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6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이성윤은 깜짝 놀라며 옆을 돌아보았다.
다행히 자신의 이야기에도 하르간은 별달리 기분 나쁜 내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르간의 입꼬리는 위로 씩, 말려 올라가 있었다.
흥분으로 몸이 달아오른 것이다.
“역시.”
파지지직-.
하르간의 몸에서 피어오른 전격이 주먹에 뭉쳤다.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쾅-!
두 주먹에 맺힌 전격이 폭발하듯 요동쳤다.
하르간은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그 순간, 방금 전의 유원처럼 하르간의 모습도 자취를 감췄다.
직후.
번쩍-.
콰르릉-, 우지끈-!
오크들의 방패가 깨어지고, 바닥에 가득하던 염산뱀들의 몸이 갈가리 찢겨져 나갔다.
하르간의 전격이 지닌 힘이었다.
“이건 뭐…… 우리가 할 게 없겠네.”
“그렇다고 뭐, 구경만 할 건 아니잖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뒤처진다.
그것은 1번 튜토리얼부터 이어져온, 그리고 앞으로 자신들이 계속해서 살아가게 될 세계의 변하지 않는 법칙이었다.
이성윤은 마나포를 준비했다. 욜체는 쌍칼을 들고 앞으로 달려 나갔고, 엘라도르 남매 역시 각자 정령과 마법을 준비했다.
본격적인 사냥이 시작되었다.
* * *
2번 보스룸은 여러 함정들이 설치되어 있는 길목이었다.
날카롭고 강력한 수십 발의 화살들이 쏘아지고 독액이 쏟아져 내리고, 바닥에서 창칼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콰릉-!
하르간은 그 함정들을 오로지 힘 하나만으로 뚫어 냈다.
유원도 마찬가지였다.
화륵, 화르르르-.
치이이이-.
몸을 휘감은 불길은 날아오는 화살과 독액을 불태우고, 바닥에서 솟아오른 창은 가볍게 몸을 틀어 피해 냈다.
“뭐 할 게 없네.”
“그러게요.”
다른 일행들은 두 사람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따라 걸었다.
간혹 부서지지 않고 남아 있는 함정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 함정에 걸릴 만큼 다른 일행들의 수준도 그리 낮지는 않았다.
스칵, 쩍-.
욜체는 칼로 날아오는 화살과 창을 베어 냈고.
치이이-.
엘라도르와 팔라딘테는 공동의 천장에서 떨어지는 독액을 물과 불로 막아 냈다.
[마나포]퍼어엉-!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이성윤이 단번에 뚫어 냈다. 유원은 뒤따라오는 일행을 힐끔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발목을 잡을 실력들은 아니다.’
유원은 내심 하르간 외의 다른 일행들의 실력에 불신을 가지고 있었다.
혹시라도 그들이 발목을 잡지는 않을까.
아니, 정정해야겠다.
어차피 유원은 저들의 목숨이 잘못되더라도 손을 뻗어 구해 줄 생각은 없었다. 지나쳐가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간섭하고 구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까 유원의 걱정은 이거였다.
저들이 괜히 자신의 일에 휘말려 죽게 되지는 않을까.
“저쪽인가 본데.”
성격이 급한 하르간은 가장 앞을 달려가고 있었다.
보스룸으로 향하는 함정들을 모두 돌파하고 나자, 저만치 떨어진 곳에 거대한 문 하나가 보였다.
족히 10미터 높이는 되어 보이는 낡은 문.
하르간은 문 앞에 도착해 유원을 비롯한 다른 일행들을 기다렸다.
“……이상한 그림이군.”
하르간은 그림을 구경하고 있었다.
문의 크기가 큰 만큼, 문에 그려진 그림도 꽤 다양했다.
오크와 고블린, 리자드맨, 코볼트와 놀, 오우거…….
온갖 종류의 괴물들이 문의 바깥에 그려져 있었다. 숫자는 한둘이 아니었는데, 위쪽으로는 복잡한 문양의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이야.’
스윽-.
