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76
하르간의 말에 그의 팀원들이 놀라 뒤로 물러났다.
“아, 아버지?”
“팀장의?”
“그럼…….”
하르간의 아버지.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굳이 하르간의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그 이름은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 탑에서 나고 자란, 혹은 새로 탑에 들어온 플레이어라면 알 수밖에 없는 존재.
“제우스……?”
올림포스의 삼신 중 하나이자 천신이라 불리며, 올림포스를 건국한 왕.
그가 플레이어들의 시험장에 나타난 것이다.
“용건이 있으시거든 저에게만 하십시오.”
하르간은 의외로 덤덤한 반응이었다.
마치 그가 자신을 찾아올 걸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했다.
언뜻 담담해 보이는 반응.
하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팔라딘테는 알 수 있었다.
‘겁먹었나……?’
하르간이 겁을 먹었다.
그것도 굉장히 많이.
단순히 제우스가 눈앞에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힐끗-.
팔라딘테가 제우스의 눈치를 살피자, 그는 웃고 있었다.
하르간과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용건이 너에게만 있는 건 맞다.”
제우스는 굳어진 하르간의 모습에 물었다.
“내가 널 해칠 것 같으냐?”
흠칫-.
직설적인 물음에 하르간의 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반사적으로 팀원들을 막아섰다. 막아선다 한들 막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제우스는.
“왕이 될 자질은 아니군.”
냉혹한 평가를 내렸다.
“스스로의 가치를 저런 쓰잘 데 없는 버러지들을 위해 포기하다니. 용기나 정의가 아니다. 소를 위해 대를 희생하는 건 단지 어리석음일 뿐이지.”
그 말과 함께 제우스는 몸을 돌렸다.
“죽일 생각 없다. 따라나 와라.”
그 말에 굳어져 있던 하르간의 몸에 조금이지만 힘이 풀어졌다.
올림포스 부수기 당시.
하르간은 하데스와 유원과 손을 잡고 제우스를 몰아내는 데 협력했다.
당연히 제우스와 하르간의 관계는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고, 때문에 하르간은 제우스가 자신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날 죽이려는 거였다면 시험 도중에 찾아오지는 않았을 거다.’
시험 도중의 플레이어들은 관리자들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 그것은 공평하게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탑의 법칙이었으며, 관리자들이 가장 예민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잠시 다녀오마.”
저벅-.
하르간은 팀원들을 남긴 채 제우스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괴물의 입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직접 걸어가지 않으면 반대로 잡아먹힐 것이기에 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 * *
황금 성의 방 안.
유원이 누워 있던 침대에 누군가 뒹굴거리며 누워 청포도를 입안에 넣고 오물거렸다.
“이제 뭐 할 거냐?”
잔뜩 심심한 손오공이 유원을 찾아 온 것이다.
이제 막 몸을 회복한 유원은 떠날 채비를 마친 상태로 답했다.
“올라가야지.”
“위로?”
“마침 오늘이 시험 날짜다. 한숨 돌렸으니, 올라갈 때도 됐어.”
라그나로크 때문에 적잖은 시간을 사용했다. 목적지가 탑의 정상인만큼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시험을 치르고 위로 올라가는 것.
당장 60층 구간에서 할 일은 끝났다. 이제는 이보다 더 위쪽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바쁘게도 산다.”
“네가 너무 한가한 거다.”
“난 이미 랭커니까. 너랑 입장이 좀 다르지 않겠냐?”
손오공은 어깨를 으쓱이며 다른 과일을 집어 들었다.
퍽 여유로워 보이는 그 모습에 유원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더 바쁘지.”
“응?”
과일을 입 안으로 가져가던 손오공이 멈칫했다. 이런 불길한 예감은 보통 틀리지 않았다.
“위쪽에서 먼저 네가 할 일이 있다.”
“싸우는 거냐?”
“그런 거면 널 안 시키지.”
“윽…….”
손오공은 벌써부터 질린다는 듯, 얼굴을 잔뜩 구겼다.
난리를 피워도 되는 곳이라면 모를까, 유원은 손오공을 싸우는 장소에 잘 보내려 하지 않았다.
