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98
* * *
80층의 시험을 통과한 건 세 팀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한 개의 팀과 두 명이었다.
“진짜 통과할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 제법인데?”
“놀리지 마요, 진짜 죽는 줄 알았으니까…….”
도시의 작은 술집.
원래의 팀원들에게 둘러싸인 이성윤은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시험을 막 끝내고 다음 층으로 올라온 지금.
이성윤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피곤함과 풀어진 긴장감은 금세 원한으로 돌아갔다.
“그 정도 했으면 깃발 하나 정도는 양보해 줘도 되는 거 아니에요?”
원망의 대상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팀에 자연스레 섞여 있는 유원이었다.
공성전에서 그와 맞붙었을 때, 유원은 분명 ‘합격’이라고 말했다.
어느 정도 자신이 기대한 선을 넘었다는 뜻이었다.
물론 그 결과는 이성윤의 기대에는 한참 못 미쳤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대단한 한 방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유원에게 조금의 상처도 입히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어쨌건, 합격은 합격.
이성윤은 내심 유원이 한 수 양보해 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시험에 봐 주는 게 어디 있냐. 자기 힘으로 알아서 올라가는 거지.”
“애초에 팀 단위 시험에 혼자 참가한 거부터가 이상한 거죠.”
“덕분에 이제 좀 알지 않았나?”
유원은 술잔을 들어 조금 목을 축이곤 말을 이었다.
“네가 다른 자들과 다른 게 뭔지.”
“…….”
예전 같으면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을 이성윤이, 이번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 역시 깨달은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의 가치가 어느 정도이며,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 그릇인 건지.
“네 스스로 천장을 정하는 순간부터 네 그릇도 그만큼 작아지는 거다. 그것만 명심해도 지금보다 훨씬 더 빨라질 거다.”
“……명심하겠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힘들다고 투덜거리던 녀석이 금세 고개를 끄덕이며 입안으로 무언가를 곱씹는다.
확실히 이성윤은 깨닫는 게 빨랐다.
‘싹이 큰 녀석이다.’
원래는 하르간을 키우기 위해 시작한 짧은 동행이었다.
하지만 유원이 보기에 이미 하르간은 충분히 싹이 자라고, 밑거름까지 완벽한 상태였다.
어릴 때부터 올림포스의 왕자로서 많은 걸 보고, 배웠다. 당연히 이상도 높고 포부도 넓었다.
반면, 이성윤은 그런 하르간의 옆에 있으며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고.
‘이 둘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다.’
다른 팀원들 역시 훌륭한 랭커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저 둘은 그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최상위 하이랭커가 될 게 분명할 터.
유원이 한 일은 그저 그 시간을 조금 더 앞당겨 준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웬일이냐?”
하르간이 이상하다는 듯 유원을 바라보았다.
시험을 통과한 기념으로 모인 자리.
환영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금 이 자리에 유원이 함께하고 있는 게 그리 자연스럽게 보이지는 않았다.
“네가 이런 일에 다 시간을 쓰고.”
하르간의 머릿속에서 유원은 술 한잔하기도 어려울 만큼 바쁜 친구였다.
당연히 함께 탑을 올라가는 건 물론이고, 이런 뒷풀이 자리를 함께한다는 건 꿈도 꾸기 어려웠다.
그런데 웬일로 유원이 이런 자리를 함께하는 건지.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
“아마 들으면 깜짝 놀랄 거다.”
유원이 이렇게까지 말할 사람이라니.
자리에 모인 팀원들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얼마나 대단한 이름이 나올까, 모두가 다음 이어질 말을 숨죽여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래서 그게 누군데?”
유원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듣고도 못 들은 척, 유원은 빈 술잔을 들어 올렸다.
“여기 술 한 잔만 더-.”
“야!”
* * *
파지지지-!
황금빛의 전격이 눈앞을 가득 메웠다. 순간 시야가 어두워지고 유원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콰앙-!
묵직한 주먹이 손안에 들어왔다. 정전되었던 시야가 돌아오며 당황한 하르간의 얼굴이 들어왔다.
