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05
* * *
콰르르릉-!
천 개의 벼락이 아래로 떨어졌다.
비처럼 뿌려지던 벼락은 어느 순간 모이는가 싶더니 한 점을 향했다.
하늘을 덮는 절망의 몸에 퍼부어지는 벼락들.
치지, 치지지-.
제우스는 온몸에 전격의 갑옷을 두른 채 하늘에 서서 절망을 바라보았다.
꿀렁-.
반응이 온 건 그때부터였다.
온몸이 까맣게 그을린 절망이 입을 벌리고, 그 속에서 무언가를 뱉어 내기 시작했다.
기괴한 장면.
모르고 봤다면 당황했을 만한 상황이었다.
“진짜 그 녀석 말대로군.”
이런 건 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파지지지-!
제우스의 손안에 전격이 모여들었다.
순식간에 거대한 황금빛 창을 만들어 낸 제우스가, 몸을 활처럼 휘게 만들었다.
투창을 위한 자세.
그렇게 다음 순간, 제우스의 손안에서 벗어난 창끝이 절망의 머리를 향해 날아가고.
번쩍-!
날카로운 창끝이 절망의 목을 꿰뚫었다.
아니, 꿰뚫은 것처럼 보였다.
툭-.
바닥에 무언가 떨어지기 전까지 말이다.
제우스는 이미 절망의 입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진 녀석을 바라보았다.
스으으-.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오싹한 느낌이 피부를 긁고 지나갔다. 제우스뿐만 아니라 그것은 다른 두 삼신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 시선에 제우스가 두 사람을 발견했다.
“오셨습니까.”
제우스의 인사에 포세이돈과 하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싸워야 한다는 상황은 분명 그들에게는 퍽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존심을 부리며 싸우기엔 상대가 좋지 않았다.
꿈틀-.
땅을 기던 악마가 몸을 일으켰다.
보랏빛 피부를 가진 그것은, 마치 하늘을 덮는 절망이 덩치를 줄여 작아진 것처럼 보였다.
제우스를 비롯한 세 사람은 그것을 보며 공통된 한 가지 말을 떠올렸다.
[땅에 떨어진 좌절.]아우터, 외신의 이름은 그 존재를 본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었다.
신기하게도 외신을 본 사람들은 모두가 같은 이미지를 떠올렸다.
땅에 떨어진 좌절.
제우스는 녀석을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가엾게 생겼군.”
이제 막 태어난 아기처럼, 땅에 떨어진 좌절은 고개를 들어 표정 없는 얼굴로 제우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콰릉-!
준비되어 있던 벼락이 좌절을 향해 떨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파앗-.
제우스의 황금색 눈동자에 좌절의 모습이 가까이 비춰졌다.
“……!”
콰아앙-!
제우스의 몸이 터져 나갔다. 전격으로 변한 몸이 사라지고, 포세이돈과 하데스의 옆에 그가 다시 나타났다.
놀란 얼굴의 제우스.
“괜찮으냐?”
“……날쌘 녀석이군.”
하데스와 포세이돈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제법 거리가 먼 상태였음에도 두 사람은 상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다.
주륵-.
제우스는 자신의 볼에 타고 흘러내린 피를 손으로 닦아냈다.
제법 깊게 파인 상처.
상처가 났다는 건, 녀석의 공격이 자신의 갑옷을 뚫어 냈다는 뜻이었다.
인드라만큼 완벽하게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어지간해서는 뚫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갑옷이었다.
“위험하군.”
제우스의 중얼거림에 더 경각심을 가진 건 다른 두 사람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제우스는 늘 넘어설 수 없던 벽 같은 존재였다. 벼락과 함께 힘을 잃었다지만 그는 결국 인드라를 잡고 다시 예전의 힘을 되찾았다.
그런데 그런 제우스의 입에서 위험하다는 말이 나오다니.
“포지션을 갖춰야겠습니다.”
제우스의 말에 포세이돈과 하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팀을 필요로 하지 않던 세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아니 많이 달랐다.
자존심 강한 세 사람 중, 가장 자존심이 강한 제우스가 하는 말이었다.
자연스레 포세이돈이 앞으로 나섰다.
“내가 정면에 서지.”
꽤 오래 된 일이었다.
형제인 세 사람은 하나의 팀을 이루고 탑을 올랐다.
랭커가 되기까지, 그들의 포지션은 명확히 정해져 있었다.
