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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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그것은 마족들 중, 극소수의 랭커들에게만 부여되는 칭호였다.
귀족과도 같은 작위를 지닌 마족들 중, 그 귀족들의 섬김을 받는 소수의 마족들은 스스로를 왕이라 부르고 마계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벨리알 역시 그런 마왕들 중 한 명이었다.
거짓의 군주.
그의 궁전은 가장 칙칙한 색을 띄고 있었다.
끈적한 회색의 궁전.
‘괴상한 취향이군.’
얼마 전까지 황금 성에 머물렀던 유원으로서는 더 칙칙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장소였다.
“아버지 취향이 조금 특이하죠?”
“마왕답네.”
분위기는 딱 어울렸다.
상상하던 그 모습.
유원도 말로만 들었지 직접 마왕의 성에 온 적은 처음이었다.
“모든 마족들이 다 시커먼 건 아니거든요. 핑크색 좋아하는 놈도 있습니다.”
“별 이상한 놈이 다 있네.”
“그건 그렇죠. 저도 이해는 안 가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움직이자, 곧 성의 중심부가 나왔다.
벨리알의 성은 황금 성보다도 훨씬 더 사람이 없었다.
인기척은 물론, 개미 하나 기어가는 느낌조차 없었다.
이 넓은 곳을 혼자 쓰는 걸까.
그렇게 걸음을 옮기던 중.
“마중인가.”
“예?”
유원이 발걸음을 멈추고 중얼거리자, 마모스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악!”
마모스의 몸이 위로 붕 떠오르며, 큼지막한 눈동자가 나타났다.
쩌억-.
-마모스.
벨리알의 눈동자.
새빨간 눈동자와 검은색의 핏줄이 마모스를 노려본다.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는 거냐?
잔뜩 화가 난 음성이 흘러나온다. 마왕의 분노에 충분히 겁이 날 만도 한데, 마모스는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화난 척 그만 해요. 이제 안 속는다니까요?”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 듯, 마모스는 한숨을 푹 쉬었다.
거짓의 군주.
유원도 소문으로는 들은 적이 있었다.
모든 말에 거짓을 섞는다는 괴짜.
처음 들었을 땐, 고작 그런 게 ‘거짓의 군주’인가 싶었다.
그리고 그 감상은 눈앞에 벨리알의 눈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스윽-.
벨리알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의 눈이 유원을 바라보았다.
-옆에 이 녀석은 누구…….
“모르는 척도 그만하고요.”
마모스가 벨리알의 말을 끊어 냈다.
그러자.
구구구구-.
눈동자 하나가 벌어지며, 그 속에서 기다란 팔과 다리를 가진 마족이 걸어 나온다.
마모스와 꼭 닮은 얼굴에, 반쪽짜리 가면을 쓴 마족.
얼굴만큼은 알고 있었다.
‘벨리알.’
거짓의 군주가 나타났다.
유원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플레이어 김유원이 인사드립니다.”
“……?”
의아한 표정의 벨리알.
인사 후 고개를 든 유원이 의아해하자, 벨리알은 영 이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디아블로 녀석에게 듣던 것과는 다른데?”
디아블로.
같은 마왕의 하이랭커이자, 길드 마왕에서 가장 큰 세력을 지닌 마족.
그는 마왕들 중, 유일하게 유원과 어느 정도 접점이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벨리알은 디아블로에게 전해 들은 유원의 이미지가 눈앞에 보이는 것과 다르다고 느꼈다.
“당신은 마모스의 아버지니까요.”
그것이 바로 유원이 벨리알에게 예의를 갖춘 이유였다.
“형 된 입장에서 부끄럽게 굴 순 없지 않습니까?”
“내가 벨리알이라서가 아니라, 마모스의 아버지라서 예의를 갖춘 거다?”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이야기였다.
마왕의 수장 중 하나가 된 후,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자들은 전부 자신의 힘 앞에 고개를 숙인 것인데.
유원의 고개는 그런 것에 숙여지지 않았다.
“디아블로 녀석의 말이 아니었다면 헛소리라 생각했겠지만 말이야.”
