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97
유원의 물음에 이성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는 지금껏 탑을 올라온 몇 년을 머릿속으로 다시 되감아 보았다.
어려웠던 튜토리얼.
반면 탑에 들어선 이후부터는 과연 특별히 어려웠던 적이 없던 것 같았다.
“너는 어항처럼 작은 세상에 갇힌 상어다.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도 모르고, 자신이 얼마나 멀리까지 헤엄칠 수 있는지도 모르지.”
유원의 시선이 힐끗, 하르간에게로 향했다.
“하물며 그 어항에는 같은 상어가 한 명 살고 있으니, 그 안을 바다로 착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이성윤의 팀에는 하르간이 있었다.
그의 재능은 제우스가 헤라클레스보다 뛰어나다 인정할 정도였다. 재능만 놓고 보면 이 탑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런 하르간이 옆에 있으니 자신의 재능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위험한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런 이성윤에게 필요한 건 간단했다.
“너에게는 벽이 필요하다.”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위기.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 닥친 높고 단단한 벽.
그것이야말로 이성윤이 성장하기 위한 필요 조건이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한 최고의 환경은 따로 있었다.
“이 팀을 떠나라.”
유원이 폭탄을 던졌다.
* * *
80층의 시험은 총 열 팀으로 이루어진다.
그중 선택된 세 개의 팀만이 시험에서 통과해 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있으며, 개인으로 시험을 통과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팀을 구하지 않고 탑을 오르던 플레이어들은 벽을 느끼고 팀을 만든다.
재능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구나, 하고.
하지만 지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으로 시험에 신청한 팀이 2팀이 있었다.
[이성윤 : 이거 정말 괜찮은 거 맞습니까?]이성윤에게서 도착한 메시지.
유원은 저 멀리 지평선까지 이어진 초원을 바라보았다. 온통 초록색인 이 초원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계속 멍하니 보고 있고 싶은 풍경.
하지만 메시지에 답은 해야 했다.
[잘해 봐.]돌아오지 않는 답장에 이성윤의 욕설이 들리는 것 같았다.
하르간은 격렬히 반대했지만, 유원은 이 시험을 이성윤이 혼자 통과해야 할 시험이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면 결국 그는 계속해서 제자리걸음을 할 뿐이기에.
‘성 방어전.’
방어와 공격. 각각의 팀은 도합 다섯 개의 성을 두고 공성전을 펼친다.
얼마나 여러 번 성을 빼앗았는지.
성을 빼앗는 데 시간은 얼마나 소요됐는지.
그 과정을 수치로 매겨, 최종적으로 점수를 많이 획득한 3팀이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식이었다.
[시험을 시작합니다.]성 바깥으로 상대 팀이 모여드는 게 보였다.
어차피 이 시험의 결과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스무 명 안팎의 플레이어들.
이미 유원은 이것과 비슷한 시험을 겪고 올라왔다. 그것도 상대는 만 명에 달했다.
감흥조차 없었다.
문제는 저쪽.
‘하르간 쪽은 문제없을 거고…….’
하르간의 팀은 지난번 80층의 시험에서 탈락했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제우스의 난입으로 시험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약 문제를 제기한다면 제우스 역시 관리자에게 제지를 당했겠지만 하르간은 그러지 않았다.
이번 시험은 그들에게 있어서 첫 번째 재시험이었다.
당연히 이를 악물고 시험을 치를 것이고, 떨어질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성윤은 다르다.
‘올라올 수 있다면 인정해 주마.’
그는 이 시험에서 유원과 같이 팀을 이루지 않고 혼자서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혼자서 열 명, 스무 명 몫을 해야 한다는 뜻.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의 이성윤이라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 전에 일단…….”
파지지-.
유원은 우라노스의 심장을 통해 전격을 뿜어냈다.
손안에 만들어진 황금색의 창.
“내 시험부터 통과해야겠지.”
그리고 그 순간.
“항복!”
시험이 끝났다.
* * *
“허억, 헉-.”
이성윤은 성에 올라 가쁜 숨을 내쉬었다.
