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4
* * *
한동안 욜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탑의 천장을 부숴?
생각도 해 보지 못한 말이었다.
탑의 선택을 받지 못해, 그저 탑의 중간층에 머물러 있던 그녀에게 랭커란 그저 꿈같은 존재였다.
그녀의 일족을 이끄는 한 명의 왕.
그가 바로 자신이 그토록 동경해 마지않던 랭커였으니까.
그런데 그 꿈이, 눈앞에 있는 유원에게는 단지 과정의 하나에 불과하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게 무슨 짓이냐!”
욜체의 말은 중간에 끊어져서 이어지지 못했다.
유원에게 처박혀 있던 하르간이 일어난 것이다.
그는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유원을 노려보았다. 잔뜩 이빨을 드러냈지만, 하르간은 유원에게 다시 덤비지는 않았다.
그런 하르간의 반응에 유원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먼저 죽일 듯이 달려들어서 말이지. 공격하는 줄 알았다.”
“그냥 잡으려던 거였다.”
하르간은 5번 튜토리얼이 시작되던 때 유원을 쫓아오다 놓친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그때의 일은 가슴에 남겨 두고 있었던 모양.
하지만 유원은 그런 하르간의 심정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누구라도 그렇게 달려들면 무서울 수밖에 없잖아.”
“어…….”
유원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하르간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러네. 미안하다.”
생각보다 미지근한 반응이었다.
잔뜩 화라도 낼 줄 알았는데.
의아해 하던 차, 하르간이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건 그렇고 너, 우리 팀에 들어와라.”
방금 전에 자신의 머리를 처박은 상대에게 하는 말이었다.
속도 없는 건지.
유원은 했던 말을 또 해야 하나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대답은 저 녀석한테…….”
“안다. 다 들었다.”
“들었어?”
“흥미로운 이야기라 듣고 있었다. 천장을 부순다라. 그거 아주 짜릿한 이야기야.”
콰지지, 파직-.
하르간의 몸에서 전류가 흘렀다.
잔뜩 흥분했다는 증거였다. 어지간히 몸이 튼튼한지, 그는 유원에게 머리가 처박히고도 멀쩡해 보였다.
“아버지한테 들은 적이 있다. 이 탑의 ‘바깥’에는 더 큰 힘이 숨겨져 있다고.”
“아버지한테?”
“넌 모르겠지만 엄청 대단한 분이시다.”
하르간의 우쭐한 표정을 보면 아무래도 아버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의 아버지는 올림포스의 왕이자 최상위 하이랭커인 제우스였으니까.
한 층의 관리자와도 비견할 만한 힘을 가진 그는 거대한 탑을 쥐고 흔드는 몇 안 되는 존재였다.
“그래, 맞다. 정어리는 고래와 함께 헤엄칠 수 없는 법이지. 하지만 나를 고작 정어리 따위로 생각하지 마라. 나는 언젠가 올림포스의 왕이 될 거니까.”
파격적인 선언에 놀란 건 오히려 유원이 아닌 욜체였다. 그녀는 이 자리에서 유원과 함께 ‘올림포스’가 가지는 이름의 무게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무수히 많은 랭커들과 하이랭커들의 집단. 탑의 여러 층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신과 같은 존재들.
하르간은 지금, 바로 그들의 왕이 되겠다 말하고 있는 것이다.
“포부는 꽤 크네.”
유원은 하르간의 말에 픽 웃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웃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얼굴의 웃음기는 금방 지워졌다.
‘왕이 되겠다라…… 그래서였나?’
유원은 자신만만한 표정의 하르간을 바라보았다.
농담 같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유원이 기억하고 있는 ‘그 일’을 생각해 보면, 하르간이라는 패는 어쩌면 꽤 큰 변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올림포스의 적통.’
계획의 수정은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지만.
‘어차피 미래는 바뀌어야 한다.’
어쩌면 하르간이라는 패는 꽤 쓸 만한 골드카드가 될지도 모른다.
‘어떻게 한다…….’
유원이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정 못 믿겠다면 증명해 보면 되겠나?”
하르간의 말에 유원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증명? 뭘?”
“내기를 하는 거다. 누가 더 빨리 보스를 잡는지. 누가 더 많은 공헌도를 쌓는지를. 너는 너 나름대로 팀을 만들어도 좋아. 그게 몇 명이든 상관없다.”
