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81
* * *
고작 눈 한 번, 깜박이는 새였다.
심부름꾼들은 자신들의 몸이 어느새 새까만 전격으로 휘감겨 있는 걸 발견했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다.
시야가 컴컴하게 변해, 순간 자신이 죽은 게 아닐까 하는 그 순간.
푸화악-!
눈앞을 덮친 새까만 전격이 걷히며 환한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파짓, 파지지짓-.
까만 전격 너머로 유원이 보였다. 심부름꾼들은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보았다.
누가 막았냐는 표정들.
모두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유원의 공격을 막은 건 세 명의 심부름꾼 중, 어느 누구도 아니었다.
“두 번째 시험도 끝났다.”
걸걸한 목소리.
심부름꾼들은 자신들의 몸을 덮는 그림자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큰 풍채에 수염으로 얼굴을 덮은 거구의 관리자가 서 있었다.
“과, 관리자님?”
“너희 역할은 끝이다. 이만 돌아가거라.”
매정한 목소리.
자존심상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다시 싸우려 한다 한들 방금 전과 같은 공격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고.
두 번째는 감히 관리자의 말에 토를 달 자신이 없어서였다.
“죄송합니다.”
심부름꾼들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동시에 모습을 감추고 사라진 심부름꾼들의 빈 자리에 관리자는 줄곧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유원을 돌아보았다.
“너무한 거 아닙니까? 이게 무슨 시험입니까?”
유원의 입에서 나온 한숨.
설마 하고 있긴 했는데, 진짜로 관리자가 눈앞에 나타날 줄이야.
관리자들이 정말 제정신인 건가 싶었다.
“이건 시험이라기보다는 이벤트에 가까우니 말이야. 말 그대로 즐겨 보자는 거지.”
“즐기는 건 당신들뿐입니다.”
“그래. 우리뿐이지. 무대가 여기로 바뀐 탓에 바깥의 녀석들은 아무것도 볼 수가 없으니.”
껄껄 웃음을 터뜨린 관리자가
“덕분에 고 녀석이 잔뜩 화가 났단 말이야. 이 시험으로 무스펠하임을 홍보할 생각이었는데, 덕분에 엉망이 되어 버렸으니.”
원래 이 시험은 65층의 관리자가 다른 관리자들을 모아 계획한 것이었다.
시험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이벤트. 무림계의 무림대전처럼 이 시험 역시 무료한 랭커와 플레이어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이벤트였다.
“그나저나 정말 재밌어.”
구구, 구구구-.
거대한 성이 흔들렸다.
관리자의 표정에 희열이 맴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내가 있던 튜토리얼에서 빌빌거리던 녀석이, 이제 내 앞에서 이런 시험을 치르다니.”
튜토리얼의 관리자를 처음 본 건 심부름꾼과 올림포스의 관계를 폭로할 때였다.
당시 유원의 말에 관리자는 분노했고, 단숨에 심부름꾼을 짓이겨 버렸다.
그때만 하더라도 유원의 눈에 관리자는 아득히 멀고도 높은 존재였다.
감히 올라갈 수도 없고, 너무 높은 나머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조금은…… 보인다.’
관리자.
이 탑을 지배하는, 신과 다름없는 존재들.
실제로도 그들은 이 탑 안에서 신과 다름없는 이능을 행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무적인 건 아니었다.
실제로도 오래전, 최상위 랭킹의 하이랭커의 손에 관리자가 목숨을 잃은 사건도 있었으니까.
“너무 긴장하지는 마라.”
구구구구-.
관리자의 주먹에 마력이 맺힌다.
“튜토리얼의 관리자라서 말이야. 난 배운 게 없고 단순해서, 이것 말고는 달리 대단한 재주가 없어.”
앞으로 뻗는 손.
특별한 스킬 없이, 오직 마나를 잔뜩 응축해 머금은 주먹이었다.
대단한 재주가 없다. 확실히, 튜토리얼의 관리자다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스킬을 못 쓰는 건지, 아니면 쓰지 않는 건지는 몰라도…….’
꽈악-.
검을 쥔 유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상대는 관리자다.’
제아무리 그 높이가 가늠이 된다 한들, 아직까지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있는 존재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그의 능력이 육체적인 능력과 마력뿐이라면 오히려 더 경계해야 했다.
