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66
* * *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새까만 땅 아래.
쿵-.
쿵쿵, 쿵쿵쿵-.
그곳에서부터 분주한 거인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통해 저들의 다급함이 느껴졌다. 그걸 통해 유원은 돌아가는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돌아왔나.’
그렇지 않아도 슬슬 돌아올 때가 되긴 됐다 싶었다.
다행히 시간은 널널했다. 그만큼 손오공이 잘해 줬다는 뜻이었다.
치치치-.
심장을 통해 거대한 마력의 덩어리가 느껴졌다.
일단 옮겨 놨으니, 이제 이걸 자신의 것으로 만들 차례였다.
‘시간이 꽤 걸릴 거라고는 생각했다.’
수르트의 불은 당장 유원이 감당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원래라면 다가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거대한 마력의 덩어리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다 소화하려면 몇 년이 더 걸리려나.’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까지는 생각해 두고 있던 부분이었다.
예상치 못한 건, 다른 호재였다.
화륵-.
불은 어딘가에 부딪치거나 거부 반응 없이 유원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었다.
처음 불을 얻을 때까지만 해도, 꽤 고생을 할 줄 알았건만,
[마력이 1 상승하였습니다.] [마력의 성질이 ‘불’ 속성으로 변화합니다.] [마력의 성질이 완전히 변화하였습니다.] [불 속성 저항력이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성화’가 ‘불의 심장’에 반응합니다.]오히려 물 만난 고기처럼 유원의 마력이 날뛰기 시작한다.
온몸이 용암처럼 팔팔 끓는 느낌이 들었다. 불 속성의 마력을 다루는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성격이 불같다더니, 이 때문인 모양이었다.
누구와도 싸워서 지지 않을 것 같은 자신감.
이런 경우 대부분 자신의 힘을 과신하고, 전력을 냉정히 파악하지 못하기 마련이었다.
‘조심해야겠어.’
유원은 자신을 찾고 있는 거인들을 뒤로하고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유원은 자신의 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화륵-.
거대한 불을 잡아먹고 있는 그보다 더 큰 불.
마치, 이 모든 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듯이 스스로 의지를 가진-.
‘성화’였다.
* * *
저벅-.
작은 발자국 소리 하나가 귀에 들렸다.
어리석은 혼돈이 수르트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너는 알고 있었나?”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누군가 불을 훔쳐 갔다.”
동요하는 반응이 아니었다.
수르트의 안광이 번뜩였다.
눈앞에 있는 녀석이 당황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건 분명 알고 있는 반응이었다.
“왜 막지 않았지?”
알고 있다면 막을 수도 있었을 터.
자신에게는 안 되겠지만 어리석은 혼돈은 충분히 대단한 힘을 숨기고 있었다.
알고 있다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지금 눈앞에 나타난 모습을 보니, 녀석에게는 싸운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때가 되기 전까지 저는 직접 움직일 수 없다고.”
“그깟 약속 때문에, 내가 모은 불을 포기했다는 말이냐?”
수르트의 분노로 주위의 공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어리석은 혼돈의 앞에 흐르던 용암이 끓어올랐다.
“그깟이라…….”
어리석은 혼돈의 목소리에 비웃음이 섞였다.
“무엇과 약속했는지 아신다면 그렇게 말씀하실 수 없을 겁니다.”
“뭐라?”
콰직-!
홧김을 이겨 내지 못한 수르트가 어리석은 혼돈을 짓밟았다.
발끝을 통해 개미가 터져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해 온 존재라 한들, 불을 잃어버린 수르트는 그런 걸 따질 여유가 없었다.
“벌레 같은 녀석이 어딜…….”
-정말 모르셨습니까?
스스스-.
어리석은 혼돈이 짓밟힌 자리에서 보랏빛의 안개가 흘러나온다.
-제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지금쯤이면 아실 텐데요.
“그래서? 뭘 어쨌다는 말이냐?”
-어쨌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저, 제게 분풀이하시지 말라는 뜻입니다.
“뭐라?”
-애초에 불을 만드는 법도, 제가 알려 드린 게 아닙니까?
빠직-.
