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35
유원의 눈빛이 흔들렸다.
오랜만이다?
있을 수 없는 인사였다.
분명 눈앞에 있는 손오공은 자신을 모를 텐데.
“표정이 왜 그러냐? 너답지 않게.”
“너…… 뭐냐?”
“보시다시피.”
허리춤에 양손을 받치며 손오공이 어깨를 으스댄다.
“제천대성. 투전승불. 불사신, 손오공님이시지.”
장난스러운 말투였지만 유원은 이 상황을 그냥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너답지 않게.’ 라.
이걸로 확실해졌다.
눈앞에 있는 손오공은 자신을 알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알고 있는 것만이 아니었다.
“너…….”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던 유원은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돌아온 거냐?”
“말하자면 좀 긴데…….”
손오공은 한쪽에서 싸우고 있는 우마왕과 이랑진군을 돌아보더니 말했다.
“저쪽부터 정리하고 마저 이야기할까?”
* * *
이랑진군은 몸을 짓누르는 무게감에 눈을 떴다.
아주 잠시, 정신이 아득히 멀어졌다 다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끄으…….”
팔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켜 보려 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몸을 짓누르고 앉아 있는 한 거인의 힘 때문이었다.
“그냥 누워 있거라.”
우마왕.
그가 자신의 등을 깔고 앉았다.
다리는 꽁꽁 묶인 채였다. 대충 보아하니, 나타태자가 버리고 간 박요삭을 이용한 모양이었다.
무기인 언월도는 우마왕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런 상태로는 두 팔을 움직일 수도, 자력으로 박요삭을 풀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끝났군.’
마지막 순간, 제천대성이 싸움에 끼어든 탓이었다.
몇 수를 버텨 봤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제천대성은…….’
고개를 두리번거려 보니, 저 멀리 손오공이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맞은편에는 유원이 있었다.
“속이 상한단 말이지.”
치이이-.
우마왕은 이랑진군을 깔고 앉은 채, 그의 품을 뒤져 나온 연초를 태우기 시작했다.
“천 년도 넘게 기다려 온 형님도 아니고, 다른 녀석이 먼저라니.”
믿을 수 없는 그 말에 이랑진군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제천대성이 평천대성이 아닌 다른 사람을?’
제천대성의 형님 사랑은 천계에서는 유명했다.
형님 한 명을 구하겠다며 홀로 천계에 쳐들어와 무모한 싸움을 벌였던 게 바로 제천대성이었으니까.
실제로 그 싸움에 끼어 제천대성을 막아섰던 이랑진군으로서는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후-.
길게 연초를 뱉어 낸 우마왕의 시선이 유원에게로 향했다.
“그래도 나 역시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오랜만에 맛보는 연초에 우마왕은 그 맛을 음미하며 입을 열었다.
“저 녀석이 어떻게 막내를 알고 있는 건지. 그리고 막내는 어떻게 저 녀석을 알고 있는 건지. 왜, 이렇게까지 해서 막내를 구해 낸 건지…….”
흐려지는 말끝.
자연스레 이랑진군의 시선 역시 유원과 손오공에게로 향했다.
“최소한 당사자들은 알고 있지 않겠느냐?”
* * *
“이제 안 들릴 거다. 형님도 서운하시겠지만, 뭐. 어쩔 수 없지.”
마력을 일으켜 주위의 소리를 차단한 손오공은 주위에 널려 있는 돌 무더기 중 하나를 깔고 앉았다.
유원은 곧, 그의 시선 끝에 우마왕이 걸려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물었다.
“괜찮은 거냐?”
“뭐가?”
“많이 보고 싶어 했잖아? 큰형님, 큰형님 하면서.”
“…….”
손오공은 대답이 없었다.
유원은 잠시 침묵하는 손오공과 저 멀리 이랑진군을 깔고 앉아 있는 우마왕을 번갈아보았다.
만약 눈앞에 있는 손오공이 자신이 아는 녀석이 맞다면.
그는 고작 천여 년을 기다려 온 게 아닌, 그 몇 배나 되는 시간 동안이나 우마왕을 그리워해 왔을 것이다.
