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79
* * *
“이건 뭐, 거저먹기구먼.”
“그러게. 덕분에 이게 무슨 횡재인지.”
성을 바라보는 플레이어들은 당연한 승리를 점쳤다.
이건 애초에 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
“통과하면 이제 80층인가?”
“보상은 뭐가 나오려나.”
“이것도 성 공략에 따라서 공헌도가 나눠지는 모양인데?”
“적이 한 명밖에 없잖아. 공헌도는 어떻게 책정되는 건데?”
“몰라. 그냥 업혀 가지, 뭐.”
시험 시작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이때.
시험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은 긴장이 풀려 있었다.
물론, 전부가 그런 건 아니었다.
‘뭔가 이상한데.’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건가?’
‘그럴 리가 없다.’
‘관리자는 그리 허술하지 않아.’
하지만 이건 특별한 변수가 없는 시험이었다.
점령전.
무수히 많은 종류의 시험 중, 이만큼 정직한 시험도 없었다. 성을 지키고 서 있는 상대를 끌어내리고 그 성을 차지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나왔다!”
“김유원이다!”
“이제 시작인가?”
성벽 위로 김유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이쪽에는 1만에 달하는 숫자가 있었다.
전략? 전술?
그런 건 필요하지 않았다.
이만한 숫자를 가지고 전략 전술을 짠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었다.
“가자.”
“공헌도에 따라서 올라갈 수 있는 층이 달라진다고?”
“선봉은 내 거다.”
“알아서들 해. 난 편안하게 한 층만 올라가도 그만이니.”
“여기서 눈도장 한 번 잘 찍으면 몸값도 확 뛴다니까?”
우르르 몰려드는 플레이어들.
새까맣게 모여든 플레이어들의 앞으로 김유원이 성 아래로 걸어 내려왔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한데?”
“뭐가?”
몇몇 눈썰미 있는 플레이어들이 멈칫했다.
묘한 불안감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우르르 몰려들던 플레이어들이 잠시 행동을 멈추었다.
“김유원이 아닌 것 같다.”
“무슨 소리야?”
“상대는 한 명이야.”
“김유원 말고 다른 녀석이 있을 리가…….”
이상함을 느낀 플레이어들이 성문을 막고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상하긴 했다.
제아무리 방심하고 있다 한들, 상대로 정해진 플레이어에 대한 정보쯤은 알아보는 게 당연한 일.
시험에 참가한 플레이어들 중 김유원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어?”
“진짠데?”
상대는 정말 김유원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얼굴.
모두가 의아해하던 그때, 몇 명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스, 스, 스…….”
“스사노오다!”
삼귀자의 역사를 알고 있는 플레이어들이었다.
스사노오.
워낙에 오래된 하이랭커인 만큼 얼굴은 잊혔지만, 그 이름은 탑의 역사에 아직까지 선명하고 깊숙이 남아 있었다.
“스사노오? 그 귀신?”
“스사노오가 여기 왜 있어?”
“누가 헛소릴 지껄여!”
“그냥 닮은 사람 아니야?”
저벅-.
스사노오가 앞으로 걸어왔다.
거리가 좁혀지고, 얼굴은 선명해졌다.
그의 몸에서 보랏빛의 기운이 스멀거리고.
키이이이이-.
귀곡성이 성 바깥으로 퍼져 나갔다.
“다, 닮은 수준이 아니야…….”
“기록과 똑같아…….”
“나, 난 본 적 있어! 스사노오야! 스사노오라고!”
만 명의 플레이어들 중에는 스사노오와 동시대를 살았던 플레이어도 존재했다.
랭커처럼 영생할 수는 없어도 상위 층계의 플레이어로서 긴 시간 동안 존재해 온 노장들.
그들은 스사노오의 얼굴을 기억했고, 그 기억은 결코 잊히지 않고 있었다.
“난 포기하겠어!”
“젠장. 스사노오가 있다는 말은 없었잖아! 언제 죽은 놈인데!”
“잠깐! 속임수다! 여기 스사노오가 있을 리가…….”
슈악-.