주위에는 자신을 노리고 공격하던 플레이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들 역시 80층까지 올라온 만큼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실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그러한 이들로 구성된 팀을 상대로 싸운 것이다.
그것도 혼자서.
이런 경험은 탑을 오르기 시작한 후 처음이었다.
푸욱-.
정해진 곳에 깃발을 꽂았다.
그러자.
[첫 번째 성을 공략하였습니다.] [1,000공헌도를 획득하였습니다.] [27분 14초.] [공략 시간에 따른 추가 공헌도가 지급됩니다.] [510공헌도를 획득하였습니다.]두 번째 성의 공성이 끝났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반가운 메시지였지만 지금은 그걸 반길 때가 아니었다.
이제는 다음을 생각해야 했다.
와그작-.
인벤토리에서 꺼낸 과실을 입안에 넣고 씹었다. 마력의 회복을 돕고, 조금이지만 수분을 보충하기 위함이었다.
성의 탈환은 성공했다.
이제 다음은 수비였다.
“이제 한 번 남았나.”
이미 두 번의 공성을 성공하고, 한 번의 수성을 성공했다.
덕분에 체력이 꽤 바닥났지만 어쨌든 한 번만 더 수성에 성공하면 시험은 통과였다.
이렇게 어려운 시험도 처음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자신의 앞을 든든하게 막아 주는 팀원들이, 그리고 최강의 창이자 방패인 하르간이 함께했어야 했던 시험이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혼자였다. 앞을 막아 줄 사람도, 뒤를 지켜 줄 사람도 없었다.
‘팀장을 만나지 않은 건 운이 좋았다.’
눈을 감고 휴식하며 이성윤은 지금까지의 시험을 떠올렸다.
‘대진운은 나쁘지 않아. 이제 다음 시험만 잘 넘기면 된다.’
하르간이 있는 팀과 맞붙게 되면 승산이 없었다. 당장 그 팀에서 하르간 한 명만 나오더라도 막아 낼 자신이 없었다.
제발 다른 팀이 걸리기를.
이성윤은 그렇게 기도하며 다음 시험을 기다렸다.
그런데.
“……아, 진짜.”
저벅-.
눈앞에 나타난 상대를 보며 이성윤은 의욕을 잃어버렸다.
“이러기 있습니까?”
[시험을 시작합니다.]성을 향해 걸어오는 유원.
분명 이 안에서 그는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서 같은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하지만 어제의 훈련에서 이성윤은 그가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을 살아가고 있는 플레이어라는 걸 깨달았다.
하긴.
그거야 이미 이 탑의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일 테지만.
“운이 안 좋다고 생각해라.”
어느새 성 위로 올라온 유원의 목소리에 이성윤은 고개를 돌렸다.
펄럭-.
그는 벌써 깃발 앞에 서 있었다.
대체 언제 온 걸까.
이대로 유원이 깃발을 손에 쥐면 시험은 끝이었다. 그래도 공성과 수성을 합쳐 세 번을 승리했으니 다음번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뭐 하냐? 안 막고.”
유원은 그런 이성윤을 재촉했다.
반쯤 포기하고 깃발을 내어 주려던 이성윤은 당황해 되물었다.
“예?”
“이건 시험이다. 더군다나 난 딱히 너희 팀도 아니고.”
츠츠츠츠-.
유원의 주위로 마나포가 생겨났다.
딱히 개수를 세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도합 101개.
딱 이성윤이 막아 낼 수 없는 개수였다.
“안 막을 셈이냐?”
“안 막는다고 해서 멈출 건 아니잖습니까?”
츠츠츠츠-.
이성윤이 마찬가지로 마나포를 만들어 냈다.
막대한 마력을 응축해 낸 마나포들. 처음 유원과 만났을 때보다 확실히 개수도 늘어나고, 하나하나에 깃든 마력의 질도 늘어난 상태였다.
“다시 갑니다.”
이성윤의 눈이 빛났다.
그리고 그 순간.
화아아악-!
백 개에 달하는 그의 마나포에서 마력이 뿜어지고.
퍼어어엉-!