“우선순위를 정한 것뿐이다.”
손오공의 눈이 재미있다는 듯 반달 모양으로 휘었다.
“일단은 너. 그다음은 큰형님.”
“중요한 순서냐?”
“당연하지.”
손오공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급한 일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어차피 다 죽을 거니까.”
“……진짜였네.”
눈앞에 있는 손오공은 자신이 알던 손오공이었다.
시계태엽을 이용해 과거로 돌아온, 이 세계선의 손오공이 아닌.
자신과 같은 시대, 같은 세계를 살던 바로 그 손오공인 것이다.
“그럼, 가짠 줄 알았냐?”
“어떻게 된 거냐?”
분명 시계태엽을 이용해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그렇기에 자신들은 누구를 돌려보낼지를 놓고 의논했다.
오딘과 크로노스, 아수라, 비슈누 등, 수많은 랭커들이 모여 후보를 정했고 후보는 총 세 명으로 좁혀졌다.
그리고 그중 돌아온 건 바로 자신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됐다.”
손오공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얼굴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 대답에 유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누가 또 희생한 거냐?”
손오공은 잠시 머뭇거렸다.
대답하기가 어려운 모양.
“말해라. 누군지.”
“미미르다.”
“미미르가?”
“완전히 희생하지는 않았어. 지난 성과가 있어서인지, 눈을 잃는 정도라고 했으니까.”
“눈을……?”
“미미르의 선택이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어.”
안심하라며 한 말이지만 별로 안심은 되지 않았다.
미미르에게 있어서 눈은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눈을 잃어버린 그는 급격히 약해질 것이고, 대부분의 힘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더욱이 그의 옆에는 아직 오딘이 남아 있었다.
“오딘이…… 그걸 허락했어?”
오딘.
미미르의 둘 도 없는 친구이자, 그 누구보다도 미미르를 끔찍이 아끼는 존재.
만약 그가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아우터와의 싸움이 마무리되기 전에 내분이 먼저 일어났겠지.
그런데.
“허락했다.”
손오공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미미르가 설득했지.”
“그런 설득이 통할 만한 이야기가 아닐 텐데?”
“미미르 혼자서라면 그랬겠지.”
“또 누군가 같이 설득을 한 건가? 누가? 무슨 방법으로?”
“너다.”
“……나?”
“그래.”
손오공은 오랫동안 감지 못한 머리가 간지러운지 한 손으로 머리를 벅벅 긁으며 대답했다.
“네가 혼자 돌아갔잖아. 다들, 그게 계속 신경 쓰인 모양이더라고. 오딘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그게 어떻게 나도 같이 설득을 했다는 게 되지?”
“미미르가 도우려는 사람이 네가 아니었으면 오딘도 허락하지 않았을 거니까? 그래서 다들 그렇게 생각하거든.”
“오딘이? 날?”
실감이 잘 나질 않았다.
그 오딘이, 자신을 돕기 위해 미미르가 눈을 희생하는 걸 허락하다니.
유원은 잠시 입을 우물거리다 참고 있던 말을 꺼냈다.
“그쪽은…… 좀 어떠냐?”
줄곧 궁금했던 거였다.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과거가 아닌, 원래의 세계는 어떻게 됐는지.
자신과 함께 싸우던 동료들.
그들이 살아 있긴 한 건지.
그런데 영영 알 수 없는 문제라 생각했던 그걸, 지금 들을 수 있게 됐다.
“아직 개판이지 뭐. 몇 명 더 죽기도 했고. 아, 애들이 하도 당부해서 그런데 누가 죽고 살았는지는 물어봐도 말 안 해 줘. 괜히 말해 봤자 해결될 것도 없고 정신만 사납지.”
물어보기 전부터 대답을 않겠다는 건지 손오공은 곧장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애초에 유원도 그런 걸 물어볼 생각이 없었다.
누가 죽고, 누가 살았고.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아직 살아 있다는 거냐?”
누구든,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거였다.
“응? 누가?”
