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37
* * *
늦은 새벽.
겨우 지난 전투에서 있었던 혼란을 수습한 천계가 분주히 랭커들을 소집했다.
“데려간 병사들 중, 3할이 전사했소.”
“랭커들 역시 마찬가집니다. 아니, 랭커들의 피해가 더 큽니다.”
“부상자까지 더하면 반이 넘소.”
피해 상황을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당장 내일이라도 제천대성이 이곳으로 들이닥칠 수 있소.”
“이번 전투에서 대장군을 잃었소. 이건 천계의 역사에 남을 큰 손실이란 말이오!”
“그래도 투신과 탁탑천왕께서는 아직…….”
“그 투신께서, 이번 전투에서 제천대성에게 패한 걸 모르신단 말이오!”
시끌벅적한 회의장.
그 자리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언성을 높였다.
이 자리에는 대장군도, 투신도 없었다. 회의를 이끌어 갈 주체가 없으니, 아무나 되는 대로 말을 내뱉었다.
투신은 오늘의 전투를 회복하기 위해 급히 치료를 받고 있었다.
서로 누가 잘못했느니, 무슨 위기가 있느니를 놓고 언성을 높이는 회의는 더 이상 회의가 아니었다.
그때였다.
또각-.
회의장 으로 향하는 딱딱한 나막신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애초에…….”
“지금 말 다…….”
언성을 높이며 싸우던 거친 장군들이 목소리를 낮췄다.
장내가 조용해졌다.
모두가 숨소리조차 죽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각-.
나막신을 신은 노인이 탁탑천왕의 호위를 받으며 들어왔다.
푸른 용포를 몸에 두르고 지팡이 하나로 몸을 지탱한 노인은 그리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자신의 자리를 향해 걸어갔다.
“다들 아주 기운이 좋군.”
노인은 기분 좋게 허허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 웃음을 정말 기분 좋은 것이라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천계의 상황은 지난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심각했으니.
“왜들 그러나? 계속 하게. 나도 무슨 이야기들을 그렇게 재밌게 하나, 좀 들어 봐야겠으니.”
뼈가 담긴 노인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난 장군들이 고개를 숙였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허허 웃던 노인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그래?”
턱을 쓰다듬으며 무언가를 고민하던 노인이 앞으로 손을 뻗었다.
“그럼 죽어야지.”
고오오오-.
쩍-.
회의장의 원탁에 금이 가고, 건물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흔들렸다.
그러자.
“조금만 참으시지요.”
노인의 뒤에 선 장군, 탁탑천왕이 입을 열었다.
“지금 이들을 다 죽이면 다음 싸움이 어렵습니다. 그때까지만 두고 보시는 게 어떨지요.”
“그때까지만?”
노인은 앞으로 뻗은 손을 내리고는 그 손으로 긴 수염을 쓰다듬었다.
긴 고민.
노인, 옥황상제는 한참이나 시간이 흘러 입을 열었다.
“너희들의 가치를 증명해라.”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옥황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증명하지 못한 무능한 자는, 내 손에 죽을 테니.”
그 말에 우렁찬 대답이 터져 나왔다.
볼 일을 다 끝냈다는 듯, 옥황은 곧장 자리를 벗어났다.
자신을 보좌하는 탁탑천왕에게 옥황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가까이서 본 제천대성은 어떻던가?”
“듣던 것보다 더 대단했습니다.”
“첫 만남이었지? 자네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없던 녀석이니 말이야.”
천계의 가장 높은 존재인 옥황이었지만 그는 탁탑천왕을 존중해 주었다. 그것은 자신과 함께 천계라는 드높은 길드를 만들어 낸 탁탑천왕에 대한 예우였다.
“그는 우리 천계의 주적이다.”
또각-.
긴 복도를 걸으며, 옥황은 뒤에 있는 탁탑천왕을 향해 말을 이었다.
“그대에게 처리하라 하지는 않을 게야. 그건 이 시대의 젊은 놈들의 역할이니.”
“젊은 놈들만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어렵겠지. 대장군도 없으니.”
“그럼…….”
“하지만 적어도 화살받이 역할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화살받이.
애초에 옥황은 방금 전에 모여 있던 장군들이 제천대성을 잡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인해전술에는 장사가 없다지만, 최상위 하이랭커의 힘은 절대 다수를 짓누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저들은 모른다.