특별한 스킬이 있는 거라면 파훼법을 찾으면 그만이지만, 꼼수가 없는 힘에는 파훼법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럼…….”
부웅-.
관리자의 주먹이 앞으로 뻗어졌다.
“시작하자고.”
빈 허공으로 뻗어진 느릿한 주먹.
그것을 보고 있던 그 순간.
오싹-.
이미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던 감각지대에 묘한 위험이 감지되었다.
투화악-!
헤르메스의 발걸음을 이용해 위로 높게 뛰어오른 유원은 방금 전, 자신이 서 있던 곳의 뒤쪽에 생긴 구멍을 바라보았다.
주먹으로부터 일직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벽이 관통되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슷-.
붉게 변한 화안금정 안에 관리자가 움직이는 게 스쳐 지나갔다.
“분명 시작하자고 했으니…….”
높이 뛰어올랐던 유원의 몸이 위로 돌아갔다.
“이건 기습이 아닌 거다.”
그렇게 목소리가 들려오기 직전.
[거인의 팔이 전신에 깃듭니다.]우득-.
유원의 전신에 마력이 퍼져 나가고, 전신에 거인의 힘이 깃들었다.
그와 거의 동시였다.
쩌어어엉-!
관리자의 주먹이 유원의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힌 게.
콰아앙-!
바닥을 뚫고 땅속 깊숙이 파묻혔다. 유원은 관리자의 힘을 이겨 내지 못했다.
[‘바다의 가호’가 몸에 깃듭니다.] [‘바다의 가호’가 몸을 보호합니다.] [‘바다의 가호’가 깨어집니다.] [방어에 일부 실패합니다.]저릿, 저릿-.
거인화까지 사용해 분명 막아 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단 한 방에 유원의 몸을 보호하던 스킬이 깨어졌다. 거기다 충격은 계속 남아, 주먹을 막아 낸 양팔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힘인지.
‘헤라클레스가 탑 최강의 육체라고 알았는데…….’
새삼 실감이 났다.
이 탑은 정말 넓고, 별의별 일이 다 있구나 하고.
‘어쩌면 아닐지도 모르겠어.’
바다의 가호가 깨어졌다.
제아무리 거인화를 사용했다 한들, 저런 걸 정면에서 막아 내는 건 무리였다.
최대한 흘려내거나 피해야 한다.
유원은 헤라클레스를 상대하는 것이라고 상정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지?”
유원을 기다리고 있던 관리자가 재차 주먹을 들어 올렸다.
“계속 기다려 줄 생각은 없느니라.”
부우우웅-.
콰앙, 으직, 으드드드-.
관리자의 주먹에 성의 바닥이 쩍쩍 갈라졌다. 가구들이 옆으로 쓰러지고, 거대한 성 전체가 흔들렸다.
쾅, 콰앙, 쾅쾅-!
이어지는 주먹질.
그렇게 힘껏 주먹을 내지르던 관리자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멈칫거렸다.
손에서 느껴지는 따끔거림.
욱씬-.
손을 보자, 화상 자국이 보였다. 곧이어 깊게 파인 땅속에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화아아악-!
높게 치솟은 불.
작지만, 관리자의 몸에 화상을 입힐 만큼 뜨거운 불이었다.
“이게 수르트가 그렇게 열심히 모으던 불인가.”
수르트는 관리자들에게조차 위협이 만한 힘을 지닌 존재였다.
당연히 그가 무엇을 하는지는 관리자들에게 있어 경계할 만한 일이었고, 그의 동선과 행동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불.
수르트가 지난 인고의 세월 동안 모은, 거대한 마력의 덩어리.
유원의 몸속에는 그것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직 제대로 다루지는 못하는 것 같지만 말이지.”
화륵, 화르륵-.
땅속에 파묻혀 있던 유원이 몸에 불을 두르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 * *
콰릉-!
전격이 터지는 소리가 뒤를 울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유원이 눈에 새빨갛게 뜨고는 검을 내려치고 있었다.
쩌엉-!
관리자는 팔을 들어 유원의 검을 막아 냈다. 그와 동시에 보랏빛의 불길이 파도가 되어 관리자를 덮쳤다.
화아아악-!
퍼어엉-!
