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99
* * *
어릴 때부터 하르간은 세 사람을 꿈꾸며 자랐다.
천신(天神) 제우스.
사신(死神) 하데스.
해신(海神) 포세이돈.
올림포스의 삼주신이라 불리는 그들은 각자의 영역을 견고히 지키고 있었다.
제우스는 하늘을.
하데스는 지옥을.
포세이돈은 바다를.
서로 간의 영역을 간섭하지 않고, 마주치지 않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약속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정말 긴 시간을 보내 왔다.
그런데 지금.
그 세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렇게 모이는 건 처음 아닌가?’
아버지인 제우스와는 그리 많은 이야기를 나눠 본 게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껏 이 세 명이 모두 모인 적이 있다고는 들어 보지 못했다.
올림포스는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길드였으니까.
“그날 이후로는 처음인가.”
“이렇게 만날 일이 없었으니까.”
“오랜만입니다, 형님들.”
제우스가 하데스와 포세이돈을 향해 인사했다.
묘한 기류가 세 사람 사이에 흘렀다. 오랜만의 재회였지만 이 순간을 반갑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형제라지만 이제는 남보다 못한 관계.
그중, 포세이돈은 특히나 날이 서 있었다.
“우리가 살갑게 인사할 만한 사이는 아니지 않으냐?”
올림포스 부수기 이전까지, 제우스에 의해 아스가르드 감옥에 갇혀 있던 포세이돈이었다.
물론 그가 살아 온 세월을 생각해 보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배신감이나 분노가 옅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건 그렇지요.”
“그걸 알면서 네놈이 무슨 낯짝으로…….”
“걱정 마십시오. 이제 올림포스에는 미련이 없으니.”
제우스의 시선이 하데스에게로 향했다.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포세이돈과는 달리 하데스는 평소 성격대로 조용히 관망하고 있었다.
“소식은 잘 들었습니다. 올림포스가 엉망이더군요.”
담담한 말투와는 달리 그 속에 담긴 뜻은 질책이었다.
어쩌다 올림포스가 이 지경이 되었느냐는.
아스가르드와 함께 탑을 주무르던 거대한 길드가, 이제는 평범한 거대 길드 중 하나가 되었다.
그게 바로 제우스가 사라진 최근 올림포스의 평판이었다.
“큰형님께서는 성군이십니다. 저는 그렇기에 큰형님만은 한 단체의 우두머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냐?”
“올림포스에는 더 큰 힘이 필요합니다.”
“기간토마키아는 끝났다. 올림포스는 지금 평화의 시대야. 너처럼 없는 적을 만들어 힘을 키우기보단, 내실을 다져야 할 때란 말이다.”
“평화의 시대라…….”
제우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렇게 보이셨습니까?”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한 반응에 하데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평화라는 말에 제우스는 비웃음을 지었다. 아무런 까닭 없이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일 리 없었다.
“마음에 드는 녀석이 아니긴 한데, 차라리 저 녀석이 올림포스를 이끄는 게 훨씬 나을 겁니다.”
제우스의 시선이 유원에게로 향했다.
한심하다는 듯 두 사람을 바라보던 제우스가, 처음으로 똑바로 눈을 뜨고 있었다.
“이중에 똑바로 눈을 뜨고 있는 건 저 녀석뿐이니.”
“…….”
그로서는 둘도 없는 칭찬이었다.
따지고 보면 유원도 할 말은 없었다. 시계태엽을 이용해 돌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유원은 이 탑에 들이닥칠 위기를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제우스는 그런 편법 없이도 큰 흐름을 보고 그것을 대비했다.
어쩌면 제우스의 존재야말로 과거로 돌아온 유원이 바꿔 놓은 가장 큰 변화일지도 몰랐다.
“곧 탑에 재앙이 들이닥칠 겁니다.”
재앙.
무려 기간토마키아를 겪은 제우스가 뱉은 말이었다.
그보다도 훨씬 더 큰, 전쟁을 넘어선 무언가가 미래에 벌어질 거라는 선언이었다.
“탑의 위쪽. 아니면 바깥. 어쨌거나 우리가 아는 세계를 넘어선 곳에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가 내뱉는 말에 유원은 혀를 내둘렀다.
처음 안 사실이었다.