제아무리 제천대성이라 할지라도 천계의 랭커들이 힘을 모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지니고 있었다.
물론, 그 옛날 제천대성과 직접 싸워 본 랭커는 다른 생각이겠지만…….
“다음에 있을 싸움에서 천계는 큰 피해를 입을 게야. 어쩌면 붕괴 직전까지 갈지도 모르지.”
“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비…… 해야지. 해야겠지.”
또각-.
걸음을 멈춘 옥황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계를 위해서 말이야.”
아니.
정확히는 그 너머.
천계의 높은 하늘을 올려다본 것이리라.
“예. 천계를 위해서.”
“그것을 위해서는 저들이 죽어야 하네.”
“……?”
탁탑천왕의 눈이 흔들렸다.
뒤를 돌아본 것도 아님에도 그 표정은 옥황의 눈에 너무나도 훤하게 보였다.
“사람이야 다시 모으면 되고, 무너진 도시는 다시 지으면 그만일세.”
또각-.
옥황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 천계의 중심은 바로 나야. 내가 바로 천계일세.”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탁탑천왕은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 누가 있어 부정할 수 있을까.
옥황의 말대로, 그는 살아 있는 천계 그 자체였다.
또한 달리 말하자면.
‘그만큼 제천대성을 경계하고 계시다는 거겠지.’
탁탑천왕은 옥황의 뒤를 따라가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짧지만, 아주 긴 싸움이 될 것 같았다.
그 속에서 탁탑천왕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김유원.’
옥황은 제천대성이라는 이름에 집중한 듯했지만, 그는 처음부터 줄곧 단 한 명이 신경 쓰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평천대성과 제천대성이 풀려난 원흉이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 늙은 노인의 집념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다.
‘너무 큰 싹이다.’
만약 이 싸움에서 다시 천계가 승리한다 하여도.
김유원이 살아 있다면 먼 훗날, 결국 천계가 멸망한 것이라는 확신.
그 확신은 김유원을 잡겠노라는 집념을 만들어 냈다.
‘이번 싸움에서 내 손으로 잘라 낸다.’
* * *
옷에 달린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세 사람.
천계로 들어가는 검문소 앞에 선 세 사람 중, 가장 성격이 급한 손오공이 입을 열었다.
“시작하냐?”
곧 있을 싸움에 벌써부터 어깨가 들썩인다. 좋지 않은 버릇이 나왔다.
“아마 저쪽에서도 준비를 많이 했을 게다. 방심하지 마라.”
“넌 옛날부터 잔소리가 너무 많아.”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 손오공의 투정에 우마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귀 담아 듣거라.”
“……형님도 똑같습니다.”
“그래.”
저벅-.
우마왕이 앞으로 걸어갔다.
“너나 나나, 성격 급한 건 똑 닮았었지.”
검문소를 향해 걸어가는 우마왕.
유원은 기다란 줄을 무시한 채 걸어가기 시작한 우마왕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형님 성격이 원래 그래.”
손오공은 어깨를 으쓱여 말했다.
“답답한 건 딱 질색하거든. 나랑 다른 건, 필요하면 잘 참기도 한다는 거지만…….”
재미있다는 듯 휘어지는 눈.
“필요하지 않은 일에는 가차 없지.”
저벅-.
우마왕은 검문소 앞에 도달해 잠시 걸음을 멈춰 세웠다.
높고 두꺼운 성벽.
저 안에 천계가 있고, 그 중심부에 옥황을 비롯한 수많은 천계의 랭커들이 있었다.
하나의 거대한 요새와도 같은 바.
“누구요?”
그렇지 않아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긴장해 있던 천계의 병사들이 줄을 무시한 채 앞으로 걸어온 우마왕을 경계하고 나섰다.
잠시 동안 하늘과 닿을 듯 높은 성벽을 바라보던 우마왕이 이내 자신의 주위를 둘러싸기 시작한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천계에 대단한 충성심을 가진 자가 아니거든, 바로 이곳을 벗어나길 바라네.”
꾸욱-.
우마왕의 주먹이 쥐어졌다.
“난 지금부터 너희들의 하늘을 고꾸라뜨릴 생각이니 말이야.”
고오오오오-.
쿠직, 쿠드드-.
우마왕이 딛고 서 있는 땅이 움푹 파였다.