“좀 믿어 보는 거 어떠냐?”
“널 보냈다가 오히려 싸움만 커진 경우가 몇 번인데. 이번처럼 큰 판이 아니면 믿을 생각 없다.”
“내가 애냐? 그때랑 지금은 다르지.”
“안 믿는다. 널 보냈다간 자칫 라그나로크나 기간토마키아 같은 사건이 하나 더 생길 수도 있어.”
“…….”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도 손오공은 싸움이 커지는 걸 좋아했다.
더군다나 손오공은 이 탑에서도 손꼽히는 랭킹을 지닌 하이랭커.
단신의 힘이 거대 길드 하나와 맞먹는 만큼, 그 한 명의 움직임은 단순히 개인의 움직임으로 보기 어려웠다.
자칫 그의 행동에 따라 ‘싸움’이 아닌 ‘전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파프니르와 브리트라 쪽은? 어떻게 됐지?”
“잘 타일러서 돌려보냈다. 일단은 돌아간다던데.”
“일단은…….”
“나중에 두고 보자, 뭐 그런 뜻이지 뭐.”
대수롭지 않게 말하긴 했지만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그놈들을 살려 두는 게 의미가 있는 거냐?”
“용족 말이냐?”
“어.”
“의미 있지. 종족 단위의 힘을 보전하는 건데.”
“갱생이 돼?”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유원의 말에 손오공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적어도 그의 기억 속에 용족의 갱생과 관련된 이야기는 없었다. 아마도 이건, 유원이 따로 그리는 그림일 것이다.
“네가 이렇게 혼자 뭔가를 생각하는 거라면 뭔가 변수가 있긴 있다는 건데…….”
손오공이 아는 유원은 아무런 근거 없이 움직이는 성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나칠 만큼 생각이 많았다.
“대체 뭐냐? 그 변수가.”
“제우스.”
“제우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까지도 말해 줘?”
그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손오공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머리 아픈 건 질색이야.”
어쨌든 근거가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손오공은 한숨을 푹 내쉬며 누워 있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래서 뭔데? 내가 해야 하는 게.”
“넌…….”
유원은 손오공에게 위쪽에서 먼저 하고 있어야 할 일들을 일러 주었다.
그리 복잡한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손오공은 머리를 쓰는 일보다는 몸으로 뛰어다니는 일에 더 잘 맞았다.
유원의 말을 기억하려 애쓰던 손오공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뭐, 그런 거라면야.”
그래도 이 정도면 심심함은 조금 덜어졌다 싶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할 일이 없어 나른하게 누워 있던 손오공은 금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위에서 보자고.”
탁-.
행동력 하나만큼은 역시 알아줘야 했다. 할 일이 정해지자 손오공은 곧장 창밖으로 뛰어내려 근두운에 올라탔다.
금세 시야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멀어지는 손오공.
유원은 그런 손오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고.”
한참 늦은 대답.
슬슬 시험이 시작될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유원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럼 저쪽은 손오공에게 맡기기로 하고…….’
이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자신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
‘어디 숨었냐, 제우스.’
바로, 사라진 제우스를 찾는 것이다.
* * *
무스펠하임, 65층의 시험장.
활활 이글거리는 땅에서 펼쳐지는 시험은 탑을 오르는 플레이어들에게 10층 구간만큼이나 난관이었다. 그만큼 환경이 열악해, 플레이어들은 한시라도 빨리 시험을 통과하고 위로 올라가기를 바랐다.
시험에 참가하는 플레이어는 50명 남짓.
확실히 아래층에 비해 참가하는 숫자가 많이 줄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는 달리.
“골치 아프군.”
유원은 따로 떨어져 누군가와 대면을 하고 있었다.
시험장에 도착한 유원과 마주하고 있는 건 시험 감독관이 아니었다.
새하얀 피부를 가진 1미터 남짓한 키의 어린 난장이.
바로 층의 관리자였다.
“넌 이 탑의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괴생명체다. 이전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지만, 이젠 너무 선을 넘어 버렸어.”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예전만 하더라도 관리자가 많이 눈감아 줬다는 느낌이었다.
