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61
* * *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돈키호테는 놀라 뒤로 주저앉았다.
한 순간, 세상이 온통 정전하듯 시야가 까맣게 변했었다.
그게 자신이 기억하는 마지막 전장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쿠르르르-.
서서히 드러난 시야.
한 순간, 믿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마력이 느껴진다 싶었다.
그런데 그 ‘한 방’의 결과가 바로 눈앞의 풍경이라니.
“전장이…….”
소멸됐다.
돈키호테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흔들리는 눈동자로 새까맣게 변한 땅을 바라보았다.
전격의 영향으로 잔뜩 타들어 가고 어둠 속성의 마나의 영향인지 그나마 겨우 숨통이 붙어 있던 거인들이 픽픽 쓰러지고 있었다.
전장이 통째로 소멸되었다.
단 한 방에.
‘이게…… 김유원?’
돈키호테의 시선이 유원의 등으로 향했다.
김유원.
소문만 무성한 플레이어였다.
사실은 랭커일지도 모른다느니, 역사상 최강의 플레이어라느니, 오딘의 숨겨진 아들일지도 모른다느니…….
별의별 말이 다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확인된 건 없었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듣던 게 모두 거짓이었다.
오히려.
‘듣던 것보다 더하잖아?’
파지직-.
유원은 눈앞에 남아 있는 전격의 잔해와 사라진 전장을 바라보았다.
벼락을 한 발 떨어뜨리고 난 후, 애써 만들었던 구름은 사라진 후였다.
‘어설프지만 그래도 성공인가.’
근두운의 이론은 마력을 끝없이 집약시킨 구름이었다.
구름의 형태로 이루어진 마력의 덩어리는 톡 건드리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버리기 마련.
그리고 유원이 할 일은 그렇게 모인 거대한 마력의 덩어리를 벼락으로 만들어 떨어뜨리는 것뿐이었다.
‘한 발이라…….’
이 한 발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다.
조무래기들을 상대로는 이만한 기술도 없었지만, 다른 실전에서 쓰기는 어려운 기술이었다.
“역시 아직 한참 멀었군.”
라그나로크.
이 거대한 무대 속에서 유원은 자신의 힘이 아직 너무 많이 부족하다는 걸 실감했다.
예전만큼 강해지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그래도 이 큰 전장에서 활약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는 더 강해져야 했다.
스윽-.
유원은 몸을 돌려 미드가르드로 향했다.
도망친 병사들과 돈키호테의 시선이 느껴졌다.
한 순간 아래로 떨어진 벼락에 놀라 자리에 나자빠진 자들이 태반. 돈키호테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유원에게 다가왔다.
“수, 수고했…… 네니다.”
말끝이 조금 이상했지만 유원은 개의치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장의 정리부터 해라. 다음에도 이번처럼만 하고.”
또 이런 일이 있다면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티기만 하라는 뜻.
그 말에 돈키호테가 놀라 물었다.
“병력을 더 강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음 공격은 없을 거다.”
“예?”
“이건 어차피 보여 주기 식의 공격이었어.”
유원은 바닥에 깔린 거인들을 바라보았다.
쉬워도 너무 쉽게 끝났다.
숫자가 꽤 많긴 했지만 진짜배기는 없었다. 이만한 전력이라면 아마 자신이 아니라 브룬힐데가 왔어도 충분히 정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 번 숨고르기를 한 건가.’
지금껏 무스펠하임은 계속 당하고만 있었다.
제천대성과 거인 학살자에게 공격받고, 아군이었던 마왕까지 아스가르드에게 넘어갔다.
슬슬 움직임이 있을 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던 차.
아니나 다를까, 바로 반응을 해 온 것이다.
‘수르트가 아니다.’
애초에 수르트는 불같은 성질을 지닌 녀석이었다.
싸움을 아예 걸지 않는 거라면 모를까, 이런 식으로 작은 싸움을 걸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 녀석이다.’
어리석은 혼돈.
