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95
* * *
퍼석-.
첫 번째 머리가 말라 비틀어졌다.
어느 순간 목소리를 내지 않고, 생기를 잃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머리는 그걸 내색하지 않았다.
서로의 장례는 이미 오래전에 미리 치러 두었다.
언젠가 반드시 있을 이 일에 그가 희생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약속되어 있던 일이기에, 이미 충분히 슬퍼한 일이기에 지금 슬퍼하거나 비통해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잘 가라.”
평생을 한 몸에서 살아 온 쌍둥이와의 작별치고는 덤덤했다.
하지만 그 잔잔한 여파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저벅-.
가까운 곳에서 인기척인 느껴졌다.
전부터 느끼고는 있었지만 고개를 돌린 건 뒤늦게였다.
아수라가 유원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때.
“미안하다.”
유원이 고개를 숙였다.
“뭐가?”
“좀 더 준비를 잘했더라면…….”
말은 다 이어지지 못했다.
마무리가 되지 못하는 말에서는 진한 아쉬움도 느껴졌다.
무슨 말을 하려나 했더니.
“네가 미안할 일이 아니다.”
만약 그 미안함이, 첫 번째 머리에 대한 희생 때문이라면.
“이건 오래전부터 약속되어 있던 거다. 정말 아주 오래전부터.”
얼마나 된 약속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오히려 눈앞에 있는 유원에게 아수라는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네놈과는 상관없다는 거다. 오히려…….”
한참 동안 그 역시 말을 흐리자.
“고맙다.”
세 번째 머리가 그 끝을 마무리했다.
목적이야 어찌 되었든, 자신들의 복수를 유원이 도와준 것만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
물론.
“가끔은 첫째가 생각이 난다.”
유원은 단지 이곳에 있는 아수라에게만 사과하는 게 아니었다.
처음 시계태엽이 거론되고, 누가 돌아갈지를 논의하던 때.
아수라는 드물게도 자신이 돌아가겠노라 주장했다.
“만약 내가 돌아가게 되면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런 아수라의 말에 모두가 약속했다.
누가 돌아가든.
인드라와의 싸움에서 아수라가 희생되는 일은 없도록 하자고.
‘첫 실패다.’
모든 걸 다 이룰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딘가에서는 실패하거나 오랫동안 정체될 때도 있을 거라 각오했다.
많은 걸 계획하고 행동한 만큼, 한 번쯤은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 일이 지금에서야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유원이 아수라에게 미안한 이유였다.
‘이 일이 끝에 다다르고 나면…….’
유원은 남아 있는 아수라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그들 역시 아우터와의 싸움에서 모두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유원은 그 시작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그땐, 너희가 또다시 죽지 않을 수 있기를.’
적어도 이 다음에서만큼은.
그 결과가 다를 수 있기를.
유원은 잠시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 * *
인드라와의 싸움이 끝났다.
모두가 찢어졌다. 브리트라와 파프니르는 몸을 회복하기 위해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제우스는.
“아버지는, 바로 떠나셨나?”
“떠났다고 하기엔 아마 가까운 곳에 있을 거다.”
바로 인드라의 심장을 통해 힘을 취하기 위해 모습을 감췄다.
아마 간접적으로나마 어리석은 혼돈을 만난 게 자극이 된 모양이었다.
유원과 하르간은 오랜만에 술잔을 나눴다. 평소 유원이 좋아하던 무림계의 음식을 파는 술집이었다.
“어디 계시려나, 지금쯤.”
“아마 어디 땅속에 파묻혀 있지 않으려나. 아니면 하늘에 올라가 있거나.”
“뭔 소리냐?”
“아무튼 사람 없는 곳에 있을 거라는 거다.”
쪼르르르-.
유원은 하르간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그것도 꽤 가득.
그러고 나서는 자신의 술잔에 마저 같은 양의 술을 따르는 유원을 보며 하르간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웬일이냐? 네가 먼저 술을 다 따라주고.”
“그럴 일이 있다.”
목구멍으로 넘기기가 어려울 정도로 독한 술이었다. 이 정도 술이 아니고서야 잘 취하지 않는 몸을 가지고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쨍-.
잔이 부딪치고, 유원은 단숨에 술을 넘겼다.