포세이돈은 정면에서 방어를. 하데스는 포세이돈의 서포트를. 제우스는 투창을 통한 원거리 공격을.
기억조차 희미해질 만큼 오래 된 일이었지만 각자의 역할만큼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엄청.”
예상치 못한 적 때문이라지만 하데스는 설렘에 가슴이 부풀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멀어졌던 삼신의 재결합이었다. 각자의 포지션을 따라, 세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외신을 잡기 위해서.
* * *
우지끈-!
두꺼운 거목이 단숨에 부러져 뒤로 넘어갔다.
여의봉을 휘두른 손오공이 서둘러 고개를 돌려 어리석은 혼돈을 찾았다.
머리 위로 선이 지나고 있었다.
동시에.
휙-.
고개가 돌아가고, 손오공의 여의봉의 끝을 다시 겨눴다.
“커져라-.”
투확-!
여의봉이 하늘로 높이 솟아올랐다. 주먹을 피해 움직였던 어리석은 혼돈이 기괴한 방향으로 몸을 비틀어, 여의봉을 피해 냈다.
그 움직임에 손오공이 눈살을 구겼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손오공은 잔뜩 인상을 구긴 채 중얼거렸다.
“미꾸라지냐?”
손오공의 손이 위로 향했다.
뿌연 연기가 나무 사이사이를 지나쳐갔다.
스으으-.
땅 아래 새하얀 운무가 생겨났다. 손오공을 피해 움직이던 어리석은 혼돈은 그 속에 담겨 있는 마력에 잠시 멈칫거렸다.
“이건 못 피할 거다.”
치지지지-.
검은 먹구름으로 변하는 구름.
“쳐라-.”
번쩍-!
손오공의 외침에 따라 그 속에서 수백 가닥의 벼락이 하늘 위로 쏘아졌다.
“근두운.”
콰릉-!
땅에서 하늘로 뿌려지는 벼락의 비는 빈틈이 없었다.
한 줄기 눈부신 빛 이후.
어리석은 혼돈의 몸이 너덜너덜해졌다. 몸을 두른 로브에서 아지랑이가 흐르고 몸 곳곳에 벼락이 꿰뚫고 지나간 구멍이 생겨났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스스스-.
몸에 생겨난 구멍들은 육안으로 확인할 만큼 빠른 속도로 다시 매워졌다.
손오공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당황은 없었다. 마치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손오공은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볼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뭘 원하는 거냐?”
몸이 원래대로 돌아온 어리석은 혼돈이 물었다.
처음에는 자신을 죽일 듯이 달려들던 손오공이었다. 분명 그때까지만 해도 손오공의 눈에서는 살의나 분노 같은 것들이 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일까.
어리석은 혼돈은 자신을 향해 공격을 퍼붓는 손오공의 반응이 미적지근하게 식은 것처럼 느껴졌다.
빈 허공을 때리는 듯한 반응.
어리석은 혼돈은 그때부터 손오공의 목적에 의문을 가졌다.
“네가 죽는 거.”
손오공의 말 속에 거짓은 느껴지지 않았다.
거짓과 진실을 파악하는 화안금정 같은 능력은 없다지만 어리석은 혼돈은 자신의 눈과 귀를 믿었다.
손오공 같은 녀석의 거짓말에 자신이 속을 리 없었다. 저 말에는 조금의 거짓도 들어 있지 않았다.
다만.
“당장의 목적은 그게 아니군.”
원하는 게 있다고 해서 손오공은 지금 당장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날뛰는 게 아니었다.
그는 더 큰 그림을 위해 더 멀리를 내다보고 있었다.
원래의 손오공이었다면 눈앞에 닥친 일만을 바라볼 테지만 그에게는 훌륭한 머리가 붙어 있었다.
“몰라.”
정곡을 찔린 얼굴로 손오공이 시선을 피하며 대답하자, 어리석은 혼돈은 자신의 생각에 비로소 확신을 가졌다.
녀석은 지금 이곳에서 자신을 잡으려 한 게 아니었다.
‘너무 시간을 끌렸군.’
녀석의 화안금정을 너무 경계한 탓이었다.
‘아직 쓸 수 있는 카드가 남아 있긴 하지만…….’
화악-.
시야를 가려 오는 손바닥.
후욱-.
어리석은 혼돈의 몸이 신기루가 되어 자리에서 사라졌다. 손오공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그가 힐끗, 저 멀리서 들려온 천둥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저쪽은 둘이면 충분하다.’
애초에 생각했던 전력은 삼신과 김유원까지였다.
