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57
* * *
쿵-.
묵직한 발걸음이 땅을 흔든다.
거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도 꽤 높은 층의 플레이어고, 랭커들이었다.
상대가 보통이 아니라는 건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의 이름을 모르는 거인은 이 탑에 존재하지 않았다.
거인 학살자 헤라클레스.
그것은 거인들에게 있어서 제천대성보다도 더 두려운 이름이었다.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가 왜 여기에?”
그들 가운데에서는 과거 기간토마키아를 겪은 거인들도 섞여 있었다.
길고 긴 전쟁에서 수많은 거인들을 학살해, 거인화라는 스킬을 터득한 하이랭커.
거인들의 천적.
그의 존재는 거인들에게 있어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괜찮나?”
헤라클레스가 비틀거리는 손오공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후들거리는 다리.
손오공은 그 손을 빤히 바라보다 미간을 찌푸렸다.
“끄떡없다.”
“자존심을 부릴 때가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
헤라클레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 당장이야 자신의 존재에 겁을 먹었다지만, 언제 저들이 정신을 차리고 달려들지 모른다.
애초 헤라클레스의 목적이 손오공을 도와 이 자리를 빠져나가는 것이었던 만큼, 손오공이 자신의 도움을 거절하면 골치가 아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탁을 받고 왔다고 했지?”
손오공의 물음에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오공은 확신을 담아 물었다.
“김유원 그 녀석이냐?”
“그래.”
“짜식이. 끝까지 보험은…….”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과 함께 다시 다리에 힘이 들어왔다.
쉬지 않고 싸우던 도중, 그나마 조금이라도 한숨 돌릴 시간이 생겨서인 모양이었다.
[‘호흡법’이 활성화됩니다.] [호흡이 안정됩니다.] [체력이 회복됩니다.] [마력이 회복됩니다.]차오르는 마력.
조금이지만 다시 몸 안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싸울 준비로는 충분하다.
“그럼 다시 한번…….”
“잠깐 빠져 있어라.”
쿵-.
헤라클레스의 발걸음이 거인들에게로 향했다.
“이 녀석들은 내 전문이니.”
“……아, 그러셔.”
평소라면 괜한 도움 필요 없다며 난리를 피웠을 손오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경우가 조금 달랐다.
‘인정하긴 싫지만, 많이 지치기도 했고.’
손오공이 힐끗, 헤라클레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거인이랑 싸울 때, 저 녀석만 한 놈도 없으니까.’
헤라클레스를 이곳에 보낸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거인족을 상대할 때만큼은 현재의 헤라클레스가 지금 자신보다 더 뛰어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놀고 먹을 순 없지.”
손오공의 말에 막 주먹을 뻗으려던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돌렸다.
“그 몸 상태로는 별 도움이…….”
휙-.
헤라클레스의 눈앞으로 무언가 날아왔다.
반사적으로 그것을 받아 든 헤라클레스의 팔이 흔들렸다.
묵직한 무게감.
순간 헤라클레스가 놓칠 정도의 무게였다.
쿠직-!
헤라클레스가 딛고 선 땅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조금 주저앉았다.
손안에 들어온 물건의 정체를 확인한 헤라클레스가 손오공을 바라보았다.
“이게 뭐냐?”
“여의봉이다.”
여의봉.
제천대성의 상징과도 같은 아이템이자, 제천대성만이 다룰 수 있다고 알려진 아이템이었다.
“아직 무게를 다루는 법이 익숙하지 않겠지만, 너라면 그래도 휘두를 수 있을 거다.”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며 손오공은 깍지 낀 손으로 머리를 받쳤다.
“그거 빌려 주마. 잘 써 봐.”
원래의 헤라클레스는 이그드라실의 뿌리로 만든 곤봉을 사용했다.
어떤 아이템도 없이 맨 주먹 하나로 20위권의 랭킹에 오른 헤라클레스는 손에 맞는 아이템을 쥔 순간, 랭킹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부웅-.
헤라클레스는 손에 있는 여의봉을 휘둘러 보았다.
무거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휘두르지 못할 만한 무게는 아니었다.
“괜찮군.”
가벼운 소감.
하지만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그려진다.
자신감의 웃음이었다.
꾸득, 꾸드득-.
