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69
* * *
수르트를 직접 마주하는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당시는 라그나로크가 끝나고, 무스펠하임의 독재가 시작되었던.
탑의 대혼란기 때였다.
‘그땐 아마, 저 녀석이 불을 삼킨 후였겠지.’
당시 수르트의 불꽃은 웬만한 하이랭커들도 다가가는 것조차 불가능한 수준이다.
예전의 유원도 그랬다.
그때 당시 유원은 20위 안쪽의 하이랭커였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느낌이 달랐다.
‘지금은, 그때만 못해.’
단순히 그때와 지금의 실력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수르트에게 중요한 게 빠져 있기 때문이었다.
불.
녀석에게 그 옛날, 처음 아스가르드에서 추방당했던 때부터 모아 온 불이 없기 때문이었다.
“네 이노옴-!”
쩌렁쩌렁한 외침과 함께 유원의 위로 수트르가 뛰어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콰앙-!
어느새 함께 날아오른 헤라클레스의 곤봉이 수르트의 몸을 후려쳤다.
부우우웅-.
콰앙-!
멀찍이 날아간 수르트의 몸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땅을 뒤집었다.
턱-.
그대로 유원의 옆에 착지한 헤라클레스는 곤봉을 들어 올린 채 수르트를 경계했다.
지금 이 싸움에서 유원은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수르트라면 한순간에 유원을 짓이겨 버릴 능력이 충분했다.
“어디 있었던 거냐? 먼저 와 있겠다더니.”
“이 아래에.”
“아래에?”
유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헤라클레스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눈살을 찌푸렸다.
먼저 와 있겠다더니 땅 속에 숨어 있었다니. 유원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하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이쪽 싸움에서는 빠져 있어라.”
쿵-.
쓰러졌던 수르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가 잔뜩 났는지 이미 그의 몸에서는 처음보다 훨씬 더 뜨거운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저 녀석은 아버지보다 더한 괴물이니.”
유원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제우스와 싸운 적이 있었다.
당시 제우스의 랭킹은 9위.
하지만 눈앞에 있는 수르트는 그보다 훨씬 높은 랭킹의 괴물이었다.
“그리 말하면 섭섭하지.”
유원은 수르트를 눈에서 떼지 않고는 입을 열었다.
“저 녀석 하나 잡겠다고, 내가 얼마나 발에 땀이 나게 뛰었는데.”
“……?”
화아악-!
수르트의 손안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다시금 불꽃의 검을 손안에 쥔 수르트가 그것을 휘두르려는 순간.
“뒤로 피하…….”
저벅-.
앞을 가로막으려던 헤라클레스는 오히려 유원이 앞으로 나서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아무리 유원의 실력이 높아졌다 한들, 수르트의 불꽃이었다.
휘말리면 순식간에 재가 되어 버릴 터였다.
“너 지금 미쳤!”
화아악-!
막아 보려 해도 이미 한 박자 늦은 후.
불길은 이미 헤라클레스와 유원을 휩쓸고 지나간 상태였다. 곤봉을 휘둘러 불길을 막아 낸 헤라클레스는 황급히 유원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김유원-!”
다급한 목소리.
하나, 반응은 예상과는 달랐다.
“그렇게 크게 부르지 마라.”
화르르르-.
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이글거리는 불길 속, 유원이 태연히 서 있는 게 보였다.
“바로 옆에 있다. 귀청 떨어질라.”
새빨간 불길이 걷힌다. 색이 서서히 바뀌며,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수르트가 휘두른 불꽃이 어느새 유원의 것처럼 변해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도깨비불이라도 되는 걸까.
그 불을 휘감은 유원의 옷에는 조금의 그을림도 보이지 않았다.
걱정에 목청껏 소리를 질렀던 헤라클레스는 힘이 턱 풀어졌다.
비상한 녀석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수르트의 불마저 막아 낼 줄이야.
“뭘 어떻게 한 거냐?”
분명 유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제 막 하이랭커 수준에 들어온 상태였다.
심지어 아직, 그는 랭커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 유원이 수르트의 불을 막아 냈다는 걸 믿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말했잖아. 준비를 많이 했다고.”
“준비? 무슨…….”
“쓸데없는 소리는 나중에 하고.”
화르르륵-.