콰과과과곽-!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던 자리 한복판에 기다란 선이 그어졌다. 깊게 땅이 파이고, 새빨간 핏물이 하늘 위로 튀어 올랐다.
“아아악!”
“파, 팔! 내 팔!”
“무슨 스킬이야?”
“검이다!”
“검?”
“이게 검이라고?”
우왕좌왕하는 플레이어들.
스사노오의 칼은 순식간에 넓은 전장을 반으로 갈랐다. 그들이 아는 상식선에서 특별한 스킬도 없이 검 한 번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이런 건 불가능했다.
철그럭-.
스사노오가 두 자루의 검을 손에 든 채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나의 주인께서 명령하셨다.
어딘가 기분이 나빠, 화가 잔뜩 난 듯한 목소리.
-이 안쪽으로는 한 명도 들어가지 못한다.
키히이이이-.
스스스스-.
날카로운 예기가 스사노오를 중심으로 뿜어진다.
그와 동시에 몇몇 플레이어들은 스사노오의 안색과 그에게서 풍기는 기운을 통해 알아차렸다.
“언데드……?”
“그럼 김유원이 스사노오를?”
“젠장.”
어쩐지 시험이 너무 쉽다 싶더라니.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플레이어들은 다시금 의욕을 불태웠다.
“언데드면 그렇게 쫄 거 없어!”
“저 녀석은 진짜 스사노오가 아니다! 네크로맨서에게 조종받는 언데드는 한계가 있어!”
“저 녀석을 넘는 게 이번 시험의 진짜 목표다! 다들 긴장해!”
만 명에 달하는 플레이어들이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한다.
미적지근하던 전장이 달아오르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 그 인파를 정면에서 받아 내며 스사노오는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거지.
썩 마음에 드는 형태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비로소 돌아왔다.
피 냄새가 나는 전장에.
살육의 현장에.
* * *
거대한 성안.
침대도, 천장의 조명도, 문짝도.
모든 게 비정상적으로 큰 침실의 소파에 드러누운 유원은 바깥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중얼거렸다.
“난리네, 아주.”
구우웅-.
작지만 성이 흔들렸다.
바깥에서 그만큼 격렬하게 싸우고 있다는 증거였다. 개개인은 그리 대단할 게 없더라도 무려 만 명이 동시에 내뿜는 마력의 힘은 무시할 만한 게 아니었다.
영혼을 통해 스사노오의 기쁨이 느껴졌다.
저런 대군을 상대할 수 있다는 건 아마, 스사노오에게 더없이 기쁜 일일 것이다.
물론, 그가 여기서 싸우고 있는 건 스사노오 자의에 의한 선택이 아니었다.
‘조금 자제시켜야겠어.’
-가능한 살려서 돌려보내라.
유원의 명령에 스사노오가 멈칫거렸다.
웃음기 띈 얼굴이 표정이 굳어졌다. 반항 어린 그의 외침이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유원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명령이다.
-……알겠다.
성문에서 멀어지며 신나게 칼을 휘두르던 스사노오가 몸을 돌렸다.
이내, 그는 거대한 성문 앞을 굳게 막아선 채 달려 들어오는 플레이어들에게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것도 상대를 죽이기 위한 살초보다는 제압하기 위한 수가 대부분.
두 자루의 검 중, 스사노오는 일부러 날을 다 빠뜨린 검을 쓰고 있었다.
-재미없게.
영혼을 타고 스사노오의 불평이 들려왔다.
피가 낭자하고 죽음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걸 좋아하는 스사노오였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상대를 죽이지 말아야 하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유원에게 충성하기로 맹세한 스사노오였다.
바로 전날, 유원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스사노오는 영혼의 서약을 하며 완전히 유원의 지배하에 놓인 언데드가 되었다.
거절할 방법은 없었다. 유원의 명령을 계속 거부했다간 그때부턴 자의식조차 남지 않은 빈껍데기 인형이 될 테니까.
‘아무리 좋은 기회라도 여기서 너무 많은 사상자가 나오는 건 좋지 않아.’
이 시험은 유원이 혼자 만 명을 상대해야 하는 시험이었다.