헤라클레스의 팔에 힘줄이 돋아나고.
“커져라, 여의.”
쩌저저저-.
쿠직-!
그는 본능적으로 여의봉을 사용하는 방법을 깨달았다.
하늘까지 뻗어 올라간 여의봉.
그것을 양손으로 움켜쥔 헤라클레스가, 있는 힘껏 거인들을 향해 휘두른다.
부우우우웅-.
투화악-!
여의봉이 지나간 자리로 거인들의 몸이 찢겨져 나간다.
순식간에 길을 뚫어 낸 헤라클레스는 거대한 여의봉을 어깨 들춰 메고는 말했다.
“쓸 만하네.”
* * *
웅-.
플레이어 키트가 울렸다.
유원은 슬쩍 키트에 온 문자를 확인했다.
[헤라클레스 : 만났다.]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걱정하고 있던 차에 도착한 문자였다.
‘다행이군.’
헤라클레스.
거인들의 천적인 그에게 유원은 손오공을 부탁했다.
혹시라도 그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무스펠하임의 무간에 갇히게 된다면 그것만 한 낭패도 없으니까.
제아무리 무스펠하임의 거인들의 숫자를 많이 줄인다 해도, 라그나로크에서 손오공을 잃는다면 그건 손해였다.
‘헤라클레스라면 문제없다.’
수르트가 직접 움직이는 게 아닌 이상, 손오공과 헤라클레스를 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 수르트조차, 지금쯤이면 한창 ‘불’을 모으기 위해 박차를 가할 때였다.
이제 안심이었다.
“뭘 그리 재밌게 보나?”
힐끔-.
디아블로가 유원의 플레이어 키트를 훔쳐 보았다.
어느새 뒤로 돌아온 디아블로의 모습에 유원은 급히 플레이어 키트를 잠궜다.
“뭐야, 재미없게.”
“사생활이라서 말이지.”
“내가 너 도와줬는데, 너도 비밀 하나 정도는 알려 주지?”
“그건 고맙게 생각한다.”
디아블로가 아니었다면 아마 마왕을 끌어들이는 건 어려웠을 것이다.
문답법을 통해 마왕들의 관심을 끌어낸다 해도 유원은 그들이 아스가드르의 편에 설 확률은 반반 정도로 잡고 있었으니까.
결국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건, 디아블로의 영향력 덕분이었다.
“난 강한 놈을 좋아한다. 그리고 넌 내가 아는 놈들 중 가장 강하고.”
유원은 의아한 표정으로 디아블로를 바라보았다.
잔뜩 자신에게 투기를 끌어올리고 있는 디아블로.
하지만 유원이 알기로 디아블로의 주위에는 유원보다 더 강한 자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내가 그 정도는 아닐 건데.”
당장 바알만 하더라도 100위권 안쪽의 하이랭커였고, 디아블로의 숙적인 메타트론이나 천계의 미카엘도 그랬다.
더군다나 디아블로는 천계의 투신이나 옥황상제와도 겨뤄본 적이 있는 존재였다.
“다 큰 사냥개는 어린 호랑이와 싸워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직 덜 자랐을 뿐, 그 둘은 종자부터가 달라.”
“내가 호랑이라는 건가?”
“그런 셈이지. 다른 놈들은 내 눈엔 개새끼나 다름없고.”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건방지다 느껴졌을 것이나, 상대는 디아블로였다.
“난 네놈이 다 큰 모습이 보고 싶다. 어디까지 클지, 얼마나 대단한 종자인지가 보고 싶거든.”
휙-.
디아블로가 몸을 돌렸다.
그가 향하는 곳에는 마계의 거대한 괴수가 몸을 납작 엎드리고 있었다.
“탁탑천왕에게 이겼다며?”
괴수의 몸에 올라탄 디아블로.
그는 유원에게 서둘러 올라 타라며 고개짓했다.
“아스타로스 녀석, 옛날에 그 녀석에게 졌거든. 그때부터 탁탑천왕이라는 녀석에게 흥미는 있었지.”
그렇지 않아도 유원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던 디아블로였다.
관리자의 시험에 나타난 디아블로의 분신체가 유원에게 너무 손쉽게 패배했으니까.
그런 그의 귀에 탁탑천왕의 패배 소식이 전해졌다.