유원은 문의 겉면에 묻어 있는 먼지를 쓸어 냈다.
오크와 고블린들의 무리가 충돌하는 그 가운데. 하나의 동그란 구체가 그려져 있었다.
“전쟁인가.”
하르간은 그림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차리고는 중얼거렸다.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다.
이건 전쟁이었다.
여러 종류의 괴물들. 그들이 한데 뒤엉켜진, 바라간다에서 벌어진 거대한 전쟁.
‘그리고 이 문 너머에는…….’
“팀장.”
이성윤이 하르간을 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다른 일행들이 모두 도착해 있었다.
“조금 쉬었다 갈까요?”
이성윤의 물음에 하르간은 유원을 바라보았다.
목적지가 같아 함께하고는 있다지만 엄밀히 말해 유원은 자신들의 팀이 아니었다. 게다가 하르간의 팀과 유원은 누가 먼저 보스를 잡을지 내기까지 한 상황.
“지친 사람 있냐?”
서둘러야 하는 하르간의 입장으로서는 유원이 먼저 이 문 너머로 넘어가는데 목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없습니다.”
“뭐 대단한 것도 없더라고.”
“팔라딘테. 그건 팀장과 유원 씨가 함정을 대부분 격파해 놨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일행 중에 부상자나 지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하르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으로 다음 문으로 넘어갈 차례였다.
“그럼 바로…….”
끼이이이-.
육중한 소리와 함께 동굴이 울렸다.
고개를 휙 돌리자 어느새 유원이 팔을 뻗어 문을 열고 있었다.
“너 인마, 말도 없이 가냐?”
“원래는 나 혼자 움직이려고 했다.”
“그래도 어쨌든 같이 움직이는 중 아니냐? 말이라도 좀 하고 그러면 좀 어디 덧나…….”
캬아아아아아-.
안쪽에서 들려온 울음소리.
중간에 놀라 말을 끊어 낸 하르간은 고개를 휙 돌려 살짝 열린 문의 안쪽을 바라보았다.
문의 안쪽은 온통 컴컴한 어둠이었다. 물론, 단순히 어둡기만 했다면 지금처럼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뭐, 뭐, 뭐야?”
“보, 보스인가?”
“대체 어떤 놈인 거야?”
울음소리만으로 몸이 저려 오는 감각.
그저 존재감만으로도 피부가 베어지는 듯한 오싹거림에 일행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르간 역시 침을 삼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보스의 정체를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가까이서 존재감을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다.
“진짜 어마어마한 놈이군.”
저벅-.
이번에도 한 발 빠른 건 유원이었다.
사람 한 명이 들어가기에 충분할 만큼 열린 문.
유원은 울음소리가 들려온 문 안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더 이상 망설이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하르간은 일행을 힐끔 돌아보고는 말했다.
“……가자.”
저벅, 저벅-.
문의 안쪽은 횃불이 걸려 있던 바깥과는 달리 온통 어둠뿐이었다.
하르간은 손안에 전격을 피워 빛을 만들었다. 안쪽은 동굴처럼 길게 이어져 있었는데, 끝으로는 천장이 높아져 거대한 원형의 공동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로는.
쿵-.
캬아아아아-!
울음소리의 정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이런 미친…….”
쿵, 쿵-!
철그럭, 철걱-.
거대한 철창 안에 갇힌 보스의 모습은 기괴했다.
녀석은 바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오크와 고블린, 오우거 따위의 괴물들이 뒤섞여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러 괴물들이 섞인 얼굴과 오우거의 몸통, 오크의 다리, 리자드맨의 꼬리 따위가 붙어 있는 십 미터가 넘는 비대한 몸체.
이름 모를 괴물의 것으로 보이는 검은색의 날개까지.
캬아아아-!
보스는 눈앞에 나타난 일행을 보며 울부짖었다.
저릿, 저릿-.
울음소리만으로 몸이 저려 오는 것 같았다.
