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7
철그럭, 철걱-.
키기기기깅-.
키메라의 몸에 둘러져 있던 사슬과 구속구들이 풀려나기 시작했다. 거대한 몸체의 키메라를 가두고 있던 철창은 빠르게 부식되며 검게 변해 갔다.
“네놈, 기어이……!”
하르간은 봉인석을 깨드린 유원을 노려보며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이것으로 유원은 눈앞에 있는 키메라의 주인이 되었다.
믿었던 동료에게 배신당한 기분.
하지만 다음으로 이어진 유원의 행동은 하르간의 예상과는 달랐다.
“키메라.”
크르르르-.
“저쪽, 벽을 부숴.”
유원의 명령에 구속에서 풀려난 키메라는 벽을 향해 달려들었다. 비대한 몸뚱이가 벽에 충돌하자, 공동이 한 번 뒤흔들렸다.
콰앙-!
구우웅-!
벽이 무너지고, 반대쪽 공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러운 유원의 명령에 하르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뭐 하는 거냐?”
“일단 이 손부터 놓고 이야기하지.”
콱-.
유원은 하르간의 손을 잡아 내렸다.
꽈아악-.
하르간은 어깨를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아직 그는 유원의 행동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대로 설명이나 해라.”
“저 녀석은 너희를 공격하지 않을 거다. 이걸로 통제권은 나한테 있으니까.”
유원은 그렇게 말하며 턱짓으로 키메라를 가리켰다.
5번 튜토리얼의 보스.
하지만 유원은 봉인석을 파괴함으로써 녀석의 통제권을 얻어 냈다.
확실히, 통제권을 얻은 이상 키메라는 유원의 명령 없이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결국 유원이 키메라를 이용해 공격할 생각만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이었다.
“지금부터 상대할 적은 따로 있어.”
“보스가 아니라 다른 녀석이?”
“키메라는 섬에 있는 여러 괴물들이 섞여 만들어진 괴물이다.”
“갑자기 그게 뭔…….”
“키메라는 누가 만들었을까?”
유원의 물음에 하르간의 눈이 번쩍 뜨였다.
동시에 유원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그의 손에 힘이 풀어졌다.
하르간은 키메라가 무너뜨린 벽면을 바라보았다. 만약 키메라가 진짜 보스라면, 그리고 더 이상 준비된 무대가 없다면 있을 리 없는 공간이었다.
‘설마…….’
설마가 사실이었다.
유원은 키메라와 함께 무너진 벽면 안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
“팀장.”
“이거, 어떻게 해야 됩니까?”
메시지는 분명 키메라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녀석은 튜토리얼의 보스였고, 자신들은 그 보스를 잡아야 하는 참가자의 입장.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결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일단 가 보자.”
하르간은 유원의 뒤를 따랐다.
다른 일행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너진 벽면 안쪽으로 들어가자, 꽤 길게 이어진 통로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통로에는-.
“뭐야?”
“팔?”
“……머리?”
-사람의 신체로 보이는 몸뚱이들이 걸려 있었다.
음산한 분위기.
쿵, 쿵-.
유원은 키메라를 데리고 계속 통로를 걸어갔다.
통로는 곧 끝이 보였다.
화륵-.
횃불이 걸려 있는 넓은 공동.
이곳은 메시지가 알려 주지 않은, 5번 튜토리얼의 4번째 방이었다.
[4번 보스룸(Boos room)에 입장하였습니다.] [보스가 갱신됩니다.] [보스 – ‘키메라 제작자’를 처치하십시오.]“새로운 보스?”
“키메라 제작자는 또 뭐야?”
“젠장.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네.”
갑작스럽게 나타난 메시지에 일행은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그건 하르간 역시 마찬가지.
튜토리얼에 대해서라면 탑의 선택을 받기 전부터 줄기차게 들어오던 그였지만, 4번째 방이나 또 다른 보스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게 없었다.
“여긴…….”
하르간은 4번째 보스룸의 안을 살폈다.
기존의 보스룸보다 몇 배는 넓은 공동.
그 안에는 수많은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튜토리얼 참가자들인가?”
크르르르-.
유원이 데리고 있는 키메라가 울음을 흘렸다.
진한 분노가 섞인 울음소리였다.
“낮잠이라도 자냐?”
유원은 공동의 한가운데를 바라보았다.
저벅-.
기다란 책상.
손에 피를 묻힌 채 무언가 일에 열중하고 있던 빼빼 마른 남자.
“키메라 제작자.”
“이건 또 처음 있는 일인데.”
끼릭-.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앙상한 몸만큼이나 앙상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는지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는 반대되는 검은색의 로브로 가려졌다.
“키메라의 통제권을 탐냈으면서 배신은 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있는 방으로 찾아오다니 말이야.”
