수 마리의 괴물들을 터뜨려 죽이는 하르간.
그는 스스로 이 튜토리얼의 최강자임을 선언했고, 그의 실력을 본 팀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과연, 글쎄?
하르간이라면 이 보스룸의 공략을 혼자서 해낼 수 있었을까?
‘저 흔적…….’
바닥에 움푹 파여 있는 거대한 구덩이.
이게 정말, 자신과 같은 세계에서 나고 자란, 그리고 같은 튜토리얼을 진행해 온 참가자의 실력이란 말인가?
꿀꺽-.
이성윤은 침을 삼켰다.
눈앞에 있는 저 자는 맹수였다.
“당신이 김유원입니까?”
이성윤은 방금 전, 순식간에 치솟은 유원의 공적치 점수가 떠올라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비밀로 하고 숨길 이유는 없었다.
“다른 일행은 없습니까?”
“나 혼자다. 보다시피.”
유원의 대답에 이성윤은 왜 그렇게까지 하르간이 유원을 탐내는 건지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자신과 같은 세계에서 온 사람이, 어떻게 하르간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 건지.
하르간의 팀으로 들어가며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대략적으로나마 들었기 때문에 더더욱, 유원이 하르간과 같은 선상의 실력자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정말이었어.’
저자가 팀에 들어온다면 어떻게 될까?
하르간과 김유원, 욜체와 두 엘프 전사 엘라도르와 팔라딘테.
전부 튜토리얼에서 손꼽히는 실력자들이었다.
하르간은 팀을 만들고자 했다.
그 팀을 탑의 정상까지 세워 함께 랭커가 되고, 올림포스의 인정을 받고자 했다.
그렇기에 그는 유원을 탐냈다.
“저희 팀에 들어오실 생각 없습니까?”
이미 하르간은 한 자리를 유원의 자리로 남겨 두었다.
이성윤 역시 유원과 함께하고자 하는 열망이 커졌다.
다른 일행들 역시 마찬가지.
이성윤의 제안에 유원은 그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김명훈과는 다른데.’
비슷한 제안을 김명훈에게서도 들은 적이 있었지만, 두 사람의 제안은 천지 차이였다.
김명훈은 유원과 ‘팀’을 만들 생각이 없었다. 그가 바랐던 건 단지, 자신을 더 편하고 안전하게 만들어 줄 울타리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팀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가 아닌, 옆에서 함께 싸울 동료로 생각하고 있었다.
‘엘프족인 엘라도르는 그렇다 치고. 그럼 저 여자는 욜체? 정신력들이 제법인데.’
유원은 잘 큰 어린애 보듯 그들을 바라보았다.
‘하르간이 모은 녀석들인가? 잘 선별했어.’
탑의 초창기, 엘라도르와 팔라딘테는 하르간과 함께 탑을 올랐다.
중간에 모종의 이유로 팀에서 갈라섰다지만, 결코 나쁜 인연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했다.
‘그 일’이 벌어지던 때, 엘라도르와 팔라딘테는 하르간의 편에 섰던 것이다.
‘생각보다 큰 팀이다. 싹도 크고. 욜체는 엘라도르 남매보다 랭킹도 높아. 여기까지 온 것만 봐도 튜토리얼 수준은 아니란 거고…….’
팔라딘테가 함께 없는 걸 보면 아무래도 효과적인 사냥을 위해 하르간과 팀을 잠시 분리한 듯했다.
제안은 고맙지만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거절하지.”
“……역시.”
예상하고 있던 대답에 이성윤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유원은 굳이 팀을 구할 필요가 없을 만큼 강했다. 더군다나 앞서 하르간이 그에게 동료가 될 것을 제안했을 때, 유원은 이미 거절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굳이 자신의 제안을 받을 이유가 있을까?
그렇게 이성윤이 체념하고 있을 때였다.
“그렇다면 당신은, 혼자서 보스를 공략할 생각인가?”
욜체가 유원을 향해 성큼 다가왔다.
그녀가 말하는 ‘보스’란 이곳에 쓰러져 있는 거대 지네 같은 녀석이 아니었다.
튜토리얼의 섬, 바라간다.
그곳의 꼭대기에 서식하고 있는 최종 보스를 의미했다.
“이 튜토리얼은 한 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져 있다. 게다가 개인이 아닌, 다수가 힘을 합쳐 보스를 사냥해도 문제가 없도록 설정되어 있지.”
