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31
* * *
손오공의 눈앞으로 몇 갈래의 길이 보였다.
“……어디지?”
화안금정을 사용한 눈으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복잡한 미로.
오행산이라는 거대한 동굴 안에서는 이렇게 갈라진 길이 수십, 수백 번이 나타났다.
마음 같아서는 다 부숴 버리고 길을 만들고 싶었는데, 그럴 수도 없었다.
“끙…… 머리 아프네, 진짜.”
화륵-.
손오공의 눈동자 위로 오행산의 복잡한 미로가 손바닥 들여다보듯 보였다.
길은 어려웠지만 찾는 게 불가능하진 않았다.
“아직은 네가 나보다 더 눈이 좋다.”
전날 밤.
분신들과 우마왕을 모아 놓은 자리에서, 유원은 첫 번째 분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건 네 역할이다.”
“그럼 난? 안 싸워?”
“그냥 뚫어 낼 수 있다면 상관없지. 하지만 아마 그럴 가능성은 낮을 거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손오공은 고개를 저었다.
“싫다. 네가 해라.”
“아까도 말했지만 이건 시간 싸움이다.”
길을 찾아, 한 시라도 빨리 주술의 핵이 있는 곳까지 도달하는 것.
유원은 바로 그 지겨운 역할을 자신에게 부여했다.
“네가 해야 한다.”
“아 놔, 진짜…….”
단지 화안금정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이런 일을 해야 하다니.
오랜만에 천계와 신나게 싸울 기대에 부풀어 있던 그에게는 실망스러운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봉인의 주술을 푸는 방법은 두 가지다.”
누가 봉인을 풀 것인가가 정해지자, 우마왕은 봉인을 풀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첫 번째는 오행산 전체에 깔린 주술 자체를 파훼하는 방법이지. 그리고 그건, 나만이 가능한 방법이고.”
“첫 번째가 있으면, 두 번째도 있는 겁니까?”
손오공이 체념한 듯 묻자, 우마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두 번째 방법은, 주술의 핵을 찾아 그 주술과 반대되는 주술을 거는 거다. 조건이 필요하긴 해도 그 조건이 갖춰지기만 하면 이 편이 훨씬 쉽다.”
“왜입니까?”
“주술의 핵은 부적이나 구슬처럼 작고 비교적 힘이 약한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생각보다 더 쉽게 흔들리고, 작은 충격에도 약해지기 마련이지.”
스윽-.
손오공은 품 안에 넣어 둔 노란색의 부적을 꺼내 들었다.
“정말 이게, 그런 힘이 있다고?”
킁킁-.
냄새를 맡아 보니, 마나의 냄새가 나긴 했다. 하지만 이 얇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종이 하나가 정말 본체를 가둔 주술을 풀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하긴.”
잠시 멈춰 서 있던 손오공은 복잡한 생각을 접고, 다시 길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 풀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니까.”
* * *
콰우욱-!
탁탑천왕의 이 유원의 몸을 반으로 갈랐다.
이번에야말로, 라는 생각도 잠시.
유원의 몸이 번개가 되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파지짓-.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나타난 유원이 서둘러 망가진 균형을 잡았다.
다시 벌어진 거리에 탁탑천왕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미꾸라지처럼 잘도 피해 다니는군.”
콰욱-!
그 말을 하면서도 탁탑천왕의 창은 쉬지 않았다.
유원은 이번에도 창을 피해 냈다. 화안금정을 통해 탁탑천왕의 창이 움직일 경로가 확실하게 보였다.
뿐만 아니라.
‘보인다.’
어디를 향해 검을 휘둘러야 할지도, 명확하게 보였다.
슈악-.
눈에 보인 하나의 점을 향해 찌른 검.
쩡-!
그 검을 급히 막아 낸 탁탑천왕이 놀라 뒤로 물러났다. 순간,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머리가 꿰뚫릴 것 같은 위협이 느껴졌던 것이다.
“이거…… 체면이 말이 아니군.”
툭, 툭-.
탁탑천왕은 구부정한 허리를 손등으로 두드리며 유원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 상당히 거슬려.”
유원의 움직임은 기묘했다.
