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56
디아블로의 속삭임에 마모스는 유원을 돌아보았다.
이건 또 무슨 소리냐는 눈빛이었다.
유원은 그 시선을 무시한 채, 디아블로의 물음에 답했다.
“잘 가지고 있다.”
씨익-.
디아블로의 입꼬리 끝이 씰룩거렸다.
이내 다시 고개를 돌린 디아블로는 궁전의 중앙에 위치한 기다란 탁자로 향해 걸어갔다.
“후아아-.”
털썩-.
마모스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가슴이 쿵쾅거려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였다.
“형, 디아블로랑도 아는 사이에요?”
“별 친분은 없어.”
“친분이고 자시고, 뿔은 대체 무슨 소리예요?”
“아…….”
유원은 인벤토리에 손을 집어넣었다.
이내, 쑥 하고 유원의 손끝에 뿔 하나가 잡혀 나왔다.
“이거다.”
“서, 설마 이거…….”
그 뿔을 발견한 마모스가 고개를 돌려 탁자의 한쪽에 발을 올려놓고 앉은 디아블로를 바라보았다.
머리에 난 뿔의 끄트머리가 비어 있었다.
눈에 잘 띄지 않을 만큼 아주 작은 부분일지라도 잘려 나간 건 분명해 보였다.
“디아블로의 뿔이에요?”
“아마도.”
“달여 먹으면 끝장이겠는데…….”
뿔을 끓여 먹다니.
악마의 뿔을 달여 먹기도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유원은 디아블로의 뿔을 그런 식으로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이렇게 작은 뿔 가지고는 얻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겉으로만 커 보일 뿐, 이 정도 크기의 뿔은 디아블로의 본체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다.
이만한 뿔을 먹고 힘을 키우는 것보다는 차라리, 디아블로의 뿔이 가지고 있는 다른 능력을 이용하는 게 나았다.
[디아블로의 뿔]# 마왕 디아블로의 뿔 조각이다. 디아블로가 자신이 인정한 존재에게 선물하는 증표이다.
# 디아블로와 마족들의 호감을 얻을 수 있다.
마족들의 종주, 디아블로.
그의 인정을 받고 그의 뿔을 받았다는 건, 다른 마족들의 호감을 사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또한, 그건 보통의 마족이 아닌 마왕들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진정한 하나의 왕이 있다면 디아블로일 것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마왕들 사이에서 역시 디아블로의 평가는 높았으니까.
실제로 랭킹만 놓고 보더라도 디아블로의 랭킹은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대충 다 모인 것 같은데요?”
마지막으로 궁전의 주인인 벨리알이 착석하는 것으로, 준비된 마왕의 자리가 모두 채워졌다.
열 개의 자리.
유원은 그 자리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지켜보자고.”
* * *
“인간 냄새가 나는군.”
모든 자리가 채워지자, 베에모트가 입을 열었다.
고개를 들어, 베에모트가 유원을 올려다보았다.
“저 인간 때문인가? 우릴 다 모은 게?”
베에모트.
마왕들 중 가장 큰 덩치를 지닌 하이랭커.
그의 본체는 하나의 섬과 같은 크기를 지녔다. 베에모트는 탑에서 가장 거대한 생명체라 불리며, 그 덩치에서 뿜어지는 힘은 지나다니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도시를 멸망으로 이끌 정도라 알려져 있었다.
“고작 저 녀석 하나 때문에?”
“김유원. 이름은 들어 봤지.”
“그래도 너무 과한 거 아닌가? 그런 말에 휘둘릴 필요가 있는 거야?”
시큰둥한 반응들.
디아블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여전히 탁자에 발을 올린 채 몸을 의자에 기댄 채였다.
하지만.
그런 마왕들을 둘러보는 벨리알의 반응은 달랐다.
“맘에 없는 말들 하고는.”
벨리알의 눈이 마왕들을 꿰뚫어 보았다.
“정말 그런 생각이었다면 여기 다 오지도 않았겠지. 안 그래?”
“또 저놈의 혓바닥.”
“저놈이랑 말을 섞으면 기분이 더럽단 말이지.”
“정작 거짓말을 지가 제일 잘 하면서 말이야.”
투덜거림이 연이어서 터져 나왔다.
그 투덜거림이 끊어지지 않자, 벨리알의 이마에도 힘줄이 돋아났다.
“그래, 그래. 나도 니들이랑 말 섞기는 싫다. 그러니 얼른 이야기하고 돌아가자고.”