닫았던 귀를 열며 묻는 손오공.
“누구든.”
“아-.”
그는 씩 웃으며 귀를 틀어막았던 손을 떼고는 대답했다.
“많이 살았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내가 여기 온 것만 봐도 알잖아?”
손오공이 과거로 왔다.
미미르가 눈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들은 손오공을 이곳에 보냈다.
유원을 돕게 하기 위해서.
“그 뒤로 계속 싸웠다. 정말 많이도.”
그렇게 말한 손오공의 눈이, 유원의 속을 꿰뚫어 보았다.
“우리도 계속 싸우고 있었다. 너와 마찬가지로.”
유원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시계태엽을 이용해 과거로 돌아온 후.
자신은 줄곧, 혼자 돌아와 싸우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우터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었고, 이 무거운 짐은 자신이 혼자 짊어져야 하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이 막중한 짐을, 사실은 모두가 함께 짊어지고 있었다.
“안 심심했냐? 다 아는 놈들인데, 널 아는 놈은 하나도 없고.”
손오공은 양손으로 머리를 받치며 고개를 돌려 우마왕을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니까 나만 상대를 기억한다는 게, 꽤 외로운 거겠더라고.”
우마왕은 손오공을 기억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는, 손오공과 같은 세계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가 기억하는 손오공은 훨씬 먼 과거의 손오공일 뿐이었다.
오행산에서 풀려난 후에야 손오공은 그 사실이 실감이 난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돌아온 건 모두의 의견이기도 했지만, 내 선택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니 내가 감수할 부분이다.”
그렇게 말한 유원은 손오공과 눈이 마주치더니 픽 웃음을 터뜨렸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래도 막상 이렇게 다시 보니 느낌이 새로웠다.
“그래도 너라도 와서 반갑다.”
마치 새까만 흑백 세상 속에 눈앞에 있는 손오공 혼자만 색이 입혀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인도에서 처음 사람을 발견하면 이런 기분이 들까 싶었다.
‘전부 싸우고 있다라…….’
혼자가 아닌 둘.
아니, 다시 여럿이 된 기분.
무겁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졌다. 누군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딘가에서 함께 싸우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 이렇게 많은 게 달라질 수 있구나 싶었다.
유원은 그제야 손오공과 마찬가지로 편하게 앉을 수 있었다.
“다들 뭐 하고 지내지? 오딘이야 여전할 테고. 용왕이나 간다르바, 헤라클레스 같은 녀석들은?”
간만의 안부였다.
천계와의 첫 번째 싸움이 막 끝난 이때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만큼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듣고 나면 마음이 더 가벼워질 것 같았다.
“많이 변했지. 간다르바는 아수라가 죽고 난 후로 말이 좀 없어졌고…….”
어리석은 혼돈을 잡기 위한 싸움이 끝난 후.
대규모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자들이 많았던 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또한, 아우터들의 움직임 역시 전보다 조심스러워졌다.
아무래도 어리석은 혼돈의 죽음이 큰 영향을 미친 모양이었다.
손오공은 계속해서 동료들의 근황을 전했다.
그러던 중.
“헤라클레스는 부쩍 제우스에게 마음을 연 모양이더라고. 함께 죽을 위기를 겪으며 싸우다 보니, 조금씩 진심을 받아들이는 건지.”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에게…… 뭐?”
유원은 귀로 듣고도 의심스러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장난치는 거냐?”
“왜? 헤라클레스가 제우스한테 마음을 여는 게 그 정도로 못 믿을 이야기냐?”
“아니, 그게…….”
눈을 깜박이며 뭐냐 문제냐는 듯 유원을 바라보는 손오공.
오랫동안 지켜봐 온 결과였지만 손오공은 거짓말에는 서툴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런 연기를 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 녀석의 시간 속에는 제우스가 살아 있다.’
그것도 아우터와 함께 싸우는 자신들의 편에 선 채로.
그리고 그건, 유원이 기억하고 있는 미래와는 완전히 다른 미래였다.
‘내가 있던 곳에서는, 분명 헤라클레스의 손에 죽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