몸 주위로 치솟는 불길과 함께 수르트가 다가왔다.
위협적인 불꽃이었다.
하지만 유원의 반응은 여전했다.
“일단 믿어 봐.”
“……알았다.”
떨떠름한 대답.
아무래도 아직은 확실히 믿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에 본 것도 있으니 아주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헤라클레스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었다.
“저 불꽃, 막을 수 있나?”
유원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아마?”
“그래도 죽지는 않을 거다.”
“믿는 구석이 있는 거냐?”
“그건 확실하지.”
유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표정에 헤라클레스는 비로소 남아 있던 불안감을 떨쳐낼 수 있었다.
유원이 저렇게까지 자신감을 드러내는 건 오랜만이었다. 게다가 확실히, 유원에게서는 지금까지 느껴지지 않았던 종류의 마력이 느껴졌다.
‘저 보랏빛의 불꽃이 뭔지는 몰라도…….’
힐끗-.
헤라클레스는 유원의 주위에 피어오른 보랏빛의 불길을 바라보았다.
‘막아 낼 수 있다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화륵, 화르르-.
유원은 수르트를 향해 걸어갔다.
수르트의 목적은 자신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유원이 가진 ‘불’이었다.
“시선은 내가 끈다.”
각자의 포지션은 정해졌다.
“넌, 저 녀석에게 한 방 먹여라.”
헤라클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유원이 수르트의 불을 견뎌 낼 수 있다면, 이 싸움의 판도는 바뀔 것이다.
탑 최강의 육체라 불리는 헤라클레스는 육체적인 내구도는 거의 적수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실제로도 헤라클레스가 거슬려 하는 건 수르트의 힘이 아닌, 그의 ‘불’이었다.
“부탁하지.”
꾸드득-.
헤라클레스의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내놓아라…….”
콰우우-.
수르트의 불길이 악마의 형상을 만들어 낸다. 화마는 수르트의 뜻에 따라 더욱 커지고, 매서워졌다.
화가 난 만큼 수르트의 불은 더욱 뜨거워졌다.
이내, 수르트의 불꽃이 다시금 휘둘러졌다.
화아아악-!
하지만.
“아직도 모르나 보네.”
타닥, 타다닥-.
그런 수르트의 반응이 유원은 더욱 마음에 들었다.
[‘우라노스의 심장’이 ‘수르트의 멸화’에 저항합니다.] [‘화안금정(火眼金睛)’이 ‘수르트의 멸호’에 저항합니다.] [‘불의 심장’이 ‘수르트의 멸화’에 저항합니다.] [‘성화’가 ‘수르트의 멸화’에 저항합니다.] [‘성화’가 ‘수르트의 멸화’를 포식합니다.] [불 속성에 대한 저항력이 높습니다.] [저항에 대부분 성공합니다.]“……!”
불꽃이 가로막히자 수르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불꽃을 정면에서 막아 낼 수 있는 상대가 있다니.
수르트가 휘두른 불길 속을 걸으며 유원이 수르트를 올려다보았다.
“네가 가진 ‘불’은 이제 안 통해.”
그리고 그 순간.
부우웅-.
수르트의 뒤에서 헤라클레스가 곤봉을 휘둘렀다.
* * *
“꼬리를 조심해라-!”
“머리, 머리를 노려!”
“움직임부터…….”
“어차피 힘으로는 못 싸워!”
“이쪽 부상자! 부상자부터 옮겨!”
아스가르드와 용족의 전쟁.
수많은 랭커와 플레이어들이 레비아탄을 상대로 고전했다.
레비아탄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상위 랭커급의 힘을 지닌 개체들.
더군다나 비행 능력을 갖춘 레비아탄은 아스가르드의 군대마저도 버거워할 만한 상대였다.
게다가 그런 레비아탄들이 수백.
아스가르드는 새삼 용족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고 있었다.
하나.
번쩍-!
피잇-.
아스가르드에는 오딘 외에도 실력자들이 있었다.
쫘아아악-!
샛노란 섬광과 함께 반으로 베어지는 레비아탄의 몸체.
그 깔끔한 검격에 잠시 멈칫하던 아스가르드의 병사들이 환호했다.
“발두르! 발두르!”
“발두르-!”
“우리에겐 발두르가 있다!”