“너희는?”
“우리 팀은 아홉 명이다. 이 인원에서 더 증원은 없을 거다.”
꽤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유원은 몇십, 몇백 명의 팀을 만들어 보스를 잡아도 되지만 자신들은 단 아홉 명이서만 움직이겠다니.
“대신 내기에서 내가 이긴다면 우리 팀에 들어와라.”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잘됐다 싶어 유원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물었다.
“내가 이기면?”
“내가 널 형님으로 모시도록 하지.”
“형님은 됐다. 너 같은 동생 둬서 뭐 좋다고.”
잠시 고민하던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기면 내가 필요할 때 한 번, 날 도와서 움직여라.”
“한 번?”
“왜?”
“아니, 그거면 되나 싶어서. 좋다. 너무 무리한 요구만 아니면 뭐든 괜찮아. 원한다면 내 아이템이라도 넘겨주지.”
하르간은 꽤 자신에 차 있었다.
아무래도 내기에서 자신이 무조건 이길 거라 생각하는 모양.
유원은 ‘아이템’이라는 말에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좋겠네.”
올림포스의 순혈, 하르간의 아이템이라면 분명 대단한 것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나 튜토리얼이 끝나고 탑에 올라가면 그의 영향력은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테니, 그의 도움은 큰 힘이 될 게 분명했다.
“그럼 내기는 성립된 건가?”
“그래.”
“재밌겠네. 흐흐흐.”
쾅-.
하르간은 두 주먹을 부딪치며 즐거운 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방금 전, 유원에게 얻어맞은 충격은 별달리 없는 모양이었다.
“그럼 나중에 1층에서 보자고. 그때는 너무 빼지 말고.”
그는 몸을 돌려 일행들에게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유원은 새삼 하르간의 몸뚱이가 얼마나 단단한지를 깨닫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하긴. 저러니 열흘 만에 튜토리얼을 끝냈겠지.’
정말 무식한 녀석이었다.
앞으로 약 일주일 후.
녀석은 이 팀으로 보스를 공략해 낼 만한 힘을 갖춘다.
“자, 자. 다들 들었지? 어서 서두르자고. 일정대로 움직이려면 빠듯할 테니까.”
하르간은 일행을 데리고 보스룸을 나섰다.
시간을 확인한 유원은 하르간과 함께 떠나는 팀을 향해 말했다.
“그렇게 급히 움직일 필요 없어.”
보스룸을 나서던 하르간은 고개를 돌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기가 시작된 마당에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다니.
유원은 어깨를 으쓱이며 설명을 덧붙였다.
“시간을 확인해 봐라.”
“시간……?”
“갑자기 왜…… 어?”
튜토리얼이 끝나기까지 시간을 확인한 일행의 눈이 커졌다.
하르간 역시 깜짝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뭐냐, 이거?”
[제한 시간 : 632 : 07 : 46] [제한 시간 : 632 : 07 : 46] [제한 시간 : 632 : 07 : 46] […… ]시간이 줄어들지 않는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튜토리얼에 대해서라면 올림포스의 순혈로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하르간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왜?
하르간의 표정에 떠오른 질문에 유원이 대답했다.
“바르간다는 섬이 아니다.”
이 튜토리얼의 무대는 가상으로 만들어진 섬이 아니었다.
“신수(神獸)지.”
거대한 생명체.
작은 나라와도 같은 덩치를 가진, 거대한 신수(神獸)의 몸 위가 바로 이 튜토리얼의 무대였던 것이다.
유원의 대답에 하르간은 바닥에 깔려 있는 지네를 닮은 괴물들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그럼 이 녀석들은…….”
“기생충이다. 이 거대한 생명체의 몸속에 자리 잡고 힘을 빨아먹으며 줄곧 괴롭혀 오던. 바르간다는 이놈들 때문에 더 이상 바다 위에 떠 있지 못하고 다시 잠수하려던 거다. 바닷속에 들어가 물이 빨려 들어오면 기생충들은 더 살지 못하니까.”
“그럼 이 거대한 괴물은 그 기생충들의 왕 같은 거였나?”
“비슷한 거지. 이놈이 기생충들을 계속 낳고 기르고 있었으니까.”