분명 그렇게까지 빠르지 않은데, 자신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탁탑천왕은 그것이 화안금정의 능력 중 하나임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탁탑천왕이 유원의 움직임을 번거로워 하는 그 순간.
유원은 탁탑천왕의 창끝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며, 온몸의 감각을 그 어느 때보다도 바짝 곤두세우고 있었다.
‘쫓아갈 수 있다.’
100위권 안쪽의 하이랭커.
분명 이 탑의 최상위 하이랭커에 근접해 있는 그의 움직임을 쫓아가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과거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꽤 상당한 성과인 것도 사실이었다.
‘화안금정을 얻은 이 시점에 500위 언저리까지만 도달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꽈악-.
직접 그 성과를 시험해 줄 사람이 눈앞에 있으니, 꽤 보람이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정면 승부는 무리지만 말이지.’
탁탑천왕과 유원의 싸움은 퍼부어 오는 공세를 화안금정과 감각지대의 힘을 빌려 피해 내고, 부족한 힘을 거인화의 힘으로 매우는 게 전부였다.
방금처럼 한 번씩 반격을 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쩌다 한 번 정도일 뿐.
“계속 피하기만 할 생각인가?”
그리고 그 사실을 알기에, 탁탑천왕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렇게 가다간 결국 자신이 이길 수밖에 없었고, 그 사실을 유원이 모를 리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보이나?”
쿠르르르-.
하늘 위에서 들리는 천둥소리.
탁탑천왕의 고개가 위로 올라갔다.
“그럼 잘못 봤어.”
번쩍-!
하늘 위에서 샛노란 빛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탁탑천왕의 창이 위로 향했다.
휘릭, 휘리리릭-.
파직, 파지지지지-!
탁탑천왕의 머리 위로 떨어진 벼락이 회전하는 창에 가로막혔다.
창에 전격을 휘어감은 탁탑천왕은 곧장 그것을 양손으로 움켜잡고 휘둘렀다.
꽈릉-!
벼락이 힘이 다시 유원에게로 향했다. 유원은 우라노스의 심장을 앞으로 뻗어 벼락을 다시 삼켜 냈다.
나름대로 회심의 한 수였는데, 그게 이렇게 쉽게 가로막히니 유원은 내심 김이 빠졌다.
‘이런 걸로는 안 되나.’
탁탑천왕은 완전한 무장이었다.
세간에는 그가 이랑진군의 스승이라는 이야기가 떠돌 만큼, 두 사람은 닮은 구석이 있었다.
창이라는 주 무기와 비슷한 창술, 그리고 단단한 육체까지.
그는 특별한 스킬 없이 오로지 육체와 창이라는 무기 하나만으로 이 자리까지 오른 랭커였다.
“특이한 재주를 부리는군. 그건 제우스의 힘인가?”
오래된 고대의 하이랭커답게, 탁탑천왕은 유원이 지닌 능력들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 능력이 양파처럼 하나둘씩 까질 때마다 유원을 향한 그의 호기심은 점점 커져 갔다.
“자네, 우리 천계와 함께 일할 생각 없나? 만약 그러겠다면 이 일에 대한 죗값은 내가 옥황께 대신 빌어 보도록 하지.”
이랑진군과 같은 제안.
천계의 대역죄인인 제천대성을 구출하려 한 건 천계대전을 다시 일으키는 것과 다름이 없는 죄였다.
그런데도 탁탑천왕은 그런 죄를 지으려는 유원을 자신들의 품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었다.
그만큼 유원이 탐이 난다는 뜻이었다.
“거절하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그래?”
“이미 몇 번 들어 본 제안이다. 이번이라고 대답이 다를 리 없지.”
“그래?”
탁탑천왕은 턱을 쓰다듬으며 묘한 눈으로 유원을 바라보았다.
“천계의 제안은 거절하고, 천계의 대역 죄인인 제천대성을 구하려 한다라…… 그건 아무래도 이상하군.”
확실히 이상한 행동이었다.
거대 길드의 제안은 거절한 채, 그 거대 길드의 주적인 제천대성을 구하려 하다니.
개인적인 친분이 있지 않고서야 할 리 없는 행동이었다.
“제천대성의 후계자라도 되는 건가? 수상하긴 하군.”