어리석의 혼돈을 만나고 그들의 힘을 얻은 적이 있다지만, 그는 유원이 아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바깥’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
이것 또한 자신이 불러온 변화인 걸까.
확실한 건 없지만 어쨌거나 제우스는 유원이 처음 생각한 것보다도 더 큰 거인이었다.
“성군의 덕목은 시대에 따라 무능함이 됩니다. 그 자리는 큰형님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물러나라는 말이냐?”
“이제라도 똑바로 하시라는 말입니다.”
한 마디 한 마디.
하데스에게는 가슴에 비수가 되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흘려 들을 수 있는 말도 아니었다.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한들 자신들은 형제였다.
그리고 제우스는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에서 지금의 올림포스를 만들어 낸 장본인이었다.
그 과정에서 제우스는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하데스는 이곳에 온 목적조차도 잊은 채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족 싸움은 나중에 하고.”
짝-.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박수 소리에 시선들이 모아졌다.
제우스와 하데스, 포세이돈.
세 사람 모두 유원이 들어 올린 손을 주목했다.
“다들 이게 궁금해서 온 거 아니었나?”
결코 한데 모이지 않던 세 사람이 이렇게 모일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
‘우라노스의 심장’이라는 아이템 때문이었다.
원래 벼락의 주인이었던 제우스야 말할 것도 없고 포세이돈 역시 그 오랜 시간 동안 줄곧 해신석을 찾아 헤맸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하데스 역시 벼락의 핵심이었던 천신석과 같은 흑신석을 찾아 탑 곳곳을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세 개의 돌이 한데 모여 만들어진 아이템이라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건 원래 내 거였다.”
우라노스의 심장을 바라보는 포세이돈의 눈동자가 욕심으로 번들거렸다.
“시험을 치르고 정당하게 얻은 보상이다. 당연히 내 거지.”
“뚫린 입이라고 말은…….”
“조건을 잊지 마라.”
유원의 말에 포세이돈의 눈이 구겨졌다.
아스가르드의 감옥에 갇혀 있던 그를 꺼낸 건 유원이었다. 라그나로크를 돕는 조건으로 빠져나온 제우스처럼, 그 역시 자유를 찾는 대신 조건이 있었다.
“나 보고 네 스승 역할을 하라는 것 말이냐?”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이라고 말할 것까지는 없지만 어쨌든. 그리고 거기에 더해, 다시는 말썽을 일으키지 않을 것까지 약속해라.”
얼마 전.
유원은 오딘에게 연락을 취했다.
포세이돈을 잠시 빌려 달라고.
이미 한 번 제우스의 경우를 겪었던 오딘은 난색을 표하기보단 이유를 먼저 물었다.
포세이돈을 어디에 쓰려는 것인지.
라그나로크로 인해 유원에게는 빚이 있었던 오딘은 그 부탁을 들어 주었다. 덕분에 포세이돈은 이렇게 밖으로 나와 유원의 앞에 나타났다.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유원은 그럴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해신석에 대한 포세이돈의 집착이 얼마나 강한지 알기 때문이었다.
올림포스의 삼주신들.
그들에게 유원이 공통되게 바라는 건 하나였다.
“나는 이 아이템을 다루는 법을 알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 가지 속성에 능통할 필요가 있고.”
보물을 썩히고 있다.
제우스의 그 말대로 유원은 아직까지 우라노스의 심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고 여겼다.
여러 속성의 마력을 다루고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이템의 힘을 빌린 능력일 뿐.
여러모로 유원은 아직 여러 속성의 마력을 다루는 데 미숙했다.
“빚은 갚도록 하겠습니다.”
포세이돈은 자유라는 대가를 지불했고, 제우스는 하르간의 훈련을 봐 주는 걸로 대가를 치렀다.
유일하게 대가 없이 순수한 호기심만으로 이곳에 온 게 하데스였기에 유원은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하데스는 순수한 호의에서 움직인 것만은 아니었으니까.
“내가 궁금한 건 타르타로스뿐이다. 다른 건 필요 없어.”
그의 시선이 유원의 손에 있는 우라노스로 향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게 있었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내가 먼저 시작하지.”
저벅-.
포세이돈이 가장 먼저 유원을 향해 다가왔다.
