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40
* * *
플레이어의 힘을 결정짓는 요인은 세 가지였다.
레벨에 따른 스탯.
그 스탯을 이용해 사용하는 스킬.
그리고 그 두 가지를 함께 강화해 주는 아이템.
수많은 플레이어들은 그 세 가지를 놓고 어느 게 가장 중요하냐를 놓고 싸웠다.
하지만 랭커가 된 자들은 모두가 안다.
진정으로 실력 있는 플레이어는 스킬의 숙달에 소홀이 할 리 없으며, 그 기반인 스탯을 등한시할 리 없다.
그리고 얼마나 귀한 아이템이든 결국 그것을 지켜 내는 것 자체가 곧 실력이었다.
아이템의 힘은 플레이어의 수준이 그렇듯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아이템은 그저 조금 단단한 무기나 갑옷에 지나지 않았으면, 어떤 아이템은 평범한 플레이어를 랭커에 준하는 힘을 지닌 실력자로 만들어 준다.
하지만.
오랫동안 천계의 감옥에 갇혀 있던 우마왕에게는 바로 그 ‘아이템’이라는 요소가 빠져 있었다.
그렇기에 나타태자는 우마왕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평천대성의 손에 혼철곤이 돌아왔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나타태자의 시선이 힐끗 위로 향했다.
저 위에서 아래로 혼철곤을 던져 준 녀석.
‘저걸 찾으러 갔던 건가.’
갑자기 모습이 보이지 않아 의아해 하기는 했다.
하지만 어차피 이곳에서의 전투에서 승리하면 별 의미 없는 녀석이라 생각했건만, 이런 변수를 만들어 낼 줄이야.
‘역시 저 녀석부터 죽였어야…….’
“어딜 보느냐.”
바로 코앞에서 들려온 목소리.
나타태자가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쩌어억-!
둔탁한 충격에 나타태자의 의식이 저 멀리 날아갔다 돌아왔다.
콰아아앙-!
콰드, 드드드드득-.
날아간 몸뚱이가 땅을 뒤집고 깊은 지하 속으로 들어갔다. 나타태자는 깊은 땅 속에 묻혀, 위로 올려다 보이는 희미한 빛을 바라보았다.
‘뭐가 어떻게 된…….’
기억을 더듬자, 마지막 순간 우마왕의 혼철곤이 보였던 게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흉물스러운 무기들을 몸에 덕지덕지 두르고는, 구질구질이라…….”
툭, 툭-.
새까만 몽둥이로 손바닥을 툭툭 치던 우마왕의 혼철곤이 하늘 위로 올라갔다.
“추하구나, 나타야.”
부우웅-.
쩌어어억-!
아래로 내리찍은 혼철곤의 충격이 땅속에 처박힌 나타태자의 몸을 짓이겼다.
부우웅-.
쾅, 콰앙, 콰와앙-!
한 번이 아니었다.
우마왕은 이번 한 번에 싸움을 끝내기라도 할 것처럼 사납게 혼철곤을 휘둘렀다.
‘빠져…… 나가야…….’
이대로 있다가는 몸이 터져 죽을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나타태자는 몸에 힘을 주고 마력을 일으켰다.
콰우우웃-!
하늘 위로 솟아오르는 두 개의 거대한 참격.
피잇-.
우마왕의 볼에 작은 생채기가 생겨났다.
그와 동시에, 혼철곤의 힘에 땅속에 파묻혀 있던 나타태자가 다시 지상 위로 올라왔다.
* * *
새까맣게 낀 먹구름 위.
손오공은 반쯤 드러누워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친 채 우마왕과 나타태자의 싸움을 내려다보았다.
“형님이 이기겠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싸움을 구경하는 눈동자.
유원은 그런 손오공의 행동에 혀를 차며 물었다.
“안 도울 셈이냐?”
“어차피 나 아니어도 이기실 텐데 뭐 하러.”
“알려진 랭킹은 나타태자가 더 높지 않나?”
“랭킹이 꼭 강함의 순서는 아니지. 그럴 거면 싸움은 왜 하냐? 랭킹 순서대로 무릎 꿇지.”
꽈아앙-!
혼철곤과 참요검이 부딪친다.