마왕은 서로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들이 한데 잘 모이지 않고, 힘을 합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일에 대해서는 모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 모임은, 앞으로 마왕의 존망을 건 자리였으니까.
“무스펠하임에 붙는다고 하지 않았나? 정말 저 꼬맹이 하나 때문에 결정을 번복할 셈이야?”
“문답법에서 확인된 거라면 마냥 거짓말이라고 볼 수는 없지.”
“근거가 뭔데?”
“아직 확인은 되지 않았다.”
“그럼 그것부터 알아보자고. 사지부터 뜯으면…….”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곧 아군이 될 수도 있는 자다. 제정신이냐?”
짧은 회의가 오고갔다.
그리고 그 끝에 시선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디아블로에게로 모아졌다.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던 디아블로.
그는 여전히 입꼬리 한쪽을 끌어올린 채, 뜻 모를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넌 어쩔 생각이냐, 디아블로?”
마왕은 겉으로는 수평적인 위치로 드러나 있었지만 실상은 그러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이 디아블로에게로 향했다.
애초에 그가 한 마디도 하지 않아, 회의의 방향이 정해지질 않고 있었으니까.
집단은 우두머리의 뜻에 따라 크게 휘청거리기 마련이다.
마왕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그렇게 판이 깔리자.
여전히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디아블로가 입을 열었다.
“나는…….”
스윽-.
디아블로의 고개가 뒤로 꺾이며, 2층에 있던 유원과 눈이 마주친다.
“저 녀석과 싸워 보고 싶다.”
그 말에 마왕들의 시선이 유원에게로 향했다.
싸워 보고 싶다.
다른 누구도 아닌, 디아블로가 한 말이었다.
디아블로가 싸울 의지를 드러내 보였다.
대체 무슨 이유일까.
모두가 놀란 가운데, 벨리알이 모호한 얼굴로 물었다.
“저 녀석과 싸워 보고 싶다는 건, 말 그대로냐 아니면 함께 싸워 보고 싶다는 거냐?”
벨리알의 눈에는 디아블로가 내뱉은 말 그대로보다는 그의 표정과 억양, 감정의 변화가 먼저 보였다.
그의 표정에서는 많은 게 느껴졌다.
궁금증, 반가움, 투기와 분노.
그는 유원과는 정반대였다.
유원은 절대 벗겨지지 않은 두꺼운 가면을 쓴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어떤 진심도 느껴지지 않아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반면, 디아블로에게서는 너무 많은 게 보였다.
그에게서는 온갖 감정이 다 느껴졌다.
그렇기에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디아블로는 다시 벨리알을 바라보았다.
이내, 천천히 그의 입이 열렸다.
“둘 다다.”
“둘 다?”
“난 저 녀석과 싸워 보고 싶다. 그리고 함께 싸워 보고 싶기도 하고.”
실실 웃던 그의 입꼬리가 내려갔다.
“걸리는 건 역시, 메타트론 그 역겨운 녀석과도 같은 전장에 서야 한다는 건데…….”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치미는 이름.
메타트론.
디아블로는 손가락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툭툭 건드렸다.
“그거야 뭐, 만나면 그때 면상을 갈기기로 하자고. 여차하면 나중에 천계대전을 치르면 되는 거고.”
어차피 라그나로크가 아니더라도 천계대전은 약속되어 있었다.
디아블로는 그때를 기약하며 손을 들어 올렸다.
“투표로 하지. 난 아스가르드에 한 표다.”
그 말에 마왕들이 하나둘,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마왕들은 하나둘, 손을 들기 시작했다.
“나는…….”
“나도…….”
* * *
유원은 마왕들의 회의를 위에서 지켜보았다.
투표.
어찌 보면 가장 공평하고 단순해 보일지 모른다.
더 많은 표를 얻은 쪽으로 결정짓는 게 룰의 전부니까.
하지만 누가 표를 어디에 던지는지가 이렇게 공개되어 있을 땐, 룰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흐름은 결국 강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거니까.’
그리고 이 자리에서 그 흐름은 디아블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대를 안 한 건 아니지만, 이건 꽤 호재다.’
아니나 다를까.
“아스가르드.”
“아스가르드.”
“나도 아스가르드다.”
“나는 무스펠하임. 하늘과 같은 편에서 싸우라니, 웃긴 소리지.”
“나는 아스가르드다. 가능성이 높은 쪽에서 싸우는 게 맞다.”
투표는 일방적이었다.
8 대 2.