수르트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게 설령 맞는 말이라 한들 어리석은 혼돈이 방관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수르트는 어리석은 혼돈에게 다시 손을 쓸 수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래서? 이다음은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아직까지 그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어리석은 혼돈은 수르트가 만나 본 가장 위대한 책략가였다. 그는 먼 미래를 내다보듯, 모든 것들을 통탈해 알고 이야기했다.
“불이 없어졌다. 그럼 다음은?”
-다음은 없습니다.
“없다?”
-불은 당신이 오딘을 넘어설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또한, 이미 전세는 기울었습니다.
보랏빛 안개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수르트는 점점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다음이 없다.
그 말은 즉, 이 싸움에서 자신들이 이길 방법이 없다는 뜻이었다.
-라그나로크를 준비한 모든 것들이 무산되었습니다. 상대는 저희보다 더 앞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오딘의 짓인가?”
-또 다른 누군가입니다. 오딘은 이 평화를 깰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럼 대체 누가…….”
머리가 지끈거렸다.
변수라고 생각한 녀석이라면 제천대성과 거인 학살자 둘이었다. 둘 모두 대단한 하이랭커였고, 거대한 전쟁에서 변수를 일으킬 만한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단순히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불이 사라졌다.
자신이 아니고서는 결코 훔쳐 갈 수 없는 물건을 훔쳐 갔다는 건, 그것을 옮길 준비까지 갖추었다는 뜻이었다.
-라그나로크는 본래 더 긴 시간을 들여야 했습니다. 더 많은 길드가 참여하고, 발두르가 죽고, 아스가르드의 멸망을 바라는 더 많은 세력이 싸움에 참여했어야 합니다.
그 말 속에서 수르트는 어리석은 혼돈이 처음으로 감정을 내비추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황과 분노. 호기심.
여러 생각들이 뒤섞인 말이었다.
-누군가 저보다 더 많은 수를 두고 있습니다. 당신 외에 누군가 불을 가져갈 수 있을 거라고는 저 역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방법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 방법은 이미 쓴 상태입니다. 아주 조금 더, 시간벌이는 할 수 있겠지요.
“무슨 수든 생각해 내란 말이다! 뭐든!”
-이길 수 있는 방법이 하나는 있습니다.
불같이 화를 내던 수르트가 조금 화를 식혔다.
방법이 남았다.
이제 남은 건 거기에 희망을 거는 것뿐이었다.
“그게 뭐냐?”
-당신의 손으로 오딘의 숨통을 끊으십시오.
“……?”
수르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너무나도 당연한 대답이었다.
오딘을 죽이면 전쟁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그만큼 위대한 존재이자, 아스가르드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애초에 어리석은 혼돈은 특별한 ‘방법’을 말한 게 아니었다.
이어진 목소리에 비웃음이 섞였다.
-이해하지 못하니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는 이유는, 오딘을 죽일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불을 잃어버린 수르트는 절대 오딘에게 이길 수 없다.
어리석은 혼돈의 말은 바로 그런 뜻이었다.
“죽고…… 싶으냐.”
-당신은 절 죽일 수 없습니다. 덩치만 큰 어리석은 거인이여.
다 끝났다는 뜻일까.
어리석은 혼돈은 더 이상 수르트에게 예의를 차리지 않았다.
이미 길을 잃어버리고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 기물은 일찍 포기하는 게 상책이었다.
이미 죽은 기물을 살려 보겠노라 발버둥 치는 건 하책이며, 어리석은 혼돈이 쓰는 방법도 아니었다.
-오딘의 움직임은 잠시 묶어 두지. 하지만 이제 남은 다음은, 무스펠하임의 몰락뿐이다.
후우웅-, 펑-!
결국 참지 못한 수르트의 손바닥이 보랏빛의 안개를 날려 버렸다.
순식간에 어리석은 혼돈의 잔재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 그는 결국, 마지막 보루까지도 자신의 손으로 내치고 말았다.
“으아아아아-!”
수르트가 분노에 괴성을 질렀다.
세상이 온통 떠들썩하게 흔들렸다. 용암이 들끓다 못해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그 용암이 수르트의 몸에 끼얹어졌다.