몇 잔이나 마신 건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즈음.
빠르게 술을 마시다 보니 조금이지만 취기가 돌기 시작했다.
“별로 속이 시원하거나 기쁘진 않은가 보다?”
“그래 보이냐?”
“무려 인드라다. 랭킹 6위.”
인드라의 이름은 하르간도 숱하게 들어 보았다.
전격을 사용하는 랭커들 중, 최강의 하이랭커.
그는 제우스와 같이 오래전부터 하르간의 우상과도 같았다.
단지, 그로 인해 인간과 용족의 사이가 적이 되었기에 마음에는 들지 않았을 뿐이지.
“역사적인 일을 한 거다, 넌.”
“좋게 보면 다행이고.”
한 잔 더 달라는 듯, 유원은 빈 술잔을 내밀었다.
보통 술보다는 커피를 선호하던 녀석이 이렇게 술을 마시니. 하르간은 걱정 반, 즐거움 반으로 술을 따랐다.
“너랑 이렇게 술 마시는 거, 처음인 거 같다.”
“그런가.”
“난 술을 마시면 친구가 된다고 믿는다.”
쨍-.
다시 한번 술잔이 부딪쳤다.
“같이 마시면 더 친해진 기분이어서, 난 술이 좋다.”
“난 별로 좋아하진 않아. 똑같이 쓴 물이라면 술보다는 커피가 낫지.”
“그런데 왜 그렇게 마시는데?”
“그냥.”
꿀꺽-.
독주를 다시 한번 들이켜며 유원이 빈 잔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생각나서.”
“……?”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함께 싸우지 못했으니 알 턱이 없었다. 적어도 아까 전에 나눈 이야기로는 아수라의 머리 중 하나를 제외하고는 죽은 사람이 없었다.
그 정도 희생쯤이야, 랭커들간의 싸움에서 비일비재한 일.
더군다나 유원은 아수라와 마땅한 친분도 없던 상태였다.
이미 탑을 오르며 숱한 죽음을 겪어 왔을 그가, 이런 일로 술을 다 마시다니.
사정을 모르는 하르간의 눈에는 이상할 따름이었다.
다만.
“그 전장에 없던 게…….”
술로 축인 목이 벌써 바짝 마른다.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서 안전하게 싸움을 지켜보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거기서 같이 싸울 수 없다는 게 너무 한심하더라고.”
“당연한 거다. 넌 아직 랭커도 아니니까.”
“너랑 나, 튜토리얼 동기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네가 하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유원도 이해했다.
하지만 굳이 그 말에 대해 길게 설명해 위로할 생각은 없었다.
하르간은 빠르게 성장했다.
유원이 보기에도 이상할 만큼.
따지고 보면 자신보다도 더 비상식적인 속도로 성장한 게 바로 하르간이었다.
그중,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게 아마 자신일 것이다.
‘자극제가 된 거겠지.’
동기.
그 단어 하나가 하르간에게는 더없는 자극이었다.
함께 튜토리얼을 통과하고 올라온 유원이 자신의 목표이자 우상이었던 제우스와 함께 싸웠다.
그것도 랭킹 6위의 하이랭커, 인드라와 함께.
자극이 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말인데.”
청승은 그만.
유원은 발갛게 올라 왔던 얼굴의 취기를 날려 버렸다.
방금 전과는 눈빛이 달라지자, 하르간이 질색하며 손을 저었다.
“아, 또 뭔데? 뭔 이야기를 하려고 분위기가 벌써 끝이야? 너 진짜 그러는 거 디오니소스 형님이 알면 큰일 난다? 어딜 귀한 취기를 그렇게 휙휙 날려 버려?”
휙, 옆에 있던 술병을 들어 올린 하르간이 술병에 적힌 문구를 앞으로 내밀어 보였다.
“너 이거 안 보여?”
[깨끗하게, 맑게, 자신 있게. 랭커가 된 당신을 위한 맑고 독한 술. ps. 디오니소스]어디서 본 듯한 광고 문구. 술병에는 은색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디오니소스가 술을 병째 들이켜고 있는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러다 형님한테 혼난다, 진짜.”
“형 부르는 동생 역할은 아닌 줄 알았는데.”
“아, 진짜. 제대로 술 좀 마셔 보나 했더니만…….”