부우우웅-.
쩌어억-!
하르간의 고개가 돌아갔다.
순간, 앞으로 날아오던 하르간의 몸이 그 반대 방향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쾅, 쾅, 콰직-!
몇 개의 나무가 쓰러지며 작은 길목을 만들었다. 유원은 쓰러진 나무들 사이에 파묻힌 하르간을 향해 걸어갔다.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뻔히 보일 만큼 수법이 단순해. 그런 식이면 너보다 약한 상대로는 이길 수 있어도 실력이 비슷하거나 더 뛰어난 상대에게는 절대 이길 수 없다.”
“끙…….”
끼이이이, 쿵-.
나무 더미를 한 손으로 밀쳐 낸 하르간이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얻어맞은 턱이 얼얼했지만 기절하거나 할 만큼 큰 충격은 아니었다. 힘 조절을 할 수 있을 만큼 유원에게는 여유가 있었다는 뜻이었다.
“너에겐 싸움에 대한 긴장이 없다. 약자와의 싸움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겠지.”
“강한 상대와의 싸움에 익숙해지라는 거냐?”
“나보다 약한 상대에게 이기는 건 당연한 거고, 나보다 강한 상대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진짜 강해질 수 있지.”
하르간의 마력은 특별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제우스의 피와 벼락의 힘을 가지고 태어난 그는,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찍어 눌러 왔다.
지금 당장만 하더라도 그는 몇 개의 플레이어 팀을 순식간에 제압하고 몇 명의 랭커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오히려 하르간에게는 독이었다.
단순하고 무식한 싸움법.
그런 방식의 싸움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고착화되고,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유원은 제우스보다 하르간을 더 잘 가르칠 자신이 없었다.
애초에 전격에 관한 속성에서 제우스보다 더 뛰어난 선생이 되기란 불가능했으니까.
그래서 유원은 하르간에게 싸우는 법을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시작하…… 윽!”
자리에서 일어나던 하르간이 눈살을 찌푸렸다.
다리가 저려 왔다. 제아무리 약하게 맞는다 해도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얻어맞다 보면 충격이 누적될 수밖에 없었다.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유원 역시 하르간의 상태가 슬슬 한계라는 걸 알아차렸다.
마력을 거둔 유원이 하르간에게 다가왔다.
“잠깐 쉬지.”
“조금만 쉬면 괜찮을 거다.”
“충분히 쉬어야 한다. 쉬는 것도 중요해.”
“그건 지가 제일 못하면서.”
툭, 툭-.
투덜거리면서도 하르간은 주먹으로 다리를 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상처에 약을 바르기 시작했다.
한 시라도 빨리 몸을 회복해 다시 붙어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오래 붙어 있으니 좋긴 좋은데 말이야.”
사흘.
유원이 하르간과 이성윤의 훈련을 봐 준 시간이었다.
“진짜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이렇게 오래 기다리는 거냐?”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의 하르간이었다.
그는 벌써 열 번도 넘게 같은 질문을 했다. 하지만 유원은 그 질문에 꿈쩍도 않고 모르는 척, 시선을 피하고 다른 소리를 하기 일쑤였다.
자신보다 약하기라도 하면 강제로 입을 열게 할 텐데 그럴 만한 상대도 아니었다.
“이제 좀 말해 줄 때도 되지 않았냐?”
답답함에 털어놓은 말.
“그렇긴 하지.”
“그래. 그렇긴 하…… 뭐?”
갑작스레 달라진 반응에 되려 하르간이 당황했다.
분명 한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절대 말해 주지 않을 것 같던 녀석이 이렇게 쉽게 입을 열다니.
‘그간 조른 게 통한 건가?’
그런다고 통할 녀석이 아니라고는 생각하지만 어쨌든 좋았다.
마음이 바뀌기 전에 궁금한 건 어서 풀고 싶었다.
“그래서? 누군데?”
“제우스다.”
“제우스? 우리 아버지?”