폭발을 일으킨 불길.
양손으로 머리를 보호한 관리자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유원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역시.”
부우웅-.
퍼억-!
반사적으로 들어 올린 팔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상처가 생겨나 피가 흘러내렸다.
“싸움 재간은 인정해야겠어.”
쾅, 쾅쾅-.
쾅-!
검이 몸을 때리며 마치 쇳덩어리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속도를 따라잡기도 점점 힘들어지고, 힘에 있어서도 조금씩 유원은 관리자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관리자는 유원을 바라보았다.
파직, 파지지-.
화르르륵-.
어둠과 전격, 불.
세 가지 속성의 마력이 섞여 몸에 둘러져 있었다. 파괴력에서 가장 뛰어난 세 가지 속성의 마력이 뒤섞이자, 신체를 강화하는 정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거기다 그 마력을 버텨낼 수 있는 거인화까지…….’
단순히 우연히 모인 능력이라 치기에는 너무 조화롭다.
자칫 잡탕이 될 수 있는 힘이 거인화라는 스킬을 제 집으로 삼았다.
아직 조금 작고 어수룩해 보이긴 하지만.
“완전체로군.”
쾅-!
주먹과 검이 부딪쳤다.
쿠르르르-.
높은 천장이 흔들리고, 성이 조금 기울어졌다.
유원의 눈이 다시 반짝였다.
순식간에 훌쩍 거리가 벌어진다.
화르르륵-.
관리자의 눈앞에 남은 작은 반딧불 하나.
퍼어어엉-!
그것이 폭발을 일으켰다. 거대한 불길에 휩싸인 관리자가 눈을 빛내며 유원을 노려보았다.
“건방을…….”
쾅-!
지면을 박차며 뛰어오른 관리자가 유원을 향해 날아갔다.
기껏 벌어진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유원은 피하지 않고 부딪쳤다.
번쩍-.
콰릉-!
두 사람의 충돌에 다시금 성이 뒤흔들렸다. 두 사람이 충돌할 때마다 부서진 건물의 잔해가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벽면에 쩍쩍 금이 생겨났다.
‘단단하다.’
관리자를 향해 검을 휘두르던 유원의 이마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체력은 금격하게 고갈되었다.
두근-, 두근-.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마치 제발 쉬게 해 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몸이 버틸 수 없을 만한 마력이 심장을 중심으로 전신으로 뻗어 나갔다.
하지만.
‘무리를 하지 않고서 관리자와 싸울 방법은 없다.’
관리자는 모든 힘을 다 끌어올려 싸울 수 있는 상대였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유원은 자신이 어디까지 올라왔는지 시험해 볼 수 있었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았다.
더군다나 이 시험의 결과에 따라 보상이 달라질 터.
애초에 이번 시험은 관리자를 꺾어야 하는 게 아니었다.
‘이 시험은 일종의 이벤트라고 했다. 플레이어와 랭커들에게, 그리고 관리자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그리고 이 무대를 만드는 주인공은 바로 자신.
이 시험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따라 보상이 결정된다.
두근-.
그래서였다.
꼭 이기지 않아도 되는 상대와의 싸움에서 이렇게까지 무리를 하는 게.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화르륵-.
두근-!
심장이 타들어 가는 듯한 느낌에 유언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주춤거렸다.
“커으-.”
심장이 녹아내릴 것처럼 뜨거웠다.
격렬하게 뛰는 심장에서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불을 집어삼킨 심장이 그 힘을 바깥으로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몇 분 못 버티나.’
생각보다 지속 시간이 짧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장에서 뿜어지는 불이 거센 탓이었다.
실로 무식한 양이었다.
‘이러니 수르트가 그렇게 탐을 낸 건가.’
심지어는 아직까지도 한계가 다 드러나지 않은 상태이니.
확실히 다루기 힘든 힘이었다. 무엇보다 힘의 원천이 심장에 박혀 있는 만큼 억지로 힘을 끌어다 쓸수록 심장에 가해지는 무리도 커졌다.
‘그래도 덕분에…….’
유원은 심장에서 끓어오르는 불길에 이를 악물었다.
앞으로 한 방.
가장 위력적인 한 방이 남아 있었다.
‘한 방 정도는 제대로 먹일 수도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