황당한 이야기였다.
하르간은 이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올림포스조차 모르던 정보.
그런데 그걸, 출신과 정체도 모를 한 튜토리얼 참가자가 알고 있었다.
“그럼 이제…….”
유원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제한 시간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거지.”
“5번 튜토리얼은 시간 싸움이다. 얼마나 많은 제한 시간을 남기고 보스를 사냥하느냐지.”
“어떻게 일주일 만에 그 녀석을 잡았냐고? 이런 자리니까 하는 말이지만, 사실 일주일이 아니었다.”
“바라간다는…….”
오딘이 일주일 만에 5번 튜토리얼의 보스를 사냥할 수 있었던 이유.
그 히든 피스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관리자든 심부름꾼이든 개입은 하겠지. 제한 시간을 무제한으로 두지는 않을 테니까.”
충분히 쉴 만큼 쉬었다고 생각한 유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튜토리얼을 끝내는 건 그때다.”
* * *
제한 시간이 줄어들지 않는다.
튜토리얼의 참가자들은 하나둘씩 그 사실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오륜가?”
“나만 이렇게 보이는 거 아니죠?”
“나중에 갑자기 시간이 확 가 버리는 거 아니야?”
“조금 있으면 다시 움직이겠지.”
참가자들은 다시 사냥을 시작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레벨을 올리고, 점수를 획득해야 한다.
5번 튜토리얼까지 올라온 참가자들은 극악의 생존율을 뚫고 살아남은 탑의 예비 플레이어들.
그들은 앞을 생각하며 자신을 단련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각.
-기생용이 사냥당하다니…… 이건 오딘 때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인데.
-관리자님은? 이쪽 소식 아직 모르시고?
-얼마 전 일로 올림포스랑 시비가 붙었잖아. 그걸로 지금 바쁘신가 보더라고.
심부름꾼들은 죽을 맛이었다.
튜토리얼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데리고 온 장치가 사냥당해 버렸다.
그로 인해 튜토리얼은 ‘오류’를 일으키고 있는 상황. 하지만 당장 그걸 어떻게 해결할 만한 방법이 없었다.
-누구든 관리자님에게 연락 좀 넣어 봐!
-저게 어디 발견될 만한 장소에 있는 것도 아니고…….
-젠장. 오딘 때 이후로 이런 적은 없었잖아?
심부름꾼들은 혼란에 빠졌다.
그들은 어떻게든 튜토리얼을 다시 정상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움직였다.
물론, 관리자까지 자리를 비운 마당인 만큼 빠른 시일 내에는 불가능했다.
그렇게 시간은 멈춘 채 흘러갔다.
* * *
쿵-.
파닥, 파다다닥-.
숲의 바닥을 흔드는 울림.
그리고 숲을 후끈 덥힌 열기에 새들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거대한 몸뚱이를 가진 오크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륵-.”
“취익, 족장.”
“취익, 인간. 취이익.”
“취익, 괴물. 취익, 이다.”
붉은 피부를 가진 오크 무리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겁을 집어먹은 모습.
불길이 퍼진 숲의 중앙에는 4미터에 달하는 키와 비대한 몸집을 가진 거대한 오크가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누구 보고 괴물이래.”
푝-.
붉은 오크 족장의 머리에서 칼을 뽑아낸 유원이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취익! 위험. 취익! 도망!”
“취이익!”
살아남은 붉은 오크들 몇 마리가 서둘러 도망가기 시작했다.
“쯧.”
아수라장이 된 숲의 한가운데 선 유원은 짧게 혀를 찼다.
원래라면 서둘러 쫓아갔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제한 시간 : 632 : 01 : 12] [제한 시간 : 632 : 01 : 11] [제한 시간 : 632 : 01 : 10] […… ]붉은 오크 족장을 사냥하는 사이,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심부름꾼들이 어긋난 튜토리얼의 생태계를 정리한 모양.
이건 기생용을 다시 사냥하는 걸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미 한 번 어긋난 장치를 다시 끼우지는 않았을 테니까.’
결국 또다시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된 셈.
‘한 사흘 정도 벌었나.’
그래도 생각보다 꽤 많은 시간을 벌었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그럼 슬슬…….”
유원은 가까이 보이는 섬의 꼭대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가 볼까.”
신들이 사는 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