“생각은 자유다.”
“무슨 비밀을 가지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곳에서 죽기에는 아까운 재능인 건 분명하다.”
쿵-.
탁탑천왕은 손에 쥐고 있던 창대를 바닥에 박아 놓고는 유원을 바라보았다.
“제천대성의 후계자가 아니거든…… 아니, 설령 그게 맞더라도 지금은 이쯤에서 멈추는 게 어떻겠는가? 자넬 걱정해서 하는 말이네.”
“걱정할 필요 없다. 우리가 그럴 사이도 아니고.”
“곧 천계에서 지원이 올 거다.”
탁탑천왕의 시선이 위로 올라갔다.
“평천대성과 저 분신들만으로는 힘들 게야.”
우마왕에게는 혼천곤이 없었고, 손오공은 본체가 아닌 분신들이었다.
제아무리 두 사람이 대단하다 한들 과거 천계와 전쟁을 벌인 당시의 전력에 비하면 많이 부족함이 있었다.
“시간은 우리 편일세. 그러니 너무 고집 피우지 않는 게 좋을 텐데…….”
탁탑천왕의 눈이 가늘게 좁혀지며, 위협하듯 다시 유원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
당장 지금 이곳만 하더라도 탁탑천왕이 분신들을 틀어막고 있었고, 이랑진군은 우마왕을 붙잡고 있었다.
만약 이곳에 천계의 장군들, 혹은 나타태자와 같은 주요 전력이 도착한다면.
그때는 정말, 이 전투는 손쉽게 끝날 것이다.
“시간이 너희들 편이라…….”
유원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갔다.
‘글쎄다. 과연 어떨지.’
유원의 시선이 탁탑천왕의 뒤로 향했다.
구름을 뚫고 올라 있는 높은 산.
아마 지금쯤이면 오행산 안쪽으로 향한 손오공의 분신이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두 사람이 잠시 싸움을 멈추고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구구구구-.
우웅-.
오행산 위쪽.
푸르게 펼쳐져 있던 하늘이 흔들리며, 작은 균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두 사람의 시선은 위로 향했다.
“마침 도착한 모양이군.”
쩌어억-.
균열은 순식간에 커졌다.
벌어진 균열 사이사이, 천계의 마차를 탄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천계의 플레이어들. 그리고 랭커들.
그리고 그 사이.
오싹-.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몸을 짓누르는 것만 같은, 오싹한 살기가 느껴졌다.
‘생각보다 더 빠르다.’
이랑진군이 천계에 지원을 요청하고 그들이 도착하기까지 최소 삼십여 분, 길게는 한 시간 정도를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천계에서 역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딱 삼십여 분 정도.
유원을 비롯한 모두가 예상한 그 최소 시간에 맞춰 천계의 지원이 도착한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네.”
탁탑천왕은 아직까지 유원에게 미련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보다시피 이 싸움은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어. 저 많은 병력을 상대로, 자네들이 이길 수 있으리라 보는가?”
쩌억, 쩍-.
균열은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늘어났다.
족히 수천에 달하는 병력.
제아무리 천계에서 수많은 플레이어와 랭커들을 보유하고 있다지만, 이만한 병력이 집결한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아직까지 천계에서는 자네의 존재를 몰라.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회개하게.”
반성, 회개.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회개하라는 걸까.
뜻 모를 말이었지만 유원은 천계의 이런 사고방식을 꽤 잘 알고 있었다.
‘천계는 정의고, 반하는 건 악이다.’
그들의 악과 정의는 그토록 단순했다.
그리고 그건, 눈앞에 있는 탁탑천왕도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고.
“그러지 않거든 아마 자네는 상상도 하기 싫을 만큼 끔찍한 형태로 죽게 될 걸세.”
고오오오-.
하나의 균열 속.
유원과 탁탑천왕은 같은 균열에서 걸어 나오기 시작한 구릿빛 피부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내 자식이지만, 저 녀석은 정말 미친 녀석이거든.”
탁탑천왕의 아들.
천계의 적을 파괴하는, 천계의 가장 뛰어난 무기.
투신(鬪神) 나타태자(哪吒太子)의 등장.
그의 등장은 곧, 천계대전의 발발을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