그의 눈에서 불길이 이글거렸다.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듯 매서운 눈으로 유원을 노려보며 그가 삼지창을 손에 쥐었다.
무슨 의도인지는 뻔히 보였다.
훈련을 빙자해 유원에게 복수를 하려는 셈.
“뭐…….”
그 뻔하고 유치한 의도에 유원은 옅게 웃었다.
그래.
“순서야 좋을 대로.”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 * *
제우스가 하르간을 부축했다. 하데스와 함께 세 사람이 멀찍이 떨어지자, 대충 무대는 만들어졌다.
공기가 습해졌다.
창을 쥐는 건 오랜만이었다.
흥분감이 전신을 지배했다. 당장이라도 눈앞으로 달려가 유원의 목젖을 창으로 꿰뚫고 싶었다.
하지만.
‘방심하지 말자.’
그간의 경험이 말해 주었다.
상대는 보통이 아니었다.
당장 유원이 때문에 저 제우스가 올림포스의 왕에서 끌려 내려온 것만 봐도 그랬다.
실력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유원에게 있었다.
꾸우욱-.
흥분을 가라앉히며 포세이돈이 차분히 유원을 바라보았다.
습한 공기는 이내 안개가 되었다. 뿌옇게 변한 시야 속, 포세이돈의 푸른 안광이 번뜩였다.
“가르침을 원한다고 했나?”
안개 너머.
유원의 눈동자가 붉게 타올랐다. 한쪽은 붉고, 한쪽은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눈을 본 순간 포세이돈은 무언가 묘한 위협을 느꼈다.
실체를 잡을 수 없는 무언가.
역시, 무턱대로 달려드는 건 묘수가 아니었다.
쏴아아아-.
포세이돈의 주위로 푸른 물결이 휘감겼다.
물결은 포세이돈의 주위를 타고 그의 창끝에 모여들었다. 거대한 해일과도 같은 기세가 작은 물살에 담기고, 그 위력은 고스란히 그의 창에 담겨졌다.
“그렇다면 먼저 물에 적응부터 해야겠군.”
콰우우우-.
창이 움직이며 포물선 모양으로 물이 흩뿌려졌다.
순식간에 거대한 바다가 형성된다. 한순간에 주위의 지형을 뒤바꾼 포세이돈은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춤을 추 듯 창을 움직였다.
쏴아아, 쏴-.
바다가 물살을 일으키며 노래를 불렀다.
바다라는 이름의 그 거대한 괴물은 포세이돈의 뜻대로 움직였다. 유원은 마음만 먹으면 그가 바다라는 괴물을 움직여 자신을 짓누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것이 바로 포세이돈이었다.
해신(海神).
바다를 제 마음대로 주무르며 그 힘을 이용해 상대를 짓누르는 하이랭커.
“부른 보람이 없진 않네.”
화륵-.
화안금정이 빛을 발했다. 각기 다른 색을 지닌 두 개의 눈동자가 포세이돈과 그가 만들어 낸 주위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쏴아아아-.
꿈틀거리던 바다가 위로 솟아오른다.
십수 개의 해일이 일어나 주위를 감쌌다. 그것은 수만 명의 플레이어들에게 둘러싸였을 때보다도 더 단단한 느낌이 들었다.
해일을 만들어 낸 포세이돈이 푸른 눈을 빛내며 창끝을 움직였다.
‘이거면 됐다.’
거대한 바다 앞에서 인간은 한낱 핏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물이더라도 그것이 모여 바다를 이루면 무게는 수억 톤에 달하게 되니, 그 힘은 가히 신의 권능이라 말하기 부족함이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을 해신이라 불리게 한 진짜 힘.
제아무리 날고 긴다 하더라도 아직 랭커도 채 되지 못한 플레이어가 잔머리를 굴려 피하거나 막아 낼 만한 게 아니었다.
적어도 포세이돈은 지금 이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저리 무식해서야…….”
하늘에 올라 구름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제우스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고.
“그러고 보니 이제 감옥에서 나와 세상 물정을 모르겠군.”
하데스는 그럼 그렇지라 중얼거리며 포세이돈의 어리석음을 힐난했다.
“저 녀석 랭킹이 몇 등인지도 모르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