그들로부터 거인들의 성을 지켜 내야 하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험의 통과 조건이 그들을 모두 죽이는 건 아니었다.
‘65층 이상의 플레이어들. 시간만 계속 주어지면 1할 이상은 랭커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단순 계산만 놓고 봐도 무려 랭커가 될 인원이 천 명에 가까웠다. 한 명 한 명이라면 몰라도 천 명의 랭커는 엄청난 전력이었다.
‘여기서 저들을 다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스사노오에게 그런 번거로운 명령을 내린 것도 바로 그런 이유.
‘가능한 살려서 데리고 간다.’
시간이 흘러, 저들은 훗날 아우터와의 전쟁에 참여할 랭커들이었다.
귀찮더라도 데리고 가야 했다. 그게 바로 유원이 과거로 돌아오며 동료들과 한 약속이었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가능한 많은 수의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탑을 오를 것.
이런 시험에서도 유원은 그 약속을 어길 생각이 없었다.
물론.
‘단순히 시간만 버틴다고 끝날 시험이라 보기엔…… 너무 심심하지만 말이야.’
이 시험은 유원의 능력을 평가하고, 그 힘을 대중에게 보여 주어 65층의 세계를 홍보하기 위한 시험이었다.
그런 만큼 대중들의 눈을 만족시키기 위한 구성을 갖추고 있을 터.
유원은 관리자가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시험을 짰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인해전술로 밀고 들어오는 송사리들을 방어해 내는 건 상위 하이랭커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말이야.’
유원의 실력을 의심하는 플레이어, 혹은 하이랭커의 힘을 가늠하지 못하는 우물 안 개구리라면 모를까 관리자가 계획했다기엔 어딘가 부족한 느낌의 시험.
“쇼를 하는 거라면 받아 주마.”
그렇기에 유원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부족한 부분이 메워질 때까지.
“대신, 무대에 올라간 값은 제대로 치러야겠지만.”
* * *
-무대에 올라간 값은 제대로 치러야겠지만.
고개를 든 유원의 말.
몇 명의 관리자들이 모여 호수에 비친 유원을 바라보았다.
“듣던 대로 물건이긴 하군.”
“우리가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건가?”
“그런 게 아니라면 저렇게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잣말을 하진 않겠지.”
관리자들의 눈이 반짝였다.
유원의 말은 단순한 혼잣말이 아니었다. 관리자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선 그들에게 말을 건넨 것이다.
관리자들의 시선을 알아차린 건지, 아니면 단순한 추측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너희가 말한 대로, 보통 내기는 아닌 모양이야.”
“그렇다니까. 크흐흐흐.”
튜토리얼의 관리자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 역시 이번 시험에 관심을 가지고 구경을 나온 상태.
그 외에도 65층 위쪽의 여러 관리자들이 이 시험을 주목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이미 예상도 하고 있는 모양이고. 시험의 난이도도 너무 낮은 것 같으니…….”
65층의 관리자가 고개를 돌려 다른 관리자들을 돌아보았다.
“예정보다 속도를 좀 더 높여 보는 게 어떻겠나?”
“찬성이다.”
“이래서는 종속된 언데드 하나만 내세워서, 영 볼 게 없으니 말이야.”
“난 지금 이대로도 나쁘지 않지만. 찬성하도록 하지.”
“나도.”
모두가 찬성했다.
이 기회에 유원의 실력을 보고자 했던 관리자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스사노오라는 변수가 나타나 성을 지키고 서는 바람에 유원은 아예 움직이지도 않고 있었다.
지루한 초반을 넘기려면 조금 서두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다들 동의하는 걸로 알고.”
튜토리얼의 관리자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호수에 비친 유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미 튜토리얼에서 수르트의 아들, 수르트라를 처리했던 녀석.
몇 년 되지 않는 그 짧은 사이, 그가 얼마나 더 강해졌을지 궁금해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어서 빨리 진행해 보자고.”
수십 명에 달하는 관리자들.
그들이 준비한 대시험.
“저 녀석이 어디까지 통과할 수 있는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