유원은 계속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 마지막 튜토리얼의 핵심은 ‘팀’이다. 주어진 시간 동안 얼마나 성장하고, 얼마나 많은 동료를 모아 힘을 합칠 수 있느냐가 관건이란 말이다.”
맞는 말이었다.
실제로도 이 마지막 튜토리얼은 그렇게 구성되어 있었다.
절대로 혼자서는 잡을 수 없는 보스.
한 달이라는 성장시간, 수단과 방법은 상관없는 무대.
개인이 잡을 수 없는 보스를 ‘팀’을 이루어 사냥하는 것. 그것은 말하자면 저 드높은 탑을 올라가는 가장 기본이 되는 방식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쾅-!
콰르르르-.
소리가 들렸다.
천둥이 터지며, 땅이 미약하게 흔들렸다.
무언가가 아니, 누군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팀장에게 연락했어요.”
엘라도르의 짓이었다.
“김유원을 발견했다고 하니까, 바로 이쪽으로 온다고…….”
그녀의 말에 이성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연락을 넣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 거리를 달려왔단 말인가.
“한바탕 시끄러워지겠군.”
그토록 찾고 있던 김유원과의 만남.
성격 급한 하르간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아마 첫 인사는 결코 조용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번쩍-.
쿠릉-.
이성윤의 옆으로 한 줄기 금빛의 전류가 지나쳐갔다.
따끔거림에 깜짝 놀라 주춤거리는 것도 잠시.
“김유원-!”
쾅-!
하르간의 몸이 높게 솟아오르더니, 그대로 유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드디어 잡았……!”
그 순간.
콱-.
하르간의 시야가 검게 뒤덮이더니, 앞으로 날아가던 몸이 뒤쪽으로 죽 밀려났다.
‘어?’
뭐가 어떻게 된 일일까.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바로 다음 순간에 머리에서 느껴진 충격 때문이었다.
쾅-!
하르간의 몸이 유원이 깔고 앉아 있던 거대 지네의 껍질에 처박혔다.
달려들던 힘 그대로, 유원이 하르간의 머리를 잡아 내리찍은 것이다.
“…….”
“어……?”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일에 이성윤을 비롯한 일행이 잠시 멍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
유원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르간을 거대 지네의 몸속에 처박아 놓고는 욜체를 바라보았다.
“너희가 원하는 건 ‘생존’이냐? 아니면 랭커가 되는 건가?”
욜체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랭커라니.
탑의 순혈도 아닌 유원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아는 걸까 싶었다.
탑의 모든 시험을 극복하고 모든 층을 공략한 존재.
랭커.
권력과 명예,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는 힘.
탑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신비로운 것들을 모두 가지기 위해서라도, 탑의 플레이어들은 랭커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런 거면 소꿉놀이는 너희들끼리 해라. 고작 그런 꿈에 어울려 놀아 줄 생각은 없으니까.”
“당신은 다르다는 뜻인가?”
욜체는 더 이상 유원을 평범한 튜토리얼 참가자로 보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자신과 같은 순혈.
이성윤과는 이름만 비슷할 뿐, 전혀 다른 존재라고 봐야 했다.
“아니, 다를 건 없지. 나도 언젠가 랭커가 되어야 하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과정일 뿐이지, 목적은 아니야.”
저들은 분명 좋은 팀이다.
당장 눈앞에 있는 엘라도르만 해도 미래에는 훌륭한 랭커가 되고, 탑에 이름 떨치게 되니까.
하르간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유원은 저들과 함께할 수 없었다.
유원이 바라는 건, 단순한 개인의 성장과 몸의 안위 따위가 아니었으니.
“목적지가 다른 자들과 팀을 이룰 생각은 없다. 그게 내 대답이다.”
욜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랭커가 되기를 소망하는 것만으로도 탑에서는 비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었다.
터무니없는 꿈이라며.
아직도 그런 현실성 없는 꿈을 꾸고 있냐며, 누군가는 바보취급을 한다.
그런데 유원은 오히려 반대였다.
그는 고작 꿈이 그거밖에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랭커가 아니면 하이랭커라도 되겠다는 거냐?”
“아니, 그보다 더 위.”
유원은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켰다.
“나는…….”
랭커, 그보다 더 높은 곳.
이번 삶에서 유원이 향할 최종 목적지는 랭커나 하이랭커, 탑의 정상 따위가 아니었다.
“이 탑의 천장을 부숴 버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