유원은 분신체라고는 하지만 그 디아블로를 상대로도 당당했던 녀석이었다.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나 역시, 널 아들놈의 손님으로 대접해야겠군.”
벨리알이 몸을 돌렸다.
직후, 그는 눈동자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들어와라.”
저벅-.
벨리알의 모습이 사라졌다.
일방적으로 말하고는 일방적으로 사라져 버린 벨리알.
마모스는 걱정 어린 표정으로 유원을 돌아보았다.”
“미리 말해 두지만, 아버지는 거짓말이 몸에 밴 사람입니다.”
“나도 안다.”
“아들의 손님으로 대접하겠다는 말 역시, 거짓말일 겁니다.”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벨리알이 나타난 바로 그 순간부터 유원은 화안금정을 사용하고 있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상대는 거짓의 군주였다.
지략이나 술수에는 제우스보다 부족할지 몰라도, 거짓으로 상대를 속이는 데에는 그보다 훨씬 뛰어난 존재다.
제아무리 화안금정을 사용하고 있다고 해도 아직은 그의 모든 거짓을 간파할 수 없을 터였다.
저벅-.
유원은 벨리알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거짓의 방’에 입장하였습니다.]새까만 어둠이 유원을 덮쳤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도 어려운 시커먼 어둠.
뒤따라 온 마모스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벨리알의 영역에 발을 들인 상태였다.
-나는 문답을 좋아한다.
벨리알의 목소리.
대접이라는 건 역시 거짓말이었다. 알면서 들어온 거긴 해도, 상대가 자신을 속이려 했다는 것만으로도 괜히 불쾌해졌다.
-지금부터 내가 한 가지를 물으면, 너도 한 가지를 물어라. 서로의 대답에는 거짓과 진실을 섞을 수 있지.
잔뜩 신이 난 목소리.
이것은 벨리알의 여흥이었다.
‘시작됐군.’
벨리알의 문답법.
상위 마족들 사이에서는 꽤 잘 알려져 있는 놀이었다. 벨리알은 거짓의 군주답게, 진실과 거짓을 섞어 이야기를 나누는 걸 즐겨했다.
유원은 이걸 위해 벨리알을 찾았다.
바로, 그와 문답을 나누기 위해서.
-규칙은 더 있다. 한 가지 거짓을 말한 후, 다음은 반드시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거지. 물론, 상대가 거짓을 간파해 냈을 때의 이야기지만.
“만약, 거짓이라 생각했던 게 진실일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럼 잘못 짚은 패널티를 감수해야겠지. 그자는 다음 상대의 질문에 반드시 진실을 말해야 한다. 어때? 재미있겠지?
[벨리알의 문답법을 수락하시겠습니까?]거짓과 진실을 섞은 대화.
하지만 그 과정에서 거짓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거짓을 파악하면 그다음의 대답이 진실임을 알 수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거짓을 간파해야만 한다.
어느 게 거짓인지 알기 전까지는 모든 게 거짓처럼 느껴질 수 있는 대화라는 뜻이다.
“재밌겠습니다.”
벨리알의 거짓.
그리고 화안금정의 싸움이다.
어느 쪽이 더 뛰어날지, 그리고 어느 쪽의 머리가 더 빠르게 돌아갈지의 싸움.
마왕인 벨리알과 힘과 힘으로 겨루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 편이 유원에게는 더 유리했다.
-내가 먼저 묻지. 네가 여기 온 목적이 뭐냐?
굳이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는 질문이었다.
유원이 답했다.
“마왕과 함께 싸우고 싶어서입니다.”
유원은 진실을 말하면서도 그 대답에 진실을 감췄다.
함께 싸운다.
마왕과 함께 무스펠하임에 붙겠다는 뜻인지, 아니면 마왕을 아스가르드로 끌어들이고 싶다는 뜻인지, 이 대답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하나의 대답으로 상대의 질문 하나를 버리게 만든다.
말로써 창과 칼, 방패가 오가는 싸움.
“이제 제 차롑니다.”
-조금 할 줄 아는구나.