유원과 하르간을 제외한 일행은 보스의 위압감을 못 이겨 내고는 겁을 먹고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유원은 온몸이 사슬과 구속구에 묶여 있는 보스를 바라보았다.
“키메라(Chimaira).”
녀석은 몸부림치고 괴로워했다.
수많은 생명체가 뒤섞여진 자신을 끔찍하게 여겼고, 고통스러워하고, 분노했다.
그 복합적인 감정들은 키메라의 주위에 살기와 마나가 되어 소용돌이쳤다.
눈앞의 키메라는 수르트라처럼 튜토리얼 지역에서 나올 만한 수준의 괴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튜토리얼의 최종 보스.
수만 명의 참가자들이 힘을 합쳐 사냥해야 하는 녀석인 것이다.
[3번 보스룸(Boss room)에 입장하였습니다.] [보스 – 봉인된 키메라(Chimaira)를 사냥하십시오.] [목표 달성 시 튜토리얼이 종료됩니다.]꽤 심플한 메시지.
하지만 이 3번 보스룸의 메시지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우웅-.
키메라가 갇혀 있는 철창 옆.
검붉은색으로 빛나는 지팡이가 하나 세워져 있었다.
지팡이의 끝에는 빛을 뿜어내는 보석이 박혀 있었다. 아마도 저게 바로 메시지가 말한 ‘봉인석’인 모양이었다.
“저걸 부수면 저놈이 철창에서 나온다, 이 말이지?”
“키메라를 잡으면서 동시에 아군이라 생각한 참가자들로부터 봉인석을 지켜야 하는 시험이라…….”
“어려울 건 없네.”
만약 보스룸에 들어온 참가자들의 숫자가 많았다면 시험은 더 복잡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보스룸에 들어온 참가자들의 숫자는 모두 10명.
서로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그리 어려운 숫자는 아니었다.
게다가 만약 누구 한 명이 돌발 행동을 한다고 해도 하르간이라는 실력자가 있었다.
여기 있는 일행 중, 하르간보다 발이 빠른 사람은 없었다.
물론.
저벅-.
한 사람만 빼고.
“……?”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유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향은 키메라가 있는 방향이 아니었다.
게다가 유원은 칼도 빼어 들지 않은 상황.
유원은 지금, 봉인석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콱-.
“야.”
어깨에서 느껴진 악력에 유원은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뒤쪽에 있던 하르간이 다가와 어깨를 움켜잡고 있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냐?”
“이거 놔라.”
“뭐 하는 거냐고 물었다.”
“난 저게 필요하다.”
“여기까지 와서 배신하려는 거냐? 내기는 잊어버렸나 보지?”
유원과 하르간의 내기는 누가 먼저 보스를 사냥하는지, 혹은 누가 더 높은 공헌도를 올리는가였다.
둘 중 어느 쪽이든 결국 보스를 사냥해야만 성립되는 내기.
하지만 봉인석을 부수면 그 참가자는 키메라를 소환수처럼 부리게 된다. 당연하게도 보스를 먼저 잡는 쪽이 승리하는 내기는 성립될 수 없었다.
“아니. 그 내기는 내가 이길 거다.”
유원의 대답에 잠시 멈칫하던 하르간은 어깨를 잡은 손에 더 힘을 주며 소리쳤다.
“그럼 뭔데? 대체 저게 왜 필요하냔 말이다!”
“……이럴 거 같아서 혼자 하려던 거였는데.”
유원은 한숨을 푹 쉬고는 손을 들었다.
어느새 유원의 손에는 인벤토리에서 꺼낸 칼이 들려 있었다.
그 순간.
“김유원-!”
파지지지직-!
하르간은 유원의 몸을 통해 전격을 뿜어냈다.
하지만.
부웅-.
차아앙-!
유원이 던진 칼끝은 결국, 멀리 떨어져 있는 봉인석을 깨뜨렸다.
[봉인석이 파괴되었습니다.] [보스 – 키메라(Chimaira)의 봉인이 풀려납니다.] [봉인에서 풀려난 키메라를 처치하십시오.] [키메라의 주인은 ‘김유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