다 갈라진 목소리는 음산한 느낌을 풍겼다.
그는 재미있다는 듯 눈과 입을 휘고는 유원과 하르간을 번갈아보았다.
“호오. 그쪽은 제우스 녀석의 혈통인가? 반쪽짜리긴 해도 꽤 쓸 만하겠어.”
“누가 반쪽짜리야?”
하르간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반쪽짜리.
하르간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다.
그는 유원을 보며 구겨진 얼굴로 물었다.
“뭐냐, 저 녀석은?”
“흑마법사 차일드. 오래전 탑에서 사라진 랭커다.”
“차일드?”
하르간의 눈이 크게 떠졌다.
갑자기 튜토리얼에 랭커라니?
탑의 정상에 올랐던 존재가 왜 튜토리얼에 있는지는 둘째치더라도, 랭커라면 자신들이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정말 저 녀석이 차일드냐?”
“그래.”
“들은 적이 있다. 오래전, 50층의 시험 감독관으로 있던 랭커. 시험에 참가한 수백 명의 플레이어들을 잡아다 실험체로 쓰고, 여러 괴물의 몸을 섞어 키메라를 만들었다고.”
하르간의 말에 일행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그것은 탑에서는 꽤 많이 알려진 사건이었다. 욕망과 충동을 이겨 내지 못한 랭커, 그것도 시험 감독관이 수많은 시험 참가자들을 건드렸던 것이다.
“너무 쫄 거 없다. 죄를 짓던 도중 꼴사납게 플레이어에게 패배한 데다, 탑의 법칙까지 어겨 지금은 힘을 거의 잃어버렸으니까.”
“힘을?”
“그래. 그때의 일 때문에 녀석은 여기서 강제로 천 년 동안 튜토리얼의 보스를 만드는 신세가 됐거든. 물론, 천 년이 다 지나고도 힘은 되찾지 못할 테지만.”
유원의 말이 이어질수록 차일드의 표정은 점차 일그러졌다.
아무래도 자신의 신세에 관한 이야기를 타인의 입으로 듣는 게 썩 유쾌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네놈, 나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았지?”
차일드는 미간을 찌푸리며 유원을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른 모양. 유원은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고는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이거, 혹시 기억하냐?”
“설마 그걸 뽑아주기라도 바라는 거냐? 눈은 왜…….”
차일드는 유원의 눈을 보다가 말을 멈추었다.
붉게 변한 눈동자.
화안(火眼).
그 눈을 마주한 차일드의 얼굴에 감출 수 없는 분노가 떠올랐다.
-네 이노옴-!
화아아악-!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검은빛을 띤 마나가 차일드를 중심으로 휘몰아쳤다. 유원은 손을 앞으로 뻗어 거화를 일으켜 마나로부터 몸을 지켜 냈다.
“윽…….”
“뭐 이런 마나가…….”
“힘을 잃었다면서?”
파지지직-.
하르간의 전격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검은 마나와 전격이 부딪쳐 상쇄되었다.
“이게 힘을 잃은 거다.”
하르간은 차일드의 몸에서 뿜어진 마력에 중얼거렸다.
“저 녀석이 진짜 랭커였다면, 우린 순식간에 죽은 목숨이었으니까.”
화르륵, 화륵-.
유원은 몸을 보호하기 위해 몸에 불길을 둘렀다.
마나를 통해 격해진 감정이 전해져왔다.
유원은 씩 웃으며 조롱하듯 차일드를 마주 보았다.
“아직 안 잊어버렸군.”
“그 눈, 그 눈! 어디서 난 거지?”
“얻었다. 튜토리얼에서.”
“네 녀석, 설마 그 원숭이의 핏줄이더냐?”
원숭이.
천하의 제천대성을 그리 부를 수 있는 존재는 아마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유원은 차일드와 손오공의 관계를 알고는 일부러 그를 자극했다.
“뭘 그리 억울해 하는 거냐? 시험 감독관이나 돼 가지고 졸렬하게 참가자들을 잡아다 실험이나 한 주제에.”
“내 질문에나 대답해라!”
“싫다. 내가 여기 온 건 네 궁금증 따위를 풀어 주기 위한 게 아니라…….”
유원의 시선이 공동을 가득 메운 인간형 키메라들을 훑었다.
“너 같은 버러지 새끼가 살아 숨 쉬는 꼴을 못 봐서니까.”
그 말에 결국 차일드의 눈이 뒤집어졌다.
“너 이 새끼가……!”
구구구구-.
공동이 흔들렸다.
바닥을 타고 흐른 검은 마나에 공동 안쪽에 널브러져 있던 시체들이 움직였다.
온몸에 바늘자국이 생겨난 시체들.
어울리지 않는 머리와 눈, 팔다리들을 이어 붙인 괴물들.