손오공은 씩 웃으며 혼철곤을 손에 쥔 우마왕을 바라보았다.
“저걸 손에 쥔 형님이 누구에게 지는 건 상상이 잘 안 돼.”
쩌엉-!
두 사람의 무기가 충돌하는 소리가 근두운이 있는 하늘까지 닿았다. 이미 전장은 두 사람을 중심으로 큰 원을 그린 채 다른 이들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안 도와줘도 된다. 저쪽은.”
“그러는 넌?”
흠칫-.
유원의 물음에 손오공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무언가 찔릴 때마다 나오는 버릇이었다.
“아직 못 찾았나?”
“……찾고 있다.”
“저쪽 구경하지 말고 서둘러라.”
“아, 예.”
또 잔소리, 라고 덧붙이며 투덜거리던 손오공은 다시 눈에 힘을 주어 집중하기 시작했다.
물론, 집중은 손오공만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혼철곤을 구해 온 유원도 서둘러 살피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똑같은 눈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손오공과 유원의 눈은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찾았다.”
손오공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그의 눈동자에 한 노인의 모습이 비춰져 보였다.
“꽉 잡아라.”
몽글-.
두 사람이 타고 있던 구름이 잠시 흔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떨어지면 다친다.”
투확-!
시야가 바뀐 건 순식간이었다.
속도가 빠른 놀이기구라도 탄 듯한 느낌이었다.
심장을 방금 있던 곳에 놓고 오기라도 한 듯, 몸보다는 정신이 먼저 움직였다.
천계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실수로 쏟은 물감처럼 순식간에 늘어진, 풍경.
그 풍경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건, 잠시 뒤의 일이었다.
“오랜만이야?”
누군가를 인사하는 손오공의 뒷모습.
유원은 고개를 흔들어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는 그 너머를 바라보았다.
넓고 높은 대전.
저 멀리 길게 이어진 새빨간 용단과 그 끝에 위치한 높고 황금색으로 반짝거리는 옥좌.
그리고 그 위에 앉아 있는, 주름이 가득한 노인.
“짐의 대전에는 무슨 일이신가?”
허허 웃음을 흘리는 인자한 목소리.
이미 알고 왔음에도 유원은 그 노인이 자신이 지금껏 들어온 ‘옥황상제’라는 사실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노인의 가면은 그만큼이나 두꺼웠다.
“무슨 일인지 몰라서 그래?”
저벅-.
손오공이 옥황을 향해 걸어갔다.
“벌써 까먹었어? 네가 우리에게 뭔 짓을 했는지.”
분명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신이 나 있던 녀석이, 막상 옥황의 얼굴을 마주하자 반응이 달라졌다.
“나는 몇천 년이 지나도 아직 잊어지질 않는데 말이야.”
스오오오-.
오랜만이었다.
손오공의 몸에서 이렇게 섬뜩한 마력이 느껴진 게.
아마도 같은 공간 안에 유원이 있기에 자제를 한 것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두 사람이 서 있는 건물은 순식간에 날아갔을 것이다.
“2천 년일세.”
두 개의 손가락을 앞으로 내민 옥황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그만 앙금을 잊어버릴 때도 되지 않았는가?”
꿈틀-.
손오공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금세 속을 진정시킨 손오공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넌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어.”
옥황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무언가 이상했다.
오행산에 갇혀 있는 동안, 무언가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걸까.
아니면 시간이 흐른 만큼 성숙해진 걸지도 모른다.
원래였다면 흥분해서 길길이 날뛰며 달려들 녀석이, 전보다 훨씬 침착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당연하지.’
하지만 유원은 오히려, 이런 손오공의 반응을 당연하게 여겼다.
‘이미 한 번 겪었던 일이니까.’
들은 적이 있었다.
옥황은 손오공과 싸울 때마다 늘, 그의 아픈 곳을 건드렸다고.
그래서 늘 싸움의 시작부터 그의 흐름에 말려든 채 싸울 수밖에 없었다고.
“교활하고 여우같은 늙은이.”
그것이 바로 옥황상제에 대한 손오공의 평가였다.
그리고 실제로 보니, 유원은 손오공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거 봐.”
스윽-.
고개를 돌린 손오공이 히죽 웃는 얼굴로 물었다.