베에모트와 플뤼톤을 제외한 모든 마왕이 디아블로를 따라 아스가르드에 손을 들었다.
“지난번과는 완전 반대로군.”
아스가르드의 편에 서기로 한 마왕.
이렇게 쉽게 결정이 날 줄 몰랐던 유원은 오히려 얼떨떨한 지경이었다.
드륵-.
“이야기는 끝났지?”
디아블로는 다짜고짜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답을 듣기도 전.
“야.”
고개를 들어 유원을 바라본 디아블로가 고개를 까닥였다.
“따라 나와 봐라.”
* * *
무스펠하임에 부는 바람에 비린내가 섞였다.
바다의 것과는 다른 종류의 비린 내음.
피에서 나는 냄새였다.
주륵-.
진득한 핏물이 강이자 바다가 되어 흘렀다.
끈적한 핏물 위로, 거인들의 발자국이 찍혔다.
쿠직-.
“개미처럼 작은 주제에, 어지간히도 질기구나.”
발에 힘을 준 거인의 눈에 번뜩이는 불이 들어왔다.
이대로 개미처럼 짓밟아 죽이리라.
그렇게 마음을 먹었던 거인의 몸이 떠오른 건, 바로 다음에 벌어진 일이었다.
“내가 작은 게 아니라…….”
거인의 발을 붙잡은 작은 손이 원을 그린다.
“니들이 큰 거야.”
번쩍-.
부우우웅-.
위로 들린 거인의 몸이 날아갔다. 손오공이 휘두른 거인의 몸은 하나의 거대한 흉기가 되어 다른 거인들을 공격했다.
퍼어억-!
쓰러지는 거인들.
손오공은 그런 거인들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지었다.
“덩칫값도 못하는 게 어디서 까불어?”
비틀-.
손오공의 몸이 휘청거렸다.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 몸에 힘이 없다 싶더라니, 이제는 시야에도 조금씩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 이런…….”
콱-.
흔들리는 다리를 손바닥으로 때리며 손오공이 몸을 바로 세웠다.
숨을 크게 내쉬며 고개를 들어 보니,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걸로 열하루째였다.
“아직 약해 빠졌네. 이 몸도.”
고작 열하루째.
그런데 벌써 지쳐가고 있었다.
싸울 힘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대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저벅-.
손오공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거인은 아무리 죽여도 계속 모여들었다. 덩치는 큰 녀석들이 개미 떼나 다름없다 싶었다.
새삼, 손오공은 무스펠하임의 저력이 실감났다.
수억에 달하는 거인족의 힘.
거기에 더해, 무스펠하임의 거인들은 태생부터든 그 이후부터든 악마족의 힘을 함께 부여받는다.
‘이런 걸 보면 왜 라그나로크에서 오딘이 졌는지 알 것 같단 말이지.’
무스펠하임의 힘은 이미 아스가르드를 뛰어넘었다.
보라.
이 무수히 많은, 거인이 된 악마들을.
평화를 위해 싸우던 아스가르드와는 달리 무스펠하임은 훨씬 오래전부터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건 못 이기겠군.’
이기는 건 고사하고, 길을 뚫어 낼 수나 있을지.
점점 짙어지는 불쾌한 패배감.
그렇기에 손오공은 이런 농담이라도 해야 했다.
“이거 이러다 거인 학살자라는 칭호 내가 가져가는 거 아닌지 몰라.”
그렇게 다시금 손오공이 평소보다 무거운 여의봉을 들어 올리는 순간.
-그러기엔 아직 한참 남았다.
저 멀리서 공기를 타고, 목소리가 전해졌다.
구우우우-.
묵직한 힘을 실린 정권(正拳).
손오공의 고개가 돌아가고, 바로 그곳을 통해 거인들의 몸이 하늘 위로 날아가는 게 보였다.
투콰앙-!
빼곡이 들어서 있던 거인들의 숲 한가운데 길이 생겨났다.
저벅-.
그 길을 통해, 한 사람이 걸어왔다.
작은 거인족이 아닐까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덩치.
소름 끼칠 정도로 발달한 근육과 거인족마저 작아보이게 만드는 압도적인 위압감.
“뭐야.”
씨익-.
“반가운 놈이 왔잖아?”
그를 발견한 손오공은 하마터면 긴장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부탁을 받고 왔다.”
성격은 정반대였지만 함께 싸울 때 그 누구보다 뒤가 든든했던 동료.
거인들을 뚫고 안으로 들어온 남자가 손오공을 향해 다가왔다.
“헤라클레스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