화가 주체가 되질 않았다. 당장이라도 불을 훔쳐 간 범인을, 어리석은 혼돈을 찾아 흔적도 찾을 수 없게끔 짓뭉개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네놈이 없어도 상관없다. 불 따위가 없어도, 오딘은 내 손으로 짓밟아주마.”
지금은 우선 싸움에서 이기는 게 먼저였다.
이미 싸움은 시작되었다.
* * *
브룬힐데과 토르가 나란히 섰다.
황금 성이 있는 도시. 그 외곽에 선 두 사람이 같은 것을 보며 입을 열었다.
“하늘입니다.”
“하늘이로군.”
지평선 너머로 보이기 시작한 새하얀 물결.
서서히 시야에 들어오자,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거대 길드, 하늘.
천족들이 전의를 활활 불태우며 다가오고 있었다.
“하늘이 왜?”
“마왕이 우리 쪽에 붙었습니다.”
“그래서 배신한 건가?”
“손익 계산보다는 오직 마왕에 대한 적개심이 우선인 족속들입니다.”
“무스펠하임도 악마족들로 모인 녀석들인데?”
“정의감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는 거지요.”
“역겹네, 그거.”
토르가 손을 뻗었다.
콰릉-!
푸른 전격과 함께 토르의 손안에 작은 망치가 들어왔다.
아스가르드의 왕자, 토르를 상징하는 아이템.
‘묠니르’였다.
“저런 녀석들에게는 매가 약이지.”
스카악-.
브룬힐데 역시 검을 뽑았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뛰쳐 나가려는 토르와는 달리, 그녀는 확연히 가까워진 하늘의 천사들을 바라보았다.
“미카엘이 있습니다.”
미카엘.
하늘의 대천사들 중, 최강이라 알려진 존재.
그가 직접 이곳에 오고 있었다.
“오딘께서 없다는 걸 알고 온 것 같습니다.”
황금 성의 최고 전력은 누가 뭐래도 오딘이었다. 그가 있기에 황금 성은 아스가르드에서 가장 단단한 요새가 될 수 있었다.
브룬힐데나 토르만 하더라도 상당한 랭킹의 하이랭커였지만 미카엘을 선두로 한 하늘은 그야말로 만전.
전력상으로는 황금 성의 발키리들과 랭커들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제천대성과 헤라클레스는? 그 둘이라면 미카엘을 막을 수 있을 텐데.”
“둘 모두 자리를 비웠습니다.”
“헤라클레스도?”
“예. 헤파이스토스와 함께 떠난 모양입니다.”
“젠장.”
“아무래도 어렵겠습니다.”
브룬힐데의 말에 토르가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도망치자는 말이냐?”
“장소는 언제든 복구할 수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무수한 신비로 가득한 이 탑에도 죽은 자를 되살리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니.”
토르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황금 성은 아스가르드 그 자체이며, 상징이다. 한 번 무너진 상징은 다시 되돌릴 수 없어.”
파직, 파지지지-.
토르의 몸에서 푸른 전격이 뿜어졌다.
오딘 왕의 아들이며, 푸른 천둥이라 불리는 하이랭커.
그가 자신의 마력을 마음껏 뽐내기 시작했다.
“그러니 나는 여기서 싸우겠다.”
나는.
토르는 그 말에 힘을 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모두가 자신의 등 뒤에 있을 수 있도록.
황금 성의 다른 이들이 도망칠 수 있도록.
그런데 그때.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말을 멋지게도 늘어놓는군.”
그 말을 비웃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힘이 없다는 말의 변명인 것을 말이야.”
홱-.
토르와 브룬힐데의 고개가 돌아갔다.
파짓-.
토르의 푸른 전격과는 다른, 황금빛의 전격이 눈에 들어왔다.
태양이 바로 눈앞에 나타난 것처럼 눈이 부셔, 두 사람은 바로 상대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잠시 후.
“……제우스?”
그곳에선 황금색의 수염을 기른 미남자.
절그럭-.
아스가르드의 죄인, 제우스가 감옥에서 풀려나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