그게 바로, 디아블로가 유원의 손을 든 이유였다.
“어딜 가는 거지?”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푸르르르-.
유원과 디아블로를 태운 괴물이 몸을 일으켰다.
디아블로의 말이 이어졌다.
“결정은 번복할 수 있다. 마왕을 다시 모으는 것도, 그 제멋대로인 놈들을 설득하는 것도 내겐 어려운 건 아니지.”
“협박인가?”
“이걸로 칼은 내가 쥐게 됐으니까 말이야.”
원하는 게 뭔지는 알 것 같았다.
디아블로는 아스가르드에 합류하는 조건으로 유원과 싸우는 걸 내걸었다.
지금 이런 결과가 올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유원에 대한 디아블로의 기대감, 그 하나 때문.
“네가 실망스럽다면 언제든 결정은 번복할 수 있다. 대신, 내게 상처 하나만 입혀도 네 부탁 하나를 들어 주마. 그게 뭐든 말이지.”
두두, 두두두-.
디아블로와 유원을 태운 괴물이 궁전을 벗어났다. 팔짱을 낀 채 괴물이 향하고 있는 허허벌판을 바라본 디아블로는 히죽 웃으며 물었다.
“실망시키지 않을 자신 있나?”
이겨야 하는 싸움이 아니다.
상대는 디아블로.
랭킹 14위의 하이랭커였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
디아블로 역시, 유원을 아직 다 자라지 않은 호랑이에 비유했다.
이 싸움에서는 이겨야 하는 게 아니라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는 싸움이라…….’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상처 하나만 입혀도 부탁을 들어 주겠다니.
그 말을 듣는 순간, 유원은 어떤 부탁을 해야 할지 머릿속에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벨리알의 궁전이 있는 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허허벌판에 도착한 유원과 디아블로가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뭐, 너무 부담은 가지지 말고. 그냥 재미있게 놀아 보자는 거니까.”
“난 싸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스칵-.
검이 뽑혀 나오며 유원의 마력이 점차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부담도 없고.”
우웅-.
스륵, 스르르-.
아서와 아레스.
그리고 스사노오까지.
유원의 언데드들이 모두 자리에 나타났다.
-나까지 부르다니, 많이 힘든 상황인가 봐?
스사노오는 유원을 잘 도우려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실력으로 꺾기 전까지는 유원을 주인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으니까.
그 덕분에 유원은 스사노오를 다루려 해도 마냥 그게 편하지 않았다. 복종하지 않은 영혼은 다루는데 기존의 몇 배의 마력을 필요로 했다.
그렇기에 유원은 스사노오를 꾀어 낼 만한 다른 미끼가 필요했다.
“눈앞에 있는 녀석이나 보고 말해라.”
-……디아블로?
스사노오의 영혼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유일하게 그를 자극할 만한 미끼.
그건 바로 스사노오가 환장할 만큼 강한 ‘적’의 존재였다.
“싸워 보고 싶지 않거든 들어가고.”
-이런 식으로 나오겠다?
유원의 속셈이야 빤히 보였다.
그렇기에 괘씸함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물지 않을 수도 없었다.
디아블로라는 미끼는 그만큼 먹음직한 미끼였으니까.
스사노오.
그는 하이랭커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싸움 광이었다.
-이번 한 번만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어차피 조만간 스사노오가 말한 대로, 그를 굴복시킬 작정이었다.
이런 편법으로 그의 도움을 받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스사노오인가.”
치치치치-.
디아블로의 발끝을 통해 땅의 색이 변하기 시작한다.
새빨갛게 변하는 대지.
디아블로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땅을 걸어온다.
“재미있는 녀석을 불렀군.”
강자를 좋아하는 디아블로는 오래전, 스사노오에게도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귀신같은 칼 솜씨로 삼귀자 중 최강이라 알려져 있던 스사노오.
그의 등장에 디아블로는 처음보다 더 몸이 달아올라 입을 벌렸다.
“역시 넌 호랑이다.”
쩍-.
인간의 모습이었던 디아블로의 피부가 갈라지며, 그 속으로 악마의 가죽이 드러났다.
“김유원.”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몸이 짓눌릴 듯한 느낌.
유원은 그런 디아블로를 향해 무거운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