손오공이 끼어들긴 했지만 어쨌거나 김유원은 이 자리에 있었다.
그림이 달라졌다 한들 결과물이 나쁘지는 않았다. 애초 첫 번째 목적이 제우스였던 만큼,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더군다나 제천대성이라는 변수가 끼어든 상황.
이 이상의 무언가를 바라는 건 욕심이었다.
‘이보다 더 많은 포인트를 쓸 필요는 없다.’
제우스를 비롯한 삼신으로 만족한다.
어리석은 혼돈이 그렇게 결심을 굳힌 때였다.
치지, 치지지-.
저 멀리서 창을 장전하고 있던 유원의 마력이 느껴졌다.
어둠 속성의 마력이 창 끝에 모여들었다. 손오공과 같은 눈을 하고 있는 유원의 창은 어리석은 혼돈도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었다.
그런데.
스으으-.
창끝의 방향이 달라졌다.
“……?”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보고 있던 유원이, 어느새인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창끝이 향하는 방향.
그곳에는 삼신과 싸우고 있는 절망과 좌절이 있었다.
‘설마.’
분명 유원과 손오공은 처음부터 자신을 잡기 위해 찾아온 것처럼 보였다.
이 둘은 두 개의 화안금정을 사용해 자신의 위치를 찾아냈다. 어리석은 혼돈은 그 목적이 당연히 자신을 잡는 데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본격적으로 싸움이 시작된 지금 보면 그게 아니었다.
단순한 변심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녀석은 애초부터 자신을 노린 게 아니라는 뜻이다.
치지지-!
유원의 창, 니르에서 마력이 뿜어지기 시작한다.
시동이 거의 마무리되어 갈 즈음.
“입 근질거려서 죽는 줄 알았네.”
스윽-.
어느새 뒤로 돌아온 손오공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약 닷새 전.
손오공은 유원의 연락을 받고 80층에 도착해 있었다.
“바쁜데 왜?”
손오공은 몇 개의 층을 이동하는 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근두운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손오공을 따라갈 수 있는 랭커는 이 탑에 아수라를 비롯한 극소수일 정도.
손오공의 방문에 미리 모닥불을 피우고 그 위에 고기를 익히고 있던 유원은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놀라지 말고 들어.”
“응.”
“어리석은 혼돈이 여기 있는 것 같다.”
“뭐-?”
유원의 시선이 손오공의 몸을 꿰뚫고 지나갔다. 거기서 한 마디만 더 하면 죽여 버리겠다는 살벌한 눈빛에 손오공은 입을 다물었다.
목소리를 낮춘 유원은 다 익은 고기 꼬챙이 하나를 손오공에게 건네며 태연히 입을 열었다.
“벌써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놀라지 말고.”
“아, 응. 와- 고기 맛있겠다.”
“진짜 너 혼자 돌아왔으면 어쩔 뻔했냐…….”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말뿐만이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지끈거려 오는 머리를 한 손으로 감싸며 유원이 말을 이었다.
“아무튼, 여기서 그 녀석을 잡는 건 포기한다.”
흠칫-.
고기를 한 입 뜯던 손오공의 어깨가 떨렸다.
녀석이 무슨 생각인지는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긴.
손오공에게 어리석은 혼돈은 단순한 적이 아니었다.
유원과 함께하던 동료들을 비롯해 어리석은 혼돈은 동주칠마왕을 죽음으로 내몬 원수였다.
그런 적을 포기해야 한다니, 쉽게 고기가 넘어갈 리 없었다.
“그럼? 난 왜 부른 건데?”
“그 녀석이 처음 부른 아우터가 뭐였는지 기억하냐?”
“하늘을 덮는 절망. 그리고 땅에 떨어진 좌절.”
대답과 함께 손오공이 깜짝 놀란 듯 다 씹지도 않은 고기를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꿀꺽-.
“설마, 벌써?”
“가능성은 있다.”
“아직 몇천 년은 남은 일인데?”
아무리 그래도 일이 그렇게 빨라졌을 리 있냐는 질문에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설마 하는 손오공의 반응에 유원이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만약 이번에 아우터가 모습을 드러내면…….”
힐끗-.
유원은 자신의 가슴 앞섬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긴 잠에 들어 있는 단풍.
주위가 얼마나 시끄럽든 깨지 않는 걸 보면 이번에도 녀석의 도움을 바라는 건 무리가 있었다.
“너는, 어리석은 혼돈을 붙잡아.”