이미 유원은 층간의 격차를 아득히 넘어 있는 상태였다. 랭커와 맞먹는 힘을 지녔던 건 훨씬 아래, 하층 구간에서부터였다.
그런데 이제는 하이랭커 수준을 훌쩍 넘어, 라그나로크라는 큰 전장에 뛰어들 정도가 되었으니.
“네가 지니고 있는 그거.”
화륵-.
관리자의 말과 함께, 유원의 심장에 잠들어 있던 불이 반응했다.
그 크기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 어려운 크기의 마력이었다. 정작 지니고 있는 유원조차도 이게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안 그래도 골치 아프던 녀석이 그런 것까지 달고 나오면 어쩌란 거냐?”
“그럼 그냥 올려 보내시지 그렇습니까?”
귀찮게 무슨 시험을 치르냐는 말에 관리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지. 그건 특혜야.”
“저들은 그걸 원할 텐데요.”
유원은 이런 상황을 모른 채 저 멀리에 모여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가리켰다.
“다 떨어뜨릴 겁니다, 이번에도.”
관리자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
유원의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시험을 관리하는 관리자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유원이 참가하는 대부분의 시험이 그랬다.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보상을 높이기 위해 유원은 다른 참가자들을 시험에서 떨어뜨렸다.
열 번의 시험을 치르면 일곱, 여덟 번 정도는 유원이 혼자 통과하는 그림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관리자들이 유원을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괴생명체’라 부르는 이유였다.
“지금 나 협박하는 거냐?”
“뻔한 결과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뭐하는 놈인지, 겁도 안 먹어.”
고민하던 관리자가 몸을 돌렸다.
“잠깐 있어 봐라.”
쩌억-.
관리자의 발걸음에 그가 향하던 곳이 벌어지며 문이 생겨났다.
유원은 어디 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그를 기다렸다. ‘잠깐’이라고 하더니 꽤 시간이 지체되었다.
“뭐야, 왜 시작을 안 해?”
“뭘 재촉을 하냐. 벌써 망했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저기 김유원 와 있잖아. 우린 망했어. 안 돼.”
“팀 게임이길 바라 봐야지.”
“혹시, 취소된 거 아니야?”
“설마 시험이 취소되겠냐?”
한동안 시험이 시작되지 않자 참가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미 유원이 시험에 참가한다는 걸 알게 되어 전의를 잃어버린 모습들. 그나마 기대하는 건 유원과 팀이 되어 시험을 치르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사라졌던 시험 감독관이 참가자들 앞에 나타났다.
우람한 덩치에 얼굴에 칼자국으로 문신이 새겨진, 험상궂은 인상의 감독관이었다.
“이제 시작하나?”
“떨리는데.”
참가자들이 바짝 긴장했다.
여기까지 온 플레이어들 중, 랭커를 꿈꾸지 않는 자는 없었다. 당연히 시험에 대한 기대와 긴장감 역시 저층 구간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늘 시험은 없습니다.”
시험 감독관의 말은 그런 그들의 긴장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돌아가십시오.”
“뭐?”
“시험이 없다니요?”
“갑자기 시험이 취소되다니, 이게 무슨…….”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원성.
하지만 시험 감독관의 말은 바뀌지 않았다.
“돌아가라고.”
그 말이 끝이었다.
시험 참가를 위한 포인트는 환불되었고, 참가자들은 불평을 터뜨리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들 무리와 조금 동떨어진 곳에서 유원이 서 있었다.
“그렇게 됐다.”
부욱-.
공간을 찢으며 다시 나타난 관리자.
유원은 설명을 바란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새로운 시험을 열 거다.”
뜬금없는 결론이었다.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시험을 취소하고, 다른 시험을 연다니.
분명 보통 시험은 아닐 터였다.
“무슨 시험입니까?”
“65층부터 79층까지.”
한숨을 푹 쉬며, 관리자는 골칫덩어리를 보듯 유원을 바라보았다.
“네놈을 한 번에 올라가게 만들 시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