“내가 말한 대로지?”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달리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손오공은 다시금 옥황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그는 구부정한 허리를 피고는 몸을 받치고 있던 지팡이를 무기처럼 손에 들고 있었다.
저벅-.
손오공이 옥황을 향해 걸어갔다.
“우리 형님들 다섯 명.”
복해 대성 교마왕 (覆海大聖 蛟魔王).
혼천대성 붕마왕 (混天大聖 鵬魔王).
이산대성 사타왕 (移山大聖 獅駝王).
통풍대성 미후왕 (通風大聖 獼猴王).
구신대성 우융왕(驅神大聖 𤟹狨王).
각각 다른 호칭과 이름을 쓰던 그들은, 한날한시에 토벌당했다.
바로 눈앞에 있는 옥황상제에 의해서.
단지, 훗날 천계에 위협이 될 만한 자들이라는 불확실한 이유만으로.
콰아아아-.
손오공의 몸에서 마력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이만하면 손오공치고 충분히 많이 참았다.
유원은 손오공에게서 거리를 벌려 떨어지며, 옥황상제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그들 곁으로 보내 줄게.”
* * *
옥황상제.
그의 존재는 탑에서 남다른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다.
랭킹 10위.
수많은 하이랭커들 중, 두 손으로 꼽을 수 있는 랭킹을 지닌 존재.
스스로의 힘과 권력을 이용해, 탑의 정세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랭커 중 하나.
만약 그를 넘어선다면, 비로소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랭킹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수히 많은 하이랭커들 중, 옥황을 넘어선 존재는 없었다.
그가 지니고 있는 천계라는 세력과 옥황의 힘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바로, 그 옥황의 대전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쿠르르르르-.
유원은 근두운에 탄 채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무너지고 있는 붉은 지붕의 건물 속.
그 뿌연 연기 속에서 손오공과 옥황이 싸우고 있었다.
“첫 번째는 우마왕. 두 번째는 손오공. 그리고 그다음은?”
천계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방법을 강구하던 중.
유원의 물음에 손오공이 답했다.
“다음은 필요 없어.”
“필요 없다니?”
“나랑 형님이 있어. 뭐가 더 필요해?”
그 말에 회의가 잠시 얼어붙었다.
다른 건 필요하지 않다.
여의봉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
손오공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당시, 유원은 손오공의 그 말을 언제나와 같은 허세나 지나친 자신감으로 여겼다.
“백 번 중 한 번은 네가 이길 거다. 반대로 말하면 백 번 중 아흔아홉 번은 네가 진다는 소리지.”
“옥황과는 두 번 싸워 봤어.”
두 번의 천계대전.
그 두 번 모두, 손오공은 옥황에게까지 도달했다.
“두 번 모두 멀쩡하지 않은 상태에서 싸웠지. 그래도 얻은 게 없진 않았거든.”
그 말에 유원은 눈을 빛냈다.
두 번의 싸움.
손오공은 한 번 싸운 상대에게 더 강해진다. 그런데 손오공이 두 번이나 싸운 상대에게 패한다는 건 유원도 쉽게 상상이 되질 않았다.
더군다나 제아무리 손오공이라 한들, 이런 자리에서까지 과한 자신감을 보일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날 믿어 봐라.”
팡-.
손오공은 자신의 가슴을 쳤다.
“옥황을 찾기만 하면…….”
뿌득-.
힘이 들어간 이빨을 갈며 손오공이 다음 말을 씹어 내뱉었다.
“내가 그 새끼를 죽여 줄 테니까.”
믿었다.
손오공은 유원이 믿는, 몇 안 되는 랭커였으니까.
머리 쓰는 일이라면 몰라도 싸우는 일에 있어서 손오공이 자신을 실망시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보다 한발 앞서 싸웠고, 언제나 승리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저기 있는 녀석은, 옥황과 두 번 싸웠던 손오공이 아니다.’
그 믿음은 이전보다 훨씬 단단해져 있었다.
‘두 번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다시 옥황과 싸워 승리하고…….’
투쾅-!
하늘 위로 날아 올라가는 여의봉.
그 여의봉 끝에 걸쳐 있는 옥황을 바라보던 유원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나와 함께, 아우터와의 전쟁을 겪은 녀석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