끙, 앓는 소리를 낸 하르간은 곧이어 마찬가지로 취기를 날려 버렸다.
되도록 이번에는 오랫동안 진득하게 한잔해 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럴 시간은 끝난 모양이었다.
혼자만 취해 있는 것만큼 재미없는 일도 또 없기도 했고.
“그래서 뭔데?”
“네 아버지가 내게 부탁한 게 있다.”
“부탁? 뭘?”
“너.”
“나?”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짓던 하르간은 곧 그 말을 이해하고는 몸을 뒤로 기울였다.
탄식이 먼저 나왔다.
어쩐지, 갑자기 자신에게는 말도 없이 사라진다 싶더라니.
“내 훈련 말이냐?”
“그래.”
“하르간. 내 아들 중에서 가장 날 닮은 녀석이다.”
하르간에 대한 제우스의 애정.
아니, 어쩌면 욕심일지도 모른다. 그는 또다시 제2의 제우스가 나오기를 바라고 있었으니까.
아스가르드의 감옥에서 나와 하르간을 만난 후.
그는 인드라를 찾는 동시에 줄곧, 하르간의 훈련을 돕고 있었다.
어쨌든.
“내가 왜 헤라클레스에게 애정을 주지 않았는지 아느냐?”
자신의 핏줄인 만큼, 하르간에 대해서는 제우스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하르간이 있기 때문이다. 녀석이야말로 내가 세공한 최고의 보석이니까 말이야.”
그 말을 듣고 난 후.
하르간에 대한 유원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헤라클레스보다 더 뛰어난 보석이라. 제우스가 왜 그렇게까지 말하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재능이 뛰어난 플레이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미 하르간은 최단 시간 내에 랭커가 될 거라고 주목받고 있었다.’
서로 원하는 목표가 달랐다지만, 하르간은 유원과 함께 탑에 들어와 그보다 빠른 속도로 탑을 올랐다.
탑을 다 오르지도 않은 유원이 랭킹에 등록되며 최단 기간 내에 랭커가 된 플레이어의 칭호는 유원이 가져갔지만, 유원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편법으로 인해 이곳까지 온 것에 불과했다.
시계태엽을 이용한 자신은 이미 오래전에 탑의 정상을 넘어 갔던 하이랭커였다.
하르간과는 출발선부터가 다른 셈.
그렇기에 하르간에 대한 유원의 평가 역시 세간의 평가보다 훨씬 높을 수밖에 없었다.
“널 많이 믿으시나 보네. 자기가 하던 일을 남에게 맡기시는 분이 아닌데.”
어쩌면 자존심이 상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두 사람은 동기이자 친구였다.
적어도 하르간은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그렇다 해서 유원을 라이벌이나 적수로 여기지는 않았다. 자존심을 세우기에는 이미 두 사람의 사이가 너무 멀리 멀어져 있었으니까.
“그래서? 한다고 했냐?”
“안 할 이유는 또 뭐냐. 뭐 그리 오래 걸리는 일이라고.”
어차피 제우스가 돌아올 때까지 며칠뿐이다. 그 정도면 잠깐 휴식을 하며 움직이기에 적당한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그런 유원을 바라보는 하르간의 시선은 달랐다.
“그래? 의외인데.”
그가 지금껏 봐 온 유원의 모든 행동에는 이유와 목적이 있었다.
누구보다 시간을 귀하고 바쁘게 여기던 녀석이 자신의 훈련을 도와주겠다니.
이상하다 여길 만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만약 하르간이 정말 헤라클레스 이상의 잠재력을 가진 플레이어라면 그의 훈련은 유원에게도 꽤 중요한 일이었다.
상위 하이랭커의 숫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결국 훗날 있을 아우터와의 싸움을 대비하기 위해선, 탑의 전력이 강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제우스 같은 하이랭커가 한 명이라도 더 늘어난다면 그건 꽤 유의미한 일일 것이다.
게다가.
“그리고 나도 그냥 봐 줄 생각은 없다.”
유원도 단지 며칠일 뿐이더라도 이 일로 시간을 허비할 생각이 없었다.
“너희 팀이 지금 80층에 있지?”
드륵-.
술자리는 여기까지라고 선언하듯, 유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훈련은 탑을 올라가며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