하르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얼마나 급하게 일어났으면 다리가 휘청거렸다. 유원은 서두르는 하르간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다리 괜찮냐?”
“지금 다리가 문제냐?”
어지간히 급한 반응이었다.
하긴.
이러니 자신이 대답하지 않은 거였지만.
“아마 내가 다시 돌아온다는 걸 알면 바로 도망치려 할 거다.”
“왜지? 하르간은 널 그리 싫어하지 않을 텐데.”
“훈련이 좀 힘들었거든.”
제우스의 대답에 유원은 하르간이 생각보다 끈기가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부탁대로 직접 하르간의 훈련을 대신 맡아 보니 또 그건 아니었다.
‘대체 뭘 어떻게 했으면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건지.’
그 와중에도 하르간은 풀린 다리를 이끌고서 최대한 자리에서 도망치려 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이곳에 제우스가 나타나 자신을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여기는 반응이었다.
“가만히 있어라. 어차피 너 어디 못 가.”
“네가 몰라서 하는 말이다.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독한 사람인지.”
목소리가 덜덜 떨린다.
처음이었다.
하르간이 이렇게까지 떠는 모습을 보는 건.
“며칠만 더 있었으면 난 죽었을 거다. 아무것도 못하고, 통닭처럼 변해서…… 아버진…… 악마…….”
“아비에게 말이 심하구나.”
하르간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햄스터처럼 굳어진 하르간이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제발 아니길 바랐지만 아니나 다를까,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아, 아버지?”
제우스.
하르간보다 한 뼘은 더 큰 그가, 뒤에서 하르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안하게 됐다.”
유원의 사과에 하르간은 제우스가 이곳에 있는 게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눈이 마주친 이상 자신이 제우스를 피해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이제는 꼼짝없이 다시 예전처럼 제우스 밑에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판이었다.
“네 말대로 깜짝 놀랄 사람이긴 하네.”
이제는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다시 바닥에 주저앉는 하르간.
유원은 그런 하르간의 뒤에 나타난 제우스의 눈을 바라보았다.
‘뭔가 달라졌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 잘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는 인드라의 심장을 얻었다.
랭킹 6위, 거기다 수많은 용족의 피를 먹어치우며 막대한 마력과 뇌기를 지니고 있던 심장이었다.
벼락을 잃어버렸던 제우스는 그것을 얻어 예전의 힘을 다시 되찾고자 했다.
아니.
유원의 예상이 맞다면 벼락을 가지고 있던 때보다도 더 강해졌어야 했다.
‘뭐가 얼마나 변했을지…….’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눈동자.
유원은 그것을 보고는 물었다.
“만족하냐?”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대답이었다.
만족이라고는 모를 것 같던 그가, 그럭저럭이라고는 했지만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아마도 이제 다시 한번.
탑의 랭킹에 큰 변화가 생겨날 것 같았다.
제우스의 고개가 움직였다.
하르간과의 훈련으로 난장판이 된 주변.
황금색 눈동자를 굴리며 그가 입을 열었다.
“내가 제일 늦었군.”
“많이 늦었지.”
“……?”
두 사람의 대화에 하르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제일 늦다니.
설마 하는 생각에 하르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이런 날이 또 올 거라고 생각은 못했는데 말이다.”
스으으으-.
자욱이 낀 연기.
그와 동시에 밝았던 날씨가 순식간에 밤으로 변했다. 흐릿해진 시야 속, 하르간은 어느새 방금까지 없던 사람이 나타난 걸 발견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리 반가운 재회는 아니군.”
바다의 짠 내음이 코끝을 확 찔렀다.
이 목소리와 이 냄새.
잊을 수가 없는 사람의 것이었다.
설마 하는 생각에 하르간은 눈을 비볐다.
그리고 다음 순간.
“헐…….”
그의 눈에 믿기 힘든 장면이 들어왔다.
제우스의 앞뒤로 선 두 사람.
하데스, 포세이돈.
올림포스의 삼주신(三主神)이 한 자리에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