두 사람이 올라선 성벽이 크게 흔들렸다.
* * *
콰과, 과과과과-.
무색의 마력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성벽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쩍쩍 금이 생겨났다.
이성윤은 눈앞으로 들이닥친 파도를 보며 땀을 흘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처럼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적응한 건가.’
그새 100개에 달하는 마나포를 다루는데 적응한 모양.
고작 하루 사이에 이룬 성과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건 재능이라는 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불가사의다.
그렇다는 건 즉.
‘원래부터 이 정도 컨트롤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거겠지.’
진짜는 지금부터였다.
자신이 상대할 수 없는 한계. 그 속에서 이성윤은 점점 더 눈부시게 빛났다.
이성윤은 유원의 마력을 뚫어 낼 방법을 떠올렸다.
여기서 하나의 마나포를 더 만들어 내면, 과연 결과가 달라질까?
아니다.
달라지는 건 없었다. 유원은 마나포를 몇 개든 더 만들어 낼 만큼 방대한 마력과 그것을 구사할만한 컨트롤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집중력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
이성윤은 눈을 감았다. 그의 머릿속에 유원이 한 말이 떠올랐다.
“왼손으로 원을 그리며 오른손은 세모를 그리는 느낌으로. 각각의 개체를 전혀 다른 사람이 다루는 감각이다.”
원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컸다.
그 전까지는 감으로 하던 일이었다면, 이제는 그것을 발전시킬 방법을 찾을 수 있었으니까.
츠츠, 츠츠츠-.
백 개가 넘는 마나포들이 하나로 합쳐진다. 그 많은 숫자가 합쳐지면 크기가 커질 법도 한데, 이성윤의 것은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위협적이었다.
‘이거라면.’
자신감이 가슴을 가득 채운다.
적어도 한 방은 먹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상상력.
이성윤은 자신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단순한 무기를 떠올렸다.
그거라면 역시…….
‘총이다.’
손을 앞으로 뻗는다.
작고 약해 보이는 마나포 하나.
그것을 향해 이성윤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이건, 방아쇠다.’
화아아악-!
마나포가 거대한 빛을 뿜어냈다.
단 한 발.
한 발뿐이지만 심상치 않은 위력이 마나포에서 발사된다. 이번만큼은 다를 거라고, 이성윤은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나쁘지 않네.”
쫘아악-!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성윤의 한 수는 너무나도 쉽게 갈라져 버렸다.
“……!”
코앞으로 다가온 검의 예리함.
찰나의 순간, 이성윤은 몸이 반으로 베어져 숨이 끊어질 것만 같은 감각을 느꼈다.
저도 모르게 이성윤은 한 손으로 목을 감쌌다.
하지만 다행히도 베어진 건 자신의 옆에 떠 있던 마나포 하나뿐이었다.
“방금은 그래도 한 발짝 문턱을 넘었다.”
유원은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검을 다시 집어넣었다.
반사적으로 뽑아 든 검. 맞더라도 바다의 가호가 작동할 테니 큰 피해는 없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이성윤은 자신이 검을 뽑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방금 전 이성윤의 한 수가 웬만한 랭커들의 스킬보다 낫다는 뜻이었다.
“이 정도면…… 합격점인가.”
그는 충분히 이만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과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단기간에 이만한 성장을 이룬다는 건 말이 되지 않고, 유원이 해 준 거라고는 단지 발휘되지 않았던 실력을 밖으로 끄집어낸 것뿐이었다.
‘이제 문제는 나다.’
파짓-.
유원은 검을 쥔 손을 살짝 풀어, 까만 장갑을 내려다보았다.
우라노스의 심장.
전격과 어둠, 물, 세 가지 속성의 마력을 모두 다룰 수 있게 만들어 준 아이템.
“그게 내게서 뺏어 간 벼락으로 만든 아이템인가?”
다시 만난 제우스는 유원이 우라노스의 심장을 다루는 걸 보고는 말했다.
“보물을 썩히고 있었군.”
수천 년 동안 벼락을 다뤄 온 제우스였다.
어쩌면 그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라노스를 다루는 방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