빛과 같은 칼솜씨로 알려진 아스가르드의 하이랭커.
발두르가 전장을 지휘했다.
“최소 다섯 명 이상의 랭커들을 중심으로 팀을 구성해라! 포지션을 선별하고, 전장을 넓게 사용해!”
발두르는 가장 바쁘게 움직였다.
그의 칼이 움직일 때마다 레비아탄들이 픽픽 쓰러져 땅 아래로 추락했다.
상위 하이랭커의 힘은 그런 것이었다.
단 한 명의 존재만으로도 전장의 흐름을 바꿔 놓을 수 있는.
하지만 그런 발두르조차, 저 싸움에는 끼어들 수 없었다.
“……아버지.”
콰릉, 쿠르르-.
구름 속에서 싸우는 두 존재가 있었다.
아스가르드의 군대에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최대한 거리를 벌린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둘의 싸움으로 아스가르드의 병사들은 이미 잿더미가 되어 있을 것이다.
캬아아아-!
이따금씩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온몸이 오싹거렸다.
평범한 병사들은 느낄 수 없는 종류의 마력이었다.
브리트라.
녀석이 왜 무스펠하임을 돕는 것인지는 몰라도, 녀석의 숨결은 순식간에 도시 한두 개 정도는 증발시킬 만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오딘은 그런 브리트라의 숨결로부터 아스가르드의 군대를 보호하며 싸우고 있는 것이고.
‘결국에는 아버지가 이길 거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쿵-.
저 멀리, 수르트가 싸우고 있었다.
오딘은 저곳에 있어야 했다.
수르트를 막을 수 있는 건, 오직 오딘뿐이었으니.
‘그런데…….’
힐끗, 발두르의 시선이 돌아갔다.
저 멀리, 수르트가 격렬히 움직이는 게 보였다.
하늘까지 치솟는 불길과 땅을 울리는 발소리. 전투가 제법 격렬하다는 뜻이었다.
‘저곳에서 싸우고 있는 건 누구지?’
수르트는 이 탑에서 가장 강한 존재 중 하나였다.
오딘 역시, 아스가르드에서 그를 상대할 수 있는 건 자신뿐이라 말하기도 했다.
한 종족의 정점이라는 건 그런 존재였다.
개인의 힘이 몇 개의 세상을 멸망으로 이끌 수 있는.
그런데 그런 그가, 오딘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싸우고 있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다. 서둘러 아버지가 합류해야 한다.’
힐끗, 고개를 들어 올린 발두르가 오딘과 브리트라의 싸움을 바라보았다.
콰아아아-!
브리트라의 브레스를 오딘의 궁니르가 막아 낸다. 단순히 막아 내는 것만이 아니라 오딘은 그것을 위쪽으로 튕겨 내 버렸다.
이윽고 구름 위에 거대한 마법진이 떠올랐다. 불꽃에 대응하는 거대한 얼음의 창이 브리트라를 향해 날아가고, 브리트라의 꼬리가 그것을 향해 휘둘러진다.
콰차창-!
얼음의 창이 산산이 부서졌다. 부서진 얼음의 파편들은 바닥에 떨어지고, 다시금 둘이 충돌했다.
쩌어엉-!
발두르는 계속해서 오딘과 브리트라의 싸움을 올려다보았다.
넋이 나간 듯, 허공을 밟고 가만히 서 있는 발두르.
그런 그의 모습에 발키리 하나가 다가왔다.
“발두르 님, 괜찮으십니까?”
이번 싸움에서 발두르는 다른 누구보다도 더 격렬히 움직였다.
스킬을 아끼지 않고 퍼부었고, 그만큼 빨리 지칠 수밖에 없었다.
“피곤하시면 잠시 쉬십시오. 여긴 저희에게…….”
“이제 됐다.”
“예?”
발두르의 대답에 발키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까지도 전투가 한창인데 이제 됐다니.
발키리는 발두르의 시선을 쫓았다.
그가 보고 있는 건, 오딘과 브리트라의 싸움이 아니었다.
“이제 곧…….”
구름 속.
“그가 올 거다.”
그 안을 바라보던 발두르가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이내.
“커져라-.”
오딘과 브리트라가 싸우고 있는 구름 속에서, 마력을 가득 머금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