재미있다는 듯, 목소리에 콧소리가 섞인다.
유원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왕은 전쟁에 개입할 생각이 있습니까?”
-피가 있는 곳이라면 마왕은 어디든 간다. 이제 내 차롄가? 너는 아스가르드와 무스펠하임, 어느 쪽에 붙을 생각이지?
“아스가르드. 제 차롑니다. 마왕은 무스펠하임에서…….”
무의미한 질문과 답의 연속.
유원과 벨리알은 서로 질문과 대답을 조심했다. 한 번이라도 거짓을 잘못 말해 간파당한다면 다음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거짓을 말하는 데에도 신중해야 한다.
또한, 들키지 않는 거짓을 섞어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이 문답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테니.
‘이래서는 끝이 없겠군.’
유원은 서로 몸을 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판을 흔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같은 질문으로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마모스는 당신에게 어떤 아들입니까?”
-…….
아까까지와는 달리,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질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거다.
유원은 화안금정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어둠 속의 벨리알을 바라보았다.
“문답하던 마족 어디 갔습니까?”
-있으나 마나한…… 모자란 아들이지.
[‘화안금정’이 거짓을 간파합니다.]화륵-.
새까만 어둠을 바라보던 유원의 눈동자가 타올랐다.
아주 잠깐의 동요.
그 틈이면 충분했다. 거짓과 진실을 찾던 눈동자에, 벨리알의 거짓이 드러났다.
‘이 대답은 의외군.’
마모스가 벨리알의 아픈 손가락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벨리알은 다른 마왕들처럼 여러 아들을 싸지르며 핏줄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모스는 딱히 벨리알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유원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서까지, 벨리알은 거짓말을 할 기회를 사용했다.
“거짓이군요.”
[거짓을 간파하였습니다.] [벨리알의 다음 대답이 반드시 진실로 돌아옵니다.]벨리알의 동요가 느껴졌다.
이런 식으로 거짓의 기회를 날려 버리다니.
마모스에 대한 거라면 무조건적으로 거짓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문답이 쉬워졌다.’
한 가지 확실한 거짓을 파악해 내는 것.
그게 바로 이 문답에서 유원이 얻어 내야 하는 과제였다.
어느 한쪽으로도 움직이지 않던 주도권이 유원에게로 기울어졌다.
“질문하십시오.”
대답과 마찬가지로, 질문 역시 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다음 자신의 대답은 반드시 진실이어야만 한다.
그 부담감 때문인지, 아니면 거짓의 군주인 자신이 문답에서 패했다는 사실 때문인지 벨리알은 동요하고 있었다.
-너는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지?
상당히 포괄적인 질문이었다.
당황했다는 증거였다.
만약 여기서 ‘최선을 다했다’라는 두루뭉술한 대답을 한다면, 질문을 넘길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원은 오히려 이런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는 앞으로 벌어질 모든 걸 알고 있습니다. 이 전쟁의 결과까지도요.”
-거짓말이다.
당연히 벨리알은 유원의 대답을 부정했다.
모든 걸 알고 있는 존재.
심지어는 아스가르드와 무스펠하임의 전쟁에 대한 결과까지 알고 있는, 그런 존재가 있을 리 없다는 믿음이었다.
하지만.
[김유원의 대답은 ‘진실’입니다.] [벨리알은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뭐?
문답법은 유원의 말이 진실임을 알려 주었다.
시스템의 힘이 개입된 문답법이었다.
설령 관리자라 한들 시스템을 속일 수는 없는 법이었다. 제아무리 랭킹이 높은 하이랭커라도 시스템의 힘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시스템은 유원의 말이 진실임을 밝혀 주었다.
벨리알의 질문 권한은 끝났다. 다음은 유원의 차례였다.
하지만, 유원의 대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저는 이 전쟁의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모든 걸 알고 있다.
전쟁의 결과까지도.
여기까지는 진실이었다.
거기에 더해.
“전쟁은 무스펠하임의 패배로 끝날 겁니다.”
한 스푼 추가된 유원의 거짓이, 마왕의 결정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