“그래, 좋다. 어차피 네 녀석이 그 원숭이와 관련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니. 어떻게든 네놈의 입을 열게 하고, 사지를 찢어 키메라를 만든 후에 원숭이의 앞에 던져 주도록 하지.”
살기로 이글거리는 목소리에 공동 안의 키메라들이 반응했다.
튜토리얼의 참가자들의 시체를 이용해 만든 인간 키메라.
그들 중 몇몇은 꽤 진득한 마나를 뿜어내고 있었다.
‘저 녀석들인가.’
앞으로 약 백 년 후.
탑의 하층에 출몰해 여러 키메라들을 부리는 플레이어 가 나타난다.
그 키메라들은 다른 키메라들과는 달리, 시스템의 축복을 받은 것처럼 탑을 오르며 점점 강해졌다.
레벨 업하는 키메라들.
그게 바로 이곳에서 차일드가 연구하고 있던 키메라들의 정체였다.
‘거의 완성 단계인 것 같지만…….’
다행히 아직까지는 무식하게 숫자만 많을 뿐 완벽한 완성은 아닌 모양이었다.
“키메라.”
그르르르-.
유원의 명령에 키메라가 반응했다.
녀석은 금방이라도 달려 나갈 것처럼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마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차일드를 향한 분노일 것이다.
“이 잡종들, 싹 다 죽여 버려라.”
캬아아아-!
쿵, 쿵쿵-.
키메라와 키메라의 싸움.
하나의 거대한 키메라는 인간형의 키메라들을 물어뜯고, 밟아 죽였다.
“젠장,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이것들을 정리하면 되는 거죠?”
하르간의 일행들은 키메라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인간형 키메라들의 전투력은 일반 튜토리얼 참가자들이 감당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저들은 모두 랭킹 상위권의 참가자들.
게다가 전격을 휘날리며 키메라들을 학살하기 시작한 하르간의 합류는 분명 큰 힘이 되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일반 키메라를 이용해 인간형 키메라를 상대하고 차일드와 싸울 생각이었는데, 덕분에 손을 덜게 됐다.
‘덕분에 조금 더 편해졌군.’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인간형 키메라들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유원은 마음 편히 차일드를 바라보았다.
그는 검은 나무를 깎아 만든 지팡이를 들고 유원을 가리키고 있었다.
우우웅-.
유원의 주위로 검은 마나가 넘실거렸다.
지팡이에서 뿜어진 마나가 한순간 빛나고.
화아악-!
[흑관 – Dark casket]철걱-.
순식간에 생겨난 검은색의 관이 유원의 몸을 집어삼켰다.
“절대 경도의 관이다. 한 번 갇힌 이상, 저 키메라라 해도 빠져나올 수 없지.”
차일드는 생각보다 손쉽게 유원을 사로잡았다는 생각에 분노도 잊은 채 입가를 비틀어 웃었다.
“고작 튜토리얼 참가자 주제에, 아무리 힘을 잃고 추락했다고 해도 날 무시해? 네놈을 키메라로 만들어 영원히 죽지도 살지도 못하…….”
쩍-.
흑관에 금이 생겨났다.
“게……?”
차일드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설마, 저 안에서.
아직 플레이어의 자격도 얻지 못한 햇병아리가.
콰앙-!
쩌저적-.
“미, 미친!”
정말이었다.
안쪽에서 전해지는 충격. 그 충격으로 인해 흑관이 부서지고 있었다.
차일드는 서둘러 지팡이를 통해 마나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대응을 하기에는 이미 한 발 늦은 상태였다.
콰앙-!
챙그랑-.
차일드가 자랑하는 구속계 스킬, 흑관이 무너졌다.
그것도 고작 튜토리얼 참가자의 손에.
꾸득, 꾸드득-.
맨 손으로 흑관을 산산조각 낸 유원은 몇 번씩 주먹을 쥐락펴락 하며 부서진 흑관의 조각 사이로 걸어 나왔다.
“그 팔…….”
차일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반 배 이상 부풀어 오른 팔.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솟아오른 핏줄과 유원의 몸 안에서 느껴지는 규칙적인 마나의 흐름.
한때 랭커였던 그는 먼발치였지만 한 번 이것과 같은 스킬을 본 적이 있었다.
비록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초라했지만…….
차일드는 복잡하진 머릿속에 결국 생각하는 걸 포기하고는 물었다.
“네놈, 올림포스랑은 어떤 관계냐?”
유원을 바라보는 차일드의 시야에 올림포스의 한 랭커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대신화 기간토 마키아의 주역이 될 존재.
제우스의 아들이자 열두 시련의 주인공이며 거인 학살자라 불리는 자.
대영웅(大英雄) 헤라클레스.
[거인화]그 영웅의 힘이 지금, 유원의 팔에 깃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