급격히 불어나기 시작한 마력의 흐름에 병사들이 당황했다.
“호, 혹시…….”
“젠장, 왔다!”
병사들은 숫자를 믿고 우마왕을 공격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다.
이미 천계의 말단 병사들에게까지 제천대성과 평천대성의 공격에 대한 소식이 전해져 있었던 모양.
병사들은 하나둘,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우마왕에게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부우웅-.
높은 성벽을 향해, 우마왕의 주먹이 뻗어졌다.
콰앙-!
쿠직-!
높고 단단한 성벽이 휘어졌다.
아주 오랫동안 천계의 터전을 보호하던 벽이었다.
당연히 그리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콰앙, 쾅-!
성벽을 향해 뻗어진 우마왕의 주먹은 한 번에서 멈추지 않았다.
콰아앙-!
쩌저, 쩌저저저-.
성벽에 생겨나기 시작한 금.
그 갈라짐은 순식간에 기다란 성벽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커져라-.”
뒤쪽에서 손오공의 여의봉이 성벽을 향해 겨눠졌다.
“여의.”
투쾅-!
거대한 봉이 위태롭게 흔들리던 성벽을 강타했다. 우마왕의 주먹과 거의 동시에 성벽을 때린 여의봉은, 끝내 천계를 둘러싸고 있던 성벽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쿠르, 쿠르르르-.
길게 이어진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 성벽.
“내가 마무리할 수 있었다.”
“참고 있기가 어려워서 말입니다.”
어느새 다시 줄어든 여의봉을 손에 움켜쥔 손오공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우마왕의 눈썹 한쪽이 꿈틀거렸다.
“나중에 혼날 줄 알거라.”
우마왕의 엄포에도 손오공은 히죽 웃어 보일 뿐이었다.
지금 당장, 그의 머릿속에는 오랜만에 신나게 싸울 생각밖에는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명심해라.”
활활 타오르던 손오공의 머릿속에 찬물이 끼얹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가장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이 뭔지.”
“……아, 예.”
손오공은 김이 샌 얼굴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너랑 싸우는 건 재밌는데, 너랑 같이 싸우는 건 역시 재미가 없어.”
쿠르르르-.
무너진 성격에서 피어오른 먼지가 서서히 걷혀졌다.
여의봉을 손에 움켜쥔 손오공의 화안금정이 그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만큼 승률은 확실히 올라가지만 말이야.”
우글우글한 천계의 병사들.
아무래도 미리 자신들이 올 걸 알고 있었는지, 꽤 준비를 갖춘 모습들이었다.
그리고 그중.
“제천대성은 지금 당장 투항하라!”
정말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이며, 그들의 대표로 보이는 천계의 장군이 앞으로 나섰다.
“지금 바로 투항할 시, 상제께서는 대부분의 죄를 용서하겠다 하셨다! 이 자비를 무시할 시…….”
“아, 시끄러워.”
쩌렁쩌렁한 목청에 손오공은 귀를 후볐다.
그 시큰둥한 반응을 보았을 텐데도 장군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대들이 천계를 상대로 승리할 방법은 없으니, 지금 즉시 투항하기를 권고한다!”
“……뭐래?”
시큰둥하던 손오공의 눈빛이 달라졌다.
고개를 돌린 손오공이 유원을 바라보았다.
“너도 알지?”
“뭘?”
“나랑 천계랑 싸워서 누가 이겼는지.”
“당연히 안다. 네가 몇 번을 자랑했는데.”
“맞아. 내가 이겼어.”
휘리릭-.
“심지어 그때는 나 혼자였고.”
손오공은 여의봉을 빙빙 돌리며 천계의 본진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게다가 지금은 셋이지.”
화르륵-.
화안금정 속에 천계의 병사들의 모습이 담겼다.
“커헉!”
“헉!”
“후으읍……!”
제천대성이 서서히 가까워지며, 그 앞을 가로막고 있던 병사들이 하나둘 픽픽 쓰러져 갔다.
아깝게 여의봉을 휘두를 것도 없었다.
웬만한 플레이어들은 감히 제천대성의 눈앞에 서 있지도 못할 테니.
“조무래기들은 필요 없다.”
저벅-.
천천히 병사들의 중심까지 걸어간 손오공이, 입에 거품을 물고 있는 장군을 바라보았다.
“옥황새끼 나오라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