녀석이 수르트의 뒤에 있다는 걸 아는 유원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짙게 미소를 지었다.
“아마, 머리 좀 아플 거다.”
예전이야 어떨지 몰라도, 이번에는 자신이 있었다.
* * *
“이게 뭔가?”
헤라클레스는 브룬힐데가 건네는 굵직한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
어딜 봐도 평범한 나무였다. 장작으로라도 쓰면 쓸 데는 있겠지만, 지금 자신이 받을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오딘 왕께서 선물하시는 거요.”
“오딘 왕이?”
“김유원의 부탁이라 하더군.”
“그 친구의?”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던 헤라클레스는 브룬힐데가 건네는 나뭇가지를 손에 쥐었다.
손에 착 감기는 나무.
꽤 두꺼운 가지였다. 손에 쥐는 순간, 그 단단함이 느껴졌다.
동시에.
헤라클레스의 눈이 번뜩였다.
‘부러뜨리지 못할 것 같다.’
분명 무엇이든 손에 쥐면 부러뜨릴 자신이 있었다.
힘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강하다고 자부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이건 그런 느낌과는 달랐다.
스스로 부러지고자 하지 않으면 절대 부러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
고작 나뭇가지가 ‘스스로’ 부러진다는 게 이상하다 싶었지만, 이 탑에서는 원래 온갖 희한한 일들이 다 벌어진다.
이 느낌.
의심하는 게 바보 같은 일이다.
꽈악-.
손안에 힘이 들어간다.
순간, 머릿속에 한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잠시 실례하지.”
헤라클레스가 급히 플레이어 키트를 꺼냈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헤파이스토스였다.
-뭐냐?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형님.”
헤파이스토스와는 평소 그리 연락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손안에 들어온 이걸 다룰 수 있는 사람은 헤파이스토스뿐이었다.
“아이템을 하나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아이템을? 네가?
“예. 필요하시면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올림포스 부수기 이후, 헤파이스토스는 올림포스 내에서 부여된 죄목이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아직 1층의 공방을 벗어나지 않고,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1층까지는 거리가 제법 있었다.
제아무리 아스가르드의 도움을 받더라도 왕복하는데 족히 사흘에서 나흘은 걸릴 거리였다.
-지금은 공방을 비웠다.
와도 소용없다는 뜻.
용건이 없으면 공방을 비우지 않는 헤파이스토스였기에,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았다.
“어디 가신 겁니까?”
-발할라로 가는 중이다.
“발할라에?”
헤라클레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발할라.
지금 자신이 있는 장소였다.
그때, 헤라클레스의 머릿속에 퍼뜩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혹시 김유원 그 친구 부탁으로 오시는 겁니까?”
-그렇…… 잠깐. 오는 거라니?
“지금 제가 황금 성에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 친구에게 물건을 하나 전달 받았습니다.”
-눈이 번쩍 뜨일 재료가 있다더니, 그건가 보구나.
헤파이스토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지간히도 들뜬 모양.
그 반응에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두꺼운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나뭇가집니다.”
-나뭇가지?
“예. 그런데 보통 물건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잠깐의 침묵.
그리고 이내, 플레이어 키트 속에서 헤파이스토스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거기 딱 기다리고 있어라. 어디 가기만 해 봐!
뚝-.
급히 끊어진 연락.
눈에 불을 켜고 달려올 게 훤히 그려졌다. 오래전부터 헤파이스토스는 좋은 재료를 발견했다 싶으면 물불 가리지 않는 걸로 유명했다.
그 사실을 알기에 헤라클레스는 손안에 들어온 나뭇가지를 새삼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괜찮은 재료라고 생각해, 이걸 무기로 써 볼 생각을 하긴 했으나…….
‘이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
* * *
“깔끔하게 졌군.”
고저 없는 목소리에 팔팔 끓던 용암이 서서히 식었다.
흥을 잃어버린 반응이었다.
“애초에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이렇게 해야 하나?”
거인들을 움직인 수르트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화끈하게 싸우는 거라면 모를까, 어중간하게 할 거라면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것만 못했다.
적어도 수르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저들에게 경각심을 심어 주는 겁니다.”
어리석은 혼돈은 생각이 달랐다.
“언제 미드가르드가, 알프하임이, 요툰하임이, 아스가르드가 공격받을지 모른다. 그 생각을 심어 주는 것이죠.”
“의미가 있는 일인가?”
“상대의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겁니다.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
미간을 꾹꾹 누르며 수르트가 중얼거렸다.
“아무튼 이제 정말 머지않았군.”
“예정보다 많이 가까워졌습니다. 또한, 예정보다 많이 어려워지기도 했습니다.”
“마왕 때문인가?”
“예.”
며칠 전까지 마왕은 무스펠하임의 가장 큰 전력 중 하나였다.
인간과 거인이라는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악마족이라는 틀 안에서 같았던 두 세력은 분명 함께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어리석은 혼돈의 예상이 깨어졌다.
큰 손실이었다.
“대안은?”
“있습니다.”
쉽게 나온 대답.
지금껏 어리석은 혼돈이 이렇게 대답해서 실망시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야.”
“중요한 건 마왕 쪽이 아닙니다.”
“그럼?”
“더 판을 키우는 겁니다.”
판을 키운다.
그 말에 수르트의 붉은색 눈이 반짝거렸다.
“판을 키운다면?”
“예정과는 다르게 라그나로크는 너무 일찍 시작해 버렸습니다. 지금 싸웠다가는 끝을 보지 못하고 흐지부지 일이 끝날 수도 있습니다.”
수르트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건 안 되지.”
“예. 그래서 드린 말씀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쪽에는 직접 움직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리석은 혼돈은 아껴 두고 있던 가장 강한 말을 움직였다.
“오딘을 자극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판은 저절로 커질 겁니다.”
“뭘 어떻게 하라는 거지?”
“오딘의 아들.”
가려진 로브 속.
어리석은 혼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발두르를 죽이십시오.”
* * *
마무리된 전장 한가운데.
불쾌한 시체 더미를 앞에 두고 유원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
말을 걸어 봐도 짧은 단답만이 돌아올 뿐, 유원은 줄곧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다.
돈키호테는 결국 유원에게 말을 거는 걸 포기했다.
한바탕 큰 스킬을 뿜어댔으니 조금 쉬는 시간이 필요한 거려니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이 다음. 다음은…….’
보여 주기 식의 싸움을 한 걸 보면 본격적으로 싸움을 걸어오려는 건 아니다.
라그나로크의 역사는 이미 바뀌었다. 이제부터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녀석의 목적은 다르지 않다.’
그 순서가 바뀌었을 뿐, 어리석은 혼돈의 목적까지 바뀐 건 아니었다.
스윽-.
플레이어 키트를 꺼낸 유원이 오딘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오딘이 연락을 받았다.
-끝난 지가 언젠데, 일찍도 연락하는군.
이미 전장이 정리되었다는 걸 보고받은 듯, 오딘의 목소리는 시큰둥했다.
-가시는 전달했다. 그걸 어떻게 쓸지는 이제 그가 정할 테지.
가시는 이그드라실의 뿌리를 의미했다.
단순한 뿌리라면 그리 쓸모가 있을지 모르지만 가시였고, 또 헤파이스토스를 보내 놓았으니 조만간 헤라클레스의 무기가 완성될 것이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어리석은 혼돈이 취할 다음 행동.
그것을 떠올리던 유원은, 결국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발두르…….”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
라그나로크라는 거대한 싸움 속에서 어리석은 혼돈은 탑의 힘을 갉아먹을 계획을 세웠다.
그런 그가, 원래의 계획보다 훨씬 작은 이런 싸움에서 만족할 리 없었다.
“발두르는 지금 어디 있지?”
어리석은